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네 9명 영농조합법인 설립 ‘첫 발’
콩 한가마씩 투자해 된장 담그기 시작
시장보다 후한 납품가 주민 작물 구매
히트상품 ‘깻순 장아찌’ 등 15가지 판매
전국 각지서 견학 농한기도 활기 넘쳐
전통음식 체험·장독대 분양까지 확대


마을 기업은 애초부터 정부와 지자체가 만든 ‘허울 좋은’ 이름일지 모른다.

기업이라면 응당 이윤 극대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효율성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하는데, 성공했다는 마을 기업들은 이윤을 극대화하지도, 효율성을 높은 가치에 두지도 않는다. 기업이라지만 영리보다는 마을 공동체 공존의 터전이라는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남양주 조안면에 꽤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마을기업 ‘아낙네’도 마찬가지다. ‘아낙네’ 영농조합법인은 고추장과 된장, 장아찌를 담그는 마을 기업이다. 마을에서 나는 작물만 고집하고, 시어머니한테 배운 재래식 손맛을 원칙으로 삼았다.

아낙네 창립때부터 함께 해 온 홍순복(54·여)씨의 말이 재밌다.

“행정자치부에서 우수기업 선정하는데, 저희도 선정 대상자가 됐더라구요. 그런데 최종적으론 떨어졌어요. 일자리 창출 부분에서 점수가 낮았대요. 우리끼리는 웃었죠. 일거리 없는 겨울을 잘 지내보려는 마음들이 맞아서 시작했고, 우리 스스로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동체를 결성했으니까요.”

더 많이 벌려면, 규모를 키워야 하고 불필요한 비용들을 없애야 하지만, 아낙네는 ‘지금 이 정도’가 좋단다.

시작은 미미했다. 농촌 아낙네들은 겨울이 되면, 거리로 나섰다. 농번기에는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정신없이 지내지만, 흔한 비닐하우스도 없어 겨울엔 손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식당, 공장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찾아 몇 푼 안 되는 돈을 손에 쥐면서, 아낙네들은 숱한 겨울을 보냈다.

그러던 중 2009년, 정부가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을 시작했다. 남양주시 조안면이 정부 지원 사업의 대상지로 선정됐고, 차량 드나들기도 어려웠던 거친 흙길에 아스팔트가 깔렸다.

도로 형편이 나아지자 마을 모양새도 점점 좋아졌다. 깜깜했던 시골 마을이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낙네들도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야릇한 도전의식이 피어났다.

그러고 보니, 시골의 촌부로 산다는 공통점 때문에, 다들 고추장·된장 정도는 담글 줄 아는 손맛을 갖고 있었고, 틈틈이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고추장, 된장을 담가주는 ‘부업’도 하고 있었다.

“이거다 싶었어요. 혼자 집에서 하던 일을 우리, 다같이 해보자며 한마음이 됐어요. 공평하게 자기가 농사지은 콩 1가마씩을 출자했고, 9가마가 모이자 된장을 담근거죠.” 그렇게 남양주 조안면의 마을 경제 공동체, ‘아낙네’의 첫 상품이 세상에 나왔다.

아낙네는 조안면에 사는 젊은 아낙네 9명이 모여 시작한 경제 공동체다. 콩 1가마씩 출자금 삼아 투자해 아낙네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마을 기업에 도전했다. 지난해, 지자체의 지도를 받는 단계를 졸업(?)하고, 지금은 자립형 마을기업으로 자생하고 있다.

성공의 비결은 단순하다.

현재 아낙네 총무인 김현옥(48·여)씨는 “우리끼리 약속한 원칙이 있어요. ‘우리 마을에서 나는 작물만 사용하고 우리 어머니께 배운 손맛으로 전통음식을 만들자.’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 가장 많이 나는 ‘깻순’을 사용해 장아찌를 담갔고, 콩 농사 지은 걸로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었어요.” 단순하지만 가치있는 아낙네의 원칙이다.

