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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기술 종교를 만나다

    과학기술 종교를 만나다 지면기사

    1966년 '신은 죽었나?'라는 표제가 저명 시사잡지 '타임' 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과학기술 발전 가속화로 윤리와 생태환경 문제 등이 대두되며 세계 곳곳에서 종교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증대 추세이다.작년 과학상식에 대한 한 설문에서 '미국민의 62%가 진화를 믿지 않고, 53%가 지구 나이가 6천살 이라고 믿는다'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첨단과학'과 '독실 신앙'이 교차하는 미국의 경우 2004년 일부 공립교에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교육시 '진화론'의 대안으로서 '지적설계론'을 의무적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이 시도는 1년 만에 학부모와 진보진영의 반대로 좌절되었지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고 시도하는 '지적설계론' 옹호그룹의 큰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하고, 새로운 예측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학계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인 '망상의 신'에서 과학저술가 리차드 도킨스는 이러한 '믿음에 대한 믿음'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국가사회적 역할이 증대되며 과학기술과 종교와의 활동 영역이 점점 더 중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조주의적 종교와 맹목적 과학주의는 갈등과 충돌을 초래한다. 첫 해결 방향으로 과학과 종교의 분리를 통한 안정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종교는 믿음과 권위, 과학은 사실과 검증 등 상호 차이를 부각하고 그 활동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상호 논리적 근거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곧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 있다. 한편 과학과 종교의 섣부른 융합시도는 오랜 역사적 뿌리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자칫 '지적설계론'과 같이 대중을 오도할 수도 있다.한편 과학의 '가치중립적'이고 '무신론적 측면'과 일부 '과학주의' 주장으로 인해 종교계의 과학에 대한 오해와 우려도 큰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과학은 실제 작동하고 있는 체계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점점 더 자연의 많은 부분이 과학을 통해 설명되어지고 있다. 태양계와

  • 3월의 편지

    3월의 편지 지면기사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아직은 시린 햇빛으로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살아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나는 먼데서도/ 잠들 수 없는 당신의 바람/어둠의 벼랑 끝에서도/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자작시 '3월의 바람 속에'에서어느 해 봄 내가 받은 신학생의 편지에 '3월의 강변에서 불러보는 나의 누이 같은 수녀님…'으로 시작하는 시적인 표현이 맘에 들어 몹시 가슴이 뛴 적이 있습니다. 남쪽의 봄은 매화가 제일 먼저 알려주고 그 다음은 천리향이 핍니다. 바람 속에 향기가 먼저 말을 건네오면 '응. 알았어 벌써 꽃을 피웠다고? 정말 반가워!'하며 가까이 다가가서 향기를 맡곤 하였지요. 가을엔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지지만 봄에는 왠지 마음이 들뜨고 어수선한 느낌이 들어 싫어했는데 갈수록 봄이 좋아짐은 아무래도 나이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에겐 나도 덩달아서 그래요!'하고 맞장구 치지 않을수가 없답니다. 나도 이제 봄이 좋아졌거든요. 오늘 불쑥 처음으로 나를 찾아 온 젊은 독자인 그대와 함께 광안리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그대가 나에게 해달라던 덕담을 이 편지로 보충할까 합니다. 날씨가 차갑고 바람 많이 부는 날은 하늘과 바다의 빛깔도 더욱 맑고 푸르고 투명함을 우리는 함께 체험했지요? 우리네 삶 역시 시련의 바람을 잘 이겨내야만 튼실한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 있음을 바닷바람 속에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3월, 내가 임의로 '봄비를 기다리며 첫 러브레터를 쓰는 달'이라고 명명한 3월을 나는 어느 달 보다도 좋아한답니다. 꽃샘바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네요. 시간을 아껴 써라. 하루 한 순간도 낭비하지 말고 소중하게 살아라. 잎샘바람은 또 말하네요.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넘어지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 죽지 말고 다시 부활하는 법을 배워라.그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의 우리는 절제와 인내와 기다림의 덕목을 많이

