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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민호 칼럼]많이 아픈 후배를 위해

    [방민호 칼럼]많이 아픈 후배를 위해 지면기사

    말수 적고 다정했던 후배에게모진 병고 시달림 뒤늦게 알아시대의 격류 요란하다지만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직 그녀에게 생명의 따스한 빛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바랄뿐얼마 전이다. 밀양에서 큰 불이 나서 제천에 이어 사람들 가슴을 아프게 하더니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불이 났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건 불을 다 끈 다음이다. 이번 불은 다행히 소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 번지지 않았다는데, 그래도 소식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마침 아는 사람이 바로 그때 입원해 있었다.혈액암에는 두 종류가 있어 특히 그 한 종은 고치기 어렵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후배가 그로 인해 고생하다 그 병원에 들어가 있었다. 조혈모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할 때쯤 학업에 대한 꿈을 거의 완전히 잃어버렸다.무슨 일인가를 겪으면서 사람은 평범하게, 평균적으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여름방학 지나 늦가을에 이르자 정신적 긴장이 극도에 다다른 나머지 밤에 발작적인 증세가 나타났다.분명 꿈을 꾸고 있었는데 현실에서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부모님이 일어나 나와보니 내가 내복 바람에 맨발로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우리집은 단독주택이었다.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만류하자 '몽유병' 환자는 기를 쓰고 바깥으로 뛰쳐 나가려고 했다. 서슬에 아버지의 러닝셔츠가 찢어지고 물어뜯는 바람에 팔뚝에도 피가 흘렀다.이웃집 사는 아버지 후배까지 달려와서야 겨우 택시에 몽유인을 밀어넣고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한 병원에서 거부당하고 또다른 병원으로 향하던 중에야 몽유인은 겨우 꿈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가을,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오자 학교는 견디기 힘든 곳으로 변했다.연합 서클이라고,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독서 동아리가 대전에 있었다. 남들은 공부하러 제각기 학교로 돌아간다는 3학년 봄에 몽유인은 본격적으로 서클활동을 시작했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도 읽었다. 그 무렵에는 다들 실존주의에 열을 올렸다.5월이 되자 일요일을 빌려 체육대

  • [방민호 칼럼]새해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방민호 칼럼]새해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지면기사

    우리들이 상상하는 모든 슬픔기쁨이 들어 있는 놀라운 삶입신양명·돈 벌기도 중요하지만지금은 풍요롭고도 절박한 시간올해엔 미래 기약할 수 없는나에게 '은총' 가득하길 기원한다또 새로운 한해가 열렸다. 이 개띠 해도 벌써 열흘 가까이 흘러갔다. 이 새해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마지막 몇 년은 팟캐스트만 끼고 살았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는 직장에 배달되는 신문 헤드라인으로만 알았다. 정부 입맛에만 맞추는 방송 언론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 좋은 점이 없지 않았다. 시장 논리가 겨냥하는 것,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아예 모르게 되다시피 했다. 무슨 새 물건이 나왔는지, 어떤 가수가 인기를 끄는지, 무슨 영화가 수입됐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무참하게 죽어가는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벌어지는 일들을 알지 않아도 되었다.정부가 바뀌고 방송사들이 달라져서일까. 이제 겨우 브라운관에 눈을 주게 된다. 아직도 드라마 같은 것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잠깐씩이라도 앉아 뉴스 화면도 본다. 내가 원하는 세상만이 아닌, 뭇사람들의 세상에도 관심을 '표명'해 본다. 그러다 알게 된 것 하나가 교육방송에서 하는 의학 관련 논픽션 프로다. 아픈 삶을 그리는 것으로 그중 많은 사람들이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을 하기도 한다. 끝내 삶의 마지막 국면에 다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새로 시작한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이상한 일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신음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일이 위안을 준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자신은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남의 불행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잔인한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일까? 그런 것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확실히 이기적이다 못해 철면피한 요소를 가진 존재다.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고통과 불행 속으로 들어가는 심리에는 다른 선한 면도 작용할 것이다. 사람들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 아닌 존재를 향한 이해와 동정의 마음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 [방민호 칼럼]찬(讚) 안재성

