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군포

  • [내가 만난 군포 - 번외편] 군포 새내기·최고의 군잘알이 말하는 군포의 매력은

    [내가 만난 군포 - 번외편] 군포 새내기·최고의 군잘알이 말하는 군포의 매력은

    경인일보 유튜브에 담긴 ‘내가 만난 군포’ 수려한 자연 경관·편리한 교통 등이 큰 강점 하은호 시장 “수도권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 지난해 4월 시작한 ‘내가 만난 군포’ 연재가 9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완벽한 외지인이 생각하는 군포의 매력, 그리고 군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최고의 ‘군잘알’ 하은호 군포시장이 직접 말하는 군포의 매력을 각각 경인일보 유튜브 영상으로 담았다. ‘군포 새내기’ 경인일보 강기정 기자가 바라본 군포의 매력은 Q: ‘내가 만난 군포’를 보면서 ‘어, 군포에 이런 데가 있었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A:

  • 잠시 불 꺼진 군포 대표 카페 ‘조상일 커피’ 다시 돌아옵니다 [내가 만난 군포]

    잠시 불 꺼진 군포 대표 카페 ‘조상일 커피’ 다시 돌아옵니다 [내가 만난 군포]

    ‘72시간 내에 분명 좋은 일이 생길거에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던 어느 날, 조상일커피 카페에 앉아 베이글 포장을 뜯었을 때 붙어있던 포스트잇의 문구가 뜻밖의 선물처럼 다가왔다.

  • 고장난 정국 시계에 우려 쌓이는 ‘군포의 시간’ [내가 만난 군포]

    고장난 정국 시계에 우려 쌓이는 ‘군포의 시간’ [내가 만난 군포]

    군포시, 현 정부 공약 사업 역점적 시행 계엄·탄핵 여파에 ‘잘 될까’ 걱정 커져 철도 지하화 선도사업 발표는 연기 가닥 12월 3일은 평범한 하루였다. 밤 10시 25분 무렵까지는. 갑작스레 선포된 계엄은 다음 날 새벽 1시께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로 멈췄다. 이어 열흘 뒤 헌정 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의결됐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고 정국의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던 사업들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비상계엄·탄핵 폭풍의 여파는 군포시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쳤다. 1기 신도시 재정비, 철도 지하화

  • 세탁방식 걱정없이 맡기면 척척… 비대면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 써보니 [내가 만난 군포]

    세탁방식 걱정없이 맡기면 척척… 비대면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 써보니 [내가 만난 군포]

    기존 세탁소 서비스와 다른 런드리고만의 편리한 비대면 배송과 주문 편의성 그리고 깨끗해진 세탁물은 기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 50년간 군포의 향취 더 맛있게… 농심 안양공장을 가다 [내가 만난 군포]

    50년간 군포의 향취 더 맛있게… 농심 안양공장을 가다 [내가 만난 군포]

    농심은 가히 대한민국 대표 식품 기업 중 한 곳이다. 많은 이들이 농심 제품으로 둘러싸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 신라면을 먹으며 백산수를 마시고 간식으로 새우깡을 먹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다.

  • [내가 만난 군포] 빛 바랜 공업지역, R&D로 다시 빛날 당정동

    [내가 만난 군포] 빛 바랜 공업지역, R&D로 다시 빛날 당정동

    안양, 군포 등 경기도 중부권 산업 발전의 역사는 수도권 교통 인프라 발달과 맞물려있다. 1905년 경부선이 개설되며 사람과 물건이 지역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1970년대 고속도로와 전철이 놓이자 도시가 팽창했다. 경제의 중심지인 수도 서울이 가깝다는 점 역시 성장의 속도를 앞당겼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경공업화에 이어 1970년대 들어 중화학공업화가 본격 추진됐는데, 기업 입장에선 더 큰 부지와 많은 설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기존 서울 공장보다는 저렴하면서도 널찍한 공간이 있어야 했다. 다수의 기업들이 서울과 멀지 않으면서도 교통이 비교적 편리한 안양시 일대로 눈을 돌린 이유다. #부흥 영향은 인근 지역인 군포시에도 미쳤다. 유한양행, 농심, 금성전선(현 LS엠트론) 등 대기업들이 하나 둘 군포시에 공장을 세운 것도 이 무렵이다. 유한양행은 1970년 유한킴벌리를 설립한 후 공장을 군포에 뒀고, 이어 1979년엔 최신 시설을 갖춘 유한양행 공장도 군포에 세웠다. 농심 공장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안양공장(이름은 안양공장이지만 군포시에 있다)은 1976년 준공됐다. 한국케이블공업으로 출발한 금성전선 역시 1983년 인수한 군포공장이 사업 성장 기반이 됐다. 안양에서 뿌리를 내렸던 HL만도 역시 한때 군포시에 사옥과 공장을 뒀었다. 이들 공장이 소재한 당정리 일대에 다른 공장들도 다수 들어섰고, 해당 지역 일대는 대규모 공업단지로 거듭났다. 이를 기반으로 군포시의 공업화도 가속화됐다. 군포시사에 언급된 1975년 8월 말 기준 군포지역 공장 수는 57개로, 당시 군포가 속해있던 시흥군 내에선 가장 많은 수준이었다. 공장이 많아지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했고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났다. 1989년 군포가 시로 승격하고, 거리가 멀지 않은 안양 평촌과 군포 산본이 모두 1기 신도시로 개발된 것도 이런 점에 힘 입었다는 분석이다. 군포시는 이에 대해 '경제 개발이 활발히 전개되고 산업 시설이 입지가 유리한 군포지역으로 이전되면서 지역의 개발 속도가

