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특별기고]코로나19, 스마트시티 기술로 이겨내자

    [특별기고]코로나19, 스마트시티 기술로 이겨내자 지면기사

    정부·국민 합심, 의료진 헌신에도감염병사태 팬데믹으로 장기화 전망인프라 네트워크 지능형 ICT 접목확진자 동선·역학조사 10분내 축소IFEZ '365일 안전플랫폼' 개발 기대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고 있다. 정부의 노력, 의료진의 헌신과 전 국민의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에도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을 선언하는 등 감염병 사태가 장기화될 전망이다.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일련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인력과 예산, 행정력이 투입되고 있으며,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향후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코로나19 방역 시스템과 관련해 스마트시티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스마트시티 기술을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파악에 활용한다고 한다. 기존에는 28개에 달하는 유관기관 간 공문을 보내거나 일일이 전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소통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스마트시티 기술을 이용해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돼 평균 하루 이상 소요됐던 이동 동선 도출 등 역학조사 분석 시간이 10분 이내로 줄어들어 역학조사관의 업무 부담을 경감하고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보다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스마트시티란 인프라 네트워크에 지능형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해 도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확보한 도시를 말한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하 IFEZ)은 차별화된 노력으로 스마트시티 플랫폼 구축을 선도해 왔다. IFEZ는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2003년부터 3개 단계로 스마트시티 사업을 추진해 2017년 3월 IFEZ 스마트시티 플랫폼 개발을 완료했고, 365일 24시간 운영 체계를 구축해 중단 없는 5대 공공 서비스(방범, 방재, 교통, 환경, 대시민 정보 제공)를 통해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를 구현하고 있다.IFEZ 스마트시티 기술력은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체 스마

  • [특별기고]코로나19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특별기고]코로나19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면기사

    외국인 거주자 많아 집단 감염 우려 불구사태초기 적극대처 '공직자 저력' 보여줘솔선수범 자세로 급여·업무 추진비 삭감과도한 공포, 일상·생업 위축되지 않기를지난해 12월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호흡기 감염 질환인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가 출렁이고 있다. 1968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사상 3번째 팬데믹(세계 대유행) 선언으로 그만큼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되는 위기 상황에서 안산시는 사태 초기부터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먼저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리는 한편, 전 직원 비상근무조를 편성해 매일 지역방역 활동에 나섰고, 혹시 모를 코로나19 추가 전파를 막기 위해 확진자 발생 현황 및 동선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외부에서 우리 안산을 새롭게 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확산 초기에는 전국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어 확진자가 많이 나올 것이란 예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았고, 이는 안산시 공직자의 저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안산시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보다 체계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안산시 재난극복 및 민생경제 활성화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조례에는 재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주민, 소상공인 등 재난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민생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생활안정자금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향후에도 조례를 근거로 감염병 등 각종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게 생활안정자금 또는 물품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또한 안산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생산과 소비가 위축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위기상황을 탈출할 수 있도록 코로나19 극복 안산시 민생경제 활성화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지원방안에는 안산시 생활안정지원금 713억원과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지방비 부담분