    [방민호 칼럼]찬(讚) 안재성 지면기사

    증언·어렵게 모은 자료로'박헌영'이란 역사적 존재 통해우리가 아는 한국사 새롭게 구성우리는 근대·공산주의 삶 싫고인간이 존중되는 세계 바란다'밥'만 원치 않는건 사람이기에지지난 주 읽은 '박헌영 평전'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박헌영이라면, 그의 시대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사람이다. 이 평전의 작가는 왕년의 '노동소설가' 안재성 씨다. 이 평전은 그는 놀라운 작가적 능력의 소유자임을 보여 주었다. 박헌영은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태생. 필자는 면을 하나 격하여 있는 덕산면에서 출생했다. 가깝다면 아주 가까운 사이. 그보다 필자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역사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했던 시대였다. 그에 대해서 아주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20년대부터 일생을 공산주의로 일관한 사람이요, 해방공간의 이름 '높은' 남로당 당수다.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6·25 전쟁이 계속되던 1953년 3월 11일 제국주의의 간첩이라는 혐의로 북한당국에 체포, 1955년 12월 15일 사형을 언도받고 1956년 7월 19일 한밤에 권총으로 밀살되고 말았다. 최근 필자의 관심사는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끝날 때까지의 8년사를 새롭게 보는 것. 1979년에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있었고 2006년에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다시 흘렀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일제말기부터 해방공간까지의 역사적 상황을 민족사의 시각에서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다. 해방과 더불어 분단이 시작되고 남쪽에서 미군정이 시작되고 단독 정부들이 수립되고 6·25 전쟁이 예비되는 과정들을 대한민국 체제의 관점에서 보는 대신, 어찌하여 한국인들이 미완의 근대를 살게 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살피고자 했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그러한 해방 전후의 한국사를 다시 한 번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그 배경이 있다. 1990년 전후로 한 이른바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세계는 미국

  • [방민호 칼럼]헌책방 사연

    [방민호 칼럼]헌책방 사연 지면기사

    세상이 바뀌고 나서도숱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하지만 정녕 중요한 것은역시 한 사람이 나고 살고 가는것몇 권 그의 책을 사들고나오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어젯밤이다. 뭔가 허전하다 싶으면 헌책방을 찾게 된다. 어젯밤에는 더구나 박완서 수필집 보아둔 것을 꼭 사야 할 용무도 있었다. 지난번에 만오천 원이라 했었다. 다른 책도 제법 많이 산 데다 초판도 아닌 3판째 수필집이라 미루어 둔 책이었다. 서울에서도 마포 홍익대학교 근처, 그래도 이런 곳에 헌 책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가끔 싼 값에 좋은 책을 만나면 그보다 아기자기한 즐거움도 드물다. 옛날에, 청계천 근처 헌책방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를 일제 강점기에 한국어로 낸 문고판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가. 이런 경우를 요즘 세속 말로 '득템'이라 한다던가. 그러나, 사실, 요즘은 꼭 그렇게 기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 헌책 흥정이라는 것이, 요즘은 인터넷에서 경매가 벌어지고 인터넷 유통망을 통한 가격 비교가 언제든 할 수 있게 되면서 간단치만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주인 모르는 책을 싸게 사게 되면 혹여 사람을 속여 넘긴 게 아닌가 찜찜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인터넷 유통망으로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고 헌책 값을 받을 대로 받으려는 주인님을 보면 어쩐지 얄밉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래저래, 귀한 책은 귀한 값 그대로는 못될망정 적당히 쳐주고 그렇지 않은 책은 이유까지 알려 드리며 제 가격대로 사는 게 마음 편하다. 왔다 간 게 불과 한 달 전쯤이었나?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헌책들이 꽤 좋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 같다. 누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이 업계에서는 '나까마'(なかま, 仲間)라고 한단다. 이 어원이 맞나 모르겠는데, 내놓아진 책을 싸게 사다 헌책방 같은 곳에 되파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간 상인일텐데, 다들 아직까지 일본어로 그렇게들 부른다. 청계천 헌책방 같은 데 서서 그분들 이야기 나누는 것 보면, 좋은 책 나오려면 꼭 어느 분이 돌아가시든가 해야 한