  • [내가 만난 군포] 모호했던 정체성, 시민의날이 만들어 낸 ‘군포 DNA’

    [내가 만난 군포] 모호했던 정체성, 시민의날이 만들어 낸 ‘군포 DNA’

    전국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엔 시민의 날이 있다. 군포시도 예외는 아니다. 시는 1989년 1월 정식 출범했는데, 바로 그 해 6월 조례를 통해 시민의 날을 10월 7일로 정했다. 2010년에 편찬된 군포시사에선 10월 7일로 시민의 날을 정한 이유를 '시민 상호간의 친목 단합을 도모해 전래의 미풍양속을 숭상하고 애향심을 고취시켜 향토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수의 지자체들은 야외에서 각종 기념 행사를 진행하기 좋다는 이유 등으로 시민의 날을 10월로 정하는데, 군포시 역시 이 같은 고민 끝에 10월 7일을 시민의 날로 정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군포시가 시민의 날을 10월 7일로 정하게 된 특별한 이유를 알고 있는 분은 꼭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든 지자체들이 시민, 도민의 날을 운영하는 것은 각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을 키우기 위한 취지다. 군포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로 승격한 1989년 당시, 주민들로선 '군포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생활권도 안양시 등 인근 지자체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군포시민이라는 의식이나 자긍심을 갖기엔 여러모로 어려움이 컸다. 무언가 함께 할 수 있는 장이 절실했다. 그 시작점은 사실상 시민의 날 제정이었다. 군포시는 시민의 날을 10월 7일로 정한 후, 곧바로 기념 문화 행사를 추진했다. 군포시사는 시민의 날 기념 문화 행사와 관련해 '시 승격 초기인 만큼 애향심 고취와 지역사회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관련 행사를 개최했다. (중략) 군포시는 시라는 기초자치단체 행정단위로 승격한 첫 해인 1989년 10월에 시민의 날 기념 문화 행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예술 행사를 개최하거나 민간 문화 행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생겨난 여러 지역 축제들은 시민의 날을 전후해 곳곳에서 벌어졌다. 시민의 날을 기념해 시가 주관했던 문화 행사를 확대 계승해, 군포문화원이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진행해 온 옷내골 문화제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문화제의 일환으로 '군포 아가씨'를 선

  • [내가 만난 군포] 호숫길을 걷는 행복…반월호수와 갈치호수

    [내가 만난 군포] 호숫길을 걷는 행복…반월호수와 갈치호수

    영동고속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군포 부근에 너른 호수가 보인다. 탁 트인 호수의 전경은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하기엔 충분하다. 군포시로 출근하고 나서야 그 호수의 이름이 반월호수라는 것을 알게 됐다. 빼곡한 아파트 숲에서 10여분가량만 차로 이동하면 어느덧 도시의 소음이 멈추고 풍경이 달라진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가다 그대로 쭉 가면 반월호수, 오른쪽으로 가면 갈치호수를 만날 수 있다. 이는 왕송호수, 백운호수를 품고 있는 바로 옆 의왕시와도 비슷한 점이다. 두 호수는 친수도시로서의 군포시 정체성을 만드는 중심이다. 수리산과 더불어 이 작은 도시를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월호수 반월호수는 안산시와 경계에 위치해있다. 대부분의 호수·저수지가 그렇듯 반월호수도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57년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빈곤에 시달리던 한국을 위해 유엔은 '유엔한국재건단(UNKRA)'을 만들었는데, 농업 기반 시설 확충을 비롯해 한국 경제 재건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힘썼던 UNKRA의 손이 닿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반월호수다. 반월호수 조성은 당시 해당 지역 농사가 번성하는 주 요인이 됐다. 조성됐을 당시 지명은 화성군 반월면이었는데 1989년 군포시가 생겨난 이후 1994년 이곳에 편입됐다. 군포시에 따르면 저수지 북서쪽에 있는 집예골, 셈골, 지방바위골의 물이 이곳으로 유입된다. 농업 용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다수의 도심 속 저수지들은 현재 시민들의 휴식처로도 기능한다. 반월호수도 예외는 아니다. 호수 주변엔 음식점들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인사 발령 이후 군포시로 찾아오는 이들을 처음 맞은 곳도 반월호수 옆 음식점들이었다. 군포시에서도 반월호수 일대를 지역의 명소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호수를 따라 데크 길을 조성하고 곳곳에 공원이며 쉼터를 마련해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추석 연휴 첫 날인 지난 14일 반월호숫길을 천천히 걸었다. 반월호수 둘레길은 총 3.4㎞. 크게 2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가운데 다리를 중심으로 2.

