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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th+] 퇴행할 결심

    [with+] 퇴행할 결심 지면기사

    안동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에서 낭독회 일정이 잡혔다. 인천에서 1호선을 타고 한시간 넘게 걸리는 청량리역으로, 다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2시간을 달려서 안동역에 도착했다. 이제 안동역에서 급행버스를 타고 한시간 넘게 걸리는 이육사 문학관까지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육사문학관이 초행임에도 어렵지 않게 교통정보와 경로를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건 인터넷 지도앱을 통해 검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발하는 장소와 도착할 장소를 입력하고 출발하는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면 자세한 경로와 각각 교통수단의 걸리는 시간, 그에 따르는 교통비,

  • [with+] 노란 복숭아의 계절

    [with+] 노란 복숭아의 계절 지면기사

    수돗물을 틀어놓은 채 복숭아를 박박 문질러 씻었다. 말랑한 복숭아 껍질이 물에 씻겨 마구 벗겨졌지만 그래도 박박 문지른다. 포슬포슬했던 껍질의 털들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래야 마음이 놓인다. 습관이다. 수돗물을 머금은 복숭아는 맹맹한 것이 영 맛이 없었다. 아버지는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었다. 뭐든 할 줄 알고, 뭐든 제일 잘하는 아버지의 기억이란 세상 모든 딸에게 영웅담 같은 기억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네모난 도시락을 매달고 퇴근한 아버지는 ‘하이바’를 벗기도 전 양팔에 매달리는 딸들을 아무렇지도 않

  • [with+] 잠과 책을 끼워 넣은 생각의 여행

    [with+] 잠과 책을 끼워 넣은 생각의 여행 지면기사

    나는 같은 장소에 머물면서, 그곳을 완전히 다른 장소로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손쉬운 마법을 알고 있다. 바로 잠을 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의 낮잠. 도서관은 폭염을 피하기 위해 여름에 특히 인기가 많은 장소다. 용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이 행운을 보답하기 위해 맹렬하게 읽고 쓰려 하지만 어느덧 잠이 쏟아진다. 나는 팔로 턱을 고이고 책을 읽는 척 끄덕끄덕 졸다가, 완전히 잠 속으로 침몰한다.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눈앞의 공간은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실제로 주변 사람 일부도 바뀌었다. 새로운 기분으로 읽다 만

  • [with+] 버섯을 찾아서

    [with+] 버섯을 찾아서 지면기사

    엊그제,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숲속에 들어갔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너울거리며 길을 막았고 바닥의 검은 흙과 부엽토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채 반들거리고 있었다. 막 생명을 피워낼 것 같은 기름진 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땅을 비집고 쑥쑥 올라오는 것들은 다름 아닌 각양각색의 버섯이었다. 촉촉한 땅 위로 힘차게 뻗는 버섯들을 보니 내가 버섯에 눈을 뜨게 된 2021년의 특별했던 여름이 떠올랐다. 어느 날 산에 갔는데 길가에 다양한 형태의 버섯들이 바닥을 덮을 만큼 만발해 있었다. 너무 많아서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지나칠 수 없을 정

  • [with+] 질투 다루기

    [with+] 질투 다루기 지면기사

    오래 전이지만, 외국을 가보고 쓴 것 같은 시나 소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때가 있었다. 시에서 프랑스 어느 지방 소도시의 멋진 풍경이 나오거나 소설에서 어디 독일의 기차역, 이탈리아의 무슨 해변 어쩌구 하는 구절이 나오면 갑자기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2학년 때 자퇴하고 오토바이 배달을 하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라 심사가 꼬일대로 꼬였다. 사는 게 편해서 해외여행도 가고 거기서 글도 쓰고 하는구나, 두고 보라지 그런 말랑하게 관조하는 그럴듯한 글이 아니라 진짜 글이 뭔지 보여주마, 하고 생각했다

  • [with+] 소설 쓰는 아이

    [with+] 소설 쓰는 아이 지면기사

    열두 살 딸은 요즘 매일 하굣길에 뛰어 들어온다. 이 더운 날 그냥 사부작사부작 그늘 따라 걸어올 일이지 어쩌자고 땀을 빨빨 흘리며 저러는지. 양말 벗어던지고 손을 씻자마자 아이가 앉는 곳은 식탁 앞이다. 책가방에서 딱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낸 뒤 노트북을 연다. 수첩에는 쉬는 시간마다 써둔 메모가 있고, 수첩을 넘겨 보며 노트북에 부랴부랴 쓰기 시작한 것은 그래, 소설이다. 아이가 없는 동안 슬그머니 읽어보았는데, 줄거리는 도통 아리송하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타임슬립인가 싶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소년이 등장하고, 판