  • [방민호 칼럼]한반도 재통합을 향하여

    [방민호 칼럼]한반도 재통합을 향하여 지면기사

    통일보다는 차이를 인정하고새 복합체인 '재통합'은 어떨까몸 담아온 사회·체제로 부터거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그러나 새로운 하나가 되려면자신을 이상화 하지 말아야 지난 17일, 이호철 작가를 기념하는 통일로 문학상 제1회 시상식은 재일 한국인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각별한 계기였다. 시상식이 거행된 장소가 독특했다. 캠프 그리브스, 판문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수상자는 김석범, '화산도'를 쓴 재일 한국인 작가였다. 김석범은 일본에서 지금껏 '조선' 적을 유지하며 작품 활동을 해온 한반도 통합을 위한 상징적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오래 전에 사이요이치(최양일) 감독의 영화 '피와 뼈'를 동숭 아트홀에서 혼자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일제 때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사내 '김준평'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인데,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김준평 역을 맡은 일본 영화배우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이라는 사회를 생존을 위한 투쟁의 무대로 인식하고 본능적인 생존 욕구를 따라 처절하게 적응해 가는 한 재일 한국인의 초상을 그야말로 리얼하게 연기해 냈다. 재일 한국인 문제는 필자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작가 손창섭의 삶과 일본행을 추적한 것도, 그가 일본에 있으면서 '한국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유맹'을 책으로 만들며 해설을 붙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유맹'에는 일제 때 홋카이도로 징용 간 한국인들의 일본에서의 삶이 아주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그중 한 사내의 행적은 '피와 뼈'에 등장하는 김준평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과연 해방된 다음에도 일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띠는 것일까? 생활의 필요는 그들로 하여금 일본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에 남은 그들은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과는 같을 수 없는 삶의 상황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먼저, 그들은 일본이 지배했던 나라의 사람들이었다. 차별이라는 문제는 그들의 삶의 운명과도 같은 차원에서 인식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그들을 더욱

  • [방민호 칼럼]북한 동해안으로

    [방민호 칼럼]북한 동해안으로 지면기사

    일제시대 금강산은 민족의 성소이광수가 '금강산 유기'를 썼고원산엔 최인훈·이호철 작가가문학인들의 일이 많았던 함흥한반도 등뼈 훑어 오르듯동해안 북한 문학기행 떠났으면두어 달 전에 "서울문학기행"이라는 책을 펴내 놓고 이번에는 "남해안 문학 기행"을 해볼까 했다. 그것도 좋지만 뭔가 더 새로운 얘기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하고 생각을 돌리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북한 쪽 동해안이다. 지금은 가지 못하는 땅, 그나마 금강산이라도 왕래는 했었는데, 지난 두 정부 동안 관광 갔던 국민 한 사람이 죽고 남북대화가 단절되면서 그것조차 끊어졌다. 세월이 바뀌었으니, 지금은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다시 오갈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7번 국도 타고 한반도 등뼈를 훑어 오르듯 금강산 위로 원산, 함흥도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북한 동해안 문학기행, 이라고 해도 지금은 갈 수 없으니 현재를 쓸 수는 없고, 과거, 함경선 타고 저 두만강 어귀까지 거슬러 오를 수 있었던 때로 한번 가보자. 일제시대 때 금강산은 민족의 성소였다. 이광수가 '금강산유기'를 썼고 "개벽"지 발행인 박달성도 기행을 남겼지만, 뭐니 뭐니 해도 김동인이 "창조"지에 발표한 '약한 자의 슬픔'(1920)의 주인공이나 이광수 장편소설 "재생"의 여주인공이 금강산에 오르는 대목은 인상 깊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산에는 누구보다도 최인훈과 이호철 같은 작가들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모두 원산고등학교 다니다 말고 6·25 전쟁을 맞아 우여곡절 끝에 미군 수송선 타고 부산으로 내려와 남한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6·25중 미군 원산 폭격의 '문학적' 의미는 심각한 숙고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광수, 메논 등과 밀접한 관계에 놓인 모윤숙도 원산 태생이다. 함흥에 가면 문학인들의 일들이 더욱 많다. 일제 말기에 조선어학회 사건이 함흥영생 여고보 학생의 일기장 내용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많은 한글학자들이 체포되어 곤욕을 치렀고 이윤재, 한

