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대안학교 설립 등
공동육아 목적으로 첫 발
부모들도 아이와 함께 성장

초창기 교육모델 벗어나
사회적 공동체 하나 둘 생겨
대보름 행사 등으로 결속

마을신문 통해 주민들과 공유
지역문제도 함께 해법 모색
삶의 가치 ‘개인 → 공공’ 변화


지난 1일 오후 4시 수원시 호매실동 자목마을에 펼쳐진 논. 달력은 봄을 알렸지만 여전히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의 ‘정월대보름 축제’를 위해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이 볏짚을 쌓고 쥐불놀이를 하기위해 깡통에 구멍을 뚫는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주민들과 아이들은 꽤 익숙한 듯했다.

제법 큰 아이들이 모여 앉아 볏짚을 꼬아 줄을 만들자 꼬마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지 위에 소원을 담은 그림을 그려 줄에 매달았다. 아이와 함께 축제에 나온 한규성 (44)씨의 말이 인상 깊다. “마을 사람들 얼굴 보러 나왔죠.

이 많은 사람들이 날씨도 추운데, 고생스럽게 아이까지 데리고 이 곳에 나온 건 서로 보고 싶으니까 나온 거예요.” 겨울 끝자락 바람이 매서웠지만, 사람들의 얼굴엔 이미 봄이 번지고 있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강한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다. 위기가 지나고 나면, 깊은 뿌리를 토대로 여러 갈래 줄기를 뻗고 열매도 맺을 것이다.

이날 자목마을에서 만난 ‘행복한 칠보산마을 공동체(이하 칠보산 마을)’는 15년을 이어 온 뿌리 깊은 공동체다. 보통 마을공동체의 시작이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에서 비롯되기 쉬운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소수 주민들이 자발적 의지로 공동체를 출발시켰다. 어떻게 15년을 이어왔을까. 호기심보다는 의구심이 앞섰다.

칠보산 마을의 마을신문을 만들고 있는 최창규 (45)씨의 답이 꽤 명쾌하다. “15년을 쌓아온 인맥이 원동력이죠. 아이들 교육문제로 시작했지만, 공동체 속에서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부모들도 성장했어요. 그 성장의 밑거름은 주민들이 끈끈하게 엮어 온 신뢰와 정이에요.”

현재 칠보산 마을 속 공동체는 10여 개에 이른다. 칠보산 마을의 시초가 된 공동 육아 협동조합 ‘사이좋은 어린이집’과 ‘사이좋은 방과후’, 대안학교인 ‘자유학교’ 등 교육공동체를 비롯해 도토리교실, 한살림지역모임, 청소년 공부방, 마을신문, 꽃밥상, 마을연구소 등 문화공동체들이 연합돼 있다.

또 이 곳에서 줄기를 뻗은 칠보농악전수회, 술빚기 모임 등 동아리 성격의 소모임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공동육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여기저기서 부모들끼리 공동육아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2000년 칠보산 마을에서도 공동육아 공동체를 시작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죠. 이후 2001년에 ‘사이좋은 어린이집’이 문을 열고 이 곳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성장하잖아요. 어린이집 만으론 안 되겠다, 같이 또 다른 걸 만들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 다음 해인 2002년에는 ‘사이좋은 방과후’를, 2005년에는 아예 대안학교인 ‘자유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함께 교육했어요.”

칠보산 마을은 ‘다 같이 아이를 키우자’는 부모들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직접 교사를 선발하고, 교육과정을 의논했다. 우리의 전통문화도 알려주고 싶었고, 자연을 벗 삼아 자유롭게 뛰노는 방법도 가르치고 싶었다.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사는 방법을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그 방법을 논의하다 보니 부모들이 공동체의 삶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가 한 뼘씩 성장할수록 부모들도 건강한 삶의 가치를 쌓아나갔다.

“어느 정도 교육 공동체들이 기틀을 잡고, 아이들도 중고등학생이 되자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게 익숙해진 초창기 부모들이 교육을 벗어나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2008년 정도에 초창기 부모들이 모여 ‘OB모임’을 만들었고 그때부터 교육공동체의 틀을 벗어나 사회적 공동체들이 하나 둘 생겨나는 계기가 됐죠.”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한살림 지역모임을 결성했고, 자유학교 교사들이 도토리 학교를 만들어 생태교육을 위한 작업장으로 활용했다. 그렇게 공동체가 늘어나자 마을의 화두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하나로 뭉쳐볼까’로 떠올랐다.

“전통문화 교육을 위해 공동체 초창기부터 매년 ‘한가위’와 ‘정월대보름’ 행사를 해왔어요. 뭉치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이 두 행사가 떠올랐죠. 그럼 다 같이 행사를 준비하고 즐겨보자. 각각의 공동체 대표들과 실무진을 선발해 해마다 4~5차례씩 만나면서 함께 하는 행사를 어떻게 잘 해볼까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2번의 축제를 같이하는 것만으로 의미는 끝나지 않았다. 축제를 함께 준비하니 ‘다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강해졌고 공동체 구성원들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까지 의식의 범위가 넓어졌다.

한가위 행사에 일반 주민들을 초대하고, 마을신문을 창간해 마을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일반주민을 대상으로 ‘주민기자학교’를 열어 참여의 기회도 확대했다.

공동체로 묶인 주민뿐 아니라, 일반 주민까지 칠보산 자락 밑 ‘공통의 마을정신’이 형성됐다. 우리끼리 잘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데 앞장섰다.

마을신문 편집장인 이계순(41·여)씨는 공동체 활동을 통해 삶의 가치가 ‘개인’에서 ‘공공’으로 넓어진 경험을 소개했다.

“아이를 자유학교에 보내고 싶어 이 곳에 왔어요. 마을신문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자유학교 학부모들과만 교류했겠죠. 마을신문을 편집하면서 우리 마을에 대해 더 잘 알게 됐고 마을의 당면과제를 고민하게 됐어요. 한창 서수원이 개발되면서 우리 마을은 택지개발로 들썩였고, 대형마트를 앞세워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자 칠보상인들이 구도심, 구상권으로 전락해 어려움에 처했어요. 마을신문이 이 문제를 수면 위에 올리자, 공동체들이 함께 머리를 모았고 구상권에 주민문화공간을 만들자는 대책이 나왔죠.”

그 대책으로 구상권에 ‘칠보문화놀이터’를 만들었다. 구상권에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주민들도 계속 구상권을 찾을 것이다.

“칠보상인회 대책협의회 사무실을 놀이터로 만들기로 하고 수원시 마을 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2천만원을 지원받았어요. 하지만 리모델링하는데 총 4천만원이 필요했어요. 모자라는 2천만원을 어떻게 해야하나 논의했는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1천만원을 기부했고 펀드를 모집해 또 1천만원을 모아 비용을 충당했죠. 10년을 넘게 쌓아온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깁니다.”

칠보문화놀이터는 365일, 24시간 주민 공간이 돼 다양한 동아리 활동부터 모임장소, 강의실로 활용되고 지난해부터는 구도심을 연구하는 ‘마을연구소’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칠보산 마을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삶이 단순히 이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건강한 기운을 얻었다. 자유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 이 곳으로 이사 왔다는 공동체 2년차 한 학부모는 이날 대보름 축제에 처음 참여했다. 주민들을 잘 모르는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여러 명이 다가가 말을 건넨다.

아마 다음 해, 그는 자유학교가 아닌 다른 공동체에 참여해 1년 전 자신처럼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입생’에게 말을 걸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들었다.

/글=공지영기자·사진=하태황기자·칠보산 마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