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인칼럼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경인칼럼] 인공지능과 양극화 지면기사
美 로보택시 저지 시위 '21C 러다이트운동'혁신시대… AI 가세 노동의 미래 더욱 불안IMF총재 "선진국 일자리 크게 위협" 우려'새로운 사회경제적 패러다임' 실효성 의문1811년 3월부터 잉글랜드 중부 노팅검의 소도시 아놀드(Arnold)의 방직공들이 수십명씩 떼로 몰려다니며 공장의 기계들을 파괴했다. 이들은 기업주와의 협상에서 저임금 해소를 요구했으나 실패하자 다시 법률에 호소했음에도 별무성과여서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이후 요크셔, 랭커셔 등 신흥공업지대로 확산되어 8개월만에 무려 1천대 이상의 방직기들이 파괴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러다이트(Ludditte)운동이다. 산업혁명에 따른 기계화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던 절박한 사건이었다. 이 운동은 자본가들과 결탁한 정부의 강경 대응, 산업자본주의의 외연 확대 등으로 종식되었다.지난해 8월 자율주행 택시(로보택시) 운행을 전면 허용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세이프 스트리트 레벨'이란 명칭의 한 시민단체가 로보택시에 고깔모양의 주황색 '러버(고무) 콘'을 얹어놓는 방식으로 운행을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차량의 전면에 부착된 자율주행 센서에 콘을 씌워놓으면 로보택시가 운행하지 못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자율주행택시가 교통혼잡 유발은 물론 심지어 보행자를 치어 사망케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버 등 공유업체 운전자들은 로보택시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인근에서 한 무리의 군중들이 로보택시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세이프 스트리트 레벨 관계자는 자신들의 시위가 인공지능(AI)에 대한 최초의 물리적 항의라며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으로 칭했다.기술적 실업이란 기술진보에 따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기계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마르크스실업이라고도 한다. 마르크스는 기계화를 하면 기술 진보가 수반되는데 그 결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노동절약적 생산이 보편화되면서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을 구축(驅逐)한다는 것이다. 소위 산업예비군론의 이론
-
[경인칼럼] 사적탐닉의 도구로 전락한 선거 지면기사
비주류 배제·제거위한 공천제도 혁파 절실입당 한달도 안돼 등판 정치 빙자 '권력놀음'사법리스크 '정치적 방탄' 방치… 與 책임 커적대적 공생구도 강화… 정치 너무 꼬였다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의 판세는 더불어민주당의 우세다. 보름 동안 어떤 변수가 돌출할지 알 수 없지만 여당은 다 이긴 선거를 놓치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 막말과 여권의 악재를 일거에 해소한다면 승패는 또 다시 갈릴 수 있다. 어느 측이 이기든 22대 총선은 21대 국회 못지 않은 증오와 적대의 정치를 잉태하는 최악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선거기간 내내 의정갈등이 지속됐지만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등 어느 정당도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지난 주말에야 관심을 보였지만 지지율 정체를 면하기 위한 생색내기용이었다. 여야 정당과 후보들에게 선거는 국가적 현안보다 사적 욕망을 충족하는 정치 행사일 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첫째,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정치과정이다. 한편으로는 권력투쟁을 동력으로 선거는 진행된다. 그래서 공천에 일정 부분의 소란과 부조리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명징하게 특정 정파의 이익과 개인의 권력탐닉이 지배적 동기로 작동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파괴로 이어지는 게 자명하다. 공천은 선거의 반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상향식 경선이니 국민참여경선이니 하는 제도가 나왔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형해화됐다. 전략공천, 우선추천, 단수추천, 지역구 돌려막기, 자파 정치인 내려꽂기 등 갖은 형태의 공천이 등장하면서 공천은 권력을 가진 주류세력의 전리품에 다름 아닌 과정으로 전락했다. 정치의 속성이 권력투쟁이라 하더라도 이에는 유권자 일반이 납득할 수 있는 경계 안이어야 한다. 조선시대 서인과 남인의 대결 구도가 갖은 편법과 모략으로 얼룩지고 결국은 상대방을 살육하는 참사로 이어진 붕당정치의 폐해를 재연할 게 아니라면 오늘의 공천제도는 대대적 수술을 통해서 개혁해야만 한다. 시스템 공천으로 치장한 공천제도가 비주류를 배제·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으려면 공천제도의 혁파가 절실하다.둘째, 후
