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레전드·(3)女양궁대표코치 오교문]뉴밀레니엄시대 설레는 국민 가슴에 '한방 명중'

    [The 레전드·(3)女양궁대표코치 오교문]뉴밀레니엄시대 설레는 국민 가슴에 '한방 명중' 지면기사

    연무초 '첫시위' 경인일보와 인연시드니올림픽 12년만에 단체전 金수원시청 초대감독·호주팀 맡기도"자신과 싸움 이겨야만 좋은 성적"한국 선수단이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메달을 많이 따낸 종목은 양궁이다. 양궁은 그동안 올림픽 종목에서 수많은 금메달을 수확하며 효자종목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한국의 양궁이 세계를 주름 잡자 국제양궁연맹은 올림픽 세부종목 중 거리별 메달에서 남녀 개인·단체전으로 메달 수를 4개로 축소하는 등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럼에도 한국 양궁은 남녀 개인전은 물론 단체전 최강자로 우뚝 서며 올림픽 레전드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이렇듯 양궁은 올림픽을 통해 그동안 수많은 스타를 배출해냈다. 이런 레전드 중에서 수원 출신의 양궁 선수가 있다. 그는 현재 양궁 여자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는 오교문이다.수원 연무초 5년 때 활을 잡은 오 코치는 연무중과 효원고, 강남대를 졸업한 뒤 지난 1994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오 코치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개인전 동메달 및 단체전 은메달, 1998년 아시안게임 개인전 3위·단체전 금메달 등의 성적을 내며 국가대표 간판스타로 활약해왔다. 또 1994년 제7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맹활약하며 유망주로 떠오르면서 경인일보가 제정한 제6회 전국체전 MVP 대상을 받기도 했다.특히 오 코치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12년 만에 양궁 남자 단체전 우승을 이끌며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상했다. 당시 수원의 자랑이자 아들이었던 오 코치는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빛 과녁을 잇따라 맞혀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오 코치는 "올림픽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시드니 올림픽이었다. 당시 한국 남자는 12년 만에 금메달을 노렸는데 화살 한발 한발에 집중해 쐈던 것 같다"며 "올림픽 금메달은 누구에게나 큰 영광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오 코치는 한국 양궁이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양궁은 현재도 마찬가

  • [The 레전드·(2)이강철 kt 감독]4년연속 15승 전무후무 '강철 잠수함'

    [The 레전드·(2)이강철 kt 감독]4년연속 15승 전무후무 '강철 잠수함' 지면기사

    10년 연속 10승·100탈삼진 기록언더핸드 투구폼 현재까지 '교본'1996년 현대와 KS막판 '인생경기'2년차 감독 지난시즌 나름 성과젊은 선수 성장·조화 기대감 커컨디션 조절에 중점… 5강 목표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언더핸드스로(팔을 허리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듯이 던지는 투구법) 투수라고 하면 누가 떠오를까. 전 메이저리거 김병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의 왕조를 이끌었던 이강철 수원 kt wiz 감독을 꼽을 수 있다.이 감독은 KBO리그에서 전무후무한 4년 연속 15승 이상, 10년 연속 10승, 10년 연속 1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언더핸드스로 투수였다. 당시 선동열, 조계현, 김정수 등 최고의 해태 투수진 가운데 빛나는 성과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다. 그의 투구폼은 현재까지 언더핸드스로 투수의 교본으로 통한다. 사실 언더핸드스로 투수는 왼손 타자에게 투구 동작이 읽히기 쉬워 약한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감독은 타고난 밸런스와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그의 주무기였던 슬라이더와 정확한 제구력은 가히 놀랄만했다.kt 사령탑을 맡은 지 1년이 지났다. 이 감독에게 대뜸 당시 선수 시절 기억나는 경기에 대해 물었다. 그는 "모든 경기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경기였지만 특히 기억나는 경기는 1996년도 한국시리즈 MVP를 탈 수 있었던 현대와의 마지막 경기, 그때인 것 같다"며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이기도 했지만 MVP로 선정돼 많은 언론에 노출됐다. 그 덕분에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당시 한국시리즈 3·6차전에 선발 투수로 나와 16이닝 동안 삼진 13개를 잡아내고 방어율 0.56을 기록할 정도로 현대의 강타선을 잠재웠다.그는 2005년 은퇴 후 2군 투수코치와 수석코치로 지도자 경험을 쌓았고 2017년 8월에는 한국야구대표팀의 투수코치로 활약했다. 지난해에는 kt 감독으로 부임했다.이 감독은 "투수 코치 때는 투수에 대해 고민했다면

  • [The 레전드·(1)노장 축구인 김호곤]바닥까지 소통 "명문구단 일군다"

    [The 레전드·(1)노장 축구인 김호곤]바닥까지 소통 "명문구단 일군다" 지면기사

    수원FC 단장 1년차… 8위 그쳐감독 양해받고 '선수단 스킨십'실업팀 입단후 '연세대 유니폼' "하루도 그냥 보낸 적이 없어"올림픽 감독 역임·AFC상도행정가 변신후 다방면서 활약명성과 지략, 인격, 거기에 자신만의 철학을 지닌 인물만이 레전드라는 칭호가 따라붙는다. 우리나라 스포츠에도 레전드가 많다. 축구와 야구를 비롯해 농구, 배구, 양궁, 마라톤, 체조, 수영, 복싱 등 다양한 종목에서 대한민국 스포츠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들이야말로 'The 레전드'다. 경인일보는 레전드를 찾아 그들만의 스토리를 담아 게재한다. → 편집자 주지난 50여년 간 축구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 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대표팀 주장도 맡았고 은퇴 후 프로축구 지도자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축구계의 산증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근데 아직도 그는 목말라 있다. 축구 행정가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The 레전드는 바로 김호곤(69) 프로축구 K리그2 수원FC 단장이다.26일 수원FC 단장실에서 만난 김 단장은 지난해 2월 수원FC 단장으로 취임했다. 그로부터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김 단장은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었는데 모처럼 기자들이 찾아와 기쁘다"며 반갑게 맞아준 뒤 "단장을 맡은 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 나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 팀 리빌딩은 올해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그는 프로축구 울산 현대 코치·감독을 지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대표팀 감독,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행정가로 변신한 뒤 대한축구협회에서도 전무이사·부회장·기술위원장 등 다방면에서 한국 축구의 기반을 다졌다.김 단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이후 2005년부터 축구협회 전무이사를 맡았다. 그때는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고 선수, 지도자들이 모두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며 "한국 축구가 빛을 발한 것도 바로 이 시기부터가 아니었나 싶다"고 강조했다.수원FC 단장을 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