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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혜성처럼 나타났다 유성처럼 사라진 천재 시인 '이언진' 지면기사
다산의 '여유당전서'를 최초로 독파했던 최익한은 자신의 저서인 '실학파와 정다산'에서 다산 정약용의 학문이 성호 이익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가 성호학파에 이언진(李彦璡, 1740~1766)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이언진의 자는 우상(虞裳)이며, 호는 송목관(松穆館)이다. 그는 성호의 조카이자 제자인 이용휴의 제자다. 이용휴는 18세기 조선 문단의 큰 별이었다. 정약용은 말하기를 "이용휴는 명성이 한 시대의 으뜸이어서 무릇 글을 새롭게 바꾸고자 수련하는 자들이 모두 와서 수정을 받았다. 몸은 포의의 반열에 있으면서 손으로는 문원의 권력을 30여 년 동안 쥐었으니 예전에 없던 일이다"라고 이용휴의 위상을 평했다. 성호 이익 조카인 이용휴의 제자정해진 틀 탈피 새로운 문학 시도그의 글쓰기 단약 굽듯 했다는 것 이용휴는 성호의 경세학을 학문의 바탕으로 삼았다. 그러나 당시 학자들이 외면하던 양명학을 비롯하여 불교와 도교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아들 이가환은 조선 제일의 천재로 꼽혀 정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문사이자 정치가였다.이언진이 이런 이용휴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으며 그의 빼어난 재주 덕분이었다. 이용휴는 이언진의 시에 대한 첫인상을 '시집을 펼치자 빛이 괴상하고 번쩍번쩍하여 무어라 형용하기가 어려웠다'고 쓰고 있다. '시는 투식을 없애고, 그림은 격식을 따르지 말자. 정해진 틀은 뒤집고, 남이 가던 길을 벗어나자. 앞의 성인이 가던 길을 가지 말아야 비로소 훗날에는 참다운 성인이 되리라'라는 게 이언진의 시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언진은 정해진 틀, 남이 가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문학을 시도했다. 이언진을 가장 잘 이해해 준 사람은 스승 이용휴였다. 스승은 제자의 시집 '송목관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시문을 짓는 작가는 남의 견해를 받아 제 견해를 세운 사람과 제 스스로 견해를 만들어 견해를 세운 사람이 있다. 제 스스로 견해를 만들어 견해를 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고함과 편견이 개입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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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두 번째 일곱 살 지면기사
이제 한국식 나이 셈법은 사라졌다. 내 또래 친구들은 신이 났다. 원래 나이에서 한 살 빼고 두 살 빼고, 도로 어려졌다. 하지만 우리 집 꼬맹이는 잔뜩 뿔이 났다. 작년, 만 나이 법이 곧 시행된다는 뉴스가 떴을 때 나는 여덟 살 딸아이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너 이제 내년 되면 도로 일곱 살 된다? 아홉 살 아니고?"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상황을 설명해줬더니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썼다. "싫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아홉 살이 되는 건데!" 웃음이 났다. 아니, 밥 먹고 잠자는 거로만 저절로 나이를 먹었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람. 하지만 아이의 반응은 격했다. 열심히 나이 먹은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등교를 하려던 아이가 문득 멈춰 섰다.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엄마, 그러면 나 내년에 2학년 못 되고 유치원 도로 가야 하는 거야?" 고민은 또 있었다. "엄마, 설마… 키가 다시 작아지는 건 아니지?" 알고 보니 우리 집 아이만 그런 건 아니었다. 꼬맹이들 키우는 집들마다 아이들의 한탄에 웃음보가 터졌다.딸아이의 두 번째 일곱 살이 이제 시작되었다. 뙤약볕 비추는 날에 새 나이를 갖는 건 꽤 멋지다. "두 번째 일곱 살이야. 지난 일곱 살에 못 했던 일, 아쉬웠던 일, 다시 해봐." 내 말에 아이가 코웃음을 흥, 친다. "난 아직도 마음이 안 풀렸거든! 일곱 살 된 거 속상하거든!" 푸푸 웃으며 등교시킨 후 나도 출근을 했다. 이제 사라진 한국식 나이 셈법여덟살 딸, 도로 일곱살에 심각 내게도 두 번째 일곱 살이 왔으면 좋겠다. 나의 일곱 살은 언제나 마룻바닥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방 세 개짜리 단독주택이었으나 우리 다섯 식구에게 주어진 방은 한 개뿐이었다. 방 한 개는 작은 부엌을 덧대 신혼부부에게 세를 주었고, 나머지 한 개는 총각 아저씨에게 세를 주었다. 딸기와 포도나무가 있던 작은 마당 닭장에는 신혼부부가 겁도 없이 들여놓은 칠면조 두 마리가 있었고, 엄마는 옥상 장독대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수돗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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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의도적 눈감기와 집단행동 지면기사
딸과 함께 길을 가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한 모텔 앞에 젊은 두 남녀가 마주보고 서 있었고 그 광경을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남의 연애에 관심이 없어 가려는데 딸이 내 팔을 잡아 걸음을 멈추게 하더니 "저 여자가 위험해 보여"라고 말했다. 가만히 보니 남성은 여성을 모텔로 끌고 들어가려 하고 여성은 모텔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여성이 비틀거리는 걸로 보아 술에 취한 것 같았다. 그제서야 내 눈에도 여자가 위험해 보였다. 그런데 두 남녀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 딸이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려고 하며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더니 경찰차가 도착했다. 어떻게 경찰차가 오게 됐는지 알 수 없었으나 경찰차를 본 남성이 그곳을 떠남으로써 그 위험한 상황이 종료됐다. 