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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클래식을 소재로 한 '음악 영화'들은 영화를 접한 많은 이들을 클래식 입문으로까지 이끈다. '아마데우스'(1984년) 이후 '세상의 모든 아침', '가면 속의 아리아', '샤인', '파리넬리', '불멸의 연인', '레드 바이올린', '투게더', '왕의 춤', '피아니스트' 등은 개봉한 지 20~30여년 정도 지난 '음악 영화'로, 현재도 꾸준히 언급되는 수작들이다.

'음악 영화' 분야 최고 연출가로 벨기에 출신의 제라르 코르비오를 꼽을 수 있다. 상기한 영화들 중 '가면 속의 아리아'(1988), '파리넬리'(1994), '왕의 춤'(2000)이 그의 작품이다.

이 중 '가면 속의 아리아'(프랑스어 원제는 '음악 선생')는 코르비오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세계적인 바리톤 호세 반 담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호세 반 담은 영화에서 은퇴한 성악가이자, 음악 선생인 조아킴 역을 맡았다.

유명 성악가인 조아킴은 건강이 나빠지면서 마지막 독창회를 치르고선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소피와 장을 제자로 맞아 노래를 가르친다. 그러던 어느 날 조아킴은 젊은 시절 라이벌이었던 스코티 공작이 주최하는 성악 콩쿠르 초청장을 전달 받는다. 20여년 전 조아킴과 노래 대결에서 졌던 스코티 공작 역시 제자들을 길렀고, 제자들 간의 대결에서 승리해 조아킴에게 복수하려 한 것이다.

대회장에서 조아킴의 제자 장과 스코티 공작의 제자 아르카스의 목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을 안 청중은 가면을 쓰고 같은 노래를 나눠서 부를 것을 제안한다. 그 결과 고음 부분을 완벽하게 부른 장이 승리한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조아킴이 죽었다는 전보가 대회장으로 도착한다. 마차를 탄 장과 소피는 집에 도착하지만, 조아킴의 주검을 실은 배는 강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이때 구스타프 말러가 작곡한 '뤼케르트의 시에 의한 5개의 노래' 중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가 흐른다.

말러는 평생 '죽음'에 천착했다. 어린 시절 동생들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에게 '죽음'은 일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말러의 작품들 전체를 관통하는 염세적인 이미지는 이에 대한 트라우마와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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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레나 코제나(MS)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가 연주하는 말러 '뤼케르트 시에 의한 5개의 노래' 영상물.

독일의 시인이자 동양어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뤼케르트(1788~1866)의 시에 곡을 붙인 '뤼케르트의 시에 의한 5개의 노래'는 '아하! 이 음악' 시리즈의 5편에서 다룬 말러의 교향곡 5번과 비슷한 시기인 20세기 벽두에 작곡됐다.

1901년 심각한 장출혈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던 말러는 요양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데 매달렸다. 웬만큼 건강해지자 새로운 작품에 착수한 말러는 이때 재색을 겸비한, 19세 연하의 알마 쉰들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말러는 이듬해 알마와 결혼에 성공하며, 이어서 완성한 작품이 교향곡 5번이다.

이 시기에 '뤼케르트 시에 의한 5개의 노래'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이 작품도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였다)도 작곡됐다. 3~4년에 걸쳐 거의 동시에 작곡된 두 작품은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말러 자신의 지휘로 초연됐다.

'뤼케르트 시에 의한 5개의 노래'는 '나는 은은한 향기를 맡았네', '아름다움을 사랑하신다면', '나의 노래를 엿듣지 마세요!', '나는 세상에서 버려지고', '한밤중에' 등으로 구성됐다. 전체적인 내용이 이어지는 '연가곡'이라기 보다는 다섯 노래의 묶음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때문에, 다섯 곡의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 공연장에선 세 곡이나 두 곡만을 부르기도 한다.

시의 제목들은 전체적으로 알마와 만남, 결혼 등으로 인해 작용했을 달콤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나는 세상에서 버려지고'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아마도 말러는 어린 시절부터 자리 잡은 염세적인 사상으로 인해, 마냥 행복한 형태로 작품을 구성하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더 넓게 본다면, 이 행복한 시기에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작곡한 것도 말러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용한 걸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초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린 딸이 죽었다. 자책한 말러는 딸이 죽은 이후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더 이상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면 속의 아리아'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나는 세상에서 버려지고'는 말러의 고독과 은둔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곡이다. 곡의 마지막 부분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세상의 혼잡함으로부터 죽었고 / 고요한 나라에 누워 있네. / 나는 나의 천국에서 홀로 사노니 / 내 사랑 안에서, 내 노래 안에서

메조 소프라노에서 콘트랄토와 바리톤 성역의 많은 성악가들이 말러의 걸작 가곡을 레코딩하고 공연 실황 영상을 남겼다. 어떤 연주를 듣더라도 특유의 시상과 분위기를 드러내 주었다는 생각이다. 길지 않은 곡이니, 특정 연주보다는 많은 연주들을 비교해보면서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인천본사 문체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