  • [방민호 칼럼]'연산군 일기'에서 글줄을 뽑아보다

    [방민호 칼럼]'연산군 일기'에서 글줄을 뽑아보다 지면기사

    사람들의 말, 항간에 떠도는 말책줄이나 읽었다는 사람들이멋대로 뱉는 말속에도 진실 있고세상에 대한 판단 있다는 것을알지 못하는 정부는 미래가 없다어느 시대나 유념해야 할 일 아닐까현대문학 전공자이건만 어쩌다 보니 '연산군일기'를 접하게 됐다. 그 시초인즉슨, '서울문학기행'이라는 졸저를 쓰다가 옛날 이광수 홍지동 산장 근처에 탕춘대성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탕춘대성이라는 것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성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때 그 탕춘대성이란 근처에 탕춘대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탕춘대 또는 탕춘정은 기록에 따르면 연산군 12년 정월에 완성을 본 정자로서, '연산군 일기' 61권, 연산 12년 3월 7일자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썼다."정자는 장의사(藏義寺) 서편 기슭 우뚝 솟은 꼭대기에 있는데 청유리와 기와로 이었으며, 위아래의 횡각이 냇물을 수백 보나 걸터 타고 있는데, 모두 청유리 기와로 이고 내를 막아서 저수하였다. 산 안팎에서는 다 두견화를 심고 그 정자 이름을 탕춘정(蕩春亭)이라 하였다. 왕이 자주 거둥하였는데, 왕비 이하도 모두 말을 타고 따랐다. 이 때문에… 항상 말을 수천 필씩 길렀다."연산 12년은 연산군의 재위 마지막 해였다. 그 정자 이름이 봄을 탕진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짓고 이제부터 한판 진짜로 즐겨보겠다 했건만 사실은 그해가 그의 마지막 해였던 것이다. 그는 중종반정(1506)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탕춘정을 지은 그의 뜻이 무색하게도 그는 정자를 지은 해에 세속의 영화를 잃고 인생마저 마감했던 것이다.연산 12년 기록을 보다, 연산군이라는 인물에 대한 탐구욕이 어쩔 수 없이 일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 연산군 재위 첫해의 기록부터 찾아보게 된다.선왕이 세상을 떠나고 새 왕이 뒤를 잇자마자 신하들의 항소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요샛말로 하면 '군기잡기'인지도 모르겠는데, 이유인즉슨 새 왕이 세상 떠난 아비를 위하여 불교식 재를 지내려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것이 사단이 되어 해가 바뀌어 정월이 다

  • [방민호 칼럼]작가에게 고향이란 무엇일까?

    [방민호 칼럼]작가에게 고향이란 무엇일까? 지면기사

    진정한 작가에게 고향은 없다마음속에 그리는 곳이 진짜 고향여기서 저기서 살아라 할것 없고정해놓고 삶 방향 택할 수 도 없다이효석 시절에도 지금도 말 많아세상은 혼탁하고 어지러운 것평창 동계 올림픽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소설 연구자인 까닭에, 필자에게 이 겨울 올림픽은, 다른 무엇보다, 작가 이효석의 고향 평창의 올림픽으로 이해된다. 과연 이효석이란 존재를 평창 올림픽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미 근 한 해 전에 필자는 평창에서 이효석을 가지고 뭔가를 만드는 사업의 자문 역할을 한 번 한 적 있는데, 한마디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정부나 기관에서 부를 때 응하지 않으면 도도하게 구는 것도 같고 또는 눈총을 받을 것도 같아서 싫어도 좋아도 가는 쪽을 택하게 마련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차려진 자리가 한갓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으며, 문학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와 있나? 하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효석은 평창이 고향이었지만 고향을 표나게 내세운 적은 없다. 고향이 상기시키는 자연을 너무나 사랑한 작가였지만 그 고향의 특권적인 위상을 주장한 적은 없다. 대신에 그는 고향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어떤 사람이 태어난 곳만이 고향이 아니요, 그가 그리며 살고 싶어 하는,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고향이 또한 이상 속의 고향이라 했다. 필자는 작가 연구를 좋아하고 작가의 생애 속에서 피어난 작품을 사랑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최인훈과 이호철의 작품에 좀 더 관심을 표명해 왔다. 때문인지 이호철 작가께서 지난해에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서울 은평구에서는 고향이 이북 원산인 그분이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세월을 기려 이호철 문학관도 만들고 더하여 뭔가 의미 있는 작업도 계획하는 듯했다. 여기 필자가 또 오지랖 넓게 참여하게 되기는 하였는데, 이 은평구의 작가 기리는 방식, 작고한 작가를 현재에 의미 있게 만들고자 하는 방식에는 뭔가 성의 같은 것, 사려 같은 것이 있어 보여 좋았다. 그렇다면 이호철이라는 이 고향 잃은 실향민 작가는

