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배 (인하대 법대 학장·객원논설위원)
한국의 법률을 배우자. 제3세계가 아니라 선진국 일본이 내세운 구호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의 한 법률을 연구하고 있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이 법률은 2년 전에 일본보다 앞서 제정되었다. 그동안 다른 법률들은 그 내용과 형식에 차이가 있을 뿐 일본의 법률을 상당부분 참고한 것이 사실이다. 외형적으로는 대륙법계라는 이름으로 일본 법률을 참고하는 현실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경제·산업·문화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거나 일정 주기를 두고 뒤쫓다보니 일본의 법률을 참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법률과 제도에 관한 한 앞서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이 우리 법률에 대해 주의 깊게 연구하고 있다. IMF 이후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도산하고, 실직한 연구자나 임직원들이 중국 등에 취업하면서 기술유출이 발생하였다. 일부 외국기업에서는 핵심 기술자를 빼돌리기도 했다. 자동차 등에서는 M&A를 통해 영업비밀과 핵심기술을 통째로 훔쳐가기도 했다. 주요 퇴직자나 실직한 연구자들을 경쟁국가에서 모셔가기도 한다. 한국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버림받고, 해고된 이들이 이를 갈며 한국과 맞선 경쟁국가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법률을 만들기 전에는 이를 막을 근거도 없었고, 그 중요성도 깨닫지 못했다. 한국의 산업기술을 보호할 것이 과연 있는가 하는 시각에서부터 부정경쟁방지나 영업비밀 차원에서 보호하면 된다는 낙관적 시각도 있었다. 자칫 기술에 대한 규제가 기업성장이나 외국자본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정책적 시각도 기술유출방지법 제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국가핵심기술이나 산업기술의 유출은 해당기업은 물론 국가경제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삼성전자와 외국기업의 기술 격차나 포스코에 대한 적대적 M&A가 문제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기술보호 중요성도 강조되었다.

그러나 한국이 국가핵심기술과 산업분야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게 되면서 산업기술과 임직원 등에 대한 스카우트 손길은 끊임이 없다. 중국 등과 기술격차가 급격히 줄어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등에 대한 획기적 지원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논거이기도 하다. 최근 국가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자 두뇌유출은 막고, 기술수입을 위한 과학기술자 유치사업에 적극적이다. 프랑스는 최근 우수 해외과학자를 유치하기 위해 3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대학의 기술정보에 대한 통제방안을 구상 중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국가연구자금이 투입된 연구결과나 기술을 들고 SCI(과학인용색인)의 이름으로 발표하기에 바쁘다. 국제화와 대학평가의 잣대라는 SCI가 결국 한국과학기술의 유출창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제가 위기임에도 IMF와 달리 기술유출의 위험성이 감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80%를 차지했던 임직원 등에 의한 기술유출을 막는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지식경제부와 국가정보원 등이 경제주권 확보와 국가안보 차원에서 산업기술을 보호하려는 헌신적 노력이 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어렵다. 그러나 누가 국가핵심기술과 산업기술을 많이 지키고, 우수과학자를 확보하여 키워갈 것인가. 그것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국가핵심기술이 남아 있고, 인재들이 있다면 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왜 한국의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을 벤치마킹하고 있는가. 그들도 위기시대에 기술유출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업도산의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묻고 있다. 국가핵심기술이나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 다시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