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
[with+]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장소 지면기사
합정역 인근의 카페에서 기자를 만나 신간 소설에 관해 인터뷰를 했다. 미래에는 젊음을 사고 파는 시대가 오고, 가난하고 젊은 사람들이 돈이 많은 노인들에게 호르몬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노인의 인생이 행복한가 하면 그 반대다. 겉모습만 젊어진 노인들은 신체 나이만 비슷한 젊은이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해 외롭다. 물질만 사랑하고 내면과 정신의 가치를 잃어버린 우리 세대는 필연적으로 노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과거에 노인들은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삶의 지
-
[with+] 오랜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 지면기사
일만 하고 놀지 못해 스트레스 받던 차에, 머리나 식힐 겸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최근에 개봉한 영화 ‘F1’을 보았다. 오래도록 하부 리그를 전전하던 은퇴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나이의 카레이서가, 가장 유명하고 가장 빠르며 기술적으로 정교한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여 노력 끝에 결국 우승을 하는 이야기다. 만원 정도의 가격이면 집에 편히 누워서 수백 수천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OTT 세상이 있는데 굳이 두 배의 돈을 주고 단 한 편의 영화를 위해 교통체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좀 손해 보는 것 같은 시대가 왔다지만 거대한 화면과
-
[with+] 첫 계모임 가는 날 지면기사
어렸을 적 안방 한쪽에 놓인 개다리소반에는 늘 엄마의 두툼한 장부 책이 있었다. 까만 표지에, 안을 들춰보면 빨간 줄과 파란 줄이 죽죽 그어진 노트에 엄마가 쓴 자잘한 숫자가 가득했다. 어른들은 무슨 계산을 저렇게나 많이 하는 걸까?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터지면 어떡하지? 우리가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앉아 귤을 까먹거나 고구마를 먹을 때도 엄마는 장부 책을 펼쳐놓고 무언가를 열심히도 써 내려갔다. 귤 한쪽 내밀어도 “응응”, 무심하게 대답할 뿐 엄마는 계산에 열중할 뿐이었다. 무릇 어른들의 삶이란 저런 거구나 했다. 엄마는 계주였다
-
[with+] 페더탑과의 첫 대화 지면기사
내 친구들 가운데 챗GPT를 마지막으로 쓴 사람은 바로 나인 것 같다. 오픈AI가 세상에 나온지 이삼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느덧 주변 사람들도 하나 둘 사용자의 대열에 합류하더니 일과 생활에 활용하고 있었다. 오래전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도 나는 끝까지 저항하다가, ‘아몰레드폰’인가 뭔가를 막판까지 쓰다가, 누군가 내 휴대전화 위로 맥주를 쏟아 모든 연락처를 품고 장렬하게 사망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바꾼 전력이 있다. 그럼에도 나와 비슷한 내 친구의 말마따나 ‘스마트폰을 쓴지 십년 조금 넘었는데 전생부터 써온 것
-
[with+] 취미, 내면의 울림- 옛사람의 물건 사랑 방식 지면기사
우리는 종종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여기서 ‘전문적이지 않다’는 것보다는 ‘즐기기 위해 한다’는 말에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취미란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성을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취미생활이 늘 사회적으로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일은 산업화가 진행되던 근대기에 여가 문화가 도입되면서 비로소 가치 있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
-
[with+] 꿈의 작업장 지면기사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길에 도자기 매장이 있다.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매장은 닫혀있을 때가 많다. 가끔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둥근 항아리와 손자국으로 이지러진 찻잔과 화병이 전시되어 있고 한쪽에는 물레가 놓여있다. 벽에는 ‘과천요’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손님이 없으니 매장이 곧 사라질 것만 같아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가정의 달’이라며 작약꽃 한 다발을 보내준 지인 덕에 나는 그 매장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꽃을 꽂으려면 화병이 큼직해야 하는데 이참에 번듯한 달항아리를 가져야겠다는 욕심을 낸 것이다. 거기에서 도예가
-
[with+] 김장철이 왔다 지면기사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때아닌 김장 얘기를 한번 해야겠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김장할 때는 무덤 속의 시체도 일어나서 돕는단다.” 이번 김장에는 좀 빠질까 해서 이것저것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 일할 때 TV나 보고 수육 먹을 생각이나 하며 뺀질대지 말고 예외 없이 모두 나와서 도우라는 당연하고도 지당한 말씀이다. 대단한 종가집도 아닌 평범한 가정집이었지만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 때는 일곱식구가 일년을 먹으려면 배추를 50포기에서 70포기는 담갔던 것
-
[with+] 원고를 넘기는 방법 지면기사
소설가 후배가 작품을 좀 읽어달라 청해왔다. 바쁜데…. 거절하고 싶었지만 실은 거절 같은 것 잘 못하는 사람이라 알겠다고 끄덕였다. 후배는 곧 이메일로 파일을 보내왔다. 열어보고선 화들짝 놀랐다. 워드 문서 따위 아닌 PDF 파일이었는데 얌전히, 보기 좋게 조판을 끝낸 편집디자인 완료물이었던 거다. 나는 읽기도 전에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편집까지 할 줄 아는 거였어?” 후배가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읽어봐달라고 부탁드리는데, 아무렇게나 드릴 수도 없고요… 편집이야 금방 배울 수 있는 거니까 배워두면 좋잖아요.” 후배의
-
[with+] 나의 병실 친구, 강명자씨 지면기사
전신마취 할 일이 생겼다.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병원이나 수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나의 병실친구, 강명자(가명)씨의 이야기다. 느닷없이 큰 수술을 받게 되어 뒤숭숭한 마음으로 나는 4인실 간호병동에 입원했다. 운 좋게 첫날은 아무도 없었기에 창가 쪽 명당자리에 당첨이 되어 짐을 풀었다. 짐이 좀 많았다. 열두 권의 책을 비롯해 독서대와 가습기, 허리쿠션과 작은 스탠드, 안대, 텀블러와 빨대컵, 아무튼 병원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편의를 도모해줄 온갖 사물들을 챙겨와 제자리를 잡아주니 커튼으로
-
[with+] 무명(無名)을 위하여 지면기사
19세기 파리에서 주로 활동한 르누아르에게는 같은 도시에서 화상(畫商)으로 일하던 볼라르(Ambroise Vollard, 1866~1939)라는 친구가 있었다. 르누아르가 볼라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고전주의 회화에 반기를 들고 빛의 오묘함을 따뜻한 색채로 표현하는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평론가들의 냉대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인상파 회화를 이해하고 르누아르의 가능성을 믿었던 볼라르는 그의 전기를 펴내고 작품을 사들이는 한편, 전시회를 열어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사람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