  • [내가 만난 군포] 대야동 주민 분노의 이유… 강호순 사건과 대야파출소

    [내가 만난 군포] 대야동 주민 분노의 이유… 강호순 사건과 대야파출소

    군포시에 매일 출근하면서 신기하게 느껴진 점은 작은 도시임에도 웬만한 건 다 있다는 점이다. 빼곡한 아파트 숲 한 쪽엔 산도, 호수도, 논밭도 있다. 대부분은 대야동에 위치한다. 산을 끼고 있어 군포시 전체 면적의 35%를 차지할 만큼 넓은 지역이다. 행정동 기준, 가장 작은 산본1동과 비교하면 무려 17배가 넓다. 그러나 인구는 1만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동네다. 이런 대야동의 여름은 어느 곳보다도 뜨거웠다. 파출소 때문이다. 지난 7월31일 대야동 곳곳엔 '대야파출소 폐쇄 이전 강력 반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난해 성남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경찰은 무차별 강력 범죄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도보 순찰 인력을 강화키로 했다. 그러나 소규모 관서에선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만큼 2개 파출소를 통합 운영해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른바 '중심지역관서제'다. 경기남부 지역에선 9곳이 대상이다. 이 중 1곳이 송부·대야파출소다. 이에 지난 7월31일부터 대야파출소는 중심관서로 지정된 송부파출소가 관할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대야동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지역 주민단체 협의회가 반대 서명을 받았는데 닷새만에 지역 주민 3분의1 규모인 3천명 가까이가 동참할 정도였다. 한 주민단체 관계자는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서명한 건 그만큼 분노가 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를 냈다. 군포경찰서는 물론, 경기남부경찰청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앞서 중심지역관서제 대상인 다른 지역들도 어김없이 시행을 반대했다. 중심지역관서제가 실시된다고 해서 파출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혹여나 지역 치안 업무가 그 전보다 소홀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대야동 주민들의 반발이 두드러진 것은 유독 추웠던 15년 전 겨울의 그 일 때문이다.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아직도 못 잊어요. 어떻게 잊겠어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군포는 다른 지역에 비해선 사건, 사고가 많지 않아요. 대체로 조용하고 평화로워요. 그런데 (사

  • [내가 만난 군포] 역맥축제에서 마주한 군포역전시장의 150년사

    [내가 만난 군포] 역맥축제에서 마주한 군포역전시장의 150년사

    군포라는 지명엔 다양한 유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군포장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조선 숙종 25년에 간행된 과천현 신수읍지 등의 표기로 미뤄볼 때 현재 군포 옆을 지나는 하천은 예로부터 군포천으로 불렸다. 군포천 일대에 큰 시장이 개설됐는데 이를 군포장으로 칭했다. 상당히 성행해, 조선시대 각종 기록과 지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1905년 경부선 개통 당시 역사 이름을 군포장역(지금의 군포역)으로 명명할 정도였으니 미뤄 짐작할 만하다. 이후 군포장역을 중심으로 민가가 늘어나고 산업이 활성화되자 군포장역 인근을 아예 '군포'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게 여러 유래 중 하나다. 시장이 하나의 도시를 키운 셈이다. 군포의 역사 그 자체인 군포장은 지금의 군포역전시장으로 이어진다. 당초 안양 호계3동 일대에 위치했던 군포장은 안양천 범람을 계기로 군포역 옆으로 이동했고, 세월의 흐름 속 지금의 모습이 됐다. 군포역 1번 출구 앞 좁은 골목 양 옆으로 쭉 늘어선 60여개 점포가 150년 역사를 오늘도 새로 쓰고 있다. #군포의 역사, 군포 사람의 역사 군포장이 열릴 때마다 주변 지역은 물론, 경기 남부권의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워낙 인파가 몰리는 상업적 요충지였기에,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월 31일 무려 2천여명이 참여한 대대적인 만세 운동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소설가 이무영이 1938년 군포에 거주하면서 동아일보에 연재한 '군포장 깍두기'로도 이름을 알렸다. (군포시는 1999년 이를 기념해 이무영 작품비를 건립했지만 그의 친일 행적 논란 이후 2009년 철거했다) 군포장이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후에도 안산이며, 화성에서까지 물건을 팔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예전엔 저 멀리 서신면에서도 조개를 팔려고 여기까지 왔었어요. 지금처럼 막 정돈된 점포가 있는건 아니고 여러 장사꾼들이 군데군데에서 물건을 파는 그런 형태였는데, 그러면서 여기 집들도 많이 생기고 골목도 나고 한거죠." 정성순 군포역전시장 상인회장은 그 옛날 시장의 모습을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며 군포장의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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