  • [방민호 칼럼]상처 입은 말, 피 흘리는 글

    [방민호 칼럼]상처 입은 말, 피 흘리는 글 지면기사

    공격과 야유·조롱의 말과 글이음식 첨가물로 칭송되는 시대에사람들 영혼·참생명 메말라 가국가기관 닮은 부대들이인터넷망 파고 들어 포격 명령두 포털 그들 용맹에 무릎 꿇어원래 댓글은 한번도 달지 않은 사람이다. 언제부터냐 하면 지난 지지지난 대통령 때부터다. 그때부터 호화찬란한 댓글 문화, 문자문화가 꽃을 피웠다. 누군가 자기 생각에 안 맞는 말을 하고 글을 쓰면 패를 이루어 몰려가서 흠씬 두들겨 팬다. 정의와 진보의 이름으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말씀 거칠게 하니, '백성'들이 다투어 그분을 따라 말하고 쓴다. 전자게임에서 적을 마구 도륙하는 워리어가 된다. 급속히 확대된 인터넷 문화는 호화찬란한 소통 문화의 개활지로 변했다. 사실, 이런 말펀치, 글폭력은 군사독재 시절에 군림하던 사람들이나 쓰던 것이다. 불법 집권해서 무서울 게 없는 무리가 힘없는 '백성', 저항하는 '난도'들을 향해 카메라 모아놓고 눈 부라리며 썼다. 저항하는 사람들도, 그중에서도 젊은 학생, 노동자들도 같은 말, 글을 썼다. 싸우면서 투쟁과 공격의 언어를 익혔다. 삶의 말과 글이 군사 용어들로, 증오와 비난의 표현들로 오염되어 갔다. 이것이 그 지지지난 대통령 시대에 극적으로 인터넷에 상륙했다. 거침없는 비난과 비하, 조롱, 야유, 적대적 공격의 언어가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을 업었다. 지지난 대통령, 지난 대통령의 시대에 이 문화는 더욱더 발전, 융성했다. 문화 융성이라는 허울 좋은 표어 아래 말과 글은 더욱더 군사화, 폭력화되었다. 국가 기관이 버젓이 댓글부대를 창설하고 '적'을 설정하고 말폭탄, 글폭탄을 투하했다. 맞아 죽으라는 듯 말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렇게 폭격에 노출되어 '학대'당하던 진영으로부터 반격이 시작됐다. 이 저항 진영은 이미 지지지난 대통령 때부터 실력을 연마해 온 터라 한번 작정을 하고 나서자 그 국가기관 뺨칠 만큼 체계화, 조직화, 대량화되었다.이제 전투 '기계'가 완비되었다. 공상 미래 영화 '토탈리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전자 레이더를 통한 적의 색출, 조준, 포격, 임

  • [방민호 칼럼]'부로 인텔리겐차(부르주아 + 프롤레타리아)'의 대선 관전평

    [방민호 칼럼]'부로 인텔리겐차(부르주아 + 프롤레타리아)'의 대선 관전평 지면기사

    후보들 향해 좌우·진보·보수란 평낡은 구분법 이젠 뛰어 넘어야어떠한 손실·희생도 없는 진보란있을 수 없다는 말 되새길 필요'진보'·'보수'라는 말부터 허상헛것이 눈 어지럽히는것 같아장미 대선이라는 말은 누가 처음 붙였는지, 명문구다. 장밋빛 꿈이라는 말이 있듯이 장미 대선, 장미꽃이 그때 피어서 그런 건지, 장밋빛 꿈꾸게 하는 대통령 선거인 것도 같다. 이름과 같은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어제 관부에서는 전직 최고책임자를 구속하는 신청을 냈다 하니, 근 십 년 전 일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결코 유쾌해 할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며 그밖의 온갖 부정적 사건들은 전혀 정리, 정돈되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불행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대통령 선거는 이번에는 더욱더 진보다, 보수다, 하는 슬로건으로 뒤덮일 것 같다. 이번에는 물론 이른바 보수에게 기회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비록 보수, 진보로 후보들이 나뉜다 해도 운동장은 이른바 진보 쪽으로 확연히 기울었다. 자업자득이니 상대방을, 국민들을 탓할 수도 없다. 대체로 이번에는 진보 쪽이 유리할 거라고들 예견한다. 후보들도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 하는 이념의 스펙트럼을 따라 재단, 평가되는 추세다. 예를 들어, 민주당을 보면 시장 출신 후보가 가장 왼쪽, 지난 번에 이어 다시 나온 후보가 그 다음 왼쪽, 이른바 '선의' 파동에 '대연정' 구상으로 다른 당 지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보는 그중 오른쪽에 가깝다고들 한다. 이번에는 국민의 당의 유력 후보.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젊은이들을 위한 희망 메시지로 정계에 들어선 그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은 그를 향해 집권 여당의 이중대다, 보수대연합 들러리다 했지만, 최고책임자와 함께 침몰해 버린 지난 여당이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사라져버린 지금 그런 비난은 근거가 없다. 그밖의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 관망중이다. 더디고 느린 그의 상승 곡선이 이를 말해준다. 왜 그럴까?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