그 당시 이십 대 초반의 딸이 남을 돕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려던 것이 대견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만약 그때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경찰차도 오지 않아 남성의 힘에 못 이겨 여성이 모텔에 끌려들어 갔다면, 여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길거리에서 우리의 아들딸들이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데 그걸 보고도 도와주는 이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실제로 '방관자 효과'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 '방관자 효과'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나설 것으로 생각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현상을 말한다.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것이다. 불쾌하고 성가신 일 못 본척 하면'방관자 효과'로 끔찍한 일 발생다급한 상황엔 집단행동 더 낫다 마거릿 헤퍼넌의 책 '의도적 눈감기'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어 입력된 정보를 편집하고 걸러야만 한다. 이때 '우리 대부분은 연약한 자아와 중대한 신념을 뒤흔들어 놓는 것들을 편리하게 걸러 내고,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정보들만 통과시킨다'라고 책은 말한다. 즉 우리는 불쾌하거나 성가신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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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망각의 아름다움 지면기사
초등학교 3학년인 내 딸은 '그림책의 시대'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 그 자리에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림은 '삽화'로 축소되어 몇 페이지만에 한 컷씩 등장하지만, 완전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이렇게 삽화가 곁들여진 책 가운데 문득 에리히 캐스트너와 조우했다. 도서관에서 '하늘을 나는 교실'을 만난 것이다. 그날 밤 딸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향수에 푹 젖었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그 문장을 처음 읽던 나와 마주치는 일이니까. 딸이 잠든 후에도 책을 마저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겁쟁이 울리, 걸핏하면 먹을 것 타령인 마티아스, 냉소적인 재담가 제바스티안, 배에 버려진 고아 요니, 금연 선생과 사감 선생님까지. 오래된 친구들과 재회하는 기분으로 행복한 독서를 이어가다가 가난한 마르틴이 여비가 없어 크리스마스에도 기숙사에 남아있어야 하는 에피소드와 마주쳤다. 사감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르틴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부모님과 눈물 젖은 재회를 한 후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별똥별을 바라본다. 이 장면에서 스치듯 나온 마르틴의 대사에 나는 벼락을 맞는 심정이 되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별빛은 벌써 몇 천 년 전의 별빛이에요. 저 빛이 우리들의 눈에 닿을 때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거죠. 지금 보이는 별은 대개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사라졌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빛은 아직까지 여행을 계속 하고 있어요."딸에게 읽어준 '하늘을 나는 교실'10년전 쓴 '개그맨' 같은 구절 놀라 이 장면에서 왜 놀랐냐면 10년 전에 쓴 내 단편 '개그맨'에 이런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문득 그가 들려준 이야기. 우리가 보고 있는 별이 오래전에 죽은 별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원한 것은 별이나 그걸 바라보는 우리가 아닌 빛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죽은 별이 내고 있는 빛이 여전히 우주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과학책에서 읽을 줄 알았는데, 시작은 어린 시절에 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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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시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지면기사
이덕무(1741년 6월11일~1793년 1월25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서예가다. 호는 영처(處)·형암(炯庵) 등 무려 40여 개나 된다. 조부는 이필익, 부친은 이성호, 모친은 박사렴의 딸 반남박씨다. 처는 백사굉의 딸 수원백씨이며, 아들은 이광규, 사위는 유선과 김사황이다.그는 서얼 출신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박제가와 유득공, 그리고 서상수와 성대종 등 서얼들과 어울리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북학파였던 홍대용, 박지원, 이서구 등 사대부와 강세황, 심사정 등의 서화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자신을 '책 읽는 바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학문하기를 즐겨 문자학과 금석학, 그리고 서화에 조예가 깊었다. 혈기 왕성한 20대부터 서얼시사집단인 백탑시사(白塔詩社)의 중요한 일원으로 활동을 주도했다. 1777년 간행된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이 청나라에 알려져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듬해에는 중국으로 가는 외교사절단의 지휘부인 서장관으로 왕복 5개월 동안의 사행 기간에 보고 들은 각종 정보를 기록하여 국왕에게 보고하고 사행단의 비리나 부정을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기균, 이조원, 반정균 등의 석학들과 교유했다. 그는 관직에 있는 15년 동안 정조로부터 520 차례의 하사품을 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정조는 그의 문집을 간행하게 했다.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관직을 그대로 잇게 하는 은전을 베풀었다.연암 "문학이 추구해야할 두가지"갓 태어난 아이가 울고 웃는 '천진'곧장 울음이 터져 속일수없는 '진정' 이덕무는 천성이 소심하고 온건하며 섬세한 사람이었다. 후리후리한 키에 몸은 가냘팠다. 젊은 시절 지독한 가난으로 어머니와 누이가 영양실조로 폐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세상이 알아주는 독서광이었으며 책에 대한 욕심이 많아 귀한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멀고 가까운 것을 따지지 않고 빌려다 베꼈다. 추위로 손가락에 동상이 걸려 부었는데도 베껴 쓰기를 쉬지 않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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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아욱국 향기 지면기사
