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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문화의전당 인물 열전·4]경기도립국악단 이석종·이은기 단원 지면기사
눈에 덮인 경기도립국악단은 솜이불을 덮은 듯 포근해 보였다. 다른 예술단은 모두 수원의 경기도문화의전당 안에 있지만 국악단은 아주 조금 떨어진 용인에 있어 자칫 적막해 보일 수도 있을 텐데, 그들끼리만의 끈끈함이 만만치 않다.타악기를 연주하는 남편가야금 타는 부인의 만남결혼 전부터 '가족 악단'정통-퓨전 취향달라도국악 향한 열정 '천생연분'인물열전 마지막회의 주인공은 끈끈한 정을 넘어 쫀쫀한 사이로 발전한 사람 좋게 생긴 남편 이석종 수석단원과 야무져 보이는 아내 이은기 부수석 단원이다.이은기 부수석단원은 가야금을 연주한다. 서양음악 작곡을 공부한 아버지와 피아노를 가르치는 어머니가 계시다니 국악이 웬말인가 싶지만, 아버지는 외국 유학을 계기로 국악인이 되셨다. "학생들끼리 모여서 모국의 음악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우리 음악에 대해 할 말이 없으셨대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우리 음악부터 다시 배우겠다고 결심하셨고, 국악의 매력에 빠져버리셨죠."어머니도 이매방무를 이수하시고, 오빠와 새언니 등 친족 다수가 국악인이어서 그런것만은 아니겠지만, 이은기 단원은 타악기 연주자를 남편으로 맞아 구색(?)을 맞췄다. 현란한 몸사위로 장구를 치는 남편 이석종 단원은 가족의 음악에 흥을 더했다. 결혼 전부터도 '둥지'라는 가족악단에서 같이 연주를 했고 장인 어른이 된 이병욱 교수가 창단한 실내악단 '이병욱과 어울림'에서도 공연을 하고 있다.이석종 단원은 올해 초 수석단원이 됐다. 서른 여섯의 나이에 국악단의 수석단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김재영 예술감독의 깜짝 놀랄만한 선발방식 때문이다. 오로지 실력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국악계의 관례상 연차로 순서가 매겨지던 것을 뒤집은 것이다. "김재영 감독님이 오신 뒤로 시험과목도 많아졌고 심사가 까다로워졌어요.갑자기 연차와 상관없이 순서가 바뀌니 처음에는 단원들끼리 사적인 대화도 줄어들고 분위기가 묘해졌죠. 그러나 2년이 지나니까 다들 적응했어요. 정악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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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문화의전당 인물 열전·3]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하나 악장 지면기사
300년 전에 만들어진 바이올린을 다정한 친구인 양 어깨에 둘러메고 나타난 그는 사진을 찍을 때도 "나한테는 이게 있어야 자연스럽다"며 바이올린을 지니고 촬영을 했다.지휘자·피아니스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걸음마 떼듯이 음악과 함께 성장어디서 누구와 연주해도 최고기량 발휘… 수년간 '국내 최연소 악장' 자리지켜바이올린 말고 다른 일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단 한번도 없느냐고 짓궂게 여러번 물어봐도 그는 한사코, 절대로 '나에게는 바이올린 뿐'이라고 했다. "어릴적에 잠깐 오락실에서 게임에 빠진 적이 있기는 하지만, 바이올린 외에 관심을 가져본 것이 거의 없어요. 바이올린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고,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가 바로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락실이라니. 정말 내세울만한(?) 딴 짓은 해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하나 악장의 이야기다.사실, 정하나 악장의 가족 구성원을 살펴보면 그의 외길인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그는 대전시립교향악단 초대 지휘자 고(故)정두영 교수와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연주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피아니스트 한정강씨의 넷째아들이다. 덕분에 젖병 떼면 숟가락질을 배우듯이, 걸음마를 떼고 나면 달리게 되듯이, 음악을 당연한 성장과정으로 여기며 자랐다.정하나 악장은 지난 2004년 부모님께서 프랑스에서 사주신 바이올린을 "유산이라 생각한다"며 매우 아꼈지만 그가 유산으로 받은 것은 음악을 사랑하도록 설계된 유전자와 평생 음악과 동반할 운명인 듯하다.일상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고 연습하던 그는 16살에 미국에서 '키다리 선생님'을 만나 음악적 성장급등기를 맞았다.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키가 2m는 됐던 걸로 기억해요. 그 분은 다정한 말투로 진심이 담긴 긍정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저는 칭찬을 받으며 음악적으로 피어나기 시작했죠."고등학생 때는 그를 무대 체질로 만들어 준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여름방학마다 한국에 왔는데, 언젠가 대전에 있는 여자고등학교를 가서 연주할 기회가 생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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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문화의전당 인물 열전·2]경기도립극단 조영선 단원 지면기사
