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수 / 논설위원

생방송 정치 리얼리티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경선부정 사태'가 방영된지 오늘로 20일째다. 대중은 진보진영 내부를 유린해왔던 당권파 패권놀음의 실체를 목격하고 진저리를 쳤다. 똑똑하고 다부지면서도 선한 눈매가 매력적인, 친구 누나 같던 이정희의 야멸찬 변신에 기절초풍했고, 중앙위원회를 초토화시킨 당권파의 초절정 폭력 본성에 공포를 느꼈다. 대중은 리얼리티쇼의 조기종영을 원했다. 이석기, 김재연 등 당권파 비례대표당선자들이 자진 사퇴하는 상식적인 엔딩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은 비당권파의 혁신비상대책위원회에 맞서 당원비상대책위를 구성해 오늘도 잔혹극을 이어가는 중이다.

진중권은 "진보는 죽었다"고 탄식했지만, 사실 대중이 사망선고를 내린 상대는 경기동부연합이다. 그들 스스로는 한번도 인정 안했지만, NL(민족해방)계열의 자주파·주사파·종북파 낙인이 자연스러운 그 경기동부연합이다. 보수 보다는 진보가 찍은 낙인이고 대중이 동의한 낙인이라서 이석기와 김재연 등이 이 굴레를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예전 같으면 색깔론의 역공세로 뭉개졌을 낙인이 경기동부연합의 이마에는 왜 이리 선명할까. 바로 그들이 시대정신을 거부한 시대의 반동분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상조사 보고서를 진상조작 보고서로, 석고대죄를 요청하는 동지들을 적진의 세작으로 우겨대며 사실을 목격한 국민을 기만했다. "부정 없는 선거는 없다" "부정이 50%는 넘어야 부정이다"는 이석기의 주장은 민주주의의 금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무엇보다 유일한 사태 수습방안인 국회의원 반납을 거부하는 비양심으로 인본적 가치를 짓밟았다. 도둑질도 부인하고 장물도 내놓지 않겠다는 현행범과 무엇이 다른가. 경기동부연합의 국민기만, 반민주, 비도덕, 비양심은 우리 시대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반동이다.

중요한 것은 경기연합이 당랑 처럼 수레바퀴에 깔려 압사할 것인가이다. 과연 우리 시대가 경기동부연합의 반동을 압사시킬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지금 압사 직전이지만,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감안하면 압사를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낙관이다. 군자산의 약속 이후 그들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해왔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관행인 '부정한 방법'으로 민주노동당을 접수했고, 지난 총선에서는 진보통합과 야권연대의 주체로 떠올라 200만명의 국민지지를 받았다.

이석기는 군자산 회동 전후를 합해 20년 이상 무명의 실세로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뛰어난 전략전술,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 피붙이 보다 진한 동지들과의 연대로 오늘에 이른 그들이 한 순간에 와해된다? 그럴리 없다. 이정희의 변신은 위기에서 드러난 그들의 생존본색이다. 그들은 지금 수세를 만회할 대역전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 무엇이 그들을 살릴 것인가. 반동은 반동을 먹고 산다. 그들의 시대반동을 희석시키고 뒤덮을 또 다른 시대반동의 출현, 이것이 궁지에 몰린 경기동부연합에게 기사회생의 동아줄이 될 것이다. 총선 전 최대 이슈였던 민간인 사찰 파문. 권력이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민간인을 사찰하는 행위는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시대반동적 행위이다. 권력실세들의 더러운 금전게이트 역시 다를 것 없다. 다만 지금은 보수의 시대반동이 경기동부연합의 시대반동에 가려졌을 뿐이다. 정말 추악한 시대반동이 출현한다면 경기동부연합은 광화문의 촛불과 함께 기사회생할 수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스스로 시대의 반동분자임을 자백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진영이 이들의 완전한 퇴장을 기대한다면 자기 진영 내부의 시대정신을 부인하는 반동적 요인과 행태와 반동분자들을 척결해야 한다. 이석기, 김재연, 강종헌 등 경기동부연합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 참호를 파고 보수와 진보의 결정적인 시대반동을 고대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