-
[경인칼럼] 초식동물 같은 인천 언론 지면기사
인천공항公 항공MRO 직접수행 법안 폐기부산·경남 지역언론 '사천 청신호' 보도발전 기대 적극 호응… 결기 가득한 바람인천 언론, 쟁점 불구 싸울 의지도 안보여3월, 남녘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결이 사납다. 소름이 돋을 정도다. 지난 13일 부산·경남지역 언론이 불러일으킨 바람이 그랬다. 부산일보는 '인천공항 정비업무 수행 법안 폐지…사천 항공MRO 탄력?'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했다. '경남 사천시의 항공기 정비(MRO) 산업 육성에 청신호가 켜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항공 MRO 직접 수행을 담은 관련 법안이 폐기됨에 따라 관련 산업이 사천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같은 날 경남일보도 '사천 항공MRO사업 도약 탄력 받나' 제하의 기사를 이렇게 실었다. '사천 항공MRO 사업이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그동안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항공MRO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추진해 온 인천국제공항공사법 개정 법안 중 항공기정비업 및 항공기취급업의 직접 수행 부분이 담겼던 법안이 사실상 폐기됐기 때문이다'.이외에도 인터넷 매체를 포함한 많은 언론이 유사한 제목과 내용의 기사를 이날부터 싣기 시작했고, 블로그들은 열심히 퍼서 날랐다. 전날 사천시가 배포한 보도자료가 바탕이 됐을 것이다. 사천시는 생뚱맞게 왜 그 시점에 그런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뿌렸을까.부산·경남지역 언론이 일제히 '인천국제공항공사 MRO법안 폐기'를 보도한 바로 다음날, 인천 영종도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대한항공 신(新) 엔진 정비공장 기공식이다. 2016년부터 대한항공이 운영 중인 영종도 엔진시험시설 인근에 오는 2027년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항공기 엔진정비단지가 들어선다. 완공되면 대한항공의 정비 가능 엔진 대수는 연간 100대에서 360대로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국내 항공사 정비 물량은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지역 항공사 물량까지도 소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없던 고부가가치산업의 새로운 활주로가 펼쳐지는 것이다.앞서 지난 7일에는 인천 MRO의 이륙을 뒷받침하려는 정부의
-
[경인칼럼] 아름다운 것과 '실한 것' 지면기사
아름다움, 실용 가치서 기원했다는 주장현대적 美는 유미주의적 경향 더 뚜렷해경영자가 보는 아름다움은 곧 '상품성'오동통한 닭이 예쁘다는 할머니와 같아온라인에서 본 동영상 중에 시골 할머니가 닭잡는 행동을 재미있게 묘사한 것이 있었다. 한 할머니가 닭장에서 토종닭 한 마리를 붙잡아 품에 안고 나오면서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아이고, 아이고 이쁘다"하면서 쓰다듬는다. 안겨나오는 암탉도 다소곳하다. 늘 모이주던 할머닌데 무슨 일 있으랴는 듯이. 잠시 후 집 뒤꼍에서 돌아나오는 할머니 손에는 말끔히 손질한 닭 한마리가 들려 있었다. 이번에는 "아 그눔 참 실하다. 크다"고 말하면서 손질한 닭을 들고 부엌으로 걸어 들어간다.이 '짤'의 재미는 엽기반전 효과 때문이지만, 아름다움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가치도 있다. 그 할머니에게 '이쁜 것'은 '실하고 크다'는 것, 미의 실용적 기원설에 힘을 싣는 사례라 할만하다. 아름답다는 말이 실용적인 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자 '미(美)'의 어원을 근거로 제시한다. 한자의 아름다울 미(美)자가 양 양(羊)자와 클 대(大)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하며,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해왔다. 예술을 의미하는 영어권의 단어 아트(Art)가 생활용품이나 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도 실용론의 한 근거이다. 실용기원설은 아름다움이 실용적 가치에서 출발했지만 차츰 심미적 가치로 바뀌어 왔다고 설명한다.그런데 한자의 미(美)자를 커다란 양의 모습을 그린 글자로 설명하는 사람은 요즘 드물다. 갑골문이나 금문에서 미(美)자는 양의 머리와 사람으로 이뤄진 글자로 보인다. 갑골문 연구가 깊어지면서 미(美)자는 뿔이 달린 양 모양의 장식이나 가면을 한 사람을 묘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큰 제사나 특별한 의식을 치를 때 제관은 모자나 특별한 장식을 한다. 머리에 양의 뿔이나 새의 깃털 장식을 한 사람과 그 모습에 대한 생각이 '아름답다'는 말의 기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美는 본래부터 실용성이 아니라 심미
-
[경인칼럼] 다시 읽는 '내 고장의 맥' 지면기사
