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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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경찰관 봉사단체' 이끄는 가든버런티어 단장 김정원 경사 지면기사
"민중의 지팡이가 돼서, 봉사의 기쁨 외면할 수 없었죠" 대학생 시절, 전문직들 재능기부 보며 몸소 겪은 '사회환원 참맛'"알량한 권력에 취하지 말고 약자 도와라" 어머니의 당부 원동력활동하며 들은 감사인사, 매너리즘 빠진 동료들에게 긍정적 영향시민의 안전과 치안을 담당하는 '민중의 지팡이' 경찰에게 '봉사'란 단어는 어찌보면 당연한 임무인 것처럼 느껴진다. 시민에게 헌신하겠다는 마음 없이 공무를 집행하는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경찰의 봉사와 헌신을 넘어 자발적으로 소외계층을 향해 온정의 손길을 전하는 경찰관이 있다. 수원서부경찰서 형사과 실종팀 형사이자 경기남부경찰청 최초의 경찰관 자원봉사단 '가든버런티어(Garden Volunteer)'의 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원(33) 경사다.김 경사는 지난해 10월 가든버런티어를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인 '정원(Garden)'에서 착안, '자원봉사자(Volunteer)'를 뜻하는 영단어를 합성해 가든버런티어로 정했다. 사계절 내내 울창한 정원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활동하겠다는 각오를 이름에 담았다. 현재는 수원 서·남·중부서와 안산상록서, 부천오정서 등에 근무하는 경기남부청 소속 경찰관 35명이 활동 중이다. 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홀몸어르신, 노숙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도시락과 떡을 만들어 제공하는 일을 지난해부터 매달 한 차례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어르신 240여명에게 식사를 대접했고, 지난달에는 최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과 함께 취약계층을 위한 도시락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김 경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 '봉사 경찰관'이다. 본연의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주말마다 시간을 쪼개 각종 봉사활동에 앞장선다. 2년 전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당시 김 경사는 1천228시간 봉사활동의 기록을 인정받아 전준영(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 김나영 소령(3대 병역명문가 출신 간호장교), 성민정 소방장(14년간 매년 660여건 구급활동을 한 코로나 전담 구급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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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일상 속 스포츠 굿즈 자리매김 꿈꾸는 '오버더피치' 최호근 대표 지면기사
"유럽선 축구 유니폼이 패션… 신포시장 어르신도 입는날 오길" 韓 대표팀·나이키·아디다스부터 최근 김민재 소속팀 콜라보 제작도인천Utd 창단 20周·SSG랜더스 등 고향팀과 작업 "행복했던 경험"글로벌 구단과 협업하며 스포츠 문화 확산 도움 "하나의 장르되길""신포시장의 할머니도 인천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자연스럽게 입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유니폼은 '직관 갈 때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짙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니폼을 일상에서나 여행 갈 때 입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마케팅 수단으로 유니폼의 일상화를 추구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했기 때문이다.축구를 주제로 한 패션 브랜드인 '오버더피치'의 최호근 대표는 유니폼과 스포츠 관련 상품의 일상화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그는 "팬이 아닌 사람도 축구 패션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며 "미국이나 유럽처럼 국내에서도 스포츠 유니폼을 자연스럽게 입는 문화가 퍼지길 꿈꾼다"고 했다.■ 축구선수 꿈 포기했지만 결국 축구로 향한 디자이너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최 대표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나우두의 팬이었고, 그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축구 유니폼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생 때는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가 주최하는 미들스타리그에 학교 대표로 참가해 문학경기장에서 열리는 결승전까지 뛰었던 축구광이었다.그는 "농구로 유명한 송도중학교와 야구 역사가 오래된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지만, 축구를 향한 꿈이 더 컸다"며 "집안의 반대로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한 뒤에도 계속 운동장에서 축구공만 찼다"고 했다.인천대에서 시각디자인학과를 전공한 최 대표는 학부생 시절 축구와 디자인을 접목한 활동에 나섰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오롯이 축구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축구 유니폼 디자이너를 하고 싶어 포트폴리오를 만들 겸 아마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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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뮤지컬 배우이자 한세대 교수 병행… 데뷔 16년차 '카이' 지면기사
