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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스플랑크와 드레스덴의 교훈 지면기사

    지난 주 독일의 드레스덴에 소재한 세계적 기관인 막스플랑크 복잡계물리 연구소의 피터 풀데 소장이 한국을 다녀갔다. 그의 방문 목적은 포항에 소재한 국제연구기관인 아·태이론물리센터의 신임 소장으로 부임하여 동서 간 국제공조를 통해 아·태 권역의 물리학과 기초과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그는 첫 인터뷰에서 "잠재적 역량을 가진 아·태의 젊은 과학자들을 키우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아·태이론물리센터의 국제공동연구 그룹의 새로운 구축을 위한 막스플랑크 재단의 직접 투자라는 큼직한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다.막스플랑크재단(Max Planck Gesellshaft)은 '미래를 위한 연구'를 목표로 탁월한 연구와 과학 진흥을 위한 비영리 기구이다. 막스플랑크재단은 2006년 타임지에 의해 과학분야 1위로 평가되고 창립 이후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기초연구 네트워크이다. 이 재단은 1948년 창립된 이후 '대학의 서포터'를 자처하며 소장과 대학교수의 겸직, 대학의 특성화 지원, 젊은 학자 육성 등 연구소가 소재한 지역의 대학과 모범적인 윈윈 협력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막스 플랑크는 '양자역학의 창시자'이자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손꼽힌다. 그는 음악적 재능도 매우 뛰어났지만 물리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첫 지도교수였던 필립 폰 졸리 교수는 "이 분야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제 몇 개 구멍만 메우면 된다"고 조언하며 그를 말렸다고 한다. 막스 플랑크는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대 없이, 단지 이 분야의 기초를 이해하자"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이론물리를 하다 보니 기대를 훨씬 넘게 되었다. 사실 우주는 자신의 비밀을 한꺼번에 보여주지는 않으며, 아직도 풀지 못한 자연의 신비가 쌓여 있는 것이다.노벨상에 견줄 수 있는 막스 플랑크의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은 바로 막스플랑크재단을 만든 것이다. 막스플랑크재단과 연구소 시스템은 독일의 과학기술뿐 아니라 경제 사회 발전의 견인차 역

  • 가정의 달에 바치는 기도 지면기사

    우리집이라는 말에선/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은/음악처럼 즐겁다멀리 밖에 나와/우리집을 바라보면/잠시 낯설다가/오래 그리운 마음가족들과 함께 한 웃음과 눈물/서로 못마땅해서/ 언성을 높이던부끄러운 순간까지 그리워/눈물 글썽이는 마음/그래서 집은/고향이 되나 보다헤어지고 싶다가도/헤어지고 나면/금방 보고 싶은 사람들주고 받은 상처를/서로 다시 위로하며그래, 그래 고개 끄덕이다/따뜻한 눈길로/하나 되는 사람들이런 사람들이/언제라도 문을 열어 반기는/우리집 우리집우리집이라는 말에선/늘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고마움 가득한/송진 향기가 난다-이해인의 동시 '우리집' 전문5월의 햇살 아래 아름답게 빛나는 나무들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나무 아래서 초록물이 든 가슴으로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며 오늘은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에서 섬세하게 표현하며 살 줄 알게 하소서. 서로 고마운 것은 고맙다 하고 잘 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기쁨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서로의 결점과 허물을 감싸 안는 따뜻함과 너그러움으로 끝까지 기다리며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기다림의 눈물이고 기도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힘든 상황과 시련 중에도 서로를 내치지 않고 함께 목숨 바쳐 서로의 짐을 기꺼이 지고 나누는 '고통속의 축복'에 이르게 하소서.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아픔 속으로 들어가는 연민이고 용서이고 화해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시선을 넓히고 마음을 넓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펴는 인류애를 실천하는데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함께 길을 가는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자비의 나눔이고 봉사이고 헌신인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우리가 밥을 먹을 때 일을 할 때 공부할 때 기도할 때 여행을 할 때 문득 문득 그리움 속에 떠올려 볼 가족이 있다는 것은

