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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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서로e음, 지역을 살리고 주민을 잇는다 지면기사
서로e음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초기 폭발적인 가입을 이끌었던 마중물이 스마트폰 앱과 연계한 '선불충전카드 형식' 그리고 '캐시백 10% 적립'이었다면 이번은 소상공인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혜택플러스 가맹점 확보'다.편의성에 혜택까지 두루 갖춘 서로e음은 지난 5월 발행,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역 내 경제 흐름도 바꿔놓았다. 역외소비가 역내소비로 돌아선 것은 물론이고, 소비의 외부유입 효과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의 일상생활도 크게 바뀌었다. 아무리 좋은 혜택으로 무장해도 주사용 카드를 바꾸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갑에는 서로e음 카드가, 스마트폰에는 서로e음 앱이 발 빠르게 등장했다.결제수단 1순위도 당연히 서로e음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서로e음도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예산 부족이다. 얼마 전 인천시가 국·시비를 3%로 줄이면서 서로e음도 어쩔 수 없이 혜택을 재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지역화폐 민관운영위원회와 함께 '어떻게 해야 주민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다. 그 결과, 캐시백 비율 7%는 유지하되 적용한도를 종전 10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낮추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사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잠을 못 잘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 무엇보다 캐시백 비율의 잦은 변동으로 인해 주민들에게 혼란과 불편함을 드려 죄송한 마음이 크다. 열렬히 호응해주신 만큼 실망감이 크시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 '좋다고 마음껏 쓰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적당히 쓰라니 일관성이 없는 정책 아니냐'는 뭇매도 염려스럽다.하지만 이것만은 우리 주민이, 서로e음 사용자가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 지역화폐의 당초 목표가 캐시백 의존이 아닌 소상공인 살리기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인 만큼 서구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예측 불가능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그 첫 단추가 혜택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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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함께 해요, 플라스틱 폐기물 줄이기 지면기사
플라스틱으로 고통 받는 지구나와 내 가족 삶 위협 '위험 요소'정부 다양한 정책 노력 불구폐기물 발생 꾸준히 증가개개인 실생활 실천문화 조성 절실최근 '플라스틱으로 고통받는 지구'라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폐그물에 걸려 죽은 바다거북, 떠밀려온 고래 뱃속에 가득한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태평양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 등등.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에 따르면 매년 800만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버려지고, 이 쓰레기가 모여 미국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태평양 쓰레기 지대(The Great Pacific Patch)'를 만들었는데, 그 면적이 우리나라의 15배에 달한다고 한다. 폐플라스틱 문제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 스쳐 가는 뉴스로 여겨져 왔다. 뉴스를 들을 때는 폐그물에 걸려 죽은 거북이가 불쌍하다 느끼지만, 잠시 후에는 무심코 카페에서 일회용 컵으로 커피를 마시고, 마트에서 일회용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그러나 폐플라스틱 문제가 더는 태평양의 문제가 아님을 체감하게 하는 사례들이 일어나고 있다.2018년 4월 전국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수거되지 않은 폐비닐과 폐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았다. 최근 곳곳에 몰래 버려진 쓰레기가 거대한 산을 이루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많은 이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재활용원료로 위장해 필리핀으로 수출되었던 폐플라스틱이 국제적인 부끄러움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2019년 9월, 우리는 지구의 문제가 나의 고통으로 바뀌는 그 어느 지점에 서 있다. 바닷새와 해양 포유류를 괴롭히던 쓰레기가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라는 것을 여러 사건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정부도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발굴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분리수거 정착,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 일회용 비닐이나 컵 규제 등 환경부는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재활용을 확대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그런데 정부 차원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기물 발생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재활용 제도도 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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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합창의 즐거움에 대하여 지면기사