"허구인 쇼에서 진짜 연기 찾는 일, 비우는 데서 시작" '프랑켄슈타인' 세 시즌째 참여경험한 모든 것 가감없이 전달후배들 성공 확률 높여주고 파공연예술학과 교수직 받아들여 "사실 매체 인터뷰가 좀 어렵습니다."뮤지컬, 연극, 콘서트, 대학 강의까지 쉴 틈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배우 '카이'. 데뷔 이후 어느덧 16년, 그동안 적잖이 해왔을 인터뷰가 '어렵다'는 말을 서두에 꺼내자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이'라는 사람은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들을 사유하고, 그 안에서 방법을 깨닫고,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를 늘 생각해왔다고 한다. 이렇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듣는 사람들이 힘들어하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오히려 좋아!' 단편적으로 보이는 것들에서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카이가 말한 '깊이'는 곧 그가 배우이자 교육자로서 걸어가는 길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악 전공 후 '크로스 오버' 도전자신 둘러싼 선입견 깨기 '난제'지금은 맡은 배역 의식흐름 좇아'나만의 방식'으로 캐릭터 구축 배우로서 보낸 지난 16년은 많은 사람이 그렇듯 칭찬하고 싶은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뒤로 한 카이는 앞으로 '나는 어떤 마음가짐과 형태로 무대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는 시점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성악을 전공했던 그가 뮤지컬을 시작했을 당시를 더듬어 보면 장르를 넘나드는 아티스트와 크로스 오버라는 장르가 익숙하지는 않았다. 그런 미지의 어딘가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성악 발성, 똑똑할 것 같고 영어를 술술 내뱉을 것 같은 이미지,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키는 도련님…. 그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선입견을 깨는 것이 가장 '난제'였다고 떠올렸다. 카이는 "무관심보다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역량에 대해 폭넓게 바라보기보다 어떤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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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인천에 신재생에너지 시장개척' 박정민 오스테드코리아 대표 지면기사
해상풍력 불모지던 인천섬… '미래 먹거리' 상생 신바람 불것" '녹색에너지 전환' 국내 탄소중립 기조와 부합… 도전 가능성 발견어업활동 영향 최소화 약속 등 3년간 설득해 인근 섬주민 반대 극복사업성공 디딤돌 될 '배후항만'… 3년내 확보 목표로 관계기관 협의인천 앞바다에서 해상풍력발전사업을 추진 중인 '오스테드(Ørsted)'는 덴마크 국영 에너지 기업이다. 본래 석유 등 화석연료를 생산하던 기업이었지만, 2012년부터 재생에너지 사업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 현재는 세계 최대 해상풍력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오스테드는 인천 옹진군 덕적도 서쪽 50㎞·35㎞ 해상 두 곳에 각각 800㎿씩, 총 1천600㎿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단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오스테드가 한국 풍력시장에 진출한 시기는 2018년이다. 국내에서도 탄소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고 해상풍력 발전사업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오스테드코리아의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 박정민 대표는 오스테드의 '한국 상륙'부터 인천 앞바다의 입지 선정, 지난해 이뤄진 발전사업 허가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전북 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 대표는 인천대학교 토목과를 졸업한 후 유니슨 해외풍력사업개발, 삼성물산 상사부문 신재생에너지 업무 등을 거쳐 오스테드 한국법인 첫 직원으로 입사했다.박 대표는 "큰 조직에서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은 있지만, 한국 해상풍력 시장을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초창기 불안감도 컸다. 하지만 덴마크에 본사를 둔 오스테드가 대만 등 아시아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점, 회사가 추구하는 녹색에너지 전환이 국내 탄소중립 기조와 부합하는 점 등에서 미래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오스테드가 한국 시장 진출 후 해상풍력 입지로 인천 앞바다를 선정하기까지는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시장조사를 진행하면서 인천이 수도권 전력 공급을 위한 최적의 해상풍력 대상지라는 판단이 섰다. 이후 오스테드는 2020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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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지역 매력 알리고픈 지영빈 동두천 두드림뮤직센터장 지면기사
"제 눈엔 모델같은 시민들… 동두천 애환 사진에 전부 담고파" 미군 떠나며 상권 쇠락·기지촌 여성 등 역사적 아픔… 보듬고파규모 작더라도 여러 곳서 문화사업 계획… 소외된 이 없도록 노력'119소방관 사진전'·'워낭소리 그 후 화보집' 그의 손끝에서 작업지영빈 감독은 이선희, 조용필 등 당대 내로라하는 가수, 전 대통령 등 유명 정치인의 사진을 찍은 유명 사진작가다. 119 소방관 사진전, 워낭소리 그 후 화보집 등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진들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그런 그가 경기북부의 끝자락, 동두천에 자리를 잡았다. 최근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제주도에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지난 4월1일자로 동두천두드림뮤직센터의 센터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의정부 출신인 지 감독은 자신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살려 동두천의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열의를 불태웠다."동두천은 정말 매력적인 동네입니다. 대한민국 어느 지자체보다 한(恨)도 많고, 문화적 잠재력이 풍부한 곳이죠. 대표적으로 보산동만 하더라도 영화 세트장이 따로 없습니다. 과거 미군부대의 정취와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죠. 동두천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끌어내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아티스트 인재들을 발굴하는 역할도 하려 합니다."지 감독이 동두천에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고향 경기북부로 돌아와 일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박형덕 시장과의 오랜 인연도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과거 한미2사단에서 사진기자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의정부 CRC(캠프 레드클라우드), 동두천 캠프 케이시 등을 드나들며 활동하던 그때도 전 동두천의 거리와 문화에 매료됐었죠. 