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는 누구인가
서울대 경영학과 학생시위로 제적
신한국당 공천 15대부터 내리 3선
수도권통합요금제·GTX 기획도

“저는 한 평짜리 교도소 독방에서 큰 세상을 꿈꿨습니다.”
지난 3일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가 좌에서 우로, 공장에서 국회로, 노동운동가에서 노동부장관으로 걸어온 길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한다.
■ ‘직선제 개헌 투쟁’ 고문받고 복역…노동계 전설적 지도자
김문수는 한국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경북 영천에서 4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초교 시절 공무원이던 부친이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온 가족이 판잣집 단칸방으로 이사 가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김문수는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영천읍 내에서 호롱불을 밝혀 놓고 공부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의 하나만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초교 졸업 후 대구로 유학, 당시 수재들만 들어갔다던 경북중·고에 입학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는 1970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합격했으나 71년 10·15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로 제적된다. 이때부터 가난을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4H운동, 야학 등 농민운동에 주력하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다시 제적되고 수배된다.
김문수는 78년 도루코노조위원장, 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 지도위원이던 86년 인천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구속, 고문을 받고 2년 6개월간 복역했다. 이처럼 고초를 겪어가면서 그는 서울대에 입학한 지 25년 만에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김문수는 노동 운동권의 전설적인 지도자로 회자된다. 후유증으로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문을 당하면서도 동료들의 이름을 지켜냈다. 80년대 많은 운동권 대학생이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 청빈한 생활 유명…도지사로 수도권통합요금제·GTX 추진
김문수는 90년 이재오 등과 민중당 창당에 참여, 노동위원장으로 선임된 데 이어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중당 전국구 후보 3번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94년 재야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함께 민주자유당에 입당, 96년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한다.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박지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한다.
이어진 10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은 김문수라는 이름 석 자를 국민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시간이었다. 깐깐한 성격, 빈틈없는 논리, 청빈한 생활은 한나라당 내 보기 드문 캐릭터로, 상대당 누구의 공격에서도 자유로웠다. 이 같은 저력으로 제16·17대 총선에서도 ‘탄핵 역풍’까지 뚫고 내리 3선에 성공한다.
김문수는 2006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사임한다. 당 대표 경선 2차례, 매번 최하위권이었지만 그해 6월1일 밤 김문수는 당당히 도정의 주인공이 됐다.
재선 도지사를 역임하며 그는 경기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전력한다. 특히 경기도 최초의 대중교통 환승할인이 적용된 수도권통합요금제 단행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기획 등 경기도의 교통복지를 몇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때 당을 떠나 활동하던 김문수는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장(장관급)과 고용노동부장관을 차례로 역임하며 보수진영 차기 주자로 몸집을 키운 끝에 대권에 도전하게 됐다.
/정의종·김우성기자 je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