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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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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의 변명 지면기사
휴대전화도 없고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컴퓨터도 쓰지 않는 나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원시인'이니 '석기시대 인간'이니 하고 놀리곤 한다. 현대인의 필수품이라 할 휴대전화, 자동차, 컴퓨터 없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람들은 이 셋 중 하나만 없어도 어떤 강박증에 가까운 불편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없이 살아보면 그런대로 살 만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에 변명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휴대전화는 애초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삐삐'라는 호출기가 나왔을 때부터, 영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군가와 누군가가 언제 어디서든지 서로를 호출할 수 있다는 방식이 편리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삐삐, 삐삐 하고 다급한 신호음이 울리면 술자리에서도 들던 잔을 내려놓고 허리춤을 들춰보는 광경은 무슨 풍자극의 한 장면 같기만 했다. 휴대전화로 바뀐 지금도 마찬가지다. 차에 앉아서, 길을 걸어가면서, 심지어는 숨가쁜 산행길에서도 누군가와 중얼중얼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이 내게는 지금도 코미디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작은 송수신탑이 되어 있는 것만 같다. 24시간 내내 무언가를 송수신해야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일까?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우울증에 빠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하니 나는 오히려 그 쪽이 걱정스럽다. 글쟁이로 살아가는 나날에 분초를 다투는 화급한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이렇게 지내기로 한다. 물론 한 달이면 한두 번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런 불편 정도는 감수하기로 한다.자동차 또한 나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아니, 술 마시는 일이 본업에 가까웠던 젊은 시절을 보내다 보니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자가용이 한창 급증하던 90년대 초반에는 '그래도 아직 차가 없는 집이 더 많다, 나는 그 쪽이다'라며 이상한 고집을 세우기도 했다. 그 고집 때문에 내 아내는 면허를 따놓고도 1년 이상을 숨겨야 했고, 또 1년 이상을 조른 끝에야 작은 차를 한 대 구입할 수 있었다. 차가 생긴 후에도 열이면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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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블루브레인 지면기사
뇌(brain)는 우리 몸을 지배하는 사령탑이자 마음의 집이다. 그러나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인 신비로운 뇌를 탐구하는 인류의 여정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뇌가 정보 처리를 수행하는 기본 단위는 뉴런이라고 불리는 머리카락 두께 정도의 세포들이다. 우리의 뇌 속에는 세계 인구의 수십 배에 이르는 1천억 개의 뉴런이 빽빽하게 들어있다. 독자들이 이 칼럼을 읽는 동안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의 수많은 뉴런들이 자극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활성화된다. 뉴런은 세포내 정교한 생화학적 과정을 통해 전기 신호를 만들고, 거미줄 같은 상호 연결망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정보를 교환한다.수학자 앨런 튜링의 뇌를 창조하려는 시도는 그 대신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발명품 중 하나인 컴퓨터를 낳았다. 현재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는 기가와 테라를 넘어 페타(1억의 천만 배)라는 놀라운 연산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10만년의 인류문명 역사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인 컴퓨터의 도움으로 이제 뇌의 기본 단위인 뉴런, 뇌의 영역, 궁극적으로는 뇌 전체를 모방하는 도약이 가능해지고 있다.2005년 7월 1일 스위스 로잔공대의 뇌정신연구소와 세계 굴지의 컴퓨터 회사인 IBM은 '블루브레인'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출범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지놈프로젝트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IBM이 개발한 블루진 슈퍼컴퓨터의 엄청난 계산 능력을 활용하여 포유류의 뇌를 생물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고,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지능의 발현에 연관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IBM은 당대 최고의 체스 제왕이었던 개리 카스파로브와 경쟁하기 위하여 '딥블루'라는 슈퍼컴퓨터를 처음 만들었다. 1997년 5월 '딥블루'는 세기의 체스 경기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였고, 이 뜻밖의 결과는 전통적인 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에 큰 도전을 안겨 주었다. '딥블루'는 초당 2억 회라는 엄청난 속도로 모든 가능한 경우수를 단순한 논리로 따져냈다. '딥블루'는 체스와 같은 지능 게임에서 인간을 처음으로 이긴 컴퓨터로서 지능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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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순한 말씨를 지면기사