  • 봄날의 조승희와 교훈들 지면기사

    겨울이 있기에 만물이 약동하는 봄은 모든 것이 호사스러운 계절이다. '아침의 노래' 혹은 '봄의 노래'라고 자주 인용되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Pippa Passes)'를 읽으면 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극시에서 베니스의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 피파는 일년 중 단 하루뿐인 휴가 날 아침에 봄을 노래한다. 피파가 부르는 '계절은 봄이고/ 하루 중 아침/ 아침은 일곱 시/ 진주 같은 이슬 언덕 따라 맺히고/ 종달새는 창공을 난다/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하느님은 하늘에/ 이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다'를 듣고 난 후, 마을의 못된 사람들은 회개하고 삶의 참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학 캠퍼스가 가장 예쁘고 활기찬 계절도 봄이다. 신입생들이 들어오니 새기운이 넘치고, 다양한 꽃들과 신록이 펼쳐내는 파스텔 톤의 캠퍼스는 향긋하기만 하고 때로는 신묘한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봄이 펼쳐내는 자연의 향연에 걸맞게 전 세계 대학들의 공통정신인 자유와 진리 역시 한껏 기지개를 켜기 마련이다. 이처럼 예쁘고 좋은 계절에 자유의 상징이자 진리탐구의 전당인 대학 캠퍼스에서 잔인한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개인에게 내재된 악마성의 발현 때문에 고귀한 생명들이 죽음의 질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덧없이 스러졌다. 아마 역사는 2007년 4월을 또 다시 잔인한 달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잔인함을 생래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존재인지도 모른다. 해맑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벌레를 서슴없이 밟아죽이고 잠자리 날개를 비트는 것만 보아도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잔인함을 묘사한 예술 작품 역시 적지 않다. 단테의 신곡과 이를 표현한 로댕의 지옥의 문은 대표적인 예이다. 전함이 좌초된 후 물과 식량을 위해 동료들을 살해하고 그 인육을 먹으며 생존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제리코의 메뒤즈 호의 뗏목을 보면 인간의 잔인성은 그 끝이 없다는 생각조차 든다.인간은 절망과 좌절을 할 때 잔인하고 난폭해진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 새겨져 있다는 '이 문을 들

  • 옛날이야기 지면기사

    1960년대 어느 지방에서의 일이다. 다섯명으로 구성된 한 위원회가 있었다. 교육에 관련해서 상당히 비중있는 역할을 맡은 위원회였다. 그 위원회의 위원장은 당연히 욕심낼 만한 자리였다. 위원 다섯명 중 두 사람이 물망에 올랐다. 갑과 을이라고 하자. 남은 세명 가운데 둘은 갑의 제자였다. 그 두 사람은 스승인 갑에게 이렇게 말했다."우리 둘이 선생님을 찍고 선생님이 선생님을 찍으면 3대 2로 우리가 이깁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거꾸로였다. 3대 2로 오히려 을이 이겨서 위원장이 되어버렸다. 어이없어하는 제자들에게 갑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내가 어떻게 나를 찍나…."정말 옛날 이야기다. 그것이 그 시대의 정서였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 나선 어린이도 차마 제 이름을 써내지 못하던 무렵이었다.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모든 공직도 마찬가지였다. 속마음이야 어디에 있든 겉으로는 사양하고 자신의 능력부족을 드러내며 마지 못한듯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 '다른 적임자도 많지만 사람들이 원한다면 한 번 해보겠다' 이런 것이 그 시대의 출마의 변이요 취임사의 수사학이었다.지금 와서 그 시대의 그런 정서를 위선이요 이중성이라고 비판하기는 쉽다. 그로 인해 빚어진 부작용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위선과 이중성은 그 시대의 개인과 사회가 모두 최소한의 도덕성, 최소한의 겸양과 절제와 분수를 지키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지난날에는 자신의 능력을 시장에 내다 팔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에만 침잠하는 많은 은사들이 있었다. 정치나 시류와는 무관하게 한 길을 걸어가는 학자, 예술가, 사회운동가들이 그 어떤 권력자보다도 존경을 받곤 했다. 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반장선거에서 라이벌의 이름을 써내는 아이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모든 공직자들은 보는 이가 낯뜨거운 청문회 석상에서도 자신이 적임자임을 끝까지 주장한다. 각종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자신만이 해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대로 나서야만 하는 시대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야 하는 세태다. 어느 편이 더 바람직한가를 따진다면 논

