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이름값

입력 2022-11-30 20:16
지면 아이콘 지면 2022-12-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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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정희의 호(號) 추사(秋史)가 호가 아닌 자(字)라는 친필기록이 나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과천시 추사박물관이 2년 전 한 소장자로부터 구입한 필담집에 김정희가 청나라 사람들과 나눈 필담이 수록됐는데, 자신을 "이름(名)은 정희, 자(字)는 추사, 호(號)는 보담재(寶覃齋)"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한자문화권의 지배계층에선 본명을 부르는 것을 꺼리는 피휘((避諱) 관습이 있었다. 이름과 인물을 일치시킨 인식 때문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 이름을 불러도 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패륜이다. 그래서 본명 대신 자와 호로 호칭했다. 자는 성년식을 치른 남, 여에게 지어준 이름으로 두 번째 공식 이름이다. 이에 비해 호는 본인과 타인이 자유롭게 지어 편하게 호칭한 별명이었다.

중국에선 주로 자를 호칭한 반면 조선 사대부는 호를 앞세워 역사에 기록됐다. 정약용은 다산(茶山) 외에 여유당(與猶堂),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문암일인(門巖逸人), 철마산초(鐵馬山樵) 등 다수의 호를 남겼다. 한문학자 심경호는 이에 대해 "옛사람들은 본명 외에 호를 지님으로써 '또 다른 나'로 되살아났다"며 "호는 주체의 재생과 부활의 특별한 기호였다"고 설명했다.



여하튼 보도내용이 사실로 확정되면 난감해진다. 국어사전에도 김정희의 호로 오른 '추사'의 역사적, 학문적, 문화적 무게가 워낙 무거워서다. 완당(阮堂), 보담재 등 200개가 넘는 김정희의 호 중 하나를 골라 '추사체'라는 명사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추사'가 자가 맞다면, 호 대신 자로 김정희를 호칭하는 방법이 최선일 듯싶다.

이름값이 이렇게 무겁다. 옛 사람들은 부모가 지어 준 본명이 삿된 구설에 오를까 겸양의 뜻을 담은 자와 호를 지어 스스로 경계했건만, 지금 사람들은 졸렬한 이익에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다. 지지층의 환호에 눈멀어 거짓 폭로에 협업하는 공당의 대변인이나 푼 돈을 노려 남을 저주하는 유튜버들이 그렇다.

두 글자 한자 이름이든 순우리말 이름이든, 부모는 세상에 귀한 존재가 되라는 염원을 담아 자식 이름을 짓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값에 맞는 처신만 해도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아질 테다. 최소한 공직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이름값을 귀하게 여겼으면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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