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Op 30'(이하 '차라투스트라')의 서주는 한 번만 들어도 깊이 각인되는 음악이다. '아하! 이 음악'의 첫 편에서 다뤘던 대편성 칸타타인 '카르미나 부라나'의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처럼 말이다. '차라투스트라'도 역시 많은 영화와 이벤트들의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어둠을 상징하는 오르간의 저음과 더블베이스의 트레몰로로 시작해 일출(日出)을 의미하는 트럼펫 음에 이어지는 찬란한 현과 관의 포효는 매우 인상적이다. 자연의 위대함을 탁월하게 구현했다.
'차라투스트라'는 1896년 2월부터 약 6개월간에 걸쳐 완성됐으며, 그해 11월 작곡자의 지휘로 초연됐다.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철학적 산문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감명을 받았고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철학의 음악화'의 첫 시도였다. 때문에 찬사와 함께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슈트라우스는 스코어(총보)의 제목 아래에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자유로이 따른'이라고 쓰고는 "나는 인류가 그 기원에서부터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해가는 모습을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서주가 지나고 나면 저음의 음산하고 신비한 기운은 사라지고, 이내 현의 따스한 음악이 펼쳐진다.
서주 후 펼쳐지는 8개의 이야기는 '배후 세계를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 '즐거움과 열정에 대하여', '무덤의 노래', '과학과 배움에 대하여', '회복되고 있는 사람', '춤곡', '밤의 노래'로 구성됐다. 표제에서 알 수 있듯이 서주에서 자연을 노래한 후 이어서 인간을 노래하는 형태다. 자연을 상징하는 C장조에 이어 인간을 의미하는 B단조와 B장조가 교대로 등장해 격정을 선사하며 그 과정에서 사람은 '위버멘쉬(초인)'로 변화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클래식과 영상의 이상적인 결합을 통해 대담하면서도 완벽한 성과를 이끌어낸 이 영화는 클래식 음악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인 영화로도 꼽힌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 나오는 '차라투스트라' 서주는 영화팬과 음악팬 모두에게 강력한 충격과 함께 신선한 감동을 준다.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50여 종의 유인원 중 하나가 동물의 뼈를 몽둥이(무기)로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순간이 슬로모션으로 처리될 때 '차라투스트라'의 도입이 흘러나온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음반.
영화와 같은 제목의 원작 소설(아서 C 클라크 작)은 치밀한 과학적 지식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해부했다.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상황은 일종의 윤회사상으로 풀어냈다. 이에 비춰 볼 때 큐브릭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설파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테마를 영화와 연결하려 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팀 버튼이 연출한 영화 '찰리의 초콜릿 공장'(2005년)에서도 '차라투스트라'가 쓰였다. 눈앞에 있는 초콜릿을 텔레비전 안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텔레포트라는 기계가 초콜릿을 집어 들고 일을 벌이려는 순간에 '차라투스트라' 서주가 등장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류의 시작을, '찰리의 초콜릿 공장'에선 새로운 과학 기술을 상징하는 일맥상통하는 대목에서 음악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슈트라우스의 탄생 150주년이었던 2014년 우리나라는 조용했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많은 기념 연주회들이 열렸다. 음반도 많이 출시됐는데, 그래도 여전히 다수의 슈트라우스 애호가들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그려내는 슈트라우스를 첫 손으로 꼽고 있다.
카라얀은 '차라투스트라'를 4번 녹음했다. 1950년대 첫 녹음만 빈 필하모닉과 했으며, 나머지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했다. 그중 3번째 녹음인 1983년 녹음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베를린 필의 생동감 넘치는 음향을 기반으로 노 지휘자는 슈트라우스의 복잡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노련하면서도 명쾌하게 표출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슈트라우스는 클래식 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음악이다. 단 몇 차례의 감상으론 작곡가의 면모를 알기 어렵다. 30여분 정도 걸리는 '차라투스트라' 전곡을 수차례 집중해서 감상할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