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건영 (논설실장)
해마다 등록금 폭등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대학생들. 요즘처럼 미국 대학생들이 부러울 수가 또 없을 것 같다. 소위 이렇다 하는 명문대학들이 경쟁적으로 학비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일대의 경우 연 소득 12만달러(약 1억2천만원) 이하 가정 자녀들에게 수업료를 반으로 줄여주고, 6만달러 이하엔 전액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하버드대는 연 수입 18만달러 이하 계층 수업료를 가구 수입의 10% 이내로 낮추겠다고 했다. 프린스턴대 펜실베이니아대 캘리포니아공대 등도 비슷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또 아무 것도 아니다.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의 국립대학들은 아예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치솟는 등록금을 감당 못해 휴학을 밥먹듯 하고, 아르바이트는 기본이며 심지어 졸업도 하기 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하는 우리네 대학생들로선 꿈만같은 이야기다. "왜 우리 대학들은 그렇게 못하냐"고 물어보았자,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거기서 거기다. 교수 확보와 시설개선 등 돈 들어갈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긴 대학이 발전하려면 유능한 교수를 많이 확보해야 하고, 첨단 실험실습 기자재 마련 등 돈 쓸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잘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어느 분석자료에 따르면 2006년 현재 전국 155개 사립대학의 누적 적립금이 자그마치 6조8천억원을 넘었다 한다. 많게는 수천억원에서 적어도 몇백억원씩은 쌓아놓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이 매머드 학교 만들기 건축 적립금이거나 계획이 불분명한 기타 적립금이라 한다. 이에 비해 정작 학생들을 위한 연구 및 장학 적립금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한다. 이들 거금에서 조금씩만 풀어도 학생들 부담이 훨씬 줄지 않을까, 순진한 생각을 해 본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선 등록금 부담으로 대학생 15%가 휴학하고, 80%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금 인상률은 몇년째 6~8%대로 물가 상승률 2~3%의 무려 3배꼴이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부업을 뛰는 학부모도 부지기수다. 게다가 작년 말 현재 정부보증학자금대출 이자를 제때 못갚아 신용불량자가 된 학생도 3천4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등록금 대출을 받고 밀린 이자를 감당못해 카드빚까지 지다 보니,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올 새학기도 어김없이 등록금이 크게 올랐다. 사립대 6~9%, 국립대 8~14% 정도다. 더러는 20% 넘게 제시한 곳도 있다. 마침내 등록금 1천만원 시대가 온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부보증학자금대출 금리마저 1% 포인트가량 올라 연 7.65%나 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보다도 높다고 한다. 이제 얼마나 더 많은 학생들이 강의실 대신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땀을 흘려야 하고, 신용불량학생은 또 얼마나 늘어날지…. 이쯤되면 "대학은 장삿속에 눈멀고 정부는 이자놀이에 급급한 사이, 인재 대신 신용불량자만 양산한다"는 말도 나옴직하다 하겠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학생과 학부모들의 탄식과 원성이 치솟고 있다.

"정부가 브레이크를 걸어 등록금을 동결해야 한다. 정부 예산을 지원해서라도 학자금 금리를 내려라. 정부는 등록금 상한제를 만들어 급격히 오르는 걸 막고, 후불제도 서둘러라. 정부는 파격적인 장학금 제도를 내 놓아라. 대학은 쌓아논 누적 적립금을 풀어 학생 부담을 가볍게 하라." 여기 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쏟아내는 말들을 모아 보았다. 얼핏 생각하기에 전혀 불가능하거나 불합리한 요구들 같진 않은데, 정작 대학들이나 정부는 어떻게들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복잡한 사정들이 얽혀 그렇게 못하는지는 몰라도, 아무리 공부 잘하고 재능이 있어도 등록금 폭탄으로 학업을 접어야 한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일 수밖에 없다. 며칠 뒤 들어설 새 정부에선 특히 교육에 큰 관심을 쏟는 것 같은데, 적어도 '장삿속 대학, 이자놀이 정부, 신용불량자 양산 대학' 소리는 결코 듣지않게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