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치로 보면 그 심각성은 더욱 확연하다. 2008년 기준 세계인구의 7%이던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40년 14%로 30여년 만에 두 배로 급증한다. 80세 이상 초고령인구는 초고속 행진을 해 같은 기간 233%라는 기록적인 전망치가 나왔다. 100% 신뢰수준이 아니더라도 출생과 사망, 평균수명 등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했으니 오차범위가 크지 않을 듯하다. 교육에 대한, 삶의 질에 대한 욕구치가 커지는 등 가열된 사회현상으로 출생률이 가장 낮아 1%대 미만이 점쳐지는 한국사회의 인구 측정치를 보자. 1980년대 고령인구 3.8%, 2010년은 10.4%, 2040년 28.9% 상승이 예측된다. 고령인구가 유아 인구를 앞지르는 시점이 10년 이후라면, 이들이 고령인구를 책임지는 시기에는 가족을 넘어 복지차원의 공공지출비용, 즉 사회적 부양인구가 넘쳐나 엄청난 부작용을 낳게 된다. 그 시기에 맞는 대책마련과 실현에 실패한 것을 전제해서다.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아무리 살펴도 걱정하는 부류는 많은데 적절한 대책이 아직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인구증가율을 높이기 위해 내놓은 정부정책도 당장의 대책에 불과해서인지 그 타령이다. 실효적인 대책마련이 급한 것이 현실인데도 사회 전반이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하나인 진실, 그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사회적 낭비가 커 많은 것을 잃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생결단도 그 대상이 있어야 해 볼 만하다. 다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할 것이 없어서다. 모든 주장을 놓고 사회적 합의점을 서둘러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찰에서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을 '불이문(不二門)'이라고 한다. 진리는 둘이 아니며, '불이문'을 본당에 들어서는 곳에 세운 까닭은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그 근원은 모두 하나다. 정치권이 다툼을 하고 국회의사당이 난장판이 되는 것도, 사회가 둘로 나뉘어 그들의 주장이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도 물론 하나뿐인 진리를 찾기 위한 고뇌의 표현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시급한 사안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중에서도 인구분포의 균형을 잡는 일은, 균열이 진행돼 손쓸 방도를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선행해 바로잡아야 하는 국가적 과제다.
사회적 합의와 병행해 인격을 쌓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덕목이다. "한 나라의 국력과 산업 그리고 문명은 개인의 인격에 달려 있으며, 사회안전의 기초도 마찬가지다"라고 한 새뮤얼 스마일스의 교훈을 크게 새겨야 한다. 특히 리더 그룹의 인격 파탄, 즉 정체성(正體性) 상실은 국가경쟁력 하락과 사회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져 더 이상 기회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 대비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기회를 나의 것,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새로운 갈등을 양산하고, 갈등의 불씨를 여전히 남겨 놓은 채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 내는 사회구조로는 미래에 대한 대비는 요원할 듯하다.
기회는 항상 준비하는 자에게 주어지며, 그들만이 기회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미래의 성공적인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사회적 합의와 인격을 갖추는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할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