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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그 함부로 하지 말 것"

    "말, 그 함부로 하지 말 것" 지면기사

    '말 잘 했다!'이건 칭찬인가 하면 나무람이고 또 핀잔이기도 한 묘한 말이다. 핀잔일 때는 '말 같지도 않는 말', '억지 부리는 말' 따위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나무람일 때, '말 잘 했다!'는 이른바, 아이러니가 되는 셈이다. '말 같지도 않는 말'을 뒤집어서 비꼬는 것이 된다.요즘 우리들이 신문을 읽고 TV를 보면서 무심코 라도 자주자주 '그 말 잘 한다!'라는 아이러니를 내뱉게 되는 것은 웬 까닭일까? 그나마 큰 자리,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발언하는 것을 들을 때, 드물지않게 시민들이 '그 말 잘 한다'라고 말하게 되는건 무엇 때문일까?사회적인 또는 국가적인 신분이 높을수록 그들 말이 땅바닥을 뒹굴고, 진흙구덩이 속에 내리박히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일반 시민으로서도 괴로운 일이다.그러자니 예부터 자주 써온 말이 절로 생각난다. '신언서판(身言書判)!'하지만, 오늘날 그게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러니 새삼, 경구(警句)라고 해도 좋고 잠언(箴言)이라고 해도 좋을 '신언서판'을 되새겨 보자.몸가짐과 말과 서예(書藝)와 그리고 판단력, 이 넷이 다름 아닌 '신언서판'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한 인간의 능력과 인품을 매기는 '4대 기준'이 되어 왔다. 특히 '선비'며 벼슬아치에게서는 절대의 기준이었다.한데 오늘날 서(書)가 컴퓨터의 자판찍기에 밀려나면서 덩달아서 '신언판'의 셋도 한꺼번에 퇴락하고 있는 것 같다.언(言)을 말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단순치는 않다. 언은 말의 내용만 가리키지는 않는다. 논리도 '언'이고 따라서 말투, 말버릇도 물론 '언'이다. 더욱이 언행이라면서 언이 행동이며 행위와 짝 지어서 사용된 것은 매우 큰 뜻을 품고 있다. 언행일치라면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말이 곧 행동이요 행위가 바로 말임에 대해서도 시사하고 있다. 말을 떠난 행동이 없듯이 행위를 떠난 말이 없다는 것도 십분 의미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신(身)과 짝지어서 신언(身言)이 되면 몸가짐이며 행실이 곧 언어요 언어가 다름 아닌 처신(處身)임에 대해

  • 글씨 잘쓰는 사람

    글씨 잘쓰는 사람 지면기사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늘어났는데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컴퓨터 탓이다. 학생들이 꽤나 정성들여 제출한 리포트도 사정이 다를 거 없다. 글씨체가 너무 조악해서 봐줄 수가 없다. 우리의 교육과정도 글씨 잘 쓰는 공부는 제쳐둔 듯하다. 이대로 방치하면 글씨 잘 쓰는 사람이 이 땅에서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육필이라는 말은 매우 고색창연한 말이 되었다. 글을 '치는' 게 아니라 '쓰는' 작가는 이제 극소수다. 문인들의 육필 전시회에서 본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원고를 잊을 수 없다. 그분의 원고는 원고지 칸을 또박또박 채운 게 아니라, 백지의 여백을 빈틈없이 메운, 무슨 추상화 같은 느낌으로 처음에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백지를 메우고 있는 것은 정말 깨알처럼 촘촘하게 들어박힌 글자들이었다. 글자 하나가 얼마나 작은지, 그러한 '좀팽이' 글쓰기가 경이로워 나는 저절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문예반에 들어가서 내가 맨 먼저 배운 '문학'은 선배들의 글씨체를 흉내 내는 일이었다. 지금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 선배는 만년필로 아주 예쁘고 멋진 글씨를 썼다. 함부로 흘려 쓰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모범생의 필체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문학청년의 냄새가 나는 글씨였다. 그 필체를 연습한 덕분에 나는 그 선배의 귀여움을 톡톡히 받을 수 있었다. 그 선배의 필체는 참으로 희한하게도 나를 거쳐 몇 해 동안 내 후배들을 감염시켰다. 우리는 글씨를 통해 원고정서법뿐만 아니라 문학청년으로서의 자세를 배웠다.습작 시절에는 글씨 못지않게 어떤 원고지에다 글을 쓰는가 하는 것도 우리들의 매우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흔히 붉은 줄이 쳐진 원고지는 첫 번째 기피 대상이었다. 우리는 뭔가 특별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특정한 기관, 출판사나 신문사 이름이 찍힌 원고지를 손에 들게 되는 날은 대단한 문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원고지와 육필의 시대는 그 빛나던 야성을 잃었다. 가끔 문예작품 심사를 하다가 보면 그런 필체와 그런 원고지를 만날 때가 있다. 인쇄한

