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수 / 논설위원
지금 전국에서 유권자들의 투표가 진행중일 것이다. 19대 국회를 구성할 여야 국회의원들을 선출하는 날이다. 어제 일기예보가 맞다면 봄비가 추적추적 내릴테니 투표장을 향하는 발길이 성가실 법하다. 애꿎은 봄비를 탓할 일이 아니다. 흔쾌하게 투표소를 찾아 기쁜 마음으로 원하는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어제까지 치열하게 전개됐던 선거운동을 복기해 보면 투표장을 향하는 유권자의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가 자명해진다. 국민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양립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패거리들이 주고받은 저주와 악담을 들어야 했다. 더욱 끔찍했던 것은 진영 논리로 무장한 성선과 성악의 정치였다. 자기 진영의 가치와 사람은 무조건 선하고, 다른 진영의 그것들은 무조건 악하다는 교조적 신념. 보통 국민에게는 너무 무서웠다.

결국 끝까지 완주한 '나꼼수' 출신 김용민을 예로 들어보자. 서른여덟 김용민이 서른살에 내뱉은 막말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 자신도 "내가 한 말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눈물도 흘렸다. 그를 공천한 민주통합당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이후의 상황을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다. 민주통합당은 김용민을 공천했고, 그는 살벌한 비난 여론에도 불구 완주했으며, 오늘 노원갑 유권자들이 표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 김용민의 완주를 가능하게 했는가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나꼼수 지지 세력의 변함없는 성원 덕이 크다. 나꼼수 공동진행자인 김어준은 "김용민이 자폭하면 민주당 다죽고 야권 다 죽는다"고 말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사퇴권고를 개그로 받아쳤고 공당인 민주통합당의 고민은 길거리에서 면박을 당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저는 김용민을 신뢰합니다"라며 공식적으로 면죄 발언을 하사했다. "김용민이 바뀐다면 새누리당 후보에 비할 수 없이 낫다"는 이유를 댔다. 그들에게 김용민의 막말은 과거일 뿐이었다. 그 막말로 오늘의 김용민을 다시 볼 여지는 없는지, 고민한 흔적이 없다. 나꼼수와 이정희의 쿨한 태도는 선악의 이분법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가카헌정방송 나꼼수로 이명박 정권을 희롱한 장외의 정치게릴라 김용민. 그는 우리 사람이고 내 편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가카'에게 빅엿을 먹였고 먹여야 할 김용민 아닌가. 그는 가카와는 반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할 선한 존재인 것이다. 김용민은 선악의 이분법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흔들린 언행으로 곤경에 처한 지성인들의 행보는 선악 이분법의 정치가 상식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절망을 안기는지 잘 보여준다.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 나꼼수의 비키니 응원을 비판하다, 공천받은 김용민을 '사윗감'으로 추천했고, 김용민의 막말에 접해서는 '무거운 사과'를 요구했다. 그때마다 나꼼수 세력의 반응은 냉온탕을 오갔고, 인간에 대한 공지영의 작가적 천착은 의심받았다. 그녀는 이번 선거를 통해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이 완벽하게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생명체라면 정치가 필요없다. 스스로 개인과 집단의 이해와 이익을 조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데 정치권력이 왜 필요하겠는가. 따라서 만일 누가 누군가를 완벽한 선인이거나 악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편견과 단견에서 비롯된 판단의 오류이기 십상이다. 그게 아니면 특별한 필요와 목적을 실현하려는 의도적 선동이다. 오늘 4·11 총선의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하지만 정국이 안정될 희망은 안보인다. 총선을 통해 쏟아진 악의적인 편견과 의도적 선동을 생각하면 연말 대선까지 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선악 이분법의 정치는 더욱 기승을 떨게 분명하다. 국민이 상식의 잣대를 날카롭게 벼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맹목적인 선악 이분법이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정말 한국 정치는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