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수 / 서울본부장
알려지지 않은 비사 한토막. 지난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당내 경선 전후로 시종일관 여론조사 1위를 차지했고 결국 역대 대선 최다표 차이로 경쟁후보들을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이 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던 만큼 무수한 비선 조직이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경쟁을 벌였고, 무수한 전략보고서가 쏟아졌다. 그 중에 한 문건의 제목은 '이명박 대 이명박'이었다. 제목 자체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을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용비어천가식 혹은 아전인수격 대선전략이 아니라 이 후보가 고치고 개선해야 할 내용으로 시종일관했다고 한다. 이 후보측은 이 보고서를 비중있게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최시중, 박영준에 이어 만사형통(萬事兄通)의 바로 그 형님 이상득 전의원까지 검찰 문지방을 넘은 마당이고, 청와대의 국정 독주를 감안하면 '이명박 대 이명박'의 경고는 이 대통령 당선과 함께 사장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를 거론하는 이유는 당시 대선을 나홀로 질주하던 이명박 캠프에도 그나마 내부를 각성시킬 자경(自警) 시스템이 작동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에게도 지금 '박근혜 대 박근혜'라는 보고서가 절실해 보인다. 박 의원은 현재 여론의 지지추세로만 보면 새누리당의 확정적 대선후보일 뿐 아니라 여야를 통틀어 대통령 집무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인물이다. 이는 당내 경선은 물론, 대선 본선에서도 경쟁후보들에게 박근혜가 명확한 타도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반면 박 의원의 입장에서는 상대와의 전선과 접촉면을 최소화하면서 현재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대선 당일까지 끌고가려 할 것이다. 한 체급 낮은 상대와의 전면전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회피가 가능할지이고, 상대의 체급이 현재와 같을 것이냐이다. 가능하지 않고 같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박 의원은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정몽준 의원, 임태희 전대통령비서실장 등 군소 후보들의 오픈프라이머리 실시, 선거인단 확대 요구를 외면했다. 룰을 바꿀 수 없다는 그녀의 한마디에 당내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여론은 박 의원의 정치스타일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김 지사가 토로한 한 마디가 무섭다. 그는 같이 경선을 하겠다는 후보들의 요구에도 전화 한통 없었던 박 의원에게 "모욕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김 지사가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면 그 자체가 박 의원에게는 비극이다.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정치는 큰 정치인의 덕목이 아니다.

당내 경선에서 박의원이 보여준 정치 리더십은 통합, 포용, 존중, 공존이 아니라 갈등, 배척, 무시, 독단으로 여론에 투영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리더십이 박 의원의 원칙론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측근들이 앞장서서 박 의원의 원칙론을 변호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성에서 자기만의 원칙을 고수하는 리더십이 21세기형 통치스타일에 부합하는지 새롭게 주목하는 여론의 동향을 측근들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박 의원에게 이를 정면으로 보고하고 시정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여론 지지율만 보면 민주통합당 대권후보들은 지금 저체중 후보들이다. 장외의 안철수도 국민을 지루하게 한 벌을 받는지 지지율이 추락중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 낼 야권후보 단일화 스토리는 결코 작지 않다. 누가 됐든 야당 단일후보는 박 의원이 모욕하고 무시한 당내 군소 후보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대일 것이다.

박 의원이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라서 해보는 말이다. 지금과 같은 정치 스타일이 그대로 통치 스타일로 전환된다면 국민이 외로울 것 같아서 말이다. 총선 후 몇달이 지나도록 박 의원의 육성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지금 박 의원에게는 '박근혜 대 박근혜'라는 보고서가 필요하다. 누가 박 의원의 목에 자경의 방울을 달아줄 것인가. 아니 김문수 이재오 정몽준이 이미 달아주었다고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