  • 로스쿨, 로와 스쿨사이

    로스쿨, 로와 스쿨사이 지면기사

    지난 3일 오후, '여야 로스쿨법 처리 합의'라는 긴급 뉴스가 나오자 성급한 축하전화가 몇 군데서 왔다. 내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이끌고 로스쿨법의 성안, 입법에 힘을 기울여 온 사실을 기억하는 분들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이번 회기에는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뒤집기 뉴스가 나왔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만일 이번에 또 미루어지면 여러 대학과 학생, 수험생들의 낭패와 손실이 얼마나 더 커질 것인가.나의 이런 조바심과는 달리, 밤 11시가 넘고 30분이 지나도 고대하는 뉴스는 뜨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뉴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국회 회기가 끝나는 자정 3분 전에 로스쿨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긴급 뉴스. 심야인데도 여기저기서 축하전화가 연달아 걸려왔다. 나는 큰 보람을 느꼈다.이로써 사개추위가 2년 동안 역동적으로 추진해온 사법개혁 작업은 대체로 마무리가 된 셈이다. 되돌아보건대, 사법개혁의 여러 과제 중에서 국민이 형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배심재판제의 도입, 수사기관 조서 중심 재판의 폐단을 바로잡는 공판중심주의 확립 등이 유난히 힘들었지만 학계와 법조계, 시민단체의 찬반양론이 뜨겁기로는 로스쿨법이 단연 으뜸이었다. 이 법안을 눈 흘겨보는 국회의 늑장부리기 또한 메달감이었다.10여년 논란 끝의 '만성(晩成)'이라고 해서 꼭 '대기(大器)'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국회가 직권상정 처리라는 비상절차를 밟았는데도 별다른 비판, 비난이 없는 것은 입법 내용을 평가하기 전에 우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로스쿨 입학 총 정원의 책정은 그동안 큰 관심사가 되어왔다. 그렇다고 로스쿨 논의가 이 문제에만 묶여 있다시피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법학계나 법조계에서도 입학정원 논의에만 매달리지 말고, 어떤 사람을 뽑아서 무엇을 어떻게 잘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법학적성시험, 교육과정, 강의방식 등에 관해서도 심도 있게 연구 개발을 해서 정부와 학교 그리고 교수들이 서로의 숙제를 함께 풀어가야 할 것이다.로스쿨에서는 지금의 법대(학부) 교육과 무엇이 어떻게

  • 6·25와 6·15 … '기억의 정치'

