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서머타임제(일광절약시간제) 부활작업이 드디어 수면위로 부상했다. 내년 5월 시행에 대비해서 금융 및 행정전산망, 산업망 등의 사전 조정작업에 비용과 준비기간이 필요해 금년 10월까지는 시행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때문이다. 최대 관건은 서머타임제 조기시행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정부는 조만간 여론 수렴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기업들이 서머타임제를 근로시간 연장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 재계 및 노동계와 함께 정시퇴근 실천운동을 전개하는 등 대책강구와 홍보에 주력할 예정이다. 녹색성장 비전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만큼 서머타임제 관철에 대한 정부의 각오가 유난해 보여 자칫 올여름은 더욱 무더워질 개연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서머타임제 조기시행에 천착하는 이유는 국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저탄소 녹색성장형으로 바꿔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근로자들의 자기개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함이다. 여가선용기회 확대에 따른 레저 및 관광분야의 일자리가 늘어 내수경기에도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조기퇴근으로 향락성 소비가 감소되어 교통사고 및 야간범죄건수도 크게 축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방지에도 순기능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중 서머타임제를 실시하지 않는 나라가 일본과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무역협회 등 재계의 집요한 요구도 한몫 거들었다.

특히 정부는 서울대 경제연구소 등 7개 연구기관에 용역을 주어 연구한 결과를 강조하고 있다. 4월부터 9월까지 서머타임제를 실시할 경우 연간 전력소비량이 0.13~0.25% 감소해 최대 653억원의 에너지 절감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출퇴근시간대 분산에 따른 교통혼잡 해소와 교통사고 감소로 연 808억~919억원의 교통비용이 절감되는 등 연간 최대 1천362억원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과 2년인 2007년에 한국개발연구원·에너지경제연구원·교통연구원·문화관광연구원 등이 서울올림픽기간(1987~88년) 동안의 실적을 근거로 진행한 '서머타임효과 분석'에 따르면 서머타임제 실시로 인한 전력소비 절감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당시 호주에서도 전력소비가 줄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또한 서머타임제가 생산 및 소비에 미치는 효과도 가늠되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연구가 보다 적확한 것인지는 보다 정밀한 검증작업이 요구되나 서울대 경제연구소 등의 연구 성과는 이 정부의 견강부회로 밖에 판단할 수 없다.

교통사고 감소 주장도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일본수면학회가 1995년에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서머타임제 실시로 낮시간이 길어지면서 운전자들의 절대수면시간이 부족해 오히려 고통사고가 늘었다고 주장했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는 판에 출근시간까지 앞당길 경우 결과는 뻔해 보인다. 스웨덴의 임레 잔스즈키와 리카드 융이 지난 20년간의 경험치를 근거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서머타임제를 시행한 첫 번째 주는 이전과 이후에 비해 심장마비 발병률이 5%나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이 건강과 안전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국내외 의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머타임제 실시에 대한 직장인들의 찬성률이 50%안팎이라는 정부의 주장에도 공감하기 어렵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천1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61.2%가 서머타임제 도입에 반대했다. 임금근로자의 90% 이상이 퇴근시간 연장염려가 없다고 답했다는 정부의 설문조사 결과는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노동자들이 파리 목숨인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제시간에 퇴근할 정도로 간 큰 근로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서머타임제는 지난 시절 무소불위의 철권정치 하에서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경제동물로 지칭되는 일본은 도입을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득보다 실이 훨씬 더 커 보이는 탓이다. 모그룹 회장이 '신경영'운운하며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제를 강행했다가 흐지부지되었던 기억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