  • [특별기고]간호사의 사명감, 환경이 받쳐줘야

    [특별기고]간호사의 사명감, 환경이 받쳐줘야 지면기사

    감염병 경험 살려 선별진료 업무재촉·항의에 이해시키기 힘들어전염불안·휴일없는 노동 등 희생관심·격려 일회성에 그쳐선 안돼지금 대한민국의 평범한 일상은 코로나19가 모두 삼켜버렸다. 대구·경북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명씩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병상과 의료인력이 부족해졌다. 그 안타까운 소식은 나의 발길을 대구로 이끌었다.나는 국가지정 감염병동이 있는 인천광역시의료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 2015년 메르스 당시 감염병 관리업무를 맡았다. 질병 대처에 대한 경험은 충분했지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은 "이순이 넘은 나이에 왜 위험한 지역에 가느냐"고 극구 말렸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하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가족들을 안심시킨 뒤 지난 3월 대구지역 보건소로 배치돼 2주간 머물렀다.대구 선별진료소에서 나의 임무는 검사를 예약한 코로나19 의심자들을 돕는 일이었다. 하루에 60~150명 정도가 나를 거쳐갔다. '레벨 D' 방호복에다 고글과 마스크를 쓰면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비가 오듯 쏟아졌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야외에서 업무를 했기 때문에 확진된 입원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에 비하면 훨씬 근무환경이 나았다.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간혹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자가격리 해제를 위한 2차 검사에 왔는데 왜 검사를 빨리해주지 않느냐는 '재촉형', 예약 오류에 대해 거세게 몰아붙이는 '항의형' 등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이 같은 어려움은 공무원과의 상호협조, 간호사들의 동료애로 극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전국 각지에서 의료봉사에 지원한 간호사들은 성별, 나이, 경력은 달라도 '원팀'처럼 움직였다. 방호복을 입고 벗을 때 안전하도록 서로 점검해주고, 자가 격리자에게 제공할 감염 예방물품을 준비할 때도 서로 도왔다. 선배로서 대견스러웠다. 특히 순천, 진주, 부산, 강릉 등에서 보내준 지역 특산품과 응원 물품에 하루 피로를 말끔히 풀고 힘낼 수 있었다.사실 올해는 간호사

  • [특별기고]선(線), 선(善), 선(先)

    [특별기고]선(線), 선(善), 선(先) 지면기사

    사회적 거리, 모두 위한 '線'정서적 거리 좁히기 노력 '善'내일은 늦어 지금 당장 '先''감염병과 전쟁' 승리하자선선한 날씨에 우리는 참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계절은 어김없이 '하얀 목련(양희은님)'이 피고 '벛꽃엔딩(장범준님)'이 울리건만 우리는 아직도 기나긴 겨울의 터널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봄꽃은 어서 나와 나를 반기라며 제 잘난 멋을 뽐내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봄꽃은 커녕 함께 나가 줄 사람과의 간격을 벌리느라 '냉장고 파먹기'라는 웃픈 현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답답한 마음에 집안을 둘러보다가 아들놈의 삼선슬리퍼를 보고 '선'에 꽂혀 몇 글자 끄적거려 봅니다. 첫째 선(線)은 '사회적 거리두기'입니다.이유야 온 국민이 다 아실테니 각설하고 제가 생각한 線은 내가 아닌 모두를 위한 線입니다. 아는 분들께 "마스크는 왜 쓰고 다니십니까?"라고 여쭤보니 "나 때문이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씁니다."라고 하십니다.우리 민족은 늘 이랬습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참 이상한 나라'라는 동영상을 보시면 더욱 공감이 되실 겁니다. '우리나라', '우리 마을', '우리 동네'… '나'보다 '우리'를 항상 먼저 생각하는 지혜로운 민족인 '우리'가 이번에도 線을 잘 지켜서 '나'로 인해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線을 지켜야 이 끔찍한 전쟁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둘째 선(善)은 '정서적 거리 좁히기'입니다.모이지 말라고 합니다. 만나지 말라고 합니다. 집에만 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네 인간관계는 점점 멀어질 거라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혼자 놀기'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무언가 몰두하도록 해야 합니다. 제 생각은 '정서적 거리 좁히기'가 답입니다.우리 주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 속에 고통받으며 누군가의 응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따뜻한 전화 한 통, 기억도 가물가물한 손 편지 쓰기, 힘든 환경에도 지금까지 잘하고 있는