    6·25와 6·15 … '기억의 정치' 지면기사

    과거에는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통일이나 북한과 관련된 책들이 그나마 관심을 끄는 시기가 6월이었다. 초·중·고 학생들이 6·25 관련 숙제를 위해 책을 구입하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도 여전히 6월은 북한 및 통일관련 서적의 성수기인데 6·25에 더하여 6·15가 또다른 배경이 되고 있는 것같다. 예전에는 북한관련 책이 조금 더 읽힌다는 사실이 민족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착잡하였지만, 요즘은 그래도 민족의 미래를 지향하는 6·15가 또다른 배경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나아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6·25와 6·15사이에는 1950년과 2000년의 시간적 간극보다 더 큰 거리감이 존재한다. 6·25가 민족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된 전쟁이었다면, 6·15는 민족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남북한 최고지도자간의 정상회담이었다. 그러나 6·25나 6·15가 무엇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서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역사적 교훈을 얻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현대사 특히 분단사에 대한 사고방식은 지극히 편협하였다.6·25의 경우는 '상기하자'라는 구호아래 북한의 침략성, 김일성 집단의 무자비함, 사회주의에 대한 증오로 기억되었다. 물론 전쟁발발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김일성과 북한정부는 자유로울 수 없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쟁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전쟁은 불과 3년 동안에 죽은 사람만 300만~400만 정도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참혹한 전쟁이었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안돼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는 증오를 확대하고, 그래서 새롭고 더 큰 전쟁을 지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6·15의 경우 한쪽에서는 반세기에 걸친 남북간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야심과 북한의 정교한 전

  • 야당 유력 경선후보간의 다툼 지면기사

    한나라당 유력 대선후보 간의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유력 경선후보들은 상대에게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약점을 끊임없이 파헤치고, 쟁점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한술 더 떠 대통령을 중심으로 청와대까지 끼어들어 선거관리위원회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를 시발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국가정체성 등의 쟁점과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다시 대운하 평가보고서 변조논란 등을 대하는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반면 정치인들은 이해관계의 충돌을 본질적으로 즐기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국민의 마음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다. 현재 당사자들은 개인 및 당파의 손익을 계산하면서 주판알을 튕기느라 바쁠 것이다. 셈법은 간단하다. 공격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가능한 한 최대의 위해를 가해 반사이익을 얻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상대방 공격이 허구라는 것을 반증함으로써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야당의 입장은 미리 매를 맞음으로써 내성을 키우고, 잘못된 것은 밝혀서 본선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 와중에 국민의 관심을 얻어 흥행성공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미리 유력후보들을 낙마시키거나 흠집을 잔뜩 내서 본선을 쉬운 싸움으로 몰고 가고 싶을 것이다.'정치는 출혈 없는 전쟁'이라고 말한 마오쩌둥이나 '전쟁보다 위험한 게 정치'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생각해보면 현재 청와대까지 개입하고 나선 야당의 유력 경선후보 간의 다툼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나라의 발전과 내일을 잠시라도 고민해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한국대통령학연구소의 연구(2002)는 대통령이 지녀야 할 구체적 자질로 비전제시·인사관리·위기관리·민주적 정책 및 실행 능력, 도덕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제시 능력이다. 비전제시 능력이 다른 어느 능력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국민통합과 직결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를 관리하고 싶으면 우선 등 따습게 배불리 먹으면서 밤에 편하게 자는 문제는 물론

  • 대선에 대한 희망사항 지면기사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누가 당선되느냐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대선이라는 제도 자체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느냐는 점을 생각해보기로 하자.우선 4년 중임제를 채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국민의 지지도가 높지 않은 대통령이 하필 임기말에 추진한다는 점에서 역풍을 맞고 말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거론한 4년 중임제 개헌은 이론상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5년 단임제를 근간으로 하는 '87년 체제'는 이제 청산해야만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5년 단임제는 타협의 산물이었고 그 타협의 주역들은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5년 단임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줄줄이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난 20년의 정치사는 상당부분 이 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은 취임 초기 과도한 의욕에 사로잡히기 쉽다. 5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도 짧고, 다시는 선거를 치르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재평가를 받아서 다시 한 번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크다. 무언가 업적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조바심은 결국 많은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 더 이상의 표가 필요하지 않기에 국민들과 함께 가려 하지 않고 앞서가거나 가르치려 든다. 다행히 잘 나갈 때는 좋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랬듯 임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지지도가 하락하면 5년 단임제는 최악의 상황을 빚어낸다. 모든 것에 의욕을 잃은 식물대통령이 되거나 '역사가 평가한다'는 식의 독선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넘겨주어야할 것은 넘겨줄 준비를 해야 할 임기말이 이전투구의 난장판이 되어버리는 이유다.  5년단임제는 당사자에게는 가혹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흔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잘 할 수 있는 근거인 '경험'을 단임제의 대통령은 혼자 가슴에 한으로 묻고 물러나야만 한다.다음으로 내각제가 아닌 순수 대