그때 많은 연예인을 불러 협업하는 과정에서 시민들 사이에 저라는 사람이 좀 알려지는 일이 있었고, 당시 도의원이었던 박 시장님과는 우연히 만나 문화적 가치관을 교류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동두천과 좋은 인연을 이어오면서 홍보대사 활동도 하고…. 이제는 이렇게 동두천을 위해 일하게 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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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38년 인천시향 생활 마침표 찍는 바이올리니스트 정난희 지면기사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눈물 왈칵… 동료들과 울린 감동의 헌정곡 은퇴 공연 뒤 긴장풀려 지독한 감기로 병치레… 이달 말 정년 퇴임부당한 일에 먼저 목소리낸 '왕언니'이자 주도하던 '분위기 메이커'소년범 바이올린 강습 등 계획 "여유롭고 의미있는 나날 보내고파"1966년 창단한 인천시립교향악단(이하 인천시향)이 아트센터인천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초연(初演)한 지난 5월 17일. 이날은 1986년 인천시향에 입단한 제1바이올린 정난희(60) 상임단원의 시향 은퇴 연주이기도 했다. 특히 80분에 달하는 긴 연주시간의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은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난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정난희 단원은 이 초연작에서 인천시향에서 38년간 쌓은 경륜을 모두 쏟았다고 한다. 그렇게 큰 산을 오르는 듯한 연주가 끝난 직후,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박수 속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병욱 인천시향 예술감독이 평소와 다르게 마이크를 잡았다. 이병욱 예술감독은 은퇴 연주를 마친 정난희 단원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소회를 물었다. 그리고 인천시향은 슈만의 '헌정'(Widmung)을 연주해 정난희 단원에게 헌정했다.정난희 단원의 인천시향 마지막 연주가 애초 계획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이 아닌 난생 처음 무대에서 눈물을 흘리며 동료들과 함께 연주한 '헌정'이 된 사연이다. 그 감동의 순간은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인천시향 역사의 절반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정난희 단원 이야기가 곧 시향의 역사일 것이다. 그의 소회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마지막 공연 한 달 후인 지난 21일에야 만날 수 있었다. 공연 직후 긴장이 풀린 탓인지 평생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지독한 감기로 병치레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건강을 되찾은 정난희 단원은 인천시향에서 '왕언니'로 통했던 에너지 넘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이달 말 정년 퇴임한다."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는지, 이렇게 심하게 감기를 앓은 적은 처음이었어요. 그동안 참 건강하게 인천시향 생활을 했는데 말이죠. 시향에서 마지막 공연인 브루크너 교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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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인터뷰…공감] 백의종군길 순례 마친 '미국 이민 1세대' 윤봉한 씨 지면기사
'아메리칸 드림' 이룬 동포… 도포자락 휘날리며 국토종주 한국인의 정체성 잊지 않으려낮엔 일, 밤엔 韓역사 공부 매진월남 파병도 자처… 이젠 인생2막"우리 전통 안지키는 듯해 아쉬움"직접 고국땅서 홍익인간 계승 '白衣從軍(백의종군)'.등허리에 짊어진 깃발 속 네 글자는 정갈했다.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는가 하면, 손에는 기다란 죽봉도 들었다. 흡사 조선시대 선비의 환생 같은 윤봉한(76)씨의 모습에 거리의 시민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빛 바랜 하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지난 10일 경인일보 본사에 등장한 그는 첫 인사부터 "'망건'을 잃어버려 격식에 맞지 않는 차림새라 미안하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보수적으로 전통을 고수하는 모양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이상하게도 그의 답변에서는 중간중간 영어 문장이 섞여 나왔다."No guts, no glory." 그는 '용기 없이는 성공도 없다'는 자신만의 신조를 아주 유창한 영어 발음으로 읊었다. 70대 남성, 한복 차림 그리고 세련된 영어 발음이 맞물려 궁금증을 자극했다. 하얀 도포자락에 더해 햇볕에 그을린 듯 보이는 피부도 예사롭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1970년대 미국으로 향했던 이민 1세대 동포였다. 현재도 미국 오리건주에 거주하고 있다. 더 특이한 점은 조선시대 선비의 모습으로 지난달 10일부터 장장 한 달가량에 걸쳐 전국을 일주했다는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에 나섰던 길을 좇아 두 발로 돌았다고 한다.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잠시 깃발을 내려놓고 영어 공부에 매진했던 젊은 시절부터 순례에 나선 지난달까지를 차근차근 회상했다."서른 살쯤에 미국에 이민을 갔어요. 지금까지 46년을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살면서 그래도 죽기 전에 인생의 마지막을 보람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젊은 시절 조국을 위해 희생하며 애국하신 분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조금이나마 조국에 보탬이 되고자 젊었을 때는 월남에 파병을 갔다 오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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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인천 유일 ‘아트북페어’ 포문 연 슬로보트 북극서점 대표 지면기사