실제로 아낙네는 마을에서 나는 농작물만 고집하고 있다. 아낙네 회원들과 동네 주민들이 봄부터 농사지은 작물을 시장에 납품하는 값보다 더 값을 쳐 구매한다. 주민들이 땀흘려 일한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어차피 함께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잖아요. 다들 고생해서 농사짓는 모습을 서로서로 봐왔는데, 우리라도 값을 제대로 쳐줘야죠. 또 우리 마을 농작물에 대한 자부심도 지켜야 하구요.”

마을에서 나는 작물을 모두 소화하다 보니, 아낙네의 대표 상품은 15가지에 이른다. 오늘의 아낙네를 만든 1등 공신 고추장과 된장은 보리고추장부터 막장까지 종류별로 구비돼 있고, 히트상품인 깻순 장아찌를 비롯해 머위·취·뽕잎·오가피·질경이·민들레 등 각종 장아찌가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다.

여기에 마을 야산에서 채취한 야생 꽃차들과 재래식으로 만든 청국장까지 더하면 아낙네 상품으로만 한 상을 차려도 상이 모자랄 지경이다.

“우리 제품은 자연에서 나는 재료를 재래식 방법으로 만드는 데다, 우리 마을은 원래 물이 좋고, 햇볕도 좋아 장을 담그면 맛이 일품이에요. 장아찌는 식당에 납품할 만큼 인기가 좋아요. 보통 장아찌를 만들어 두면 다음 봄이 올 때까지는 판매해야 하는데 벌써 동이 나 버렸어요.”

아낙네로 인한 마을의 변화도 의미있다. 한가하기만 했던 마을의 겨울 풍경도 달라졌다. 사계절 내내 마을엔 손님들이 찾아왔다. 전국 각지에서 아낙네의 경영비법을 전수받으러 견학을 오기도 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직접 장 담그는 체험을 하기 위해 마을을 드나들고 있다.

성공 비결은 단순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소일거리 삼아 시작한 작은 사업이지만 ‘일하는 재미’ 덕에 아이디어들이 하나하나 보태지면서 상품 가짓수도 늘어났고 그만큼 일감도 늘어났다.

우리 음식 맛을 알아주는 그 맛에 직접 전통음식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체험장도 따로 만들었고, 손님들이 직접 담근 장을 장독대에 넣어두는 ‘장독대 분양’ 사업까지 실시하면서 ‘일복’이 터진 것. 그런데 일손이 줄어들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홍순복씨는 그때의 사연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9명으로 시작한 아낙네가 지금은 6명이 남아있어요. 처음에 소소하게 우리끼리 마음맞아 시작한 사업이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잘 되기 시작하자 사람들 마음 속에 욕심이란 게 생기더라구요. 우리는 다같이 투자하고 일한 만큼 소득으로 가져가자는 원칙이 있는데 장사가 잘 되니 그게 다 ‘내 것’이었으면 하는 욕심들이 생겼나봐요. 결국 몇 사람이 혼자 사업을 하겠다며 아낙네를 나갔고 그 후에도 몇 번의 조합원 교체를 거쳐 지금의 아낙네가 됐습니다.”

여러차례 부침을 겪으며 마음의 상처도 컸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변하지 않는 약속 하나가 자리잡았다. ‘열심히 일한 만큼, 노동의 대가를 가져갈 수 있다’는 ‘아낙네’의 약속은 더 단단해졌다.

“마을기업을 시작하시려는 분들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많이 찾아오세요.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고생하며 얻은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나눠드리고 있죠. 하지만 운영해보니 가장 중요한 건 ‘팀 워크’에요. 서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야 하고 내가 더 가지려는 욕심을 버려야 돼요. 어차피 함께 살자고 시작한 사업이니까요. 아낙네도 늘 다짐하고 있습니다. 일한 만큼의 대가만 받으면 된다고 말이죠.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려고 재미있게 시작한 일이니 그 초심을 잊지 말아야죠.”

/글=공지영기자 · 사진=아낙네 영농조합법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