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부들이 장보기를 꺼려하는 등 서민들은 당장 올해를 어떻게 견뎌낼지 한 걱정이다. 영세축산농가들은 사업포기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올여름 세계 곡물재고율을 14.6%로 전망했다. 1960년대 통계작성이래 최저수준으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권장곡물재고율이 189%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정부는 주요 생필품에 대한 가격관리를 공언했으나 신뢰성이 없어 보인다.
더 걱정은 중장기적으로 국제곡물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원인은 중국·인도 등 신흥시장국가들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육류소비의 증가인데 이는 사료용 곡물수요의 확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바이오에너지개발 및 세계적인 경작면적 축소는 설상가상이다. 개발도상국가들의 빠른 인구증가도 큰 부담인데 지구온난화에 따른 잦은 이상기후는 예측을 불허한다. 미국 애그리소스컴퍼니의 대니얼 바스 컨설턴트는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미국인들처럼 먹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려면 지구가 2개 내지 3개가 있어야 한다"고 비관하는 등 전문가들은 최근 곡가앙등을 단순한 파동이 아닌 공급애로에 기인한 구조적 위기로 진단하고 있다. 식량폭탄이 지구촌을 강타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이런 현상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때부터 예견되었다. 우리와 같은 처지의 일본은 그동안 농사기술개선을 통해 농업생산성의 제고는 물론 해외농업기지의 개척에도 주력해온 결과 작금에는 동남아·중국·남미에 일본내 경지면적의 3배규모인 총 1천200만ha의 농지를 확보하는 등 식량자급률을 착실히 높여왔다. 미국·러시아·아르헨티나·우크라이나 등 주요 농산물수출국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출세인상 및 쿼터제실시를 통한 자원무기화의 속내를 간단없이 드러내곤 했다. 목하 먹거리를 담보로 세계인들을 압박하는 식량수출국들은 표정관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정부는 농산물시장 개방에 따른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농촌에 100조원을 훨씬 상회하는 국민혈세를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농현상은 끊이지 않아 농가인구비중은 1995년 10.8%에서 7%정도로 축소되었으며 농업소득은 제자리걸음했다. 더욱 딱한 것은 농가부채가 1995년 농가당 평균 916만원에서 2005년에는 무려 2천721만원으로 연평균 11.5%씩 늘어났다는 점이다. 농가간 양극화도 심화되었으며 식량자급률은 2006년 27%로 OECD국가 중 3번째로 낮다. 그 와중에서 국민 1인당 쌀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등 식문화가 빠르게 변화되어 갔음에도 농정당국은 미곡단작적 생산만을 고집(?)함으로써 급기야 우리나라는 세계 3위의 식량수입국으로 전락,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농축산물 무역적자규모가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해외농업기지의 확보는 언감생심이었고 우리네 밥상은 값비싼 국산농산물 대신 생쥐머리튀김 '새우깡'과 유전자조작식품(GMO)이 점령했다. 우량농지축소 및 농촌난개발우려는 구제불능의 농정이 자초한 결과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자 10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또한 현재와 같은 한계상황이 이미 2·3년 전부터 간취되었음에도 노무현 정부는 이에 대한 준비는 커녕 농업지원금을 늘리는 데만 혈안되었다가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던 지난 연말에야 비로소 '국제곡물가격상승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아무 것도 없었다. 고비용 저효율의 농업구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나 세계적으로 식량안보론이 점차 힘을 받는 상황에서 무조건 시장논리만 강요해서도 안된다. 정치논리에 의한 재단은 더욱 곤란하다.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지혜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