  • [특별기고]코로나가 키워 준 고국의 소중함

    [특별기고]코로나가 키워 준 고국의 소중함 지면기사

    감염피해 공포 속 인종차별 겪어가족·지인 없는 곳 두려움 증폭과거 답답함 느껴 한국 떠났지만귀국해보니 국민보호 '최고' 실감나는 프랑스 중부지방의 부르쥬(Bourges)라는 도시에 있는 대학 에꼴나시오날슈페리어다흐 드 부르쥬(Ecole nationale superieure d'art de Bourges)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내가 처음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월 말쯤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에서 프랑스인 남성에게 중국 여성이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당한 이야기가 마치 괴담처럼 들려왔다. 같은 아시아계 유학생으로서 매우 화가 났다. 마치 온 유럽이 이때다 싶었는지 숨겨 왔던 맨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사람이 아닌 바이러스로 보이는 것일까. 그 후 한국으로부터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왔다. 대구와 경북의 확진자 급증, 그리고 마트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 몇 시간 동안 줄을 서 있는 사진이었다. 그러나 유럽에 있는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오래지 않아 코로나 사태는 프랑스에도 닥쳤다. 인종차별 피해는 바로 나의 일이 되었다. 내 앞에서 대놓고 손 소독제를 짜서 바르는 사람, 마트에서 나를 마주치면 돌아가는 사람, 나에게 인사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캐셔. 그 사이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 수는 늘었고, 바이러스 공포는 그만큼 커졌다. 곧이어 프랑스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휴교령이 내리기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평소보다 많이 샀다. 프랑스 친구들은 물건을 사재기하는 나를 유난 떤다고 보았다.어느 순간, 불현듯 나의 처지를 깨달았다. 나는 프랑스인도 아니며, 이곳에 가족도 없고, 나를 보호해 줄 지인도 없으며 병원에서 나의 상황을 설명할 만큼 불어가 유창하지도 않다. 만약 내가 확진자가 된다면 나의 상황은 어떻게 변할 것이며, 내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밤에 잠도 들지 못하게 했다. 이러다가는 바이러스에 죽는 것이 아니라 정신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 동시에 이런 두려움에 휩싸이는 나와 상반되는 프랑스 시민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 [특별기고]남북관계 한파 녹이는 '봄은 온다'

    [특별기고]남북관계 한파 녹이는 '봄은 온다' 지면기사

    北 명산절경 사계절 담았지만전시 전체 느낌은 화사한 봄빛금강산 등 남북 잇는 교량 역할왁자지껄 교류전 열리길 '소망'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10년 가까운 단절을 딛고 남북 문화교류가 펼쳐졌다. 북한에서 삼지연관현악단이 내려와 평화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공연을 강릉과 서울에서 진행했고, 연이어 남한 예술인들이 평양 시민들 앞에서 새봄을 여는 희망을 담은 공연을 펼친 바 있다. 당시엔 예술 교류만이 아니라 연이은 남북, 북미, 북중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봄의 훈풍이 불었다. 그 2018년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의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이다.지난 1월부터 한 달 남짓 인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는 남북관계의 한파를 녹이는 '조선화가 아카이브Ⅰ황영준展-봄은 온다'가 열렸다. 한겨울에 열리는 전시이기 때문일까. '봄은 온다'라는 부제에는 '봄이 꼭 왔으면 한다'는 다짐 같은 게 느껴진다. 아직은 봄이 오지 않았다는 현실 인식이 배어 있는 것이리라. 혹은 황영준의 조선화 전시가 한반도의 봄을 가져올 것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이번 전시에 소개된 화봉 황영준(1919~2002)의 작품들은 금강산과 백두산, 묘향산 등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풍경이 상상되는 산수화가 주를 이루었다. 선묘와 점묘를 이용하여 화폭을 메워가는 황영준의 그림들은 화사하면서도 아련하게 봉우리들이며, 폭포들이며, 마을들을 담아내고 있다. 명산절경의 사계절을 다루고 있는 200여 작품이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였지만 전시회 전체가 풍기는 느낌은 화사한 봄빛 같은 것이었다. 북한 조선화의 특징인지 아니면 작가 황영준 작품들의 특징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전시 작품들의 밝고 기운찬 화폭들은 말 그대로 봄빛을 발하고 있었다. 전시는 마치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대북 개별관광을 부르는 손짓 같았다. 이번 전시에는 금강산관광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금강산 그림들이 특집으로 꾸며져 있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북한 관광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양덕온천문화휴양지'의 옛 풍경(평남 양덕 은하리 황금산

  • [특별기고]인천서 만난 '월북화가의 조선화'