경인일보 '비지정문화재' 특집기사 묶음집40년 전 출간된 책… '개정판' 필요해 보여신도시·인구유입 등 흐려지는 지역 정체성포천서 발견된 유산·새로운 문인 조명되길서가에서 장호원 출신의 작가 이인직의 '혈의 누' 영인본을 찾다 1984년 '경인일보'에서 펴낸 '내 고장의 맥'을 발견했다. 1990년대 초 수원의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이니 벌써 3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당시는 지역사·향토사에 관심이 많을 때였다. '황해문화'에서 진행한 신태범 인하대 의대 명예교수와 대담한 녹음테이프를 풀어 원고로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역사와 향토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내친걸음에 고일의 '인천석금(1955)'을 빌려 제본하고, 신태범 박사의 '인천 한 세기: 몸소 지켜본 이야기들(1983)'도 구해 읽었다. '내 고장의 맥'도 이 과정에서 읽은 책이다.'내 고장의 맥'은 '경인일보'·경기도가 공동으로 기획한 것으로 경기도 및 인천 지역에 산재한 '비지정문화재'를 찾아 정리한 특집 기사들을 한데 묶어 낸 책이다. 경기도 출신의 인물 또는 경기도에 묘역이 조성된 역사적 인물 54명과 비지정문화재 33건을 다룬 도전적인 기획물로 '경인일보'의 저력을 보여준 책이다.당시에는 매우 재미있게 읽고 또 큰 도움이 되었으나 세월이 지나 머리가 굵어지고 반백이 된 지금 40년 전에 나온 책을 다시 보니 이제는 '내 고장의 맥' 개정판을 펴낼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문학 분야의 연구가 상당 부분 진척이 되어 '내 고장의 맥'의 보완 작업이 필요해졌고, 경기도의 인문지리적 여건 변화로 새로운 관점에서 새롭게 추가되어야 할 부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경기도 신도시들의 등장, 수도권 전철 노선의 확대, 외곽순환도로의 증대 등 교통 여건의 발달 그리고 수도권 인구집중과 김포·고양 등의 사례에서 보듯 경기도임을 포기하려는 도시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과 인접한 도내 도시들이 서울이 된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 같은 것은 기대
-
[경인칼럼] 만원의 행복 동네 지면기사
탑골공원 등 '갓성비 상권' 젊은층도 매료낮은 집세·단품 등 '푸어 마케팅' 성공가도'올드타운' 최상의 관광상품이자 추억인데노후도시 재건축 움직임… 재개발 능사 아냐날씨가 풀리면서 서울 노량진 컵밥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 고객인 청춘 남녀는 물론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저렴한 가격대의 다양한 메뉴를 즐긴다. '만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2∼3명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코로나19와 공시족 축소로 낭패했던 컵밥집 사장님들은 모처럼의 훈풍이 반갑다.'만원의 행복' 동네가 핫 플레이스로 주목되고 있다. 노인들의 천국인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상권인데 유튜브에는 '미친 가성비의 성지', 혹은 '갓성비(신이 내린 가성비)' 상권으로 소개되고 있다. '국민 MC' 송해 선생이 즐겨 찾았던 S식당은 국밥 3천원, 소주 3천원이었으며 옆집 H통닭의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는 5천원, 뒷집에서는 선지해장국이 4천원이었다.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에서는 입장료 2천원에 종일토록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국밥 혹은 해장국에 잔술로 추위를 녹이고 고전 영화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문다. 이곳도 인플레 폭탄을 맞았지만 건재하다.그런데 어르신들의 해방구에 변화가 감지된다. 작년 10월 한 달 동안에 57만여 명이 이곳을 찾았는데 20∼30대 손님들이 44%였다. 레트로(복고풍)한 분위기에다 근래 물가상승 압박에 구매력이 떨어진 젊은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것이다. 그렇다고 동일한 시간대에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몰리는 것은 아니다. 낮엔 노인들이, 밤에는 MZ세대가 이곳을 접수해 탑골공원 일대의 가게들은 낮부터 밤까지 성업 중이다. 탑골공원 상권의 낮과 밤은 다른 세상이다.이곳에는 춥고 배고픈 어르신들에게 봉사 차원에서 영업을 하는 점포도 있지만 절대다수는 영리 목적의 자영업체들이다. 모 일간지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10월 기준 점포당 월평균 신용카드 매출은 탑골공원이 2천916만원으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81%였다. 후미진 골목의 허름
-
[경인칼럼] 준위성정당이 가로막고 있는 준연동형의 한계 지면기사