  • 기초과학에 롱테일법칙 지원 지면기사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가 상류층 20%가 국가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80/20'의 법칙을 찾아낸 후 소수 정예의 핵심 시장원리로서 또한 선택과 집중의 경영전략으로서 각광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기에서 그동안 무시되었던 다수의 힘을 드러내는 '롱테일 (long tail) 법칙'이 새로운 대안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롱테일'은 2004년 이후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 시작한 키워드로 최근 이 개념의 창시자인 미국 인터넷 비즈니스 잡지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이 한국을 방문하며 국내에 더욱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롱테일 법칙'은 다수 소액구매자의 매출이 상위 20%의 매출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명 '역-파레토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판매량을 분석해보니 안 팔리는 책도 모두 합치면 소수의 베스트셀러 매출보다 더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른바 '롱테일 법칙'이 온라인 비즈니스의 새로운 전략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롱테일 경제학은 현재 위기에 처한 과학기술, 특히 기초과학의 지원 패러다임의 전환에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80년대 이후 제한된 국가 자원 속에서 고속 경제성장을 위한 응용개발 연구와 국가 과학기술 로드맵에 따른 과도한 선택과 집중은 연구의 대형화·집단화 추세와 산업 투자비중의 강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전략 아래 오랫동안 '쏠림'이 조장된 결과, 대학에서의 기초과학 분야와 창의적 소규모 개인 연구는 '정글의 법칙' 속에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다.한 예로 올해 과학재단의 핵심기초 연구비의 경우 2천여명의 연구자가 신청했지만 그 중 87.2%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지방의 경우에는 연구비 신청 자체를 포기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부산 D대학 모 중견교수의 경우 1년에 SCI 논문을 6편씩 쓰는 연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과학재단과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는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였다. 두뇌한국(BK21)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도 해외에 수시로 보내면서, 막상 엄청난 투자를 통해 어렵게 배출된

  • 군인들을 위한 기도 지면기사

    어떻게 님들을 잊을 수 있습니까/어떻게 님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꽃다운 나이에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다/함께 스러진 슬픈 님들이어/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이 조그만 나라 위해/목숨까지 바친 고마운 님들이어/지금은 이 낯선 땅/돌 위에 새겨진 님들의 이름을/바람과 파도가 기도처럼 불러줍니다/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정다운 별로 살아오는 님들/지지 않는 그리움이여…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사랑으로 새깁니다/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감사로 새깁니다….이 추모시의 일부가 부산 유엔기념공원 추모명비에 새겨져 있다기에 얼마 전 일부러 보러 갔었다. 예전에 해외에서 손님들이 오면 유엔묘지를 꼭 참배하고 싶다고 하여 안내해 준 일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가 보니 참으로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고 기뻤다. 한국전쟁 때 희생된 40만895명의 이름이 나라별로 새겨진 추모명비 앞에서 한참 동안 찡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여중시절 해마다 현충일이 되면 거룩한 예식처럼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게 하고 군인들에게 보내는 위문편지를 정성스럽게 쓰도록 가르쳤던 담임선생님의 영향으로 나는 지금도 6월이 되면 전쟁터에서 희생된 군인들, 지금도 곳곳에서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기로 지향을 갖는다. 어린 시절 전쟁을 직접 겪어서인가 지금도 종종 총소리에 놀라고 어둡고 퀴퀴한 냄새 나는 방공호에 숨어있거나 피란길에 쫓기는 꿈을 꾸기도 한다. 전시가 아닌 요즘은 상황이 매우 달라지긴 했지만 하늘에서 바다에서 육지에서 나라를 지키며 수고하는 군인들에게 우리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새롭게 가져야 할 것이다. 이 6월만이라도 각별하게! 얼마전 강원도 춘천에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 지난 2월에 입대한 조카를 면회하러 갔는데 군부대에서 듣는 뻐꾹새 소리, 무더기로 피어 있는 패랭이꽃들이 유난히 애절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머지않아 100일 휴가를 나온다는 조카는 몸이 10㎏이나 빠진 걸로 보아 그간의 훈련이 꽤 고되었던 모양이지만 안팎으로 훨씬 성숙하고 정돈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40년전 야당의 대통령 후보선정과 오늘 지면기사

