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단 하나 뿐인 딸아이가 수술실로 옮겨졌다. 어린 나이에 난소암 판정을 받은 딸이었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엄마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면역력 약해 감기 노심초사
정부지원 받아 근근이 생활
흔한 외식조차 꿈도 못꿔
이웃노인 찾아 청소 봉사
하늘이(16·가명)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였다. 어느 날인가 "배가 아프다"고 자꾸 보채는 것이었다. 처음엔 체한 줄만 알았다. 엄마는 가스활명수를 먹이고, '엄마손, 약손'하며 배를 쓰다듬어줬다. 하지만 복통이 계속됐다. 엄마는 하늘이를 데리고 말그대로 병원이란 병원은 다 돌아다녔다.
인하대병원에 가서야 뒤늦게 원인을 알게 됐다. 바로 난소암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엄마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전부인 내 딸인데 그 때만 생각하면…." 지체장애 4급으로 다리를 저는 엄마 김지선(42·가명)씨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지난 20일 오후 인천시 동구의 한 작은 월세 집에서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김씨를 만났다. 누군가 손봐줄 사람이 없어 집안 형광등이 깜빡깜빡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하늘이의 어릴 적 사진이 벽 곳곳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초·중학교에 다닐 때 모습은 없었다. 김씨는 "하늘이가 투병생활을 하던 시기여서 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었고, 그 시절 힘들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 하늘이는 묵묵히 3년간의 투병생활을 이겨냈다. 지금은 완치판정을 받았다. 하늘이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함께 죽으려고 사놨던 약도 치워버렸다.
김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같이 폐지를 줍는다. 그렇게 해도 한 달에 10만원 남짓한 돈이 떨어질까 말까한다. 지난해 겨울에는 빙판길에 넘어져 없는 살림에 병원 신세까지 져야했다. 하늘이는 매일 병문안을 왔다. 그러면 같이 병원밥을 나눠먹었다. 김씨는 겨울이 싫다고 했다.
오랜 투병생활로 면역력이 약해진 하늘이가 감기라도 걸릴까봐서다. 보일러를 넉넉히 틀다보면 한 달에 가스비만 20만원이 나온다고 했다. 정부지원금으로 생활하는 김씨 모녀에게는 큰 돈이다.
요즘 하늘이는 틈틈이 엄마에게 한글을 가르쳐준다. 딸이 없으면 김씨는 고지서가 와도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한다. 하늘이는 자음과 모음이 적힌 종이를 들고와 "기역, 니은"하며 엄마와 같이 읽는다.
하늘이 아빠는 지난 2010년 집을 나갔다. 모녀는 이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남편', 그리고 '아빠'라는 빈 자리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김씨는 딸과 함께 그 흔한 외식도 한 번 못해봤다. 그는 "외식이라고 해봐야 동인천에 가서 토스트를 먹은 게 전부다"고 했다.
한창 먹고 싶은 게 많을 나이지만 하늘이는 지금까지 반찬 투정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인터넷에서 배운 죽이나 라볶이를 엄마에게 만들어주는 기특한 딸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하늘이는 "청국장과 된장찌개"라고 했다.
김씨는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불편한 몸이지만 주변에 사는 노인들의 집을 찾아가 청소나 빨래 등을 해준다. 김씨는 "하늘이가 받은 만큼 베풀며 사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후원 문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인천본부(032-875-7010), 홈페이지(www.childfund-incheon.or.kr)
/홍현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