나는 경부선 열차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평일 보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 복잡한데다가 너도 나도 끊임없이 주고 받는 말소리,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매우 힘들고 괴로울 때가 많다. 예전에는 그래도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하거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는 일들이 가능하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이야기 할 땐 옆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하고,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해 놓으며, 통화가 필요하면 객실에 나가서 하라는 안내방송을 되풀이하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리의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다. 여러명이 앉아 하도 시끄럽게 이야기 해 큰 방해가 될 적엔 승무원을 시켜 전달한 일도 몇 번 있지만 이 또한 번거로운 일이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그렇게 쉴새 없이 휴대전화를 해야만할까, 내용을 들어보니 그리 긴급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잠시만 참았다가 목적지에 내려서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때로는 전화의 존재 자체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다가 '어떤 위기상황에서는 휴대전화 덕분에 생명을 구하는 일도 생기니 좋은 마음으로 이해를 해야지'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만다. 꼭 기차 안이 아니라도 공공장소에서는 습관적으로 목소리를 낮출 줄 아는 고요한 우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혼자서는 커도/여럿이 모이면 낮게 낮게/ 깊이 있는 말일수록/ 눈으로 하기/화가 났을 때는 아껴서 쓰기/보이지 않으면서/꽃향기로 남고/ 만져지지 않으면서도/화살되어 가슴에 꽂히네 -이용순의 동시 한번은 내가 어느 성직자에게 '그만하면 착하십니다'라고 표현한 일이 있다. 그는 매우 서운해 하며 앞의 '그만하면'이란 말은 왜 들어가야 하느냐고 따져서 내 나름대로 변명을 하느라고 혼이 났었다. 또 한 번은 내게 두 권씩 오는 책을 하나씩 받아가는 동료에게 '공짜로 책을 얻어 참 좋겠다'고 하니 '공짜'라는 단어가 자존심 상한다고 하여 '그럼 덤으로 가져간다고 할까요?'라고 대답한 일이 있다. 이렇듯 우리가 악의없이 내뱉는 보통 말도 때로는 상대방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다면 충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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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 아닌 단절' 필요한 시대 지면기사
컴퓨터 자판기 왼쪽 상단에 배열되어 있는 글자들인 QWERTY에서 유래한 쿼티(QWERTY) 경제학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이 과거의 진행방향에 의존하게 된다는 경로의존성을 핵심으로 하는 이론이다. 1868년 크리스토퍼 숄스가 창안한 배열방식인 QWERTY 배열이 영문타자기 자판의 표준이 된 것은 단지 그것이 처음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타이프 바가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어 자주 엉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타이핑을 빠르게 하지 못하도록 이처럼 불편하면서도 특이한 자판배열을 개발해낸 것이다.컴퓨터 시대에 들어와서 인지공학자들이 사용성 편이를 위해 드보락(DVORAK) 자판기 등을 개발했으나, 아무리 좋은 대안이 나와도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쿼티 자판기 배열은 바뀌지 않고 있다. 영국의 기차바퀴 간격이 탄광의 수레바퀴 간격과 같다든가, 영연방 국가들의 차량 좌측통행 관습 등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오늘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쿼티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들이다.개인이나 사회의 오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한 E. H. Carr의 명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과거의 잣대나 관성 등 쿼티 경제학이 강조하는 사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것들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과학기술사에서도 몇 차례의 혁명이 있었다.과학기술 혁명사에서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혁명은 IT를 토대로 한 C&C(computer and communication)의 혁명으로 인터넷은 이의 상징이다.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사람들의 의사소통은 자연스럽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얼굴과 얼굴이 만나고 서신에 의존하는 오프라인상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대신에 온라인상의 의사소통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으로는 우선 기술진보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이메일로 파일을 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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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것'이 소중하다 지면기사
정치적인 오해가 없길 바라지만 나는 '복원'된 청계천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수도권 신도시에 살며 서울을 무시로 들락거리면서도 말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접하게 되는 청계천의 새로운 풍경이 내게는 먼 이국처럼 낯설기만 하다. 미관상 좋아진 것은 틀림없겠으나 어쩐지 정이 가지 않는다. 잘 알고 지내던 여자가 어느날 갑자기 성형미인이 돼 나타났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달라진 청계천을 찾아가 걷노라면 70년대의 그 복잡하고 지저분하던 옛 청계천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수구레 노점상이며 박보장기 야바위꾼이며 포르노물 입간판까지도 보고싶어 콧날이 시큰해질 것만 같다. 값싸고 퇴행적인 정서라고 비웃는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내 청춘의 기억들은 그런 풍경속에 녹아 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청계천 '복원'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 청계천은 지금의 모습과 같았던 적이 결코 없으니까 '정비'나 '정화'라고 해야지 '복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사코 '복원'했노라고 우기는 그 청계천은 더 이상 서민들의 삶의 무대가 아니다. 거대한 조형물이요 일종의 테마파크일 뿐이다.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도 '공사중'이다. 원래의 위치로 옮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차제에 현판도 바꿔야 한다며 논란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거창하게 제까지 올리면서 내세운 명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과연 막대한 예산을 써가면서 강행해야만 하는 일일까. 경복궁 창건 당시 문이 있던 자리에 표석이라도 하나 세워 후세가 바로 알도록 하면 되는 일이 아닐까. 문 하나를 옮겨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뿐 아니라, 그로인해 도로의 흐름이 달라지고 주변의 도시계획도 바뀔 수밖에 없다. 옛것을 되찾자는 마음을 누가 모르랴. 하지만 그 '옛것'이 '지금 여기'의 삶을 끊임없이 간섭하는 현상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모든 것을 원래 자리에 원래 모습대로 돌려놓자고 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가능한 일도 아니려니와 꼭 옳은 일도 아니다. 지난주에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 김에 호남지방의 유명한 한 사찰에 들러보았다. 매표소를 지나 10분남짓 걸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