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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의 베토벤.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우리 드라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TV 드라마는 무얼까. 몇몇 드라마들이 떠오르는데, 아무래도 2008년 9~11월(18부작)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베토벤 바이러스'가 아닐까 싶다.

'베토벤 바이러스' 10부에선 지휘자 강마에(김명민 분)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하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대목이 방영됐다. 당시 시청자들의 대체적 반응은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클래식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보고 싶다"는 거였다. 각 포털 사이트에선 작품에 대한 배경 지식과 동영상 음원에 대한 질문 등이 잇따랐다. 성공한 드라마로 인한 '클래식의 대중화'를 직접 확인한 좋은 기회였다.

'합창 교향곡'의 4악장에 배치된 '환희의 송가' 선율은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친숙한 선율로 인해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으며, 웅장한 연주 장면과 함께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상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드라마는 물론 영화 '불멸의 연인들'(1994), '카핑 베토벤'(2007) 등 베토벤을 소재로 한 작품에 단골로 등장했다.

크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작품의 내적 요소에 대한 관심은 덜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 외적인 웅장함과 울림에만 관심을 쏟는 느낌이다. 첫 인성(人聲)이 가미된 교향곡이라던가, 청력을 잃은 작곡가의 자유에 대한 외침 등의 배경 지식은 접수한 상태에서 좀 더 작품의 내적 요소와 아름다움에 대해 알아보자.

마침, 인천시립교향악단은 3월 18일 오후 7시30분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있을 제400회 정기연주회에서 '합창 교향곡'을 연주한다. 1966년 창단 이후 56년 만에 다다른 인천시향의 400번째 정기연주회장에서 위대한 작품을 직접 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824년 완성된 '합창 교향곡'은 앞선 '8번 교향곡'에 비해 구성과 규모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유명한 '5·6·7번 교향곡'보다도 진일보했다. 베토벤의 열혈팬이었던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롤랑은 "'합창 교향곡'은 합류점이다. 아주 먼 곳에서 모여든 많은 부류가 이 속에 담겨있다"고 평했다. 그는 또 "이 곡은 앞선 8개의 교향곡과 달라서 산꼭대기에서 과거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회고라고 해도 좋다"고 예찬했다.

'합창 교향곡'은 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의 지휘로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초연됐다. '5번 교향곡'에서 운명을 극복한 성취는 마지막 교향곡인 이 작품에서 혼돈과 반목을 극복한 인류애의 메시지로 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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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교향곡' 연주에서 첫손에 꼽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바이로이트 페스티벌·EMI)의 1951년 실황 앨범.

1악장은 화성적이다. 불안하고 모호하다. 희망과 절망이라는 어중간한 형태에서 화두를 던진다. 2악장은 리듬적이다. 강력한 팀파니의 연타와 유희적인 음 진행이 대조를 보인다. 비감에 찬 세계를 헤쳐나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저지된다. 멜로디 중심의 3악장에선 세상의 조화를 그린다. 칸타빌레(노래하듯이)로 해석한 지휘자와 앞선 두 악장과 마지막 4악장을 연결하는 음 구조로 해석하는 지휘자로 궤를 달리한다. 4악장은 교향곡에 오페라를 가미한 파격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악장에선 앞서 제시된 세계와 장애가 회상처럼 지나간 후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와 어우러지는 음악으로 새로운 사회를 그려낸다.

이 작품으로 인해 '교향곡'은 인류애를 노래하는 거대한 표현 수단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다. 이는 교향곡을 통해 하나의 우주를 구현하려 한 구스타프 말러 등 후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또한, 메시지의 강렬함으로 인해 '합창 교향곡'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에 연주되는 등 정치적 목적이 결부된 이벤트에도 자주 선을 보였다.

이제 작품을 접해보자. 작품의 내적 의미를 일깨워주는 연주 4종을 꼽았다.

'합창 교향곡' 연주에서 첫손에 꼽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바이로이트 페스티벌·EMI)의 1951년 실황은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이다. 그러나, 감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한음 한음을 강인하게 부각한다. 특히 여타 지휘자들이 12~16분 정도로 끊는 3악장을 푸르트벵글러는 19분32초에 걸쳐 연주한다. 너무 늘어져서 도저히 장력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지만, 의외로 음 하나하나의 선명함과 전체적인 구조를 유지하는 거장의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반면 4악장은 매우 빠르게 치달은 끝에 위대한 승리를 일궈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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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잘츠부르크 실황이 수록된 클라우디오 아바도(베를린 필하모닉·SONY)의 음반.

상업적 측면으로 인해 과소평가되기도 하지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DG)의 1977년 녹음 또한 걸작이다. 세밀한 디테일을 통한 작품의 구성은 매우 정교하며 토모와신토우, 발차, 슈라이어, 반담으로 구성된 독창진도 4악장을 빛낸다. 또 오페라 해석에서도 강점을 보이는 카라얀의 장점이 비극적 분위기를 띤 오페라적 교향곡을 선보인다.

1996년 잘츠부르크 실황이 수록된 아바도(베를린 필하모닉·SONY)의 음반에선 오케스트라의 편성이 작아졌으며, 원전(原典) 연주자들의 연구를 일부 반영했다. 전반적으로 빠른 템포 속에서 서정성도 잘 드러나며, 4악장은 단정하다. 카라얀의 4악장이 다소 무거운 독일 오페라라면 아바도의 것은 이탈리아적인 유희를 간직하고 있다.

21세기 연주 중에선 로저 노링턴(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Hanssler)의 슈투트가르트 실황이 돋보인다. 노링턴의 '합창 교향곡'은 매우 논리적이다. 또한, 균형잡힌 밸런스 등 정교한 리듬과 다이내믹으로, 얽혀있는 음들이 매우 투명하게 부각된다. 이러한 요소는 지휘자의 독특한 해석에서 기인한다. 첫 악장 도입부에서 제2 바이올린과 첼로 파트에서 피아니시모(조금 여리게)로 시작해 배경에 묻히듯이 깔리는 일반적 해석을 뒤로하고, 연속 출현하는 16분 음표군을 보다 큰 음량으로 정확하게 연주한다. 때문에 부딪히는 음향들은 제1 주제의 혼란을 자연스럽게 유발한다. 이처럼 노링턴의 독특하지만 치밀한 해석이 연주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작품의 요소요소를 적절히 부각하기 때문에, 작품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인천본사 문화체육레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