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클래식 음악 학도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6부작)가 방영됐다. 종영 후 드라마 속 음악들로 구성된 앨범이 출시되기도 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제목이다. 사강은 1959년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발표했다. 사강은 이 소설에서 파리를 배경으로 중년 여인 폴의 사랑과 관련한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해 냈다.
폴 보다 14세 어린 시몽은 둘 만의 시간을 가질 기회를 모색하며 폴에게 편지를 보낸다. "오늘 6시에 플레옐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대목이다.
1961년엔 이 소설을 아나톨 리트박 감독이 영화화했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미국에선 '굿바이 어게인', 우리나라에서는 '이수(離愁)'로 각각 개봉했다.
소설에선 폴과 시몽이 공연장에서 브람스의 협주곡을 듣는다고 표현된다. 영화에서 둘이 감상한 작품은 교향곡 1번과 3번이다.
독일 함부르크 태생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22세였던 1855년 스승인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브람스는 슈만에게 편지를 보냈다. '만프레드 서곡'의 감동과 그로 인해 생겨난 자신의 교향곡 작곡 의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브람스는 곧바로 작곡에 착수했다. 하지만 7년 뒤인 1862년에야 겨우 1악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미 '헝가리 춤곡'과 '피아노 소나타' 등을 발표하며 소위 '잘 나가는 젊은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브람스였지만, 자신의 첫 교향곡의 구상과 설계 모두 극도로 신중했다. 선배 작곡가인 베토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평소 존경하는 베토벤의 아홉 개 교향곡에 비견되는 작품을 쓰겠다고 다짐하던 브람스였지만 이게 오히려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동했다. 브람스는 당시의 부담감을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라고 표현한 바 있다.
1악장 완성 후 12년 동안 중단된 브람스의 교향곡 작곡은 1874년에 재개됐다. 2~4악장을 1년여 만에 완성한 후 1악장도 대폭 손질해 완성한 해가 1876년이었다. 착상에서 완성까지 21년이나 걸렸다.
카를 뵘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1959년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1번' 음반.
이 작품의 1악장은 화산 분화구의 용암처럼 모든 것이 녹아 응축된 폭발 직전의 상태를 보여준다. 주제의 구성은 멜로디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짧은 편린의 연속이다. 평화와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 운명을 거스르는 투쟁 등이 대비되며 전개되는 악상은 에너지가 넘친다.
2악장은 1악장의 긴장을 완화 시켜주는 아름다운 사색의 악장이다. 3악장에선 단조롭고 목가적인 평화 속에 스며드는 희망의 빛을 통해 마지막 악장을 예견케 한다. 마침내 모든 기대와 희망을 모아놓은 마지막 악장. 먹구름을 뚫고 비치는 햇살과 같은 호른의 찬란한 울림이 곡 전반을 휘감고 있던 어두운 기운을 걷어내며, 악장의 중반 이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마지막 악장에 필적하는 희망의 선율이 흘러넘친다.
19세기의 명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이 작품을 "'불멸의 9개'에 이어지는 '베토벤의 제10번 교향곡'"이라고 칭했다.
'어둠에서 빛으로'의 주제, 형식과 스케일의 강조로 인해 혹자는 "지나치게 베토벤을 의식한 나머지 브람스다움이 덜 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중함과 엄숙함, 논리적 전개에 더해진 브람스만의 우수는 작곡가 특유의 인상을 잘 드러낸다. 브람스는 이후 3개의 교향곡을 더 작곡했다. 이 중 '교향곡 3번'의 3악장은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주제음악 역할을 했다. 멜로디가 아름답고 로맨틱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브람스의 네 교향곡은 정사각형의 네 변과 같이 강력한 힘과 완벽함의 합일체를 이룬다. 한 작곡가의 교향곡 전곡이 이처럼 안정되고 집중력 있는 경우는 브람스와 그의 우상인 베토벤을 제외하곤 찾기 힘들다.
비록 네 작품에 불과하지만, '베토벤 이후 가장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 브람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만큼이나 많은 지휘자들이 레코딩을 남겼다. 그만큼 많은 지휘자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카를 뵘이다. 뵘의 브람스 교향곡 1번 녹음은 무려 1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한 1959년 스튜디오반(DG)의 성취도가 가장 높다. 이 작품을 6차례 녹음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음반도 호평을 받는다. 모노럴 녹음도 괜찮다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한 1952년 연주(DG)도 들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