  • [with+] 커플 사이에 끼어 여행하기

    [with+] 커플 사이에 끼어 여행하기 지면기사

    이번 여름에는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짧은 여행이야 하겠지만 여름마다 나름 길다면 길게 떠났던 여행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했다. 그래서 지나간 여행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그 여행은 두 가지, 아니 세 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 의미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알았지만. 나는 자동차에 타고 있다. 통영에 가는 길이었다. 내 친구들, 남자와 여자이고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앞좌석에 타고 있다. 나는 그 지역에 가야할 일이 생겼는데, 일 자체는 중요하지만 금방 끝나고 보수도 생길 일이었다. 친구들을 꼬드겨 며칠간 남도를 돌자고 나

  • [with+] 조선의 침뜸

    [with+] 조선의 침뜸 지면기사

    며칠 전 한 달간의 침뜸 공부가 끝났다. 자기 살이 아플까 한 번에 콱 찌르지도 못하고, 좁쌀만한 뜸을 태우며 비명을 질러대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성취한 느낌이 있었다. 이 길로 쭉 가면 내 몸은 내가 다스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예전에 잠깐 침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것 가지고는 크게 모자랐다. 정 급할 때 내 몸을 찔러대는 것 말고는 별반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몸은 예고도 없이 병을 달고 나타났다. 병원에 가기도 애매한 증상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나를 겁주는 건, 지금이라도 침뜸을 다시 배우라는 명령

  • [with+] 엄마처럼 행복해지는 방법

    [with+] 엄마처럼 행복해지는 방법 지면기사

    초등학교 시절, 남자 부반장 엄마가 반 친구들에게 돌린 빵을 먹지 않고 집에 가져갔다. “남자 부반장 엄마가 반 애들한테 빵을 돌렸어.” 엄마는 그 빵을 맛있게 드셨다. 나는 그때 여자 부반장이었는데, 엄마도 반 아이들에게 빵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다. 빵맛을 칭찬하고는 끝이었다. 내가 무사히 입시를 치르고 서울로 대학에 다니게 된 것도 별로 기뻐하지 않으셨다. 인천에 있는 가까운 학교에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지는 걸 싫어하고 뭐든 일등을 해야 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성공보다 행복이 중요한, 한국에서 보기 드문

  • [with+] 혐오의 시대

    [with+] 혐오의 시대 지면기사

    아침 출근길. 공항전철을 타고 바다를 건넌다. 사람들의 얼굴엔 희미하게 조금씩 짜증이 묻어있다. 첫 몇 개월은 도시락을 싸갔다. 김치 조금, 구운 스팸 몇 조각, 그리고 계란프라이 세개, 그리고 흰밥 가득. 지하철에서 김치 냄새가 나면 어떻게 하냐고 한 동료가 물었다. 김치는 밀폐용기에 담기 때문에 크게 냄새가 날 것 같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 김치 냄새를 두려워하랴. 어느 날 전철 의자에 앉는데 옆 사람이 인상을 찡그리더니, 큰 목소리로 “아, 김치냄새!” 하고 소리쳤다. 너무 놀라 돌아봤는데, 그 사람은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재차

  • [with+] 시동이 잘 꺼지는 차를 운전하려면

    [with+] 시동이 잘 꺼지는 차를 운전하려면 지면기사

    하루 종일 일할 생각으로 오전에 일찍 일어났다. 최근에 시작한 러닝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한다. 식사를 차려서 맛있게 먹는다. 여기저기 어질러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옮겨놓고 청소를 한다. 다시 출출해져서 가벼운 간식을 먹는다. 작업물을 프린트하고 가방을 챙긴다. 자전거 열쇠를 챙겨 나와 이십분 정도 이동한다. 도서관 의자에 앉아 시계를 보자 오후 다섯시다. 이럴 수가 있나! 오전부터 게으름을 부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오후가 저물어갈 판이다. 시간에도 누수가 있어 어딘가 지독하게 새

  • [with+] 노인과 딸

    [with+] 노인과 딸 지면기사

    너무 웃긴 얘기지만 나는 오래 전, 출판사의 종잣돈을 마련하려고 새우젓 장사를 한 적이 있다. 그걸 했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하면 한 달가량 새우젓 몇 통을 팔았을 뿐이다. 숫기가 없고 자의식에 차 있던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장사를 한다는 건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점포도 없이 막연하게 시작한 ‘오뉴월 땡볕’은 내가 소꿉장난처럼 조몰락거리다 곧바로 문을 닫은 가게 상호였다. 나는 왜 하필이면 새우젓을 팔려 했을까? 30여 년 전 초가을, 시골에 내려갔더니 엄마가 광천(독배 새우젓으로 유명한 충남 홍성에 있는 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