'50%연동' 비례대표제는 군소정당에 유리반대할 일은 아니지만 중간지대 취지 글쎄제3지대 보단 '민주 2중대' 될 개연성 내포국힘 행태 마찬가지… 거대양당 강화 우려4년 전에 혹독한 평가를 받았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이 재현될 것 같다. 이번엔 위성정당도 모자라서 '준위성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준위성정당을 만들 것임을 밝히면서 사과했다. 사과할 법을 왜 시행하려 하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야당은 군소정당의 원내진출과 합의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준위성정당을 공식화했다.비록 100%를 지역구와 정당득표율에 연동시키지 않더라도 50% 연동시키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병립형에 비해 확실히 군소정당에 유리한 제도다. 이 명제가 성립하려면 온전하게 군소정당들이 거대양당의 세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그러나 지난 21대 총선에서 이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위성정당이라는 기발한 발상에서 편법 정당이 탄생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통하여 비례대표 19석,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16석을 가져갔다. 정의당 6석은 20대 총선과 같은 성적이다. 결과적으로 준연동형과 위성정당을 기반으로 한 21대 총선의 선거룰은 본래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면서 거대양당제를 강화했다. 주지하다시피 위성정당의 존재 때문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이미 준위성정당들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기본소득당, 열린민주당, 사회민주당이 연합한 새진보연합, 녹색정의당, 진보당 등이 시민사회에 연대하여 준연동형하에서 준위성정당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정당의 의회진출을 반대할 일은 아니다. 단지 군소정당의 원내진입이라는 취지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이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중도층을 견인하고 캐스팅 보터로서 기능할 때 다당제 민주주의와 협치가 가능해질 공간이 열린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정당과 세력들은 중간지대로서의 '제3지대'라기 보다는 더불어민주당에 친화적인 정파들이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 '
-
[경인칼럼] 면도날 위의 이웃들 지면기사
10년전 세든집 경매, 자긍심마저 무너뜨려미추홀구 전세사기 '건축왕' 징역 선고 불구생 마감 피해자만 4명, 위태로운 이들 여럿정부가 내민 손, 국민에겐 아직도 멀리 있어"우리 전세금 돌려받을 수 있을까?"전세 만기일이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들어올 세입자가 없으면 자기 가족이라도 들어오겠다던 집주인은 차일피일 날짜를 미뤘다. 걱정이 산처럼 높아져 가던 어느 날, 법원으로부터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지금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붙여졌다는 내용이었다. 중개업소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찾아갔더니 이미 며칠 전 문을 닫고 종적을 감춘 뒤였다.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고, 경매전문가도 만났다. 사실 불길한 예감이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까짓것 팔 걷어붙이고 나서면 사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 반장'이 내게도 당연히 나타나리라 믿었다. 세상은 그렇게 여유롭지도, 자비롭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전 재산이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돈뿐만이 아니었다. 삶의 한복판에 느닷없이 생겨난 모래 늪은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서서히 삼켜버렸다. 일에 대한 의욕, 세상을 향한 신뢰, 내일을 기다리는 자신감이 모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끝내는 내 가족을 나름 잘 건사해 왔다는 가장으로서의 자긍심까지 삼켜버렸다. 그게 가장 아팠다. 그게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다. 곁을 비우지 않는 아내에게, 혼기가 찬 딸에게, 밤낮을 연구실에서 보내는 아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엄지발가락을 곧추세우고 바닥을 디뎌보려 했으나 닿지 않았다.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스스로 모래 늪의 저 검은 입 속으로 욱여넣어 버리고 싶었다. 삶과 삶이 아닌 것의 경계가 면도날처럼 얇디얇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피고인들은 피해자들의 삶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지난 7일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의 전세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된 속칭 '건축왕' 남모씨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
[경인칼럼] 빅텐트라는 판타지 지면기사
