▲ 조용완(논설위원)
2008년에도 영어가 대한민국 교육의 화두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인수위가 2년 뒤부터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삼을 것처럼 정책을 발표하면서 일파 만파로 입에 오르내리며 기세를 더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6년을 더해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해도 대부분의 학도들이 말문을 트는 데 실패한 것을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웬만한 생활영어를 거침없이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해외연수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고 보면 빠른 시행이 옳을 듯하다. 계산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망국병(?), 영어 사교육이 해결될 분위기다.

영어가 우리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언론매체만 확인해도 알 수 있다. '교육부, 초등 1년부터 영어수업 검토' '인천 영어 자유도시 올해 44억 들여 추진' '영어 자신감 키우기, 필리핀 조기유학' '제주영어교육도시 건설 본격 추진' '방학중 교사들도 영어교육 열풍' '영어연수의 새로운 트렌드 단기 스쿨링' '한국, 호주영어연수 1위국 부상' '영어몰입교육 살아나는 영어 공교육!' '영어교사 매년 1000명 채용' '서울시교육청, 영어교사도 수준별 맞춤 연수' '새삼 주목받는 부산의 영어 공교육' '영어공교육 강화 확대 추진' 등 지난 1월 이후 영어관련 제목만 헤아려도 지면을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최근에는 '인수위, 실력 미달 영어교사 3진 아웃제 추진' '영어만 잘하면 군대 안간다'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생소한 내용도 등장, 새 정부의 영어정책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한데 마음 깊이 와 닿는 제목소재가 영어가 아니라는 데서 한 번쯤 반추(反芻)할 필요가 있다. "영어보다 급한 '국어' 공부", 즉 국어로 극히 당연한 우리말의 소중함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는 데서, 그로 인해 한글이 본 모양을 잃어가고 있다는 데서 자성의 시간과 대책이 절실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블로그 등을 살펴보면 맞춤법이 틀리거나 아예 한글을 다시 창제한 멋대로 글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식인들이 한글의 쓰임새에 대해 경고하지만 정작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영어교육에 밀려 체계적인 교육에 실패한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 한 예로 낳냐와 낫냐를 구분 못 하는, 단어의 혼돈이 허다하다. 초등학생이 아닌 청소년이 올린 글에서도 그렇다. 우리 글을 완성하기 전인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영어 사교육이 깊숙이 파고들면서 만들어 낸 현상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렇다고 새 정부의 영어교육정책을 책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영어가 시대조류로 영어교육프로그램 개발은 계속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영어를 제대로 하려면 국어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싶다. 그래야만 사물에 대한 정확한 표현과 이해력을 높일 수 있고, 이는 외국어 구사능력을 향상시키는 촉매제가 된다는 것을 말함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외국어를 잘할 수 있는 첩경은 우리나라 글부터 바로 사용할 줄 아는 것임을 강조해 둔다.

이명박 정부는 말레이시아 교육정책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족과 한족·인도인 등 다민족 국가이고,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영어가 공용화된 나라다.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견줘 비교한다는 것은 상당한 물의가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재양성을 위해 백년대계의 교육을 강조해 왔다. 교육은 국가와 사회발전의 근간으로 정부가 우선시해야 할 정책이며, '먼 앞날까지 내다보고 세워야 할 만큼 크고 중요하다'는 데서 수월적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숱한 착오와 비전문적 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이 그동안 경험한 교육권의지계(敎育權宜之計), 즉 아침 저녁으로 뒤바뀌며 시류에 야합하는 즉흥적이고 편의적인 교육계획이 되지 않도록 기초부터 튼튼한 교육정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