얼마 전부터 아예 요리를 그만두었다. 그만두었다, 라기보다는 포기했다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재능도 없고 집념도 없는 내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프라이팬을 놀리는 일이 그야말로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제 매주 금요일 저녁, 일주일 치 반찬을 사러 간다. 밑반찬 다섯 종류와 메인요리 다섯 종류, 그리고 국이다. 밑반찬은 반찬통에 담아두고 메인요리와 국은 냉동실에 넣어둔다. 덕분에 내 삶은 제법 여유로워졌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나는 반찬가게엘 들렀다. 2인분씩 담아놓은 국 진열대를 지나다 보니 어라, 아욱국이다. 슴슴하게 된장 풀어 오로지 아욱만 넣고 끓인 국. 국이 담긴 지퍼백을 열면 아욱 향기가 보드랍게 코를 찌르겠지. 두 봉지를 집는다. 오래전 소설 퇴고 위해 횡성 시골로주인 할머니 마당서 뜯어온 채소 중유일하게 제대로 먹은 것은 '아욱' 벌써 오래전, 삼십 대의 나는 어느 날 짐을 싸 들고 횡성 어디쯤 시골 마을로 기어들어갔다. "또 왜! 대체 왜! 너는 나를 잡아먹으려고 이 회사엘 들어왔니?" 상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걸핏하면 한 달씩 두 달씩 쉬겠다고 생떼를 쓰는 나를 익히 보아와서 아주 인연을 끊을 듯 굴지는 않았다. "올 때 로얄살루트 21년산으로 두 병 사 올게요, 진짜로요." 새벽 구름이 지붕에 닿을 듯 낮게 내려앉는 시골집에 수트케이스 두 개를 풀며 나는 마냥 신이 났다. 어영부영 붙잡고 있던 장편소설을 마무리하고 돌아가겠다는 야심이 있었지만 나는 쓸데없이 마당에서 빨래를 삶거나 방바닥을 구르며 음악을 듣거나 했다. 언젠가는 써지겠지, 그깟 장편소설, 언젠가는 나에게 오겠지, 나는 세상만사 다 내려놓은 사람처럼 흥얼흥얼 놀았다. 주인 할머니는 마당에 무언가를 많이도 키웠다. 마당뿐 아니라 골목이 다 텃밭이었다. "아무거나 뜯어먹어. 남의 집 것들도 괜찮아." 토끼 새끼도 아니고, 아무거나 뜯어먹으라니 나는 할머니의 말이 우스워 정말 무얼 뜯어먹을까, 동네를 시시껄렁한 얼굴로 걸어다녔다. 내가 제일 먼저 뜯어온 건 옥수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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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애착하기보다 무심하기를 지면기사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 일반이나 '딸 바보', '아들 바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사랑이 각별한 부모가 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녀에 대해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식을 품에 안고 어떤 일이든 다 해 주려는 '캥거루 맘'과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학업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챙겨 주고 관여하는 '헬리콥터 맘'이란 말까지 있다. 그러나 부모의 과잉보호는 의존적인 아이를 만드는 등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 쉽다.아들이 결혼한 경우엔 어머니가 아들의 결혼 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하면, 고부간의 갈등이 심해져 가정불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고부 갈등으로 생긴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있고, 고부갈등 때문에 이혼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고부간 나쁘고 잘되는 집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한 나머지 며느리 또는 예비 며느리에게 시기나 질투를 느끼는 어머니라면 이 속담을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자녀바보 넘어 헬리콥터·캥거루 맘자식 집착 다룬 서머싯 몸 '어머니'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 비극지나친 사랑도 '조절' 관계유지 지혜 서머싯 몸의 단편소설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강한 애착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한 마을에 얼굴이 사나워 보이는 사십 대의 여자가 이사를 온다. 그녀가 살인죄로 감옥에 있다가 출소했다는 추문이 퍼진다. 그녀에게는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스무 살의 아들이 있다. 아들이 오면 그녀는 애틋한 몸짓으로 아들을 귀여워했다. 그녀는 맹렬한 열정으로 아들을 사랑했다. 아들이 젊은 여자를 쳐다보면 참을 수가 없었고, 아들이 젊은 여자에게 구애하는 상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런 그녀가 아들이 로살리아라는 예쁜 아가씨와 춤을 추는 것을 보자 분을 이기지 못해 신음을 토했다. 춤을 춘 이후 그녀의 아들은 로살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했다.마침내 그녀는 로살리아의 앞을 막고 자기 아들과 무슨 짓을 했냐고 캐물었다. 로살리아가 길을 비키라고 해도 놓아주지 않았다. 로살리아는 그이가 결혼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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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공연 지면기사