이준석 개혁신당·이낙연 새로운미래 주목검증 안된 정치세력에 국민 관대하지 않아텐트는 임시거주… 성사땐 정치 도움될까?기존문법 아닌 진실된 차별성으로 승부해야'빅텐트'는 선거철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유행어다. 야외행사에서 사용하는 큰 천막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정치나 사회운동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을 아우르는 연합정치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빅텐트의 이합집산 정치행태는 양당제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고 다당제가 정착된 유럽에도 없는 현상이다. 군소정당과 후보들의 합종연횡은 투표 직전까지 이뤄져 한국 특유의 드라마틱한 역동성을 연출한다. 이번 4월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 빅텐트'가 주목받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탈당한 이준석의 '개혁신당',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이낙연의 '새로운미래'를 비롯한 다양한 신당추진세력이 대통합하는 합종연횡 정치를 가리킨다. 범여권과 범야권 신당세력이 별도로 통합하는 '중텐트' 연대도 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비례제를 당론화함으로써 야당 주도의 범야권 비례연합당(중텐트)은 가능해졌지만 오히려 빅텐트의 성사 가능성은 멀어져 가고 있다.과거에도 빅텐트 구상은 대부분 용두사미였다. 당장 진영으로 갈라서 싸우던 이질적 세력이 통합하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대통합의 러브샷을 외치다 하루아침에 삿대질하는 관계로 돌아서 얼굴을 붉히기 일쑤다. 통합 후의 주도권까지 의식해야 하니 셈법이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신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는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급속히 줄어든다. 이 현상을 사표방지심리라고 탓하는 사람도 있지만 검증되지 않는 정치실험에 대해 국민들은 그리 관대하지 않은 것이다. 텐트는 임시 거주용. 캠핑이 끝나면 텐트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법.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비난하며 '친정'을 떠나 작은 천막을 쳤지만 요행히 선거에서 살아남은 정치인들은 금방 표정관리에 들어간다. 조용히 복당의 절차를 밟아 목소리를 낮추고 제 자리로 되돌아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텐트가 성사되면 과연 우리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까? 합종연횡
-
[경인칼럼] '만세전' 탄생 백 주년 지면기사
염상섭 작품이 韓 근대소설 출발점인 이유'혈의 누'·'무정' 작가 친일… 심리적 저항1918년 배경… 근대 지식인 여행과정 서술획기적인 문학… 미래 백년은 어떻게 될까올해로 소설 '만세전'이 나온 지 꼭 백년이 됐다. 염상섭의 '만세전'은 한국 근대소설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만세전' 앞에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도 있고,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도 있으나 '만세전'을 한국 근대소설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문학적인 이유와 문학적이지 않은 이유가 함께 겹쳐 있다.문학적인 이유는 '만세전'이 근대적인 의미를 담은 여로형 소설로 작품이 여행구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세전'은 제목 그대로 만세(萬歲)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直前)인 1918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연락선과 기차를 이용하여 동경과 서울을 왕복하는 주인공 이인화의 여정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근대 지식인의 여행 그 자체도 사건이지만, 주인공이 여행의 과정 중에 보고 듣고 관찰하고 경험하는 이야기를 서술하고 고백하고 전달하는 내용들이 서사의 중심이다. 이와 함께 고려돼야 할 사항이 바로 가독성(readability) 문제다. 현대 일반 독자들이 충분하게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의 시간적 하한선이 '만세전'이기 때문이다. 이인직이든 이해조든 신소설은 말이 신소설이지 문체나 작품 구성 등이 고소설에 가까워 읽기가 쉽지 않고, 또 이광수 문학의 빛나는 성취라 할 '무정' 역시 계몽의 열정과 고소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문학적이지 않은 이유로는 정치적 무의식과 한국문학의 자존심 문제를 들 수 있다.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의 획기성은 자명하지만 그는 입신출세를 위해 스스로 친일의 길을 걷은 사람이고, 이완용의 통역관이자 개인비서로 활동했다. 정치적으로도 친일파였지만, '혈의 누' 자체도 매우 친일적인 작품이기에 '혈의 누'를 한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삼기에는 심리적 저항감도 크고, 무엇보다 한국문학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