'2019 남양주 사릉 시민 합창페스티벌' 성황세대 아우른 13개팀 감미롭고 웅장한 멜로디주민들 세계적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 기대축제 통해 이웃사촌간 공동체의식 더 단단2010년에 방영된 KBS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기억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인간이 가진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질 때 그 아름다움과 감동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각자의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소리를 모으고 함께 같은 꿈을 꾸는 것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순간인지를 말이다. 10여 년 만에 합창의 감동을 남양주 사릉(思陵)에서 다시 느꼈다.지난 6일 단종 비인 정순왕후의 능인 사릉에서는 남양주 사릉 시민 합창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날은 마침 정순왕후의 승하일이었다. 승하일에는 항상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가벼운 빗방울이 흩날려 더위를 식혀주었다. 경연을 거쳐 선발된 9개 민간합창단 팀과 시립합창단 등 모두 13개 팀의 공연이 있었는데 유치원 어린이부터 고령의 어르신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노래를 선사했다. 무대 위에서 서로 격려의 눈빛을 교환하며, 마음을 맞춰 들려주는 아름다운 목소리는 두 시간 동안 감미롭게 때로는 웅장하게 사릉을 휘감았다.남양주에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40기의 조선왕릉 가운데 사릉을 포함한, 광릉, 홍릉, 유릉 등 모두 4기의 왕릉이 있다. 특히 다른 조선 왕릉과는 다르게 비교적 도심과 가까운 데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이 꽤 좋은 편이다.하지만 시민들이 왕릉을 자주 찾고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번 합창 페스티벌을 계기로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생겨나길 기대해 본다. 주민들의 발길과 사랑이 더해질 때 비로소 왕릉은 단순히 왕릉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될 것이고, 후세에도 그 이름을 전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아울러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합창이 지닌 큰 울림에 주목해보고 싶다.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에스토니아의 합창 축제가 좋은 예이다. 북유럽의 발트해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에서는 5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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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서구 수돗물, 안전한 시스템 만들 기회다 지면기사
40만 시민 불편 겪고 2만건 이상 민원 제기과학적 물관리등 근본적인 해결 방안 필요인천만의 문제 아니라는 것 전문가들 시각정부, 생활형 SOC사업 포함 추경 반영하길인천지역 수돗물 사고가 일어난 지 40여 일이 지났다. 40만 시민이 불편과 불안을 겪고, 2만건 이상의 민원이 제기됐다. 시민들은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런데 이대로 정상화되면 이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지 않을까. 전국 여러 곳에서 비슷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는데 괜찮은 걸까 하는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환경부 근무 시절 수질정책과장, 상수도정책관, 기획조정실장을 지내며 물과 관련된 재난 경험을 많이 했다. 당시의 경험과 이번 사고를 직접 겪으면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를 제언해 본다.첫째, 과학적 물 관리 시스템 도입이다. 시대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얘기하고 있는데 생명수인 수돗물 관리를 아직도 사람에만 의존하고 있다. 취수원에서 각 가정까지 수돗물 공급 전(全) 과정에 센서류를 달아 감지, 제어하는 기술 도입을 서두르자. 배관망을 과학적으로 관리해 탁도계나 염도계가 어느 기준점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배출시키게 하자. 수계전환도 과학적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우선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자. 이런 선진화된 시스템은 스마트워터시티(Smart Water City)라는 이름으로 파주시와 세종시, 부산시가 적용하고 있다. 파주시는 수돗물의 직접 음용률이 1%에서 36.3%까지 오르고, 주민 만족도(93.8%)도 상당히 높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둘째,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매뉴얼과 협의체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누가 봐도 5분 이내에 읽고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매뉴얼을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 매뉴얼은 부서별, 개인별 역할을 분명히 담은 '두 쪽' 분량이면 충분하다. 또한 사안의 심각성과 대응을 결정하는 데에는 내부 담당부서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적인 시스템이 우선하더라도 특정인에게 판단을 맡겨서는 위험하고 예민한 문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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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재정분권 새판짜기가 필요하다 지면기사