이 세상에는 대단치는 않지만 이상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가 알던 세상을 잠시나마 뒤흔들어 놓는다. 지난주 수요일에 내가 겪은 것처럼. 자주 가는 카페가 생겼다. 두 면이 유리 통창으로 되어 실내에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젊은 주인 부부의 바지런한 손길이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곳이다. 무엇보다 필터 커피가 너무나 맛있어서 원고 마감이 있는 기간에는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드나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실내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긴장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다. 엉거주춤 서 있는 손님들도 그렇고, 카페 주인은 주문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말을 더듬는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새 한 마리가 카페 안에 들어와 높은 곳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단골 카페에 새 한마리 들어와한시간 휘젓고 날아… 소동 끝에젊은 남자 손님에게 잡혀 방생 이 카페는 천장에서 육십 센티미터쯤 내려온 곳에 가늘고 긴 주광색 조명을 인테리어 삼아 매달아 놓았는데, 새의 입장에서는 영락없이 나뭇가지처럼 보인 모양이다. 참새도 비둘기도 아닌 새의 정체는 모르겠으나, 당황하는 사람들과 달리 느긋해 보였다. 새는 두 군데의 문이 활짝 열려있지만 도통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문 쪽으로 쫓으려 하면 푸르르 날아 다른 쪽 조명에 앉아버리고, 다시 쫓으면 반대쪽 주방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카페 안을 휘젓고 다니던 새는 내가 처음 봤던 위치로 돌아가 앉았다. '날개 달린 짐승의 유리함은 대단하구나' 속으로 감탄했다. '아래에서 털 없는 원숭이들이 꺅꺅거리며 잡으려고 애를 써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여유롭게 따돌리니 말이야'. 이 와중에도 새로운 손님들은 들어오고, 구경꾼은 늘어난다. 급기야 옆의 식물가게 사장님이 잠자리채를 들고 포획에 나섰다. 그물 달린 막대기가 추격하자 새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이럴 수가, 유리창에 부딪치고 만다. 연거푸 두 번이나. 그리고 날기를 포기한다. 우리 모두는 그제야 저 새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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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조선 문단의 저울대 지면기사
이용휴(1708~1782)는 여주가 본관이며 자는 경명이고 호는 혜환이다. 정치색은 남인이어서 선대 이잠이 장희빈 사건에 연루되어 장살되면서 가문이 몰락의 길을 갔다. 막내 숙부가 성호 이익이었고 택리지를 쓴 이중환이 그의 조카였으며 당대의 천재로 불리던 이가환이 그의 아들이었다. 아들의 벼슬은 형조판서에 이르렀지만 그는 신유사옥 때 죄인으로 몰려 사약을 받았다.그는 조선 문단의 저울대였다. 그렇게 불려지기에 충분할 만큼 글의 깊이를 보는 눈이 탁발했다. 목민심서로 유명한 정약용은 그를 '마음을 쏟아 문사에 전념하여 동국의 비루함을 씻어내고 힘써 중국을 따랐다. 명성이 한 시대에 우뚝하였으므로 탁마하여 스스로를 새롭게 하려는 자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잘못을 바로 잡았다'고 썼다. 그는 문장의 가볍고 무거움을 잘 알았다.막내 숙부 '이익'이었던 '이용휴'글의 깊이 보는 눈 특별히 뛰어나 이용휴는 '참 나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순수했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사물과 나 사이에 조금의 거리도 없었지만 차츰 의문이 생기면서 사물과 내가 멀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침내 나는 시를 원했는데 시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참을 바랐으나 참은 내게서 떠나갔다고, 나는 나를 만나지 못해 오래도록 슬펐다고, 그리하여 그는 돌아가리라, 떠나왔던 첫 자리로 돌아가리라, 덧없는 명성부터 버리리라,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털어버리고 옛 나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니 눈이 맑아지고 귀가 밝아졌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얽어매던 것들이 풀어져나가자 세상에 거칠 것이 없었다. 세상이 더 넓게 보이고 사람이 더 밝게 보였다.그는 그토록 바라던 참 나를 되찾았다. 그것이 환아(還我)다. 그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좋은 시는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 나와 만나고 나를 찾아 내가 되는 것이 환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 안의 거짓 나를 몰아내고 참 나를 깃들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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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스물다섯 마리 병아리 지면기사
나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고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전날 숙제가 있다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짤막한 글짓기를 하느라 끙끙댔다. 평소답지 않게 공을 들이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그날은 학부모 공개수업 날이었고, 아이는 몇 시간 후 '꿈'에 관한 글을 엄마와 아빠 앞에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꿈은 물 연구학자다. 깨끗한 물, 맛있는 물, 건강한 물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일이 분도 안 될 발표 시간을 위해 아이는 한참을 끼적이다 결국 숙제를 끝냈다. 그러고선 옷장 앞에 섰다. "오늘 아빠도 오고 엄마도 오니까 제일 예쁜 거로 입고 가야지!" 생전 옷 투정 따위 하지 않던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우스웠다. 나도 아침을 차리는 내내 무얼 입고 갈까 고민하던 차였다. "엄마는 검정 슈트에다 흰 셔츠를 입을 거야. 너도 잘 골라봐." 아이가 가장 예쁘다고 고른 건 태권도복이었다. 흰 도복에 주황 띠를 매고 아이는 등교했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 참관으로 대신했으니 아이의 교실에 들어가본 건 처음이었다. 아이들의 책상은 하도 작아 조그만 미니어처 같았다.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있었고 저마다 엄마와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딸아이를 쳐다보며 마스크 속에서 함빡 웃었다. 이렇게 크고 있었구나. 이 교실 안에서. '꿈' 이야기로 딸의 공개수업 참관백종원을 '유튜버'로 아는 아이들언제부턴가 저희들 언어로 '소통' 2학년 5반 담임선생님은 '꿈'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꾸 하다 보니 잘하게 되고, 그것이 먼 훗날 직업으로까지 이어지더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래, 꿈이 별건가. 어렸을 적 책만 들입다 읽어대던 나는 책벌레로 자랐고, 결국 작가가 되었다. 전자오락기 게임을 좋아하던 어린 소년은 동네 오락실을 평정했고, 점점 먼 동네까지 원정 게임을 가 승리하고 돌아오더니 결국 게임 개발자가 되었다. 그게 내 딸아이의 아빠다. 선생님은 화면에 세 사람의 얼굴을 띄웠다.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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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헛된 희망의 긍정적 효과 지면기사