  • 미래 위한 기초과학 투자를 지면기사

    현재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은 지난 세기 혁명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이다. 무선전신, 비행기, 플라스틱, 자동차, TV와 페니실린의 발명은 세계적 대중잡지 라이프가 선정한 '역사를 뒤흔든 100대 사건'에 들었다.현재 우리는 전자혁명의 산물인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 MP3 등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TV는 80년 전, 컴퓨터는 60년 전, 반도체는 40년 전, PC는 30년 전, MP3와 웹은 15년 전, 한 세기가 안 되는 발명의 역사를 통해 문명의 이기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우리 생활 속에서 첨단기기들은 이제 당연한 듯 빠르게 수용되고 있지만, 이러한 놀라운 과학기술 혁명을 가능하게 한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막상 소홀하기만 하다. 기초과학은 마치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로,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기초과학은 창의적 과학기술의 원천으로, 기초과학 없이 선진 과학강국이 될 수 없고,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확대 추세다.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적 연구 지원이 주로 응용개발 및 목적 지향적 중대형 규모의 연구로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다. 그 결과 개인의 창의성이 힘을 발휘하는 소규모 기초 연구가 소외되고 수학·물리· 화학 등 순수 기초과학 분야의 다수 연구자들이 점차 고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중 대학에서의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개인·소규모 기초연구 예산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대학의 경우 연구 인력의 70% 이상이 집중해 있고, 기초 연구예산의 투자대비 연구효율이 월등하게 높다. 현재 대학에 소속된 기초과학 연구인력 중 고작 4.4%만이 개인 연구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신진연구자와 지방에 소재한 연구자의 경우 진입 장벽과 높은 경쟁률 그리고 지원의 불연속성 때문에 연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기초연구비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그

  • 불안과 의심없는 세상을 꿈꾸며 지면기사

    서울 쪽에 몇군데 특강이 있어 약 열흘간 자리를 비웠다가 내가 머무는 부산 광안리 수녀원에 오니 그 새 살구꽃은 지고 복숭아꽃 벚꽃 자두꽃 모과꽃 자목련이 활짝 피어 나를 반기고 있었다.심한 황사바람이 우리를 놀라고 힘들게 하였지만 때로는 꽃구름을 만들며 피어오르는 봄꽃나무들이 곁에 있어 웃을 수 있었다. 꽃들이 다 지기 전에 밀린 편지를 써야지 마음 먹고 엊그제는 우선 급한 것부터 몇통 쓰고 해외에 갈 소포도 몇 개 준비해 당장 우체국에 가려다가 약간의 몸살기가 느껴져 일단 미루고 평소보다 일찍 침방으로 올라왔다. 다음날 오전 사무실에 내려가 컴퓨터 옆 서랍장을 여니 내가 봉투에 넣어 둔 우편발송비 일체와 요긴하게 사용하려고 보관해 둔 도서상품권들 그리고 주교님과 스님으로부터 설날 받은 세뱃돈봉투까지 몽땅 없어졌다. 내가 15년을 애용하던 소형 올림푸스 카메라까지 들고 가 버린 그 검은 손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하얀조가비와 솔방울과 고운 편지지로 가득한 자그만 글방에 겁도 없이 들어와 지갑에 있던 동전과 천원짜리만 그대로 두고 간 그는 생계형 도둑일까, 단지 용돈이 귀해 실례를 범한 젊은이일까…아니면 평소에도 이 방에 곧잘 드나들었던 손님들 중의 한 사람일까. 나름대로 온갖 상상을 하며 우리 수녀님들에게 보고하니 '사람 안 다친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라'고 위로하지만 마음이 내내 착잡하고 우울하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수녀님은 동정심이 많아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이 있으니 앞으로도 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충고도 집중적으로 많이 듣는다. 평소에 문을 더 열심히 잠그고 다닐 걸, 귀중품은 사무실에 두지 말고 침방에 둘 걸하고 자책해 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얼마 전에는 어느 지인이 인터넷으로 보내 준 '오십견의 아픔'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한참 웃은 일도 있는데 하필 지금 왜 그 이야기가 생각 나는지 모르겠다.'강도가 어느 집에 들어가 집 주인에게 손을 들라고 해도 안 들어서 다그치니 오십견이라 못 든다고 했다. 마침 강도도 오십견이라 둘이 앉아 오십견 이야기만 하다가 강도질도 못하고 돌아