"왠지 들어가고픈 '책방'… 존재만으로 독서를 설득한다" 친구와 기타 연습하려던 곳… 독립서점 변신지자체 도움·문화공간 활용하며 8년째 생존부평구·區 문화재단에게 '북마켓' 지원 요청'북페어' 기획 제안 답신… 현재 市주최 행사지난 1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인천 유일의 아트북페어가 성황리에 열렸다. 전국의 독립서점, 출판사, 작가 160개 팀이 선보인 독립출판물을 맘껏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행사. 바로 ‘2024 인천아트북페어(IABF)’다. 올해 5회째를 맞은 인천아트북페어에서는 독립서점·출판사·작가들의 창작물을 전시·판매하는 아트북 마켓과 더불어 인문학 강연과 다채로운 공연·전시가 열렸다. 인천아트북페어를 구성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한 사람으로부터 기획됐다. 슬로보트(44·예명) 북극서점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북극서점은 인천시 부평구 굴포천역 인근에 위치한 독립서점이다. 슬로보트는 ‘자유롭게 살자’는 신조로 2016년 북극서점의 문을 열고 8년째 ‘생존’하고 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관대로 살고 있다는 슬로보트. 그녀의 삶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초등교사에서 작가와 가수, 책방지기 그리고 문화 기획자까지슬로보트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책’은 슬로보트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줬다. 책은 매번 슬로보트를 새로운 곳에 데려다줬고, 성장시켰다. “책이 가진 위로의 깊이는 남다르다”는 게 슬로보트의 경험이다. 책은 그렇게 그의 인생에 자리잡았고, 작가의 꿈을 키우게 했다.슬로보트는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에 발을 들였고 13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2016년 퇴직하고 꿈을 좇았다. ‘슬로보트(slowboat)’라는 필명으로 독립출판물(책)을 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같은 해 10곡의 포크송을 담은 앨범 ‘섬광’도 발매했다.생각지 못한 친구 제안이 독립서점의 문을 연 계기가 됐다.“그 해에 초단편 소설을 쓰며 혼자 놀다가 3년 정도 여행하면서 마음껏 글을 쓰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복직할 계획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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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인터뷰…공감] 국내 첫 '요트 단독 세계일주'… 못말리는 탐험가 김승진 선장 지면기사
남극 근방 케이프혼 4만2천㎞ 항해… "동경하던 바다, 인생에 입항한 순간" 요동치는 가슴따라 40대 후반 5년 된 중고요트 구매충남 당진서 출발해 209일 여정… 세계서도 드물어"요트 건조시장 400억달러… 韓산업 성장 일조 목표" 일생 딱 한 번의 경험이었다고 했다. 달이 사라진 그믐날 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바람이 멎으며 요트가 멈췄다. 수개월씩 항해하면서도 좀처럼 겪지 못하는 완벽한 무풍이었다. 밤바다는 조금의 너울도 없이 반듯했고, 밤하늘엔 구름 한 점 걸쳐 있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가 먹색으로 맞닿은 적막한 그곳으로 별이 쏟아져 움직였다. 우주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믐날이어야 하고 바람이 멈춰야 하고 구름은 없어야 한다는 조건에, 결정적으로 그 바다에 가 있어야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기에 다시 눈에 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그는 아련하게 미소 지었다. 그토록 동경하던 바다를 가슴 속에 들이게 된 탐험가 김승진(62) 선장의 이야기다. 항구에 들르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대한민국 최초로 요트 단독 세계일주에 성공한 김 선장이 '특별한 바다'와 처음 마주한 건 고교 수학여행 때다. 충북 청주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동해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고속도로가 없어 미시령과 대관령, 진부령 등을 구불구불 넘어야 동해에 도달하던 시절, 그가 탄 버스는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 선장은 "날씨가 너무 좋은 상태에서 산맥 사이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는데, 진하고 아름다운 수평선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바라봤다"며 "반 친구들은 버스 안에서 신 나게 노래하고 떠들고 했지만 나는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고 돌이켰다.벅찬 기억을 안고 대학생이 되어 똑같은 길로 다시 찾아간 바다는 작아 보였다. 김 선장은 이미 탐험가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미대생이었던 그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묘하게 잠수라든지 바다에 대한 관심이 계속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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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개교 50주년 맞은 야학 '용마루학교' 박미소 교장 지면기사
"배움에 마침표 없어… 늦깎이 위해 꺼지지 않을 야학의 불" 50~70대 연령층 다양… 공항서 영어 읽고 기뻐하던 어머니 기억남아선배들 후원·기관 지원금 통해 운영… 마을공동체 사업 선정 '숨통'6월부터 새 교장 취임 "시원섭섭… 학교 필요없어지는 순간 왔으면"지난 1974년부터 한 해도 쉬지 않고 50년 동안 한결같이 문을 연 '야학'이 있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는 '용마루학교'다. 이 야학이 더 특별한 이유는 인하대학교 재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동아리 '용마루'가 운영하고 있어서다.칠판과 책걸상이 놓인 작은 교실 2곳과 교무실을 둔 용마루학교는 어릴 적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했던 어르신들의 배움의 한(恨)을 풀어주는 곳이다. '배움에 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다'는 걸 학교의 운영 목표로 삼고 있다.용마루학교 50대 교장인 박미소(22·경영학과 21학번)씨는 "50년 전 인하대 봉사동아리에서 시작된 용마루학교는 지금까지 인하대 학생들이 이끌어가고 있다"며 "검정고시 교과수업뿐만 아니라 과학실험, 만들기 활동 등 특별활동을 하고, 매달 한 차례 학급회의도 열어 어르신들의 학교 생활과 배움을 도와드리고 있다"고 말했다.수업은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6시부터 9시40분까지 두 과목씩 이뤄진다. 물론 수업료는 없다. 이곳에선 인하대 재학생 15명이 국어, 수학, 사회 등 검정고시 과목을 맡아 늦깎이 학생들은 가르치고 있다. 전기공학과, 물리학과, 행정학과, 사학과 등 대학생들의 전공도 다양하다. 이들은 교장, 진반(고등반)·선반(중등반) 담임교사, 행정 담당 등 각자 역할이 나뉘어있다.용마루학교는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도 온라인 수업, 학습지 배부 등의 방법으로 문을 닫지 않았다. 배움의 의지가 큰 어르신 등 늦깎이 학생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대학 신입생 때인 2021년부터 용마루학교에 몸담은 박씨는 "어르신 등에게 방정식이나 인수분해 등을 알려드리자니 처음엔 엄두가 안 났다"며 "어떤 것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몇 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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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1600만명 건강 책임지는 엄호윤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천경기본부장 지면기사
