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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테이브 홀스트.

20세기를 대표하는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는 제자들에게 평소 입버릇처럼 "하늘의 별을 보라"고 말했다. 카잘스는 별의 신비로운 모습과 반짝임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을 제자들에게 전해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천체인 별을 표현한 건 아니지만, 아름다운 행성을 노래한 작품이 있다. 영국 작곡가 거스테이브 홀스트(1874~1934)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 Op 32'이 그것이다.

홀스트는 1913년 런던에서 출판된 '천궁도란 무엇인가?'를 읽고 점성술에 매료됐다. 각 행성에 담긴 점성술의 의미에서 착안해 1914년 작곡을 시작한 홀스트는 2년 만에 '행성'을 완성했다.
'화성-전쟁의 전령' 발표 후 1차세계대전 발발
'글래디에이터 속 한스짐머 음악, 표절' 소송도
제4곡 '목성-쾌락의 전령' 우리 귀에 가장 익숙
작곡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명왕성과 우리가 사는 지구를 제외한 일곱 개의 행성을 담았다. 화성(전쟁의 전령), 금성(평화의 전령), 수성(날개 단 전령), 목성(쾌락의 전령), 토성(노년의 전령), 천왕성(마법사), 해왕성(신비주의자) 순으로 배치됐다. 곡의 순서는 천문학적 배열이 아닌 점성술에 의한 배열이며, 각 행성엔 점성술이 부여하는 의미를 녹여냈다.

놀라운 건 홀스트가 첫 곡인 '화성-전쟁의 전령'을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점이다. 1918년 세계대전 종전 직전에 '행성' 전곡이 초연되자 사람들은 점성술에 빠진 홀스트가 전쟁을 예견한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홀스트는 작곡 당시 세계대전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2006년 영국의 홀스트재단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음악을 담당한 한스 짐머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짐머가 이 영화를 위해 쓴 '전투'라는 곡이 '화성-전쟁의 전령'을 표절했다는 이유에서다.

짐머는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두 곡을 들어보면 주제(전쟁)와 분위기가 흡사하다. 짐머가 홀스트의 작품을 참고했을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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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뒤트아와 몬트리올 교향악단의 홀스트 '행성' 음반.

일곱 곡 중 가장 사랑받는 곡은 제4곡 '목성-쾌락의 전령'이다. 장엄하면서 유쾌한 이 곡의 도입부는 1980년대 MBC 뉴스데스크의 시그널 음악을 비롯해 우주나 천문 관련 방송의 배경 음악으로 자주 사용돼 우리 귀에도 익숙하다.

'행성'은 초연 후 30년 동안 주로 영국에서만 연주됐다. 그러나, 1957년 구 소련에서 첫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고, 이어진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우주 시대로 돌입하면서 '행성'의 존재 또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대편성 관현악단이 자아내는 이색적인 사운드와 독특한 리듬, 신비로운 분위기가 어우러지는 '행성'은 환상 가득한 우주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영국 사람들의 편애가 유별난 '행성'의 레코딩 역시 영국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것이 많다. 그 중 이 작품의 초연자이기도 한 에이드리언 볼트는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 볼트는 모두 다섯 종의 '행성' 음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섯 종 중에서 1978년 런던 필하모닉과 함께 한 마지막 녹음(EMI)이 가장 유명하다. GROC(Great Recordings Of the Century) 시리즈로도 발매됐다. 많은 애호가들이 최고로 꼽는 연주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빈 필하모닉과 남긴 1961년 레코딩(DECCA)이다. 카라얀은 1981년 베를린 필하모닉과 디지털 레코딩(DG)도 남겼지만, 완성도 면에서 전자가 앞선다. 특히 카라얀의 1961년 녹음은 지휘자이자 작곡가이기도 한 홀스트의 딸 이모즌 홀스트도 최고의 연주로 꼽은 바 있다.

이 밖에 디지털 녹음 중에서 샤를 뒤투아와 몬트리올 교향악단(DECCA), 존 엘리엇 가디너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DG) 등을 꼽아본다. 

/인천본사 문화체육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