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흑백의 고전영화 속 '귀족'적인 남자 주인공들은 차갑게 비 내리는 밤에 트렌치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옛사랑을 떠올리며 담배연기를 피워 올렸다. 그 고혹하고 로맨틱한 모습에 우리는 실제 흡연자의 누런 치아와 퀴퀴한 입냄새, 가끔 거리에 내뱉는 가래침의 역겨움을 잊었다.

한때 성적 매력과 로맨스의 소품으로 여겨지던 담배연기는 세월이 흐르며 시대의 아픔을 대표하는 '루저(?)'의 향기를 풍기게 된다. '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라는 노랫말처럼 부조리한 시기에 할 일 없고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의 꼬질한 이미지와 찌그러진 담뱃갑, 지저분한 재떨이, 담뱃불로 지져진 방바닥과 가구들은 묘하게 어울리며 담배는 서민생활의 필수품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

그래서인지 담뱃값을 인상하려는 금연정책은 한 인기 정치인에 의해 '서민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위선적 발상'으로 비난받은 것이 10년도 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담배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질병예방과 건강노화를 중요시하게 된 오늘날, 담배는 '내비 둬, 나 이렇게 살다 죽을래!'를 외치는 삶을 마음대로 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용맹한(?) 무기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이미 담배의 니코틴에 중독되어 뇌가 보내는 니코틴에 대한 갈구를 충족시키면서 삶에 실존하는 결손의 문제를 잊어가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피부노화나 성기능 감퇴, 미래에 걸릴지 모르는 뇌졸중, 심장마비, 폐암 따위는 사생활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흡연자의 곁에만 있어도 옷에 묻은 담배연기 속 화학물질이 2차 간접흡연자의 가족 특히 어린 영·유아에게 아토피, 천식 등의 건강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3차 간접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이제 더 이상 흡연이 개인의 취향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포스터 속 담배연기 뒤에서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눈빛으로 우리를 응시하던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흡연으로 인해 후두암에 걸려 목소리를 잃었거나, 기관지 천식으로 끊임없이 기침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금연 포스터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

금연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미 웬만큼 사는 나라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은 금지되었다. 20세기 초반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공공장소 금연정책에 이어 10년 후의 금연정책은 어떻게 진화할까?

현재는 확실한 물증이 없지만 아토피 피부염, 학습능력저하 등의 자녀문제와 담배연기 속 물질들과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흡연했던 부모들은 자식들의 원망을 평생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평생 인간적인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하루라도 빨리 담배와 헤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