기초지자체 복지예산 부족 심각사업비 대부분 중앙과 공동분담'매칭 방식'으로 부담 '눈덩이'증세·국가보조율 상향 등 통해중앙-지방간 재원조정 '시급'지난 1월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이 "과도한 복지예산 부담으로 기초지자체 재정이 파탄 위기에 몰리고 있다"며 중앙정부의 국비 보조율을 높여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 화제가 됐었다. 최일선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자치단체장으로서 정 구청장의 고충 하나하나가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다.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 구청장의 요청이 타당하니 개선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 뒤로 바뀌었을까?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아직 더디기만 하다. 오히려 복지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기초자치단체에 예산 부담 떠넘기기는 줄지 않고 있다. 경기도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도 추경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31개 시·군은 고교무상급식과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 등 경기도-31개 시·군간 예산 분담비율을 최소한 5 대 5 비율로 조정해줄 것을 제안했지만 보조율은 3 대 7로 결정되었다. 경기도가 각 사업예산의 30%, 시·군이 70%를 부담하는 것이다.고교무상급식은, 안전한 먹거리 제공과 보편적 복지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다. 다만 '고등학교의 설치, 운영, 지도'의 사무가 서울시나 경기도, 광역시를 뜻하는 '시·도'의 사무인데, 서울시와 인천시의 경우 고교무상급식 사업에 대한 분담비율은 60% 이상이다. 31개 시·군은 서울시와 인천광역시의 분담률을 들며 형평성의 문제를 고려해달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경기도 지방보조금 관리조례시행규칙'을 근거로 도비 분담률 30%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어린이집 운영비 지원'도 마찬가지다. 경기도는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을 신규사업으로 추경예산에 포함, 도비 30% 분담률을 고수하고 있다. 다수의 시·군이 이와 관련된 유사사업을 이미 진행 중에 있다. 본 사업을 경기도가 추경으로 편성할 만큼 시급성을 요하는지, 이해관계에 의한 '예산 끼워넣기'는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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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제2경인선, 인천교통혁명·수도권 균형발전 마중물 지면기사
광역철도 건설사업, 기재부 예타대상 선정국토부, 요구받은 보완자료 차질없이 준비개통시 서창·논현동서 20분대면 서울 진입힘든 출근길 개선… 시민 더 여유로워질 것인천교통혁명이 시작되었다. 지난 4월 1일 '제2경인선 광역철도 건설사업'이 기획재정부의 '2019년 제1차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에 선정됐다.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며,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된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두 도시를 잇는 새로운 철도노선 사업이 첫 단추를 꿴 것이다.경인선은 1899년 9월 18일 제물포와 노량진 사이에 최초로 개통된 이후로 현재까지 인천시민의 발로서 제 역할을 다해왔다. 비록 개통 당시에는 일제강점기로 화물운송을 주목적으로 했지만, 지금은 서울과 인천 사이를 잇는 제1의 교통수단으로서 인천시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이동 수단이다.그러나 경인선의 이용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혼잡도는 말 그대로 극심한 상황이다. 또한 앞으로도 집값 및 일자리 등의 이유로 인천~서울, 인천~경기 등 광역단체를 넘어가는 장거리 출·퇴근 수요가 증가할 예정이다. 실제로 인천 서남부와 서울 남부 지역 간 광역교통 수요는 매년 평균 5.9% 증가하고 있다.이렇듯 경인선을 이용한 시민들의 출퇴근은 고되고 힘든 여정이다. 경인선의 교통 혼잡을 해소하기 위해서 '제2경인선 광역철도'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게 되었다. 구로 차량기지 이전 종점부터 청학사거리까지 잇는 동 사업은 지난해 12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진행한 사전타당성조사 결과에서 경제성을 확보했다. 또한 이를 근거로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24일 투자심사위원회를 개최하여 예비타당성조사 신청 대상 사업으로 선정했고, 기획재정부는 국토교통부의 신청을 받아들였다.'제2경인선 광역철도' 사업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알리기 위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동 사업의 추진을 염원하는 인천의 국회의원 및 인천시와 함께 '제2경인선이 만들어낼 인천의 교통혁명'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토론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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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잊혀진 기억과 기록될 미래의 역사 지면기사