"14년간 불법기관 3조 편취… 특사경 지연땐 재정누수 커져" 저출산·고령화 등 지출증가 예상… 보험재정 수입확충·효율화 필수특사경 권한남용 우려있지만 일반국민 대상 제외·수사권 제한될 것3개월내 수사종결 장점 연간 2천억 절감… "건전한 의료생태계" 포부인천·경기지역 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지역 전문가'가 1천600만 지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엄호윤(57)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인천경기지역본부장은 공단 통합 이후 근무기간 23년 중 본부 주요 보직 기간을 제외한 17년여를 줄곧 인천경기지역본부에 종사했다. 지역본부 말단 직원부터 본부장의 자리까지 이른 흔치 않은 '토박이' 지역본부장이다. 본부 일선에서 공단 차원의 굵직한 과제들을 진두지휘한 뒤 지난 3월 지역본부장에 취임한 지 불과 두 달여 지났지만, 적응 기간이 무색할 만큼 지역의 대내외적 과제 수행에 고삐를 조이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 공단 지역본부로서 책임이 막중할 엄 본부장의 취임 일성을 들었다.■취임 후 2개월, 소감 밝혀본다면조직 내 최대 규모인 인천경기지역본부의 본부장 취임은 무척 뜻깊은 일이다. 특히 과장부터 부장 시절까지 긴 기간을 이곳에서 보냈던 만큼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국민의 평생건강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1천664만명, 전국 인구 32%에 달하는 인천·경기 지역민들의 건강한 일상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취임과 동시에 지역 현황과 과제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고, 특히 지역사회와 소통을 강화하고자 힘쓰고 있다. 소비자시민단체, 의약단체 등 공단 이해관계자와 꾸준히 소통하면서 지역 지지기반을 촘촘히 다지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기 위해 지난달 시흥지사와 오산지사를 시작으로 현장 경영도 추진하고 있다. 지역별 건강 격차를 해소하고 생애 전 주기 건강지원 서비스를 강화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본인이 진두지휘했던 역점 사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시행된 소득정산제도다. 소득정산제도는 보험 가입자의 실제 소득을 중심으로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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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인천에 뿌리내린 '국가 무형문화재 제57호' 소리꾼 전영랑 지면기사
"무대 위 국악인은 '종합예술인'… 재즈 화음 조화로 경기민요 혁신" 한예종 연희과 진학 '인생 멘토' 김덕수 선생 만나 공연 롤모델 영감'꾸준한 창작 실험' 밴드 '프렐류드'와 앨범 '플라이 인 날아든다' 발매가장 큰 힘 된 건 아버지… 함께 연습 'KBS 아침마당 꿈의무대' 올라전통만 고집해서는 발전하고 나아갈 수 없고, 새로운 것만 시도해서는 전통을 계승할 수 없다. 옛것은 지키면서도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전영랑(40)씨는 전통을 보존, 계승하면서도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예인(藝人)이다.전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국악을 처음 접했다. 국악인이었던 이모의 권유로 시작했다. 부모 품을 떠나 4~5년간 이모와 합숙하며 국악을 배웠다. 소녀 전영랑에게 국악은 "24시간 붙어 있는 존재"와도 같았다. 고등학생이 되던 1999년 서울 금천구에 있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당시 인천에서는 국악을 전공할 수 있는 학교가 없어 버스·지하철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녀야 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서울 학교로 나서고, 저녁 어스름에 인천 이모 집에서 노래를 배우는 일과를 고교 시절 3년 내내 반복했다. 어린 조카를 국악인의 길로 안내한 이모는 지금도 인천 남동구에서 오동국악예술학원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전영랑씨가 무대예술에 눈을 뜬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에 진학하면서다. 그곳에서 '인생의 멘토' 김덕수 선생을 만났다. 남사당패 출신 장구 연주가인 김덕수 선생은 징·꽹과리·북·장구 등 4개의 민속 타악기가 어울리는 사물놀이 창시자다. 김덕수 선생은 제자들에게 "무대에 오른 국악인은 '소리'만 하지 말고 다 할 줄 아는 종합예술인이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전씨는 다양한 악기, 소리, 몸짓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김덕수 선생의 무대를 보며 "앞으로 이런 공연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전영랑씨는 대학 졸업 후 김덕수 선생의 '한울림예술단'에 입단해 3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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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학 33곳 대변인… "정부와 소통, 현안 함께 해결" 지면기사
[인터뷰…공감] 경인지역 총장들 대표하는 이원희 한경국립대 총장 시급한 현안에 '학령인구 감소·수년째 학비 동결·역차별' 등 꼽아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게 구성원 비율 조정·교육방식 개편 주장외곽지역 낙후학교 규제완화 해법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신설' 제시"경인지역 대학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다양한 현안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데 진력을 다하겠습니다."경인지역총장협의회는 지난 2월 정기총회를 통해 제10대 회장으로 한경국립대 이원희 총장을 선출했다. 임기는 지난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1년이다.경인지역총장협의회는 경기도와 인천시에 소재한 4년제 대학교 총장들이 대학 발전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2014년 4월에 창립한 단체다. 정기총회와 회장단 회의, 정책 세미나 등을 통해 경인지역 대학들의 교육 환경 개선과 발전 등에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2024년 4월 현재 한경국립대를 비롯해 강남대, 성결대, 경기대, 한국항공대, 가천대, 인하대 등 33개 대학 총장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이 총장이 기라성 같은 경인지역 대학 총장들 사이에서 절대적 신임을 받아 만장일치로 회장에 선출된 것에는 이 총장의 이력이 한몫 한 것으로 풀이된다.