    [특별기고]인천서 만난 '월북화가의 조선화' 지면기사

    화려한 색·점묘 실경산수 개척남한서 열리는 첫 회고전 '의의'막내딸 부친 유작 상봉 '눈시울'얼어붙은 남북관계도 봄 오길…지금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북한의 조선화가 화봉 황영준의 전시회 '봄은 온다'가 지역에서 화제다.황영준의 이번 전시회는 다음의 몇 가지 의미와 특징을 가지고 있다.첫째 충북 옥천 출신의 월북화가로 남한에서 열리는 첫 번째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점, 둘째 조선화의 장르를 개척하여 북한에서 높은 대우를 받은 공훈화가라는 점, 셋째 인천 출신의 이당 김은호에게 낙청헌 화숙에서 그림을 배운 제자라는 점을 들 수 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월북 화가로서 민족분단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은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남다른 관심을 갖게 한다.더욱이 지난 10일 개막식에서 그의 혈육인 막내딸 황명숙씨가 생전의 아버지와 이루지 못한 상봉의 한을, 아버지의 유작들과 극적으로 상봉함으로써 풀어 개막식에 참석한 주위 사람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남한에 아내와 네 자녀를 두고 1950년 월북한 황영준은 북한에서 다시 결혼을 하지 않고 남한의 가족들을 그리며 살았다고 한다.이번 전시회는 그가 평생 그려온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전통적인 수묵화를 비롯하여 사실적인 묘사와 색채가 특징인 조선화의 산수, 화조, 곤충과 식물 그리고 주민들의 생활상이나 건설현장과 공장의 노동자들을 그린 인물 등 20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그중에서도 작가의 역량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들은 금강산을 비롯한 실경 산수화라 하겠다. 특히 금강산, 백두산, 묘향산 등은 그동안 남한의 작가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없었던 천하절승의 풍경들로 북한화가 황영준은 이를 다양한 기법으로 연구하고 표현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선화로 발전시켰다.특히 그의 금강산 그림들은 과거 겸재나 단원의 진경산수와 달리 화려한 색채와 풍부한 점묘, 선묘들을 구사하여 새로운 실경산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겸재나 단원이 절제되고 생략된 필선으로 진경산수를 완성했다면 황영준은 실경의 현장성을 바탕으로 풍

  • [특별기고]북으로 간 후소회

    [특별기고]북으로 간 후소회 지면기사

    이당 충실히 계승 북쪽 제자 화봉운보등 남쪽 제자들이 만든 모임후소회가 北 조선화와 접속한 것남북간의 진화 양상 '비교' 기회화봉(華峰) 황영준(黃榮俊, 1919~2002)은 조선화의 낯선 대가다. 조선화란 우리 회화 유산을 일변 계승하고 일변 비판하면서 북에서 새로이 발전시킨 민족적 회화양식을 일컫는 바, 남으로 말하면 한국화다. 예전에는 한국화가 아니라 동양화였다. 동양은 일제의 조어다. 중국을 대신해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오르려는 일제의 야심이 껴묻은 동양은 식민지 잔재다. 동양화는 이 동양에서 파생했다. 1922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의 제1부 '동양화부'에 공식적으로 사용된 이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역시 잉용함으로써 일반화된 동양화가 4월혁명 이후 국전과 함께 비판에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일진대, 드디어 1982년 국전을 개혁한 '대한민국미술대전'에 '동양화부' 대신 '한국화부'라는 명칭이 등장하면서 한국화가 60년 만에 동양화를 대체하였던 것이다. 남이나 북이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양화를 비판하면서 한국화와 조선화가 정립되었거니와, 조선화의 뿌리에 남의 화맥(畵脈)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종요롭다. 유화로 시작하여 수묵화로 일가를 이룬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은 저명한 예의 하나다.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이태준(李泰俊, 1904~?)을 비롯한 '문장'그룹과 친교한 근원은 풍속화란 말을 발명한 미술사가이기도 한 바, 그의 월북을 통해 남쪽 문인화의 전통이 북의 조선화와 깊숙이 접속했다. 최후의 화원(畵員)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의 화숙(畵塾)에서 그림을 배운 화봉은 조선화의 또 다른 계통이다. 아다시피 1936년 이당의 제자들이 창립한 후소회(後素會)는 해방 후 친일논란에도 불구하고 남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바, 그중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과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이 우뚝하다. 그런데 이당의 제자가 북에도 있다.