만약 자신이 가진 희망이 헛된 것이라면? 헛된 희망이라도 갖는 게 나을까 아니면 헛된 희망은 애초에 갖지 않는 게 나을까? 이에 대해 갑과 을 두 사람이 각자 의견을 개진한다. 갑은 말한다. "저는 헛된 희망을 품어서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로 보낸 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사법시험에 다섯 번 떨어진 사람도 있었고, 가수 오디션에 수십 번 떨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희망은 속임수를 써서 우리를 가서는 안 될 길로 인도합니다. 그런 희망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희망이 물거품이 될 때 희망은 없느니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노예가 되는 걸 경계하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합니다."이번엔 을이 말한다. "저는 정치를 예로 들어 말하겠습니다. 국민들이 좋은 정치가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무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희망 속에 사는 사람은 음악이 없어도 춤을 춘다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헛된 희망이라도 갖는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은 갑과 을 중 누구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나는 둘 다 일리가 있다고 여기지만 '을'의 의견에 동의하련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쥘르 삼촌'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화자가 전하는 이야기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마음속 바라는 것 있느냐 없느냐삶에 중요한 영향… 실현 가능하든 아니든 꿈을 갖고 사는게 바람직 '나'의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나 수입이 적어 '나'의 가족은 절약하며 산다. 아버지의 동생인 쥘르 삼촌은 아버지가 기대를 걸었던 유산을 축내고 빈털터리가 되어 돈을 벌러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 삼촌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기 사업이 잘되어 가고 있고, 여러 해 동안 소식이 없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한밑천 잡으면 돌아가겠으며 그러면 우리는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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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동네 치과 이야기 지면기사
세상에는 신뢰를 얻기 매우 힘든 곳이 있고, 한번 얻은 신뢰는 어지간해서 흔들리지 않는 곳이 있다. 나에게 ○○치과는 그런 곳이다. 젖니에서 영구치로 갈아타는 시기, 엄마를 따라 사거리에 있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여느 꼬마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치과 침대만큼 공포스러운 장소가 또 있을까? 거기에 올라 초록색 턱받이를 하고 조명을 받고 있으려니 제물로 바쳐진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의사 선생님이 다가왔고, 나에게는 거인의 발자국소리처럼 들려 눈을 질끈 감았다.과묵한 의사는 이런 일은 식은 죽 먹기라는 식으로 노련하게 진료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선생님은 절대로 과잉진료를 하지 않았고 비싼 치료를 권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실력이 대단했다. 걱정에 비해 순식간에 치료가 끝나자 가글을 하며 얼떨떨해 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십수년 간 나는 이 치과의 단골이 되었다. 멀리 이사를 간 후에 치과들이 다 비슷비슷한줄 알고 다른 곳에 갔다가 폭탄을 몇 번 맞고 나니 더욱 충성심이 생겼다. 엑스레이를 찍은 후 견적부터 부르는 치과가 많다는 것도, 대형병원이라고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후로 시간을 잡아먹더라도 '치과만은' 이곳을 고수하게 되었다.어릴적부터 신뢰 쌓인 46년된 치과클래식 음악에 치료땐 양처럼 온순 ○○치과는 개원한 지 46년이 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선생님에게 입 속 동굴을 내보였을까? 몇 년에 한 번씩 치과 갈 일이 생기다보니 내게는 치과 일정이 성장기에 살던 동네를 다시 찾아가는 모종의 추억여행이 되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이제는 사라진 서점이며 학원, 만두가게와 이불가게의 간편들이 떠오르고 퀴즈를 풀 듯 어느 곳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헤아려보게 된다. 여정의 끝에 사거리가 나오면 리모델링 했음에도 여전히 낡아 보이는 3층 건물이 보인다. 거리는 번창하고 상점들은 매번 바뀌지만 요지부동으로 변치 않는 것은 이 낡은 건물과 계단을 올라갈 때 나는 소독약 냄새다. 안으로 들어가 병원 의자에 앉아 있으면 항상 들려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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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양심을 점화 시킨 오장환 지면기사
