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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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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준 칼럼] 한국학이라는 전장 지면기사
최근 한국을 향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학’이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널리 쓰이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한국학이라는 지식 체계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1969년 2월8일자 동아일보에는 ‘서구학 전공 학도의 국학으로의 전환’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1960년대 중반의 분위기를 반영한 이 기사는, 당대의 지식 체계가 ‘양학’(洋學) 중심이었고 이에 지적 갈증을 느낀 신세대들이 ‘국학’(國學)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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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준 칼럼] 한국학의 범위 지면기사
2002년 세계한국학대회 첫 개최후 정세 악화로 남북 직접 교류 불허 아직 한국학 시민권 얻지 못한 北 유력한 한국학의 제1후보 아닐까 범위 확장해줄 용자를 기다려본다 1988년 9월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체육부는 세계한민족체육대회, 소위 ‘한민족체전’을 열기로 한다. 이미 체육부는 소련과 중국 측의 동포를 유치하기 위해 올림픽 기간 중 소련 및 중국 대표단과 의견을 교환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1989년 한민족체전이 전국체전과 더불어 성황리에 개최된다. 말로만 듣던 ‘조국’을 처음 방문한 소련과 중국 출신 동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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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준 칼럼] 한국학적으로 생각하기 지면기사
한국학은 한국이라는 공간적 전제 ‘한국다움·한국에 관한 연구’ 정의 연구 대상으로 낯설게 보는게 시작 현재 한국 정치 개념을 재구성하면 ‘권위 획득 위한 투쟁’ 근접해보여 필자가 속해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름 그대로 한국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이다. 실제로 성남 청계산 아래 이름도 멋스러운 운중동(雲中洞)에 위치한 연구원 안에는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의지를 지닌 대학원생들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구름처럼 운집한다(구름이 늘 많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멋진 한문 필체로 쓰인 고풍스러운 간판이 걸린 건물들이 있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