애벌레가 나비가 되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미운 오리도 백조가 되기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서 굳이 먹던 솔잎만 계속 먹겠다는 송충이가 있다면, 일만 하다 배짱이를 한겨울 객식구로 들여 양식을 나누어야 하는 개미, 봄이면 지천으로 장미가 피건만 오로지 소행성 B612의 꽃만을 사랑한 어린왕자와 함께 우주 3대 외골수라는 오명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히 울림을 남긴다.기획실장 입사 승승장구연극의 매력 못잊어 전직무대 앞에 서면 긴장되고무대 위에 설때 가장 편안지금도 오디션 보며 노력연극배우로 30년쯤 살았으면, 그러다 극단의 실장'님' 자리에 앉게 되면 그 역할에서 나름의 재미를 느낄 만도 하건만 도통 무대를 떠날 줄 모르는 단원이 있다 하여 지난 9일 경기도립극단 연습실로 그를 찾아갔다. 기획실장으로 입사해서 3년 만에 배우단원으로 보직을 변경한 조영선은 어떤 배우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부족한 배우'라고 시원하게 대답하면서도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쉽게 답을 찾지 못하는 인물이었다.2009년 경기도립극단에 입사한 조영선은 기획실장 시절, 3년동안 7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조직이, 행정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왔지만 성년이 된 이후로 줄곧 연극계에 몸담고 있었던 그는 첫 번째 공연에서 객석의 80%를 채웠다. 신종플루가 유행해서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모이는 일이라면 뭐든 취소될 때였다. 그래도 그는 연극계 인맥을 통해 500석 대극장에서의 11회 공연을 모두 치러냈다.기획실장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것으로 보였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었다. "무대 곁을 지나갈 때마다 그리움이 솟아났어요. 남몰래 무대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았죠. 공연이 없을 때는 공연장에 못 들어가지만 관리자에게 부탁해서 텅 빈 무대를 한 번씩 들여다보기도 했어요."2011년 고선웅 예술감독이 취임했을 때 그는 "나 말고 적당한 사람에게 기획실장을 맡기라"고 말했다. 그해 12월에 공연한 '원더풀 라이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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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문화의전당 인물 열전·1]경기도립무용단 박정미 단원 지면기사
어느 옛날이야기에서, 내로라하는 구두쇠 둘이 대결을 벌였다. 한 사람이 "나는 끼니때 밥 한 숟가락 먹고 반찬 대신 굴비를 본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다른 구두쇠는 이를 비웃었다.그는 배가 고프면 빈민촌으로 가 거지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주먹밥을 얻어먹는 위인이었다.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는 자린고비이야기다. 비록 대결에서 졌지만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은 자린고비다.드물게 패자의 이야기가 기억된 까닭은 무려 '굴비'가 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못 먹을지언정 기왕 보는 건 좋은 걸 보자는 인간미와 낭만성이 생명력을 얻어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이다. '예술은 가난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명제와 어느 정도 맥이 닿는다면… 비약일까?10살때 "잘할것 같다" 담임선생님 추천에 국악 첫발완벽 추구하는 조흥동 예술감독 믿고 10년 전 입단'달하' 여주인공 6년째 최근 관객 호응 더욱 좋아져늘 주변에 감사하고 주어진 기회 소중히 여겨야해요어쨌든, 이처럼 가난한 살림에도 '기왕 보는거, 굴비정도는 봐 줘야한다'는 일념을 지닌 낭만 넘치는 집단이 있으니, '경기도문화의전당'이다. 매년 예산이 부족해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밥 숟가락 들기 전에 계산기를 먼저 두드려야 하는 형편이지만, 보기만 해도 배부른 공연을 경기도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이런 살림을 꾸려온 지 어언 8년째이니 살뜰한 노하우를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전당의 고급 정보를 모두 손에 쥐고 있는 핵심 인력 이모씨는 '노하우의 핵심은 역시 인재'라며 노하우를 유출했다. 이에 면면을 살펴본 끝에 전당이 보유한 인재들 중 올해 특히 '이 단원은 주목해야 해'하는 데 합의를 이룬 인물 4인을 소개한다. 그 첫번째 주인공은 경기도립무용단의 박정미 단원이다.박정미씨는 오랜만에 얻은 휴가를 방해받았지만 경기도립무용단을 알리는 일이라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6년동안 '달하'의 여주인공으로 살아온 그는 무대 밖에서도 기품있는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