  • 세계적 이벤트유치도 정권업적

    세계적 이벤트유치도 정권업적 지면기사

    비교적 짧은 역사지만 부침의 대한민국 역사 중에서 국운이 괜찮았던 시절을 뽑으라면 1986년부터 1988년의 3년 세월을 선택하고 싶다. 그 시절에 산업화를 넘어서 민주화 시대를 열었고 연유야 어찌됐든 건국 이후 최초로 국제수지 흑자달성에 성공했으며 주가가 1천을 넘기도 했다. 이후 흑자관리 철학과 전략의 부재로 성장의 잠재력 배양 및 확충에 실패했고 부동산값만 폭등해 나라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게 됐지만 말이다. 1986년부터 3년의 세월이 괜찮은 또 하나의 이유는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이라는 메가 국가 이벤트의 성공이다. 86년에는 그간 넘지 못했던 일본을 뒤로 하고 세계의 스포츠 강국인 중국과 자웅을 겨룰 정도로 스포츠 국력이 발돋움했다. 더 나아가 88년에는 이념대립으로 얼룩졌던 80년(모스크바)과 84년(LA)의 반쪽 올림픽을 전 세계인의 한마당 축제로 만들면서 4위를 차지해 세상을 경악하게 만든 기억도 새롭다. 88년 이후 우리는 올림픽때 금메달을 몇 개 정도 따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세계 10위이내에는 들어야 국민이 그 성과를 인정하게 되었다. 굳이 아름다운 추억인 지난 일들을 들먹이는 이유는 최근 대구와 평창이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과 2014년의 동계올림픽 때문이다. 양 대회 유치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유치에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짚어보자. 먼저 지난 몇 차례의 메가 국가 이벤트의 성공을 통해 개최만 하면 수지가 맞는 장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88 올림픽의 경우 경기장과 주변도로 건설 등 투자지출액(1조8천931억원)과 올림픽조직위의 경상지출 등 소비지출액(5천533억원)을 합친 지출총액(2조4천464억원)의 2배 정도 되는 4조8천784억원 규모의 생산유발효과를 얻었다. 부가가치 창출(1조8천859억원)과 고용유발(34만여명) 효과까지 고려하면 88올림픽은 분명 흑자대회였다. 평창 동계 올림픽은 역대 최고의 흥행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94년 릴레함메르부터 2006년 토리노 올림픽까지 최근

  • 원시인의 변명 지면기사

    휴대전화도 없고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컴퓨터도 쓰지 않는 나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원시인'이니 '석기시대 인간'이니 하고 놀리곤 한다. 현대인의 필수품이라 할 휴대전화, 자동차, 컴퓨터 없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람들은 이 셋 중 하나만 없어도 어떤 강박증에 가까운 불편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없이 살아보면 그런대로 살 만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에 변명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휴대전화는 애초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삐삐'라는 호출기가 나왔을 때부터, 영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군가와 누군가가 언제 어디서든지 서로를 호출할 수 있다는 방식이 편리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삐삐, 삐삐 하고 다급한 신호음이 울리면 술자리에서도 들던 잔을 내려놓고 허리춤을 들춰보는 광경은 무슨 풍자극의 한 장면 같기만 했다. 휴대전화로 바뀐 지금도 마찬가지다. 차에 앉아서, 길을 걸어가면서, 심지어는 숨가쁜 산행길에서도 누군가와 중얼중얼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이 내게는 지금도 코미디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작은 송수신탑이 되어 있는 것만 같다. 24시간 내내 무언가를 송수신해야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일까?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우울증에 빠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하니 나는 오히려 그 쪽이 걱정스럽다. 글쟁이로 살아가는 나날에 분초를 다투는 화급한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이렇게 지내기로 한다. 물론 한 달이면 한두 번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런 불편 정도는 감수하기로 한다.자동차 또한 나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아니, 술 마시는 일이 본업에 가까웠던 젊은 시절을 보내다 보니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자가용이 한창 급증하던 90년대 초반에는 '그래도 아직 차가 없는 집이 더 많다, 나는 그 쪽이다'라며 이상한 고집을 세우기도 했다. 그 고집 때문에 내 아내는 면허를 따놓고도 1년 이상을 숨겨야 했고, 또 1년 이상을 조른 끝에야 작은 차를 한 대 구입할 수 있었다. 차가 생긴 후에도 열이면 아홉