현 시대에 수도권 소재 대학들이 처한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및 지자체와의 소통과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이에 행정학 박사로서 2020년에는 제55대 한국행정학회 회장 등을 역임해 정부와 지방정부, 지자체 관계자들과 긴밀한 협력 체계가 구축돼 있는 이 총장이 적임자로 낙점된 것이다.이 총장은 이러한 경인지역 총장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임기 동안 대학과 정부 및 지자체 간의 가교역할에 주안점을 두고, 수도권 대학들의 현안 문제를 해소해 나갈 계획이다.이 총장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각 대학들의 새로운 교육환경 변화와 적응방법', '수십년째 동결된 등록금 문제', '수도권 정비법에 따른 각종 규제로 인한 역차별 문제' 등을 꼽았다.먼저 이 총장은 "학령인구 감소 문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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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동탑산업훈장' 수훈받은 김미경 (주)이오에스 대표 지면기사
시장 한파에도 年900억 매출… "미래 먹거리 준비한 결과" 2004년 사업 확장… 당시 매출 10배 차이 남동산단 하이텍 공장 인수주 소비재 아니던 의료·항공우주 장비로 영역 확대… 앞서간 행보경험에서 우러나온 과감한 판단력… 직원 발전에도 아낌없이 투자국내에 '1인 기업'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1997년 봄,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과감하게 PCB(인쇄회로기판) 설계 기업을 창업했다. 창업자금으로 모은 돈은 1천만원 남짓. 그마저도 사무실 임대료를 빼면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들이 시장을 잡고 있던 PCB 설계 분야에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도전장을 낸 이 1인 기업은, 27년이 지난 지금 350명의 임직원을 둔 인천의 대표적인 강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한파에도 9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주)이오에스 이야기다.■ '낮에는 영업, 밤에는 설계' 매진한 사업 초창기이오에스는 지난달 4일 열린 '제58회 납세자의 날' 시상식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산업훈장 가운데 금탑과 은탑에 이어 3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동탑산업훈장을 중소기업이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오에스 김미경 대표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주로 받는 영예로운 훈장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이오에스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수훈하게 돼 더욱 뜻깊다"고 했다.김 대표는 1997년 이오에스아이라는 1인 기업을 창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컴퓨터지원설계(CAD) 관련 기업에서 일하다가 PCB 설계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하면서 전자제품 시장이 급성장하던 시절, PCB 산업 역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낮에는 PCB 설계도 납품을 위한 영업을, 밤에는 설계 작업에 매달리는 일상의 연속이었다"며 "집에서 잠을 자는 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일했다"고 했다.■ 설계부터 제조까지 원스톱으로… '이오에스'의 탄생성실성에 꼼꼼함이 더해지면서 김 대표가 제작한 PCB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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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안산 그리너스FC' 길잡이 돼줄 안익수 대표이사 지면기사
저명한 프로감독 고향으로 컴백… "그리너스 성장 지켜봐달라" 작년 '입단비리 논란'·시즌 12위 기록 '성적 부진' 등 혼란한 시기신뢰 회복 '첫걸음'… 조기 축구회·교육지원청 등 교류·협력 제안"경험상 경쟁력 갖추기까지 3년 걸려… 실망시키지 않는데 초점"20세 이하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고 성남 일화 천마와 FC서울 등 많은 프로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안익수(58)는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축구계에서 나름의 족적을 남긴 그가 고향인 안산으로 돌아왔다. 이제 안익수는 선수들을 지휘하는 것을 넘어 지난달부터 안산시를 대표하는 프로축구 팀인 안산 그리너스FC를 이끌어가는 제5대 대표이사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안산 그리너스FC 구단 사무실에서 만난 안익수 대표이사는 상대 팀에 대한 전력 분석과 승리를 위한 전술을 짜는 대신 안산시의 많은 기관을 방문하고 지역 사회 곳곳을 찾아다니며 팀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프로축구팀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팬이라고 생각한다. 팬인 안산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저희 팀에 대해 관심을 잘 가져달라는 부탁과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기관들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안익수 대표이사가 안산 그리너스FC의 대표이사직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는 "다시 기본부터 세워야 하는 팀을 맡은 건 처음이었다"며 "'고향에 와서 제가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방법을 팀에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안익수는 많은 고민 끝에 대표이사직을 수락했고 어려움에 처한 안산 그리너스FC를 K리그 시민 구단의 모범으로 만드는 막중한 과제를 안게 됐다.안산 그리너스FC는 2017년 처음으로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며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디뎠고 안산의 유일한 프로축구팀으로서 시민들에게 그 존재감을 알려왔다.그러나 지난 2023년은 안산 그리너스FC에게 혼돈이었다. 안산 그리너스FC의 전 대표이사는 선수 입단을 대가로 선수 부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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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지역 분위기 반전시킨 강화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 유상용 대표 지면기사