  • 넛크래커와 샌드위치 지면기사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은 미국 뉴욕 시립발레단을 비롯한 세계적 발레단이 단골로 공연하는 명품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명곡으로 인간 정신을 상징하는 작품의 하나인 넛크래커가 태평양을 건너서는 우리의 약점과 치부를 단적으로 묘사하는 말이 된 지 어언 10년의 세월이 지났다.우리의 경우에 넛크래커는 미국의 컨설팅 기관인 부즈 앨런과 해밀턴의 한국 경제보고서에서 연유한다. 1997년 우리에게 불어 닥친 IMF 외환위기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의가 한창일 당시 부즈 앨런과 해밀턴 보고서는 "한국경제는 저비용의 중국과 고효율의 일본의 협공을 받아 마치 넛크래커 속에 끼인 호두처럼 되었다"고 지적하며, 변하지 않으면 넛크래커 속의 호두처럼 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진단했다.변하지 않으면 깨지기에 많은 진통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구조개혁이었고, 사회 전반에 걸친 새틀짜기이자 지난 10년 동안의 개혁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줄기차게 추구해온 사회변혁의 대가 때문인지 10년 전에는 생경하기만 했던 신자유주의니 고용의 유연성 같은 말들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아직도 세계문명표준에 걸맞지 못한 탓이겠지만 금년 들어서 대기업 총수가 화두로 삼은 샌드위치 코리아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샌드위치 코리아는 넛크래커 보다 범위가 넓고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이니 사실 나쁘게 진화한 것이다. 1997년 당시 넛크래커는 우리나라 기업이 처한 수출환경을 지적하는 말이었는데 점차 선진국에는 기술과 품질이 떨어지고 후발개발도상국에는 가격경쟁력이 없는 나라 경제의 단점을 대변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샌드위치 코리아는 경제는 물론 외교, 안보, 문화, 사회 등 나라의 각 분야에 내재되어 있는 약점이나 한계를 부각하는 말이 되고 있다. 갖다붙이기 나름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넛크래커나 샌드위치가 국내외의 여러 곤궁에 처한 현실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비유인 것은 틀림없다. 예컨대, 타이거 우즈의 선택

  • 2등을 보라

    2등을 보라 지면기사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 한 분은 가끔 이런 말을 하시곤 했다. '선거에는 은메달이 없어'. 청년시절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경력이 있다고 알려진 선생님이 그 얘기를 할 때마다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리곤 했지만 정작 본인의 표정은 늘 어떤 회한에 찬 것이었다.2등이라고 하면 어쩐지 맥빠지게 들리는 게 사실이지만 2등은 그렇게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때로는 1등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우선 글 쓰는 일에서도 그렇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백일장이나 현상모집에서 가장 빼어난 자질을 보이는 작품은 2등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재능은 뛰어나지만 완성도가 떨어진다든지, 학생의 작품으로 믿기 어렵다든지 하는 심사평이 뒤따른다. 1등을 차지하는 작품은 내용부터가 학생다우면서 단정하게 완성도를 보인 쪽이기 십상이다. 훗날의 문사들은 1등보다도 '아까운' 2등들 중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기성문인의 등용문인 신춘문예나 각종 신인상도 다르지 않다. 남다른 소재에 남다른 기법을 구사하는 실험적인 작품들은 당선이 되기보다는 '최종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역시 2등이다. 주목받는 작가들의 대부분은 약속이나 한듯 이 방면의 이력들이 만만치 않다.학교성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1등을 하려면 전과목에 걸쳐 우수한 성적을 내야 되지만 2등은 어딘가 한 부분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 2등을 1등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월드컵 축구의 역사에도 위대한 2등팀들이 있다. 1954년 스위스 대회의 헝가리와 1974년 서독대회의 네덜란드가 그 팀들이다. 헝가리는 서독에게 우승컵을 넘겨줬지만 4-2-4라는 새로운 포메이션을 정착시켰고, 네덜란드 또한 서독에게 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토털 사커의 원조로 명성을 얻었다.육상 장거리 경주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처음부터 선두를 달리는 주자보다는 2~3위를 유지하던 이가 막판 스퍼트로 우승을 차지하곤 하지 않던가.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가장 기록이 좋은 선수의 뒤를 '발 뒤꿈치를 밟을 듯이' 쫓아가라고 자기 선수에게 가르치곤 한다. 무서운 2등들이다. 다시 '은메