  • 뇌와 블루브레인 지면기사

    뇌(brain)는 우리 몸을 지배하는 사령탑이자 마음의 집이다. 그러나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인 신비로운 뇌를 탐구하는 인류의 여정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뇌가 정보 처리를 수행하는 기본 단위는 뉴런이라고 불리는 머리카락 두께 정도의 세포들이다. 우리의 뇌 속에는 세계 인구의 수십 배에 이르는 1천억 개의 뉴런이 빽빽하게 들어있다. 독자들이 이 칼럼을 읽는 동안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의 수많은 뉴런들이 자극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활성화된다. 뉴런은 세포내 정교한 생화학적 과정을 통해 전기 신호를 만들고, 거미줄 같은 상호 연결망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정보를 교환한다.수학자 앨런 튜링의 뇌를 창조하려는 시도는 그 대신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발명품 중 하나인 컴퓨터를 낳았다. 현재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는 기가와 테라를 넘어 페타(1억의 천만 배)라는 놀라운 연산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10만년의 인류문명 역사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인 컴퓨터의 도움으로 이제 뇌의 기본 단위인 뉴런, 뇌의 영역, 궁극적으로는 뇌 전체를 모방하는 도약이 가능해지고 있다.2005년 7월 1일 스위스 로잔공대의 뇌정신연구소와 세계 굴지의 컴퓨터 회사인 IBM은 '블루브레인'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출범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지놈프로젝트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IBM이 개발한 블루진 슈퍼컴퓨터의 엄청난 계산 능력을 활용하여 포유류의 뇌를 생물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고,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지능의 발현에 연관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IBM은 당대 최고의 체스 제왕이었던 개리 카스파로브와 경쟁하기 위하여 '딥블루'라는 슈퍼컴퓨터를 처음 만들었다. 1997년 5월 '딥블루'는 세기의 체스 경기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였고, 이 뜻밖의 결과는 전통적인 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에 큰 도전을 안겨 주었다. '딥블루'는 초당 2억 회라는 엄청난 속도로 모든 가능한 경우수를 단순한 논리로 따져냈다. '딥블루'는 체스와 같은 지능 게임에서 인간을 처음으로 이긴 컴퓨터로서 지능의 본질

  • 고요하고 순한 말씨를

    고요하고 순한 말씨를 지면기사

    나는 경부선 열차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평일 보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 복잡한데다가 너도 나도 끊임없이 주고 받는 말소리,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매우 힘들고 괴로울 때가 많다. 예전에는 그래도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하거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는 일들이 가능하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이야기 할 땐 옆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하고,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해 놓으며, 통화가 필요하면 객실에 나가서 하라는 안내방송을 되풀이하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리의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다. 여러명이 앉아 하도 시끄럽게 이야기 해 큰 방해가 될 적엔 승무원을 시켜 전달한 일도 몇 번 있지만 이 또한 번거로운 일이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그렇게 쉴새 없이 휴대전화를 해야만할까, 내용을 들어보니 그리 긴급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잠시만 참았다가 목적지에 내려서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때로는 전화의 존재 자체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다가 '어떤 위기상황에서는 휴대전화 덕분에 생명을 구하는 일도 생기니 좋은 마음으로 이해를 해야지'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만다. 꼭 기차 안이 아니라도 공공장소에서는 습관적으로 목소리를 낮출 줄 아는 고요한 우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혼자서는 커도/여럿이 모이면 낮게 낮게/ 깊이 있는 말일수록/ 눈으로 하기/화가 났을 때는 아껴서 쓰기/보이지 않으면서/꽃향기로 남고/ 만져지지 않으면서도/화살되어 가슴에 꽂히네 -이용순의 동시 한번은 내가 어느 성직자에게 '그만하면 착하십니다'라고 표현한 일이 있다. 그는 매우 서운해 하며 앞의 '그만하면'이란 말은 왜 들어가야 하느냐고 따져서 내 나름대로 변명을 하느라고 혼이 났었다. 또 한 번은 내게 두 권씩 오는 책을 하나씩 받아가는 동료에게 '공짜로 책을 얻어 참 좋겠다'고 하니 '공짜'라는 단어가 자존심 상한다고 하여 '그럼 덤으로 가져간다고 할까요?'라고 대답한 일이 있다. 이렇듯 우리가 악의없이 내뱉는 보통 말도 때로는 상대방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다면 충동적으로