"알알이 포도송이 처럼… 사람과 사람 모여 생동하는 동네" 폐교위기 양도초 '계절학교 프로그램' 덕에 긴밀한 네트워크 형성함께 개최한 '씨 마켓' 교류의 장 변모… '좋은길벗' 등 모임도 파생"첫 시작은 자녀였지만 이젠 '노후' 고민… 임기 2년 '마을' 더 집중"인천 강화군 양도면은 진강산을 중심에 두고 2천205가구에 인구 4천205명(2월 기준)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서울·인천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시골 마을에 10여년 전부터 도시에서 학령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흔한 병원, 마트도 없고 문화·생활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곳에 찾아온 이유는 '자녀 교육'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다.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는 양도초와 조산초·동광중·산마을고 등 진강산 자락에 있는 학교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주민단체다. 2009년 양도면에 터를 잡은 유상용(60)씨는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의 초창기 멤버이자 2020년부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달 29일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가 운영하는 카페 초승달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는 양도초등학교가 폐교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학생 수가 23명까지 줄어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인 학교에 새 교장이 부임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당시 이석인 교장은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하며 인성을 기르고, 형제들처럼 지낼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며 계절학교를 열었다.학생들이 강화도 자연환경을 몸소 겪고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도시 학생들이 1주일간 강화도에 머무르며 양도초 학생들과 함께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계절별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큰 호응을 얻었다. 양도초 계절학교를 경험한 학부모·학생이 자연스레 강화도에 관심을 가졌다. 폐교 위기에 처했던 양도초는 그렇게 부활해 현재는 매년 60명 내외의 학생 수를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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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10년 넘게 '유통 최일선' 몸담은 유철현 BGF리테일 홍보팀 수석매니저 지면기사
"소시민 삶 녹아있는 편의점… 세상 이롭게 할 공간으로 꾸릴것" 입사 2년차 발령 받아… PB상품 특성부터 회사 경영 전략까지 공부친구같은 매력·업계 이야기 독자에게 전하고파 '어쩌다 편의점' 출간이용객 모두에게 헌정… 희로애락 공간 늘 사명감·책임감 갖고 임해홍보팀. 기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서다. 회사의 주요 소식을 보도자료로 배포하거나 회사에서 이슈가 발생했을 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기획력은 물론 판단력, 순발력, 문장력, 설득력 등 세상의 '력(力)'이란 력은 다 겸비해야 하면서도 홍보맨에겐 '빛 좋은 개살구'라는 웃지 못할 수식어가 따라붙기도 한다.유철현 BGF리테일 홍보팀 수석매니저는 그런 홍보팀에 10년 넘게 몸담고 있다. 산업을 막론하고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통은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라 시시각각 그 흐름이 달라진다. 편의점은 여러 유통 채널 중에서도 이런 변화에 가장 민감한 곳이다. 1인 가구 수요를 잡기 위한 소포장 제품이 부상하는가 싶더니,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거거익선' 제품이 금세 두드러지기도 한다. 유 수석은 이렇듯 가장 변화의 속도가 빠른 편의점 업계, 그 중에서도 제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홍보팀에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유통의 최일선에 매일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의점 홍보맨시작점은 실제로 현장의 최일선이었다. 지난 2010년 7월 BGF리테일에 공채로 입사한 그는 직영점 편의점주로 일선에서 현장을 뛰었다. 이후엔 '프랜차이즈의 꽃'으로 불리는 SC(영업 담당)로 배치돼 가맹점과 가맹본부의 가교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 돌연 홍보팀으로 발령받았다. 입사 2년 만이었다. 유 수석은 "사람들은 관성이 있어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옮겨다니기 싫어한다. 저 또한 마찬가지여서 처음엔 홍보팀 이동을 거절했다. 어렵다는 생각도 컸다. 작게는 PB(자체제작) 상품의 특성부터 크게는 회사의 경영 전략까지 공부해야 한다. 압축된 MBA 과정을 밟는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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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문학시어터서 국내 첫 단독공연… '호주 대표 디바' 임다미 지면기사
세계 감동 시키고 돌아온 '인천 소녀'… "소극장서 나만의 노래" 피아노 한 대 두고 연주·노래·토크쇼 진행… 하루만에 티켓 매진유럽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서도 2위… 첫 싱글 호주차트 1위 데뷔"어린 시절 기억 새록새록… 5월쯤 재방문 공연기회 더 많아지길"지난 16일 인천 미추홀구 문학시어터에선 호주와 유럽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한국계 싱어송라이터 임다미(36)의 국내 첫 단독 공연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했냐고?전혀 그렇지 않았다. 임다미 콘서트는 지난 1월 중순 입장권을 판매한 지 하루만에 전석 매진됐다. 그의 공연을 보러 폴란드에서 한국까지 날아온 관객도 있었다. 유튜브로 생중계한 이날 공연은 해외 팬들이 더 많이 시청하며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오히려 한국에서 공연 소식이 조용히 지나간 게 신기할 정도였다.공연 직전 리허설을 마친 임다미를 만났다. 