    1967년 2월7일은 한국정치사에서 많지 않은 아름다운 날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 날은 당시 백낙준, 유진오, 윤보선, 그리고 이범석 등 야당의 거목 4인이 회담을 통해 신한당과 민중당을 신설합당의 방식으로 통합하여 신민당을 창당할 것을 합의하고, 통합신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윤보선을 선출한 날이다.당시 야당의 거목들, 특히 백낙준 박사의 삶을 민족적 차원에서 평가하는 경우 상당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자 회담 종결 후 백낙준 박사가 발표한 성명서를 읽어보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명력이 여전한 구절들이 있다."…(전략)… 이제 국민제위의 절대적 지원과 신한·민중 양당 수뇌부와 당원 제위의 협력과 재야유지(在野有志)의 독려가 집중하는 가운데 내가 야당통합운동을 추진하는 4인 회의에 참여하여 미성을 이바지할 수 있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제 통합이 완성됨에 있어 국민제위와 같이 이 기적적 성과를 경하한다…(중략)… 내 비록 적은 존재이나 평생을 지켜온 초당적 정신으로 국가민족에 보답하려는 정성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음을 국민 여러분에게 고(告)하는 바이다."성명서에 내포되어 있는 통합, 영광, 기적적 성과, 보답하려는 정성 등은 세월의 변화와 무관하게 정치인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이자 정신이다. 집권을 바라는 정치인에게 현실은 일종의 전쟁일 수밖에 없으니 다툼은 필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정치는 더욱 통합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 치열하게 다투고 난 뒤에 상흔을 치유하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게 흘러가야 국가와 국민에게 울림이 있고 감동을 주는 정치가 가능해진다.사회 구성원들이 바라는 다양한 가치들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정치라는 고전적 정의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원하는 가치들은 다양하기에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재원으로 서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기 때문에 대립은 격렬해질 수밖에 없고, 여기에 삶을 대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잣대나 방식이 상이하면 다툼의 정

  • 지구의를 보는 마음 지면기사

    해묵은 1970년대식 우스개를 소개하자. 한 장학사가 일선학교에 들렀다. 어느 교실에 들어가보니 마침 교탁 위에 둥근 지구의를 올려놓고 지리수업을 하고 있었다. 장학사는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를 가리키며 맨 앞줄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왜 비뚤어져 있지?"학생이 대답했다."제가 안그랬습니다."어이없어진 장학사가 이번엔 교사에게 질문했다."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원래 사올 때부터 그랬습니다."장학사는 교장선생을 모셔오도록 했다. 전말을 듣고 난 교장선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럽게 말했다."원래 국산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우리 사회의 획일성·관료주의·자기비하 등을 뭉뚱그려 비꼰 농담으로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던 내용이다. 그래도 이 농담 속의 교실은 상황이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지구의를 갖다놓고 수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우리들은 대부분 평면지도를 놓고 세계지리를 배웠다. 아시아가 가운데 있는 지도가 우리에게는 상식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쓰는 세계지도는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의 지도에는 유럽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그 지도를 보면 이해가 간다. 왜 서양인들이 우리나라가 있는 지역을 두고 극동이니 동북아니 하고 부르는지를.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로 건너갔으며 어떤 경로로 잔인한 노예매매가 이루어졌는가를. 하지만 가장 큰 깨달음은 당연히 만국공통이라고 생각했던 세계지도가 저마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우리 식 지도를, 서양인들은 서양식 지도를 가지고 있다니! 지금은 한 발 더 나아가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스타일의 세계지도를 고안해낸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 어떤 도법으로도 평면 위에 둥근 지구의 형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도의 근본은 지구의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평면지도가 아닌 둥근 지구의를 놓고 세계를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평면지도에는 중심부와 변방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니치 자오선을 따르면서도 한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