오장환은 1918년 5월15일,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에서 오학근과 후처 한학수 사이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7살이 되던 1924년 회인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4월30일 회인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하고 5월2일 안성공립보통학교로 전학했다. 1935년 1월26일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했다. 같은 해 4월 도쿄에 있는 지산중학교에 전입하였고, 이듬해 3월 수료하였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그는 1930년대에 유행하던 모더니즘 경향을 따르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 11월 '낭만'과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여하였고, 동인들과 교류하며 동인지 제작을 주도했다. 그 해에 첫 시집 '종가'를 출판하려 하였으나 '전쟁'이 검열에 걸리는 바람에 무산되었다.1937년 메이지 대학 전문부 문과 문예과 별과에 입학했다. 이 시기 그는 '자오선' 동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첫 시집 '성벽'을 자비 출판했다. 김기림은 '성벽'을 읽고 '오장환씨는 길거리에 버려진 조개껍질을 귀에 대고도 바다의 파도소리를 듣는 아름다운 환상과 직관의 시인이었다. 그러나 이번 성벽에 골라서 엮은 시편들은 그러한 꿈의 세계, 성숙하고 생각 많은 청년의 정열에 그슬린 고백으로서 꿰뚫려져 있다. 그의 시는 분명히 읽는 사람들의 정신에 정열과 양심을 점화시킨다. 우리는 이 한 권을 통해서 오장환씨의 불타는 정진의 기풍과 아울러 건강한 진전의 방향을 읽었다. 오장환씨는 새 타입의 서정시를 세웠다. 거기 담겨 있는 감정은 틀림없이 현대의 지식인의 그것이다. 현실에 대한 극단의 불신임 행동에 대한 열렬한 지향'이라고 평했다.김기림은 "첫 시집 '성벽' 시편들은꿈의 세계·성숙한 청년의 정열에그슬린 고백으로서 꿰뚫려져 있고그의 불타는 정진 기풍과 아울러건강한 진전 방향 읽었다" 고 평가 시집으로는 1937년 8월10일에 '성벽'을 펴냈으며 1939년 7월20일에 제2시집 '헌사'를 펴냈고 1946년 7월에 제3시집 '병든 서울'을, 1947년 6월에 제4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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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75원의 기적 지면기사
초등학생 아이들과 책 만들기 수업을 한 지 벌써 3년째다. 스무 명 어린이들이 한데 모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판하는 프로젝트이다. 첫 수업 날에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배우는데, 아이들의 눈이 가장 또랑또랑해지는 순간이 바로 '인세'에 관해 배울 때다. 독자가 만오천원짜리 책 한 권을 서점에서 사면 작가는 얼마큼의 돈을 벌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질문하면 저요, 저요! 손을 든다. "만오천원이요!" "에이, 그건 말이 안 되지. 종잇값도 들고 인쇄비도 들고, 서점 주인도 책을 팔아줬으니 돈을 벌어야 하잖아. 작가가 다 가질 순 없지!" 내 대답에 아이들은 입을 삐죽대며 금액을 낮춘다. "8천원이요!", "5천원이요!" 나는 계속 고개를 가로젓고 금액은 더 내려간다. "3천원?" "2천원?" 책 한 권 팔릴 때마다 작가의 인세는 10%라고 내가 답을 알려주면 아이들은 우우, 야유한다. "1천500원이라고요? 말도 안 돼!" 하지만 놀랄 일은 그다음부터다. "우리는 스무 명이 모여 한 권의 책을 만드니까 1천500원을 20으로 나눠야 하는데?" 그래, 한 권이 팔리면 어린이 작가 한 명이 받을 인세는 75원이 된다. 아이들은 꺅꺅 소리를 지른다. 성질 급한 아이들은 책 만들기를 포기하겠다고도 한다. 고작 75원인데 뭐 하러 이렇게 힘들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 하느냐고 소리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중에 돈을 벌어본 적 있는 사람, 손들어 볼까?" 너도나도 손을 든다. 할아버지 흰머리를 뽑아주고 천원을 벌었다거나 엄마 심부름을 하고 이천원을 벌었다거나 하는 거다. "아니, 그런 거 말고. 가족들에게 용돈 받은 거 말고 밖에서 어떤 일을 해서 진짜로 남에게 돈을 받아본 적 있느냐고 묻는 거야." 그러면 일순 조용해진다.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쓰는 글과 그림이 정말 '돈'이라는 것으로 치환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는 듯 아이들은 진지해진다. 20명이 만든 1500원 짜리 책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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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사람 됨됨이와 언어 지면기사
그날은 언어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 날이었다. 지하철 안에서였다. 내 옆 좌석에 앉은 대여섯의 여성들이 수다를 떨었다. 그들은 한 동네에 사는 것 같았고 오십 대로 보였다. 그중 한 명이 "강북 사람들은 왜 강남 사람들을 미워하는 거야?"라고 묻자 다른 이가 "강남 집값이 비싸니까 그렇지"라고 받아쳤다. 처음에 물은 이가 "그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 억울하면 강남으로 이사 오라고 해"라는 말을 던지자 모두 까르르 웃었다.그들이 그런 얘기를 꺼낼 만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얘기에서 서울 강남 지역에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억울하면 강남으로 이사 오라고 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지난해부터 집값 하락이 지속되었으나 비강남 지역에서 강남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억울하면 강남으로 이사 오라고 해'라는 말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로 들렸다. 이 말은 출세할 능력을 가진 자에게는 격려로 들리지만 출세할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조롱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의없는 농담 할지라도 듣는 이의자존심 건드리고 마음에 상처 입혀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면 분위기가 한껏 들떠 있어 누구나 말실수를 하기 쉽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지하철 타고 왔니? 웬만하면 차 좀 사라." "아직도 청바지 입니? 난 너 정장 입은 걸 못 봤어." "양주를 마셔 봐. 그다음부턴 소주를 못 마실 걸." 이런 말들은 악의 없는 농담이라 할지라도 듣는 이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특히 경제 사정이 어려운 이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번에는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책 좀 읽어라. 그래야 대화가 통하지." "그것도 몰라? 얘는 뉴스도 안 보나 봐." 이런 말들은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한 점을 지적함으로써 듣는 이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특히 학력이 낮은 이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 만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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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떠나는 기쁨과 돌아오는 기쁨 지면기사