  • 과학기술 종교를 만나다

    과학기술 종교를 만나다 지면기사

    1966년 '신은 죽었나?'라는 표제가 저명 시사잡지 '타임' 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과학기술 발전 가속화로 윤리와 생태환경 문제 등이 대두되며 세계 곳곳에서 종교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증대 추세이다.작년 과학상식에 대한 한 설문에서 '미국민의 62%가 진화를 믿지 않고, 53%가 지구 나이가 6천살 이라고 믿는다'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첨단과학'과 '독실 신앙'이 교차하는 미국의 경우 2004년 일부 공립교에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교육시 '진화론'의 대안으로서 '지적설계론'을 의무적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이 시도는 1년 만에 학부모와 진보진영의 반대로 좌절되었지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고 시도하는 '지적설계론' 옹호그룹의 큰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하고, 새로운 예측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학계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인 '망상의 신'에서 과학저술가 리차드 도킨스는 이러한 '믿음에 대한 믿음'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국가사회적 역할이 증대되며 과학기술과 종교와의 활동 영역이 점점 더 중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조주의적 종교와 맹목적 과학주의는 갈등과 충돌을 초래한다. 첫 해결 방향으로 과학과 종교의 분리를 통한 안정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종교는 믿음과 권위, 과학은 사실과 검증 등 상호 차이를 부각하고 그 활동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상호 논리적 근거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곧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 있다. 한편 과학과 종교의 섣부른 융합시도는 오랜 역사적 뿌리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자칫 '지적설계론'과 같이 대중을 오도할 수도 있다.한편 과학의 '가치중립적'이고 '무신론적 측면'과 일부 '과학주의' 주장으로 인해 종교계의 과학에 대한 오해와 우려도 큰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과학은 실제 작동하고 있는 체계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점점 더 자연의 많은 부분이 과학을 통해 설명되어지고 있다. 태양계와

  • 3월의 편지

    3월의 편지 지면기사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아직은 시린 햇빛으로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살아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나는 먼데서도/ 잠들 수 없는 당신의 바람/어둠의 벼랑 끝에서도/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자작시 '3월의 바람 속에'에서어느 해 봄 내가 받은 신학생의 편지에 '3월의 강변에서 불러보는 나의 누이 같은 수녀님…'으로 시작하는 시적인 표현이 맘에 들어 몹시 가슴이 뛴 적이 있습니다. 남쪽의 봄은 매화가 제일 먼저 알려주고 그 다음은 천리향이 핍니다. 바람 속에 향기가 먼저 말을 건네오면 '응. 알았어 벌써 꽃을 피웠다고? 정말 반가워!'하며 가까이 다가가서 향기를 맡곤 하였지요. 가을엔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지지만 봄에는 왠지 마음이 들뜨고 어수선한 느낌이 들어 싫어했는데 갈수록 봄이 좋아짐은 아무래도 나이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에겐 나도 덩달아서 그래요!'하고 맞장구 치지 않을수가 없답니다. 나도 이제 봄이 좋아졌거든요. 오늘 불쑥 처음으로 나를 찾아 온 젊은 독자인 그대와 함께 광안리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그대가 나에게 해달라던 덕담을 이 편지로 보충할까 합니다. 날씨가 차갑고 바람 많이 부는 날은 하늘과 바다의 빛깔도 더욱 맑고 푸르고 투명함을 우리는 함께 체험했지요? 우리네 삶 역시 시련의 바람을 잘 이겨내야만 튼실한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 있음을 바닷바람 속에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3월, 내가 임의로 '봄비를 기다리며 첫 러브레터를 쓰는 달'이라고 명명한 3월을 나는 어느 달 보다도 좋아한답니다. 꽃샘바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네요. 시간을 아껴 써라. 하루 한 순간도 낭비하지 말고 소중하게 살아라. 잎샘바람은 또 말하네요.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넘어지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 죽지 말고 다시 부활하는 법을 배워라.그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의 우리는 절제와 인내와 기다림의 덕목을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