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로 첫발 시행착오… 협동조합으로 ‘판’ 바꿔 다시 시작
공연·전시 원하는 소비자들 직접 예술가 끌어들이는 형태
지동서 폐가 꾸며 상설공간 만들자 마을에도 활기 ‘작은 기적’
도예·목공 등 주민·조합원간 공유… “문화예술 생태계 만들고 싶어”


여럿이 함께 걷다 보면 걸음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걷는 모양새며 성격도 제각각이니 보폭의 차이는 당연하고, 서로 합을 맞춰 함께 걸으려면 평소보다 조금 늦게 걷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공동체의 의사결정이란 구성원 개개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를 거쳐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폭을 맞춰 함께 걷는 일처럼 걸어온 거리는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야 함께 걷는 이들은 행복할 수 있다.

수원 지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마을 공동체 ‘이웃문화협동조합(이하 이문협)’을 만났다. 이들의 좌우명은 ‘다함께 잘 놀고 잘 살자’다.

실제로 이문협은 2010년 잘 놀고 싶은 청년들이 ‘문화 프로젝트팀’을 결성해 시작한 조직이다. 서울에선 이미 ‘좀 논다는’ 사람들이 홍대, 대학로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에 모여 재밌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서울을 벗어나면 청년들이 신명나게 놀 수 있는 ‘판’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수원에서도, 특히 지동엔 버려진 집들이 많았다. 한때는 수원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번화가였지만 지금은 노인과 값싼 방을 찾아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청년들은 이곳에 ‘문화사랑방’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순탄치는 않았다. 다같이 놀기위해 ‘공간’을 운영했는데, 주식회사로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회사이다 보니 사장과 직원이라는 계급이 생겼고 각자 자리에서 회사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이대로는 놀자고 시작한 사랑방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청년들은 판을 바꿨다. 주식회사를 버리고 사장과 직원이란 이름도 휴지통에 넣었다. 2012년 협동조합으로 형태를 바꿔 모두가 조합원이 됐다. 다함께 잘 놀고 잘 살기 위해 동등한 위치에서 다시 시작한 것.

최연지(27·여)씨는 이문협 창립시기부터 함께 했다. 사는 곳도 수원이 아니고 학교도 서울에서 다녔다. 대학시절 우연히 ‘인턴’으로 이 곳에 왔다 지금은 사무국에서 조합원이자 스태프로 일하고 있다.

“2013년 4월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이문협이 탄생했어요. 기존 멤버들뿐 아니라 평소 협동조합에 관심있는 청년들이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하나 둘 모여들었죠. 다들 처음부터 ‘우리가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큰 기대를 하고 들어온 건 아니에요. 주식회사로 운영하면서 책임에서 오는 부담감에 대해 다들 많은 생각이 있었고, 서로 책임을 나누자는 생각들이 모이다보니 점점 공동체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어요.”

주식회사를 버리면서 욕심도 버렸다. 그저 잘 놀고 싶었을 뿐이니 활동 가짓수와 연속성에 대한 부담도 버렸다. 청년들 스스로 다함께 놀 수 있는 판을 벌이는 일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이문협은 문화를 생산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가 아니에요. 공연이든, 전시든, 문화를 즐기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모여 만든 ‘문화향유자’들의 공동체죠. 그래서 우리가 즐기고 싶은 문화 예술가를 지동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가장 많이 하고 있어요.”

‘노마드프로젝트’도 그 일환이었다. 행위예술, 음악, 미술 등 모두 다른 분야의 예술가 5명이 두달 동안 지동과 창룡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예술활동을 펼쳤다.

2013년 9월에는 판을 키웠다. 아예 ‘오가닉아트페스티벌(이하 오아페)’이라는 축제를 만들었다. 미술, 음악과 같은 정통 예술분야 뿐 아니라 농부와 요리사, 인문학자, 활동가 등 지역의 다양한 인재들이 ‘아트’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드로잉 퍼포먼스, 알핀로제요들단, 칠보산 도토리 시민농장….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명단만 살펴봐도 제대로 놀고 싶은 청년들의 열정이 눈에 선하다.

“오아페는 예술 플리마켓으로 시작했어요. 문화향유자와 생산자의 접촉점이 되는 공간인거죠. 그렇게 2013년 9월에 크게 한판을 벌이고 나니, 한달에 한번씩 상시 운영해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들이 나왔어요. 하지만 매번 외부공간을 빌려서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아예 공간을 만들자고 결심했습니다.”

이문협 청년들에게 지동에 버려진 집들은 최고의 ‘판’이 되었다. 상설 오아페를 운영하기 위해 수년 전 불이 난 뒤 방치된 폐가를 선택했다. 청년들이 예쁘게 리모델링을 한다는 조건을 걸었고, 집주인은 흔쾌히 무상임대를 허락했다.

이문협 조합원들의 정성어린 페인트칠과 지역 건축사의 재능기부로 흉물로 방치됐던 폐가는 ‘제작공간 다시’라는 간판을 걸고 재탄생했다. 이 곳에서 조합원들과 시민들은 함께 향초도 만들고, 공연도 보고, 쿠키도 굽고 있다.

작은 기적. ‘다시’가 생기면서 지동도 다시 살아났다. 갑자기 동네에 쳐(?)들어와 어슬렁거리던 청년들과 지역노인들이 안면을 트자 지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동 어르신’에게 직접 듣는 ‘지동마실 가는 길’과 ‘지동마을 조사 자료집’이 책으로 출간되고 ‘지동 어르신’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진 ‘옹달샘학교’도 진행됐다.

“동네에 계시던 ‘자수장인’이 직접 전통자수 수업을 10개월 가까이 운영했고, 영동시장에서 커튼 가게를 하는 사장님이 직접 미싱을 가르쳤어요. 마을 르네상스 공동체 활동이죠. 또 조합원들 중에 도예, 목공, 요리 등 재능있는 분들이 직접 강사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해요. 서로 스승과 제자로 번갈아 변신하면서 각자가 지닌 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거죠.”

지금 이문협의 조합원은 80여명이다. 20대 청년들도 있지만, 그들만 다가 아니다. 40대 주부도 있고 직장인들도 수두룩하다.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운동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문화를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조합원들도 그 마음 하나 가지고 알음알음 찾아왔다.

“사무국에서 상주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3명에서 5명뿐이에요. 어차피 이사회와 총회를 통해 조합원들의 종합적인 의견과 합의를 거쳐 우리 활동이 결정되면 조합원들 스스로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세요. 진심을 가지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나누는 거죠. 가장 좋은 건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놀자 판’을 벌였을 때 선배 조합원들이 한 발 뒤로 물러나 물밑 지원과 응원을 해주시는 게 든든한 힘이 되죠.”

올해는 도시텃밭프로그램도 새로 기획하고 있다. 수원시평생학습관과 연계해 상자 텃밭을 일구고 인문학 프로그램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일년에 하나씩 새로운 놀이판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문협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공동체이긴 해요. 무언가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경제공동체도 아니고, 교육과 같이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저 생활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문화를 즐기고 즐겁게 놀고 싶은 소비자들이 모인 ‘생활문화공동체’ 정도가 맞을 듯합니다. 우리가 문화를 창조할 순 없지만 모두가 건강하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어요. 그것 말고 큰 욕심은 없습니다. 모두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글=공지영기자·사진=이웃문화협동조합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