친구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에게 이것이 특별한 이유는 친구의 집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고, 4년에 걸친 가족여행을 마무리한 귀환이기 때문이다. 두 아들을 둔 친구네 부부는 몇 년 전 집을 샀는데 그때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집이 있으니까, 언제든 떠날 수 있어." 어지간한 일이 생기더라도 돌아올 집이 있으니 오히려 떠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다시 몇 년 후에 캠핑버스를 샀다. 지인이 팔려고 내놓은 것을 운명의 계시로 해석하여 모든 것을 차에 싣고…. 그렇게 라틴아메리카 종주를 시작한 것이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중간중간 일도 해야 했고, 여러모로 대단한 각오를 하고 떠난 모험이었다.가족은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바다와 산으로 돌아다녔다. 어린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라기보다 바퀴 위의 집에서 살아가는 일에 가까웠다. 순조롭던 여정은 파나마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코로나로 모든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결국 자꾸 퍼지던 캠핑카도 처분하고 봉쇄가 풀리자 가족 모두 한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의 나라에서 2년 정도 살다가 이제 다시 아빠의 나라인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4년간 세계일주 가족여행 마친 친구몇년전 집 사고 "언제든 떠날수 있어" 돌아간 친구에게 정말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긴 여행을 하게 되면, 떠날 때의 기쁨과 돌아올 때의 기쁨 중에 어느 것이 더 컸어?"라는 것이었다. 젊은 부부가 아이 둘을 데리고 세계일주의 첫 발을 뗐을 때의 설렘, 산전수전에 코로나까지 겪고 4년 만에 훌쩍 큰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은 성질이 다르겠지만 어느 것의 '진동'이 더 컸을지 궁금해서였다. 이런 질문은 '오디세이'를 읽다가 떠올랐다. 트로이 원정을 떠날 때 오디세우스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이십 대의 젊은 남자였다. 더 큰 세상, 공을 세우고 막대한 전리품을 누릴 수 있는 전쟁이라는 무대로 나아가는 그의 옆에는 아킬레우스와 같은 그리스 최고의 장수와 아가멤논, 아이아스와 같은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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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봄밤 지면기사
매화 꽃 몽우리가 잠 이루지 못하는 봄밤이다. 진달래 붉은 마음이 울렁이는 봄밤이다. 꽃다지 싹들이 서로를 시샘하는 봄밤이다.장옥관 시인은 봄밤을 이렇게 노래했다. '돼지가 생각나는 봄밤이다/돼지감자가 땅속에서 굵어가는 봄밤이다/시커먼 돼지들이 벚나무 아래를 돌아다니는 /봄밤이다 하이힐을 신은 돼지/뻣뻣한 털로 나무 밑동을 자꾸 비벼대는 봄밤이다/미나리꽝엔 미나리가 쑥쑥 자라고/달은 오줌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여린 꽃잎은 돼지의 콧잔등을 때리고/깻잎머리 여중생들이 놀이터에서 침을 퉤퉤 뱉다 돼지를 만나는 봄밤이다 봄밤에는 돼지가 자란다/천 마리 만 마리 돼지들이 골목을 쑤시다가/캄캄한 하수구로 흘러드는 봄밤/풀어 놓은 돼지들을 모두 풍선에 매달아/하늘로 띄우고 싶은/봄밤이다'.'봄밤'의 돼지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일 것이다. 욕망은 진화와 발전의 에너지이기도 하고 절망과 파산의 원인이기도 하다. 정치가 성인 남성들의 안주거리가 된 지 오래다. 안주거리가 진지해지면 서로 핏대를 세운다.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기는 쉽지 않다. 정치인들이 그러하니 국민들도 그렇게 학습되는 양상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거나 미래를 거는 정치적 지향점, 예컨대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서로 먼 길로 들어선다. 서로의 주관성을 인정하고 타협하려는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점점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극단적인 진보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꿈꾸는 밤이지만 현실은 달라홀몸노인들 속풀이 말벗 있어야지자체 보살펴주지만 충분치 못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모든 조직은 좋은 것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형성되며 국가는 그런 조직의 완성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최종 형태이며 최선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국가는 구성원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수립해나가야 하는 책무가 있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외부적인 선, 즉 물질적인 선과 육체적인 선, 그리고 정신적인 선으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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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지면기사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다가 내 첫 산문집을 발견했다. 2013년에 쓴 책이니 딱 10년이 되었다.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그 책의 홍보 카피 중 하나는 '마흔 살 노처녀가 들려주는 소소하고 다정한 이야기'였다. 그 카피를 가만히 쳐다보자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싶다. '노처녀'라니. 2023년 지금 '노처녀'라는 단어는 감히 출판계에서는 쓸 수 없다. 결혼을 못 하고 늙어버린 처녀라는 말을 쓰고도 무사하길 바랄 수는 없을걸.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한 '미혼'이라는 단어도 퇴출된 지 오래다. 이제는 모두 '비혼'이라는 단어를 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를 쓴 걸 보고 내가 정색했다. 아직도 이런 단어를 쓰냐고, 동물이 어떻게 장난감이 될 수 있냐고 야단하는 나에게 학생이 말했다. "사전엔 있는데요?" 사전에 있어도 '애완동물'은 사어(死語)나 다름없다. 이제는 '반려동물'이다. 그러고 보니 십 년 전쯤 어느 국어학자가 신문 칼럼을 쓰며 내 소설을 들먹인 적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오래 지켜온 우리 낱말을 함부로 바꿔쓰는 작가로 나를 호명한 것이었다. 