그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만 소통했던 한국 팬들을 소극장 공연에서 가까이 만나 설레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임다미는 9살 때까지 인천 부평 캠프마켓 인근 동네에서 살다가 호주 브리즈번으로 이민을 떠났다."호주에서 활동하면서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한국 분들이 SNS 댓글 등으로 응원해줬어요. '한국에는 언제 오세요'라고 묻는 분도 많았고요. 그분들 얼굴을 소극장에서 가까이 보며 공연해서 굉장히 좋아요. 티켓이 하루만에 매진돼 놀라기도 했고요."대표곡 'Super Love'와 'Alive'를 열창하며 무대의 막을 올렸다. 임다미의 첫 싱글 'Alive'는 호주 주간 차트 1위로 데뷔했으며, 뒤이은 'Dami Im' 또한 호주 차트를 휩쓸었다. 'Alive'는 2013년 '더 엑스 팩터 호주' 다섯 번째 시즌 우승자로서 주어진 곡이다.호주의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임다미는 2010년 한국에서 잠시 가스펠 가수로 활동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브리즈번으로 돌아와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다시 가수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전 세계에서 방영하는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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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총선 불출마, 119 복귀' 선언한 오영환 의원 지면기사
"소방관 처우개선 자긍심… 의원 내려놓고 정치불신 불 끌것" 우레탄폼 등 가연성 심재 사용금지한 '건축법 개정' 입법활동 큰 의미개정법 소급안돼 평택 냉동창고 대형화재때 소방관 3명 순직 '무력감'뒤에서 목소리만 내는게 부끄러워 돌아가… 의정부시민으로 남을것"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출동하는 119 구조대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무이한 목표다."권력의 맛을 보면 내려놓기가 어렵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안타까워해도 그 자리를 대신하긴 어렵다. '세상의 이치'를 기준으로 보면 오영환 국회의원이 겨우 초선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진심을 믿기 어렵다. 또 그 잣대로 보면 다시 시험쳐서 구조대원으로 돌아가겠다는 진의를 알기 어렵다.그래서일까. 오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한 지난해 4월10일 이후 지속적으로 '왜'를 질문받고 있다.■ "내려놓음으로써 정치 신뢰 회복에 밀알이 될 것"더불어민주당은 오영환 의원에게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남은 것 같다. 전략공천으로 정치 기회를 부여한 감사한 정당이면서도 민주당 초선의원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정치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오 의원은 '정치에 염증을 느꼈냐'는 질문에 "염증은 안 맞는 표현"이라면서도 "갈등과 혐오의 정치현실을 바꾸지 못한 데 대한 반성과 성찰, 제 역량의 부족을 느꼈을 뿐"이라고 답했다.그는 4년 전 한 언론사와 한 '영입인재' 인터뷰에서 "정책을 보완할 방법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권력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것에 몰두하는 정치"를 '정치를 위한 정치'라고 비판하고 개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4년 뒤 그는 "지금의 정치는 극단적 대결, 승자독식, 모욕과 비난 일변도 공격이 최우선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내가 몸담은 정당 진영의 목소리만을 앞세워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는 오늘날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 근본원인"이라고 질타했다. 또 "대화 설득 협의 정신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힘"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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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전세사기' 판결에서 '입법론' 꺼낸 오기두 前 인천지법 부장판사 지면기사
30년 법생(法生) 담은 '마지막 주문'… "자신의 '집'에서 평온하길" 지난달 '미추홀구 건축왕' 남헌기에 '법정최고형' 징역 15년 선고고심끝 118쪽 달하는 판결문 작성… 이례적으로 '형량 개정' 역설재판 마치고 한 청년의 인사 감동… "존중받을 권리 모두에 있어" 장장 308일간의 재판이었다. 정년퇴임을 앞둔 판사는 출·퇴근하는 시간도 아깝다며 사무실에서 쪽잠을 잤다. 지난해 여름 법정 휴정기에는 휴가도 반납했다. 오기두(62)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마지막 재판에 그의 30년 법관 인생을 담았다.지난달 7일 열린 재판에서 그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를 벌인 속칭 건축왕 남헌기(62)에게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일당 9명에게는 각각 징역 4~13년을 선고했다.오 전 판사는 "해군 법무관 시절까지 합치면 약 35년을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았다"며 "판사 재임기간엔 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국민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지난해 4월5일 건축왕 관련 첫 재판 날, 오 전 판사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피고인의 유·무죄를 속단하지 않는 판사의 의무를 지키리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법관의 양심에 따라 피해자들의 주장뿐만 아니라 남씨 측 변호인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였다.오 전 판사는 "남씨 측 변호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지는 않았다. 언뜻 봐서는 사기죄 성립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그런데 심리를 하면 할수록 대법원에서 요구하는 사기죄 성립 요건에 적합하다는 것이 보였다"고 했다.남씨 일당은 2022년 1월부터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세입자 191명에게서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법정에 섰다. 피해자들이 파악한 피해 가구는 총 2천753가구, 보증금 금액으로는 대략 2천억원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도 많다는 것이다.오 판사는 "2천700가구에 달하는 집을 어떻게 개인이 운영했는지, 왜 등기부등본상에는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