안성은 유서 깊은 호국의 고장으로써 충주를 거쳐 부산에 이르는 영남대로의 길목이다. 또한 삼국시대부터 군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도성 방어의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에 따라 몽고 침입 시에는 송문주 장군이 죽주산성에서 몽고군과 전투를 펼쳐 승리를 이뤘으며, 홍건적의 난때는 거짓 항복하는 척하며 술을 먹여 취한 틈을 타 적의 괴수 6명의 목을 베어 결정적으로 전세를 뒤엎은 곳이 바로 안성이다. 이렇듯 나라의 위기 때마다 보여준 안성의 호국정신은 일제의 침탈과 식민통치 기간에도 나타났다. 안성의 독립운동사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양성·원곡면의 만세운동이며, 지난번 기고문에서 보았듯이 안성읍내에서는 좀 더 색다른 방식으로 만세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죽산지역에서의 일제에 대한 저항은 일찍부터 의병활동으로 시작됐다. 이곳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이자 삼남지방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였기에 경기 남부 의병의 거점이 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정주원, 여병대, 윤석규, 김동식, 김봉환 등 걸출한 안성 출신 의병장들이 많이 배출되고 활동했다. 죽산지역 역시 3·1운동이 일어날 당시 일제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만세운동이 크게 벌어지기도 했다. 1919년 4월 1일 죽산공립보통학교(현 죽산초등학교)의 양재옥·안재헌 학생이 교정에서 5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학생들의 만세시위에 동화된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대규모로 확산됐다. 4월 2일에는 오전부터 죽산시장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시작되더니 이날 밤에는 각 마을에서 모인 주민들로 2천여명의 군중이 집결했다. 이들은 죽산경찰관주재소, 죽산우편소, 이죽면사무소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건물에 투석하는 등 실력항쟁의 양상을 보였다. 또한 일죽면에서는 주민 200여명이 주천경찰관주재소, 일죽면사무소 등에서 만세시위를 벌였고, 삼죽면에서는 주민 300여명이 삼죽면사무소를 공격했다. 이처럼 죽산은 4월 1일부터 3일까지 2천여명의 주민이 참여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기관인 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를 응징하는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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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안성 자산가들 "빌려준 집·땅 내놓으라" 지면기사
지역 최초 3·1운동前 일제에 '경제적 압박'日 경찰 신경 건드린 '독립운동의 한 방식'3월 30일부터 면사무소 습격등 본격 시위안성읍내 만세운동 시장 발달했기에 가능안성은 영남대로와 삼남대로가 만나는 지점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이에 조선후기 안성은 대구, 전주와 더불어 조선 3대 시장이라고 할 만큼 시장이 발달된 곳이었으며, 인구도 많고 물자도 풍부한 지역이었다. 안성은 큰 시장이 있었던 만큼 다른 지역의 3·1운동과는 몇 가지 차이점이 보인다. 기구를 날려 이목을 끌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안성읍내 최초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1일이다. '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14보 일제 경찰의 중앙보고서 극비문서에 의하면 "안성에서는 1919년 3월 11일 오후 8시에 군중 약 50명이 완구용 경기구(輕氣球)를 날리고 일제히 독립만세를 고창했으나 즉시 해산하고 주모자 3명을 검거했다. 그날 밤 공립보통학교 학생이 시위운동을 개시하려고 기획하는 것을 발견, 주모자 18명을 검거하고 경계 중"이라고 기록했다. 완구용 기구를 날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주민들과 함께 만세를 고창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만세운동을 사전에 약속하면 발각될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소수 사람들만이 주동을 하고, 시장에 나온 상인 혹은 장 보러 온 주민들이 갑작스럽게 참여하게 되는 방식이었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3월 16일의 '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17보에 의하면 일제 경찰은 이를 매우 폄하하고 있다. "군중의 단순한 경기구 비행에 대한 호기심으로 주변에 있던 소년들이 무의미한 집합 만세를 고창한 것으로 하등 독립운동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고 보고한 것이다. 앞서 3명의 주모자를 체포했다고 한 것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아마도 사건을 크게 일으키지 않기 위해 안성경찰서에서 축소 보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안성읍내 3·1운동에서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안성의 자산가들이다. '매일신보' 3월 11일자의 '삼일 만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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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안성 3·1운동 100주년, 2일간의 해방과 3대 실력항쟁지 지면기사