  • '단절 아닌 단절' 필요한 시대 지면기사

    컴퓨터 자판기 왼쪽 상단에 배열되어 있는 글자들인 QWERTY에서 유래한 쿼티(QWERTY) 경제학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이 과거의 진행방향에 의존하게 된다는 경로의존성을 핵심으로 하는 이론이다. 1868년 크리스토퍼 숄스가 창안한 배열방식인 QWERTY 배열이 영문타자기 자판의 표준이 된 것은 단지 그것이 처음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타이프 바가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어 자주 엉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타이핑을 빠르게 하지 못하도록 이처럼 불편하면서도 특이한 자판배열을 개발해낸 것이다.컴퓨터 시대에 들어와서 인지공학자들이 사용성 편이를 위해 드보락(DVORAK) 자판기 등을 개발했으나, 아무리 좋은 대안이 나와도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쿼티 자판기 배열은 바뀌지 않고 있다. 영국의 기차바퀴 간격이 탄광의 수레바퀴 간격과 같다든가, 영연방 국가들의 차량 좌측통행 관습 등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오늘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쿼티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들이다.개인이나 사회의 오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한 E. H. Carr의 명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과거의 잣대나 관성 등 쿼티 경제학이 강조하는 사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것들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과학기술사에서도 몇 차례의 혁명이 있었다.과학기술 혁명사에서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혁명은 IT를 토대로 한 C&C(computer and communication)의 혁명으로 인터넷은 이의 상징이다.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사람들의 의사소통은 자연스럽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얼굴과 얼굴이 만나고 서신에 의존하는 오프라인상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대신에 온라인상의 의사소통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으로는 우선 기술진보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이메일로 파일을 첨

  • '지금것'이 소중하다

    '지금것'이 소중하다 지면기사

    정치적인 오해가 없길 바라지만 나는 '복원'된 청계천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수도권 신도시에 살며 서울을 무시로 들락거리면서도 말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접하게 되는 청계천의 새로운 풍경이 내게는 먼 이국처럼 낯설기만 하다. 미관상 좋아진 것은 틀림없겠으나 어쩐지 정이 가지 않는다. 잘 알고 지내던 여자가 어느날 갑자기 성형미인이 돼 나타났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달라진 청계천을 찾아가 걷노라면 70년대의 그 복잡하고 지저분하던 옛 청계천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수구레 노점상이며 박보장기 야바위꾼이며 포르노물 입간판까지도 보고싶어 콧날이 시큰해질 것만 같다. 값싸고 퇴행적인 정서라고 비웃는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내 청춘의 기억들은 그런 풍경속에 녹아 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청계천 '복원'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 청계천은 지금의 모습과 같았던 적이 결코 없으니까 '정비'나 '정화'라고 해야지 '복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사코 '복원'했노라고 우기는 그 청계천은 더 이상 서민들의 삶의 무대가 아니다. 거대한 조형물이요 일종의 테마파크일 뿐이다.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도 '공사중'이다. 원래의 위치로 옮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차제에 현판도 바꿔야 한다며 논란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거창하게 제까지 올리면서 내세운 명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과연 막대한 예산을 써가면서 강행해야만 하는 일일까. 경복궁 창건 당시 문이 있던 자리에 표석이라도 하나 세워 후세가 바로 알도록 하면 되는 일이 아닐까. 문 하나를 옮겨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뿐 아니라, 그로인해 도로의 흐름이 달라지고 주변의 도시계획도 바뀔 수밖에 없다. 옛것을 되찾자는 마음을 누가 모르랴. 하지만 그 '옛것'이 '지금 여기'의 삶을 끊임없이 간섭하는 현상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모든 것을 원래 자리에 원래 모습대로 돌려놓자고 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가능한 일도 아니려니와 꼭 옳은 일도 아니다. 지난주에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 김에 호남지방의 유명한 한 사찰에 들러보았다. 매표소를 지나 10분남짓 걸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