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배가 고프면 빈민촌으로 가 거지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주먹밥을 얻어먹는 위인이었다.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는 자린고비이야기다. 비록 대결에서 졌지만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은 자린고비다.
드물게 패자의 이야기가 기억된 까닭은 무려 '굴비'가 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못 먹을지언정 기왕 보는 건 좋은 걸 보자는 인간미와 낭만성이 생명력을 얻어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이다. '예술은 가난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명제와 어느 정도 맥이 닿는다면… 비약일까?
10살때 "잘할것 같다" 담임선생님 추천에 국악 첫발
완벽 추구하는 조흥동 예술감독 믿고 10년 전 입단
'달하' 여주인공 6년째 최근 관객 호응 더욱 좋아져
늘 주변에 감사하고 주어진 기회 소중히 여겨야해요
어쨌든, 이처럼 가난한 살림에도 '기왕 보는거, 굴비정도는 봐 줘야한다'는 일념을 지닌 낭만 넘치는 집단이 있으니, '경기도문화의전당'이다. 매년 예산이 부족해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밥 숟가락 들기 전에 계산기를 먼저 두드려야 하는 형편이지만, 보기만 해도 배부른 공연을 경기도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런 살림을 꾸려온 지 어언 8년째이니 살뜰한 노하우를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전당의 고급 정보를 모두 손에 쥐고 있는 핵심 인력 이모씨는 '노하우의 핵심은 역시 인재'라며 노하우를 유출했다. 이에 면면을 살펴본 끝에 전당이 보유한 인재들 중 올해 특히 '이 단원은 주목해야 해'하는 데 합의를 이룬 인물 4인을 소개한다. 그 첫번째 주인공은 경기도립무용단의 박정미 단원이다.
박정미씨는 오랜만에 얻은 휴가를 방해받았지만 경기도립무용단을 알리는 일이라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6년동안 '달하'의 여주인공으로 살아온 그는 무대 밖에서도 기품있는 에너지를 뿜어내며 무대 위에서 못다한 말들을 들려주었다.
그는 10살때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국악에 첫 발을 들였다. "전학간 지 며칠 안 된 학교에서 가야금 배우고 싶은 학생 1명을 모집했어요. 다른 아이들이 손을 들길래 엉겁결에 따라 들었는데, 담임이 너 잘할 것 같다며 저를 추천했어요. 가야금과 한국무용을 함께 가르치는 교습소였는데, 가야금을 배우러 갔다가 점점 한국무용에 빠져들었죠."

한국예술종합대학에 진학한 박정미씨는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인 조흥동 교수를 만난 것이 인연이 돼 10년 전 입단하게 됐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춤'에 관해서라면 완벽을 추구하는 조흥동 교수님를 믿고 입단했어요. 지금은 그때 판단이 옳았다고 믿게 됐죠."
교수님만 믿고 입단했는데, 예술감독으로 만난 조흥동은 엄격했다. 평소에는 오전 9시부터, 공연이 있을때는 그보다 일찍 연습을 시작했고, 밤 늦게야 일정이 끝났다. 1년에 150여차례 공연을 다녔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하니 불평이나 엄살을 늘어놓을 틈도 없었다.
치열한 시절이었다. "우리 무용단은 거의 매년 새 단원을 선발해요. 예쁘고 잘하는 후배가 들어오기를 바라지만, 그들에게 밀릴까봐 걱정되기도 하죠. '달하'라는 공연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됐는데 연습 도중 다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어요.
그러나 더블캐스팅된 다른 여주인공이 매일 연습을 하고 있으니 마냥 쉴 수가 없었죠." 지금도 치열하기는 마찬가지지만, 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화는 있었다. "힘들었지만 성장과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치러야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2년쯤 전부터는 확실히 관객들의 호응이 달라졌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됐죠."
변화의 시작은 '달하'였다. '우리춤과 태권도를 소재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조흥동 감독의 꿈의 결실인 달하는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2009년부터 국내외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박정미씨는 달하의 시작과 함께 여주인공 '창조의 신' 역을 줄곧 맡아 오면서 국악계에서는 아주 드물게 스캔들이 나기도 했다. "우리 무용단 공연이 대부분 국악 레퍼토리가 많아 의상도 얌전(?)하고 배우들간의 신체접촉이 없었는데, 달하는 의상도 파격적이고 남자주인공과의 접촉이 많아서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어요. 파트너인 남자주인공이 워낙 인물도 출중하고 춤도 잘 춰서 연습할 때 다른 여자단원들의 질투어린 시선도 많았고 인터뷰때마다 둘이 사귀는게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죠."
올해로 입단 10년차가 된 박정미씨는 어느새 나이로 서열 3위의 하늘같은 선배가 됐다. 선배답게 후배들에게 '늘 주변에 감사하고 주어진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자기관리를 잘 할 것'을 당부하면서도 그의 꿈은 신인 못지않게 탱글탱글하다. "우리 무용단은 앞으로 '아이돌 가수'같은 무용단이 되면 좋겠어요. 티켓 오픈하자마자 수분 만에 매진되는 무용단이요. 10년 안에 될겁니다."
/민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