양성·원곡 주민들 일본인 몰아내자일제, 가혹한 탄압으로 보복'안성사건'으로 남한에서 유일 만세운동 선열들의 정신 이어가며독립운동 역사 대표적 성지 평가안성은 3·1운동을 대표하는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1919년 안성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어느 곳보다 뜨거웠고, 가장 격렬하게 전개됐으며, 그로 인해 안성인들은 혹독한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가혹했던 그 시절의 의기는 지금 안성 3·1운동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됐다.만세운동이 전국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안성에서도 독립을 위한 불길이 솟았다. 안성 최초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1일 양성공립보통학교(현 향성초등학교) 교정에서 학생들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다. 당시 양성면 덕봉리 출신으로 서울에서 보성전문학교를 다니던 남진우 학생과 같은 마을 출신으로 선린상업학교를 다니던 고원근 학생이 고향으로 내려와 3·1운동의 소식을 알리면서였다. 이들은 학생들을 독려하여 함께 만세운동을 불렀지만 교사들에 의해 제지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에 의해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전 주민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를 남겨준다.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3월 말부터는 양성면과 원곡면에서 주민들에 의해 만세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각 마을 단위로 수십명의 주민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후 결집을 통해 만세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면서 4월 1일과 2일에 걸쳐 폭발적인 시위로 이어졌다. 주로 비폭력 평화적 시위의 3·1운동 정신이 발현되었으나 다수의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조선의 독립에 대한 확신을 갖고 적극적인 실력항쟁으로 이어졌다.안성의 대대적인 만세운동의 양상은 4월 1일 저녁 최은식, 이덕순, 홍창섭, 이유석 등의 주동자들이 주민들을 이끌고 만세고개(현 안성3·1운동기념관)를 넘어 양성으로 행진하여 양성면 주민들과 연합하면서 일제 통치기관을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2천여명으로 구성된 연합시위대는 양성면에 소재한 경찰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 등을 투석하고 방화하였고, 이어 일본인 상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습격하여 파괴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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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위대한 시민,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 지면기사
우리곁 떠난지 10년된 '심재덕 前 수원시장'100년뒤 큰 그림 그렸던 '2095 발전기획단'지방분권·특례시 완성 살기좋은 도시 조성그의 시야 밑거름으로 한반도 평화 기여해야'수원사람이 발가벗고 30리를 뛰었다'. 수원사람이면 어린 시절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다. 두 가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해진다.첫째는 수원상인 이야기다. 팔달문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한 수원. 가게에서 외상 거래를 많이 하던 사람이 외상값을 떼어먹고 도망을 갔다.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이 외상값을 떼어먹었다는 것을 잊고, 물건을 사려고 하자 속옷 차림으로 방에서 쉬고 있던 주인은 목소리만 듣고 돈을 떼어먹은 사람임을 알아보고 속옷 차림으로 뛰쳐나갔다. 주인의 얼굴을 보고서야 '아차', 줄행랑을 쳤고 30리에 달하는 추격전 끝에 붙잡혀 외상값을 갚았다는 얘기 끝에 생겼다는 설.둘째, 옛날 수원 도성에서 30리쯤 떨어진 떡전거리에 효성이 지극한 선비가 친구들의 권유에 못 이겨 기방 출입을 하던 어느 날, 기방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생각하니 그날이 선친의 제삿날.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못할 불효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다급한 마음에 의관도 갖추지 못하고 뛰기 시작해 가까스로 자정을 넘기지 않고 집에 도착해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얼핏 생각하면 수원사람을 비하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 설화는 잘못된 상거래를 바로잡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수를 하긴 했지만 부친을 위해 최선을 다한 효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수원의 정체성을 찾기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오죽하면 아주 특별한 토론회를 준비했을까. '수원사람 발가벗고 30리 뛴다, 정설 확립 토론회'였다. 매년 1월이면 유독 보고픈 사람. 미스터토일렛 전 수원시장 심재덕 이야기다.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 벌써 10년, 그의 기일에 맞춰 SK아트리움에서 10주기 추모행사를 열었다. 입추의 여지없이 꽉 채운 객석을 보며, 그는 지금도 수원의 심장으로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