그 학자가 문제 삼은 건 '길고양이'였다. '도둑고양이'라는 올바른 낱말 대신 출처도 알 수 없는 '길고양이'라 썼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가는데 그깟 낱말 따위. 불과 십 년 사이 우리는 다들 변했다. "잘 지냈어? 결혼은 했고? 아직 안 했어? 어쩌려고 그래?" 오랜만에 만나 그런 인사를 건네는 친구는 이제 없다. 무례한 소리라는 걸 이제 안다. 맞벌이인데 남편 밥 안 챙겨주냐고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아내가 늦은 퇴근을 할 때까지 쫄쫄 굶으며 기다리는 남편이 있다면 남편의 친구들도 그를 욕할 것이고, 데이트 비용을 반반 내지 않는 여자가 있다면 그건 같은 여자들에게도 욕을 먹는다. 되지도 않을 끈적한 농담 따위 지껄였다가는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초등학생이 된 내 딸도 "엄마, 여왕은 있는데 왜 남왕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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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오슈코른 영감을 떠올리며 지면기사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튀르키예 지진 같은 굵직한 사건만 큰 비극을 낳는 게 아니다. 다만 마음의 병이 깊어져 슬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오슈코른 영감은 장날에 장터로 가다가 조그만 노끈 오라기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소용이 될 만한 것이라면 주워 모아 두는 게 좋다고 여겨 그 하찮은 노끈을 주웠다. 노끈을 주운 이 행동이 남의 지갑을 주운 행동으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누군가 500프랑의 돈과 서류가 들어 있는 가죽 지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도둑으로 몰린 오슈코른 영감은 결백을 주장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아 밤새도록 앓았다. 이튿날 오후 가죽 지갑의 도난 사건이 해결되었다. 길에서 지갑을 주웠다는 사람이 주인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어서다. 그 소식이 곧 그 근방에 퍼졌고 오슈코른 영감도 그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의기양양해져서 온종일 누명에서 벗어난 자기 얘기를 했다. 길 가는 이를 만나도 그 얘기였고 술집에서 술 마시는 이들과도 그 얘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납득한 것 같지 않았다. 공모자나 공범자를 시켜서 그 지갑을 되돌려주게 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기에 대한 의심이 너무나 부당한 것임을 깨닫고 가슴이 미어질 듯했다. 온통 노끈 이야기에 사로잡혔고 몸이 축났다. 그는 섣달그믐께 앓아눕더니 정월 초순에 죽고 말았다. 이 소설의 제목은 '노끈 한 오라기'로 기 드 모파상이 썼다. 그가 얼마나 억울했으면 앓다가 죽었을까. 그가 앓은 병에는 먹는 약이 소용없다. 자기 말을 누군가가 믿어 주는 것만이 약이 될 뿐이다. 만약 그의 말에 공감해 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오슈코른 영감이 범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뒤부터는 그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라도 한 듯, 지갑이 주인에게 돌아갔음에도 그의 말에 공감해 주지 않았다. 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할 때 필요한 열린 마음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노끈 주워 도둑으로 몰려 앓다 숨져'결백 주장'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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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하얀 담장에 난 초록색 문 지면기사
허버트 조지 웰스는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으로 알려진 초기 SF의 대표적인 작가다. 그의 단편 '담장에 난 문'을 읽다가 '나, 이 이야기 알아, 이건 내 이야기야'라는 강력한 느낌을 받았다. 책 속 장면에 기시감을 느끼며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이건 정말 생각지도 않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빨아먹는 몰아의 순간이다. 나는 읽던 페이지에 손가락을 끼운채 지금 막 떠오른 기억에 사로잡힌다. 어쩌면 책 읽기란 나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를 캐는 행위인 것 같다.'담장에 난 문'의 주인공은 다섯 살 때 거리를 걷다가 '하얀 담장에 난 초록색 문'을 발견한다. 어린 윌리스는 망설이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아름다운 정원에 많은 사람들이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고, 왠지 모르게 퓨마 두 마리도 있다. 윌리스는 친구들을 만나 재밌게 놀다가 한 여자의 손에 이끌려 책 한 권을 보게 되는데, 거기에는 지금까지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 책 속에서 문 앞에 서 있는 조금 전의 자신을 발견하자 어느덧 정원 밖으로 나오고 문은 사라져 버린다. 그 후 윌리스는 평생에 걸쳐 '담장에 난 문'을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정원과 퓨마에게 끌리면서도 번번이 그 문을 지나쳐 버린다. 보다 중요한 문제와 사회적인 책임과 급박한 일이 생긴 탓도 있지만 이상한 거부감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야기의 주인공이 늘 그렇듯이…. 결말은 각자 읽어보시라. 이 작품은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독특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매우 보편적인 일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은유를 풀어버리면 '우리는 혼자서 간직하던 몽상을 평생에 걸쳐 주기적으로 마주치게 되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기시감이라고 불리는 감정의 덩어리. 몹시 끌리면서도 번번이 외면하게 되는 초록색 문과 같은 나만의 세계.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잊고 있던 꿈들이 떠올랐다. 웰스의 소설로 잊고있던 꿈 떠올라혼자 간직하던 몽상을 주기적으로마주치게 되지않나 라고 자문한다 사십대에 막 들어섰을 때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