  • [특별기고]2020년에는 경기도가 평화시대를 열어가자

    [특별기고]2020년에는 경기도가 평화시대를 열어가자 지면기사

    北 무기개발 가능성등 한반도 정세 예측불허도민 생존권 직결된 '평화' 손놓고 방관못해道, 유엔 승인 '양묘장 조성' 남북교류 물꼬제재한계 넘어 '협력 해법찾기' 주도적 추진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지만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북한의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으며 미국은 정찰기 등으로 북한을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북한과 미국이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는 점은 다행이나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상황 악화를 막고 협상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제재 상황하에서도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로서 자율성 있는 남북교류협력의 공간 확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신년사에서 "닫혔던 개성의 문을 열어 꼬인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풀겠다"며 적극적 개성관광 재개 등 경기도의 주도적 평화정책 추진을 강조했다. 평화는 경기도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북미관계나 남북관계가 순탄하지 않은 상황이라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2020년 경기도에서는 유엔, 미국 제재와 별개로 남북 간 상호협의를 통해 추진 가능한 이슈를 선점하는 등 대북 제재 틀 내에서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창의적 해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산림 회복, 인도적 지원 분야 등 제재 면제 신청이 가능한 분야를 적극 발굴하는 등 대북 제재라는 국제적 규범 준수와 동시에 그 틀 내에서 남북교류협력 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그 일환으로 도는 지난해 12월 2일 유엔으로부터 '개풍양묘장 조성사업'에 관한 대북제재 면제 승인을 받았다. 지원물자 152개 품목(22억7천500만원)이다. 대북제재의 한계를 지방자치단체가 극복한 첫 번째 사례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통일부에 건의해 면제 승인에 따른 후속조치 요구 및 양묘장 조성 세부계획 수립 등 철저한 준비로 대북 협의를 추진하고자 한

  • [특별기고]다시 품어보는 우리 반쪽의 미술세계

    [특별기고]다시 품어보는 우리 반쪽의 미술세계 지면기사

    오랫동안 北예술 한국선 '금기'2005년 송암선생 유화전 '성과'분단후 언론사 첫 초대전 의의다양한 연구·교류 활성화 기대나라가 갈리고 70여년이 흘렀다. 그래도 우리 힘으로 상주 인원 오만여명의 북한 근로자가 10여년간 일터를 잡은 개성공단도 세우고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관광했다. 그뿐인가. 백두산 천지를 비롯해서 제한적이지만 평양, 남포, 개성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승려의 몸으로 목탁 대신 창을 들도록 선도한 서산대사 청허 휴정(西山大師 淸虛 休靜, 1520~1604)이 주석한 묘향산도 갈 수 있었다.또 우리나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박근혜(국회의원 재직시) 대통령도 스스로 38선을 넘어 북한 주민에게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남북한 문화사업은 이룩된 것이 노력에 비해 많지 않다.특히 회화, 조각, 서예에 대해서 남북이 절벽처럼 전시, 연구 성과가 거의 없었다. 1987년 계간 미술 겨울호(통권 44호)에 '해방 공간의 한국 미술' 특집으로 북으로 간 미술가들을 다루었고, 2004년 밀알미술관에서 발행한 '한국 미술의 잃어버린 페이지', 2005년 월간 미술 6월호에서 '분단미술사, 잃어버린 페이지'라는 특집을 내놓았다. 2018년 문범강의 '평양미술-조선화 너는 누구냐' 정도가 북한예술을 우리 앞에 당겨 가까이 보게 했다.오랫동안 북한 미술은 우리 사회의 금기였다. 이들의 작품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것은 분단과 6·25를 전후해 월북하거나 납북된 문인이나 예술인들에 대하여 월북 이전 작품들을 해금(解禁)시킨 정부 정책 덕분에 가능했다. 필자가 과문하고 소장하고 있는 자료가 빈약한 때문에 그 사이 남모르게 남북한 예술 교류에 공이 큰 분들을 이 자리에 미처 다 밝히지 못하는 것을 사과드린다.그 사이 우리 인천의 소중한 성과가 지난 2005년 송암 이회림(松巖 李會林, 1917~2007) 선생이 자비로 북한유화전(北韓油畵展)에 전시한 회화 500여점이 돋보인다. 선생은 "송암미술관은 개관기념전으로 우리 유화도입기(油畵導入期)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