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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3·끝)차별과 혐오를 넘어]울타리 밖 '차별금지법'…공존사회 여는 8번째 도전 지면기사
13년간 7차례 법안 발의·무산정의당 21대 국회서 다시 올려88.5% 찬성여론 "모두 위한 법"2020년 한국사회는 '차별과 혐오'를 걷어내고 공존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을 마련할 수 있을까. 지난 2007년 처음 시도된 차별금지법은 7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8번째에 성공해 '칠전팔기(七顚八起)'의 기록을 써내려갈 수 있을 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대한민국헌법 제11조 1항은 평등권을 보장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존재한다. 그것은 북한 프레임이 씌워진 '레드 콤플렉스'가 될 수 있고 '무지개'로 상징되는 성 소수자일 수 있다.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가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편견과 혐오를 지양하기 위한 법적 장치인 '차별금지법'은 13년 동안 총 7번 발의돼 모두 폐기되거나 철회하는 등 난항을 겪었다.이번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안은 8번째 시도다. 정의당은 8번째로 21대 총선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정책공약으로 내세웠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지난 6월29일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했다.이 법안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채용과정에서 성별 등을 기준으로 채용 인원수를 구분하거나 서류 전형이나 면접 시 직무와 관련 없는 성별 등의 정보를 요구하는 등의 행위를 금하고, 성별 등을 이유로 교육활동에 대한 지원이나 교과 과정을 다르게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차별에 대한 경우를 구체화했다.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 부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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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정혜실 이주민방송 대표 지면기사
파키스탄인 남편, 입국심사부터 차별비영리단체 만들어 본격 '인권 운동'한가지씩 개선 '평등 수준' 상향 한계 "자신들이 필요해 불러놓고 정작 한국에 정착할 권리를 보장하는 데는 소홀해요. 한국 정부가 이주민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지요."정혜실 이주민방송(MWTV·Migrant World TV·사진) 대표가 말했다. 정 대표는 27살이던 지난 1994년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한 것을 계기로 한국의 인종 차별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파키스탄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김포공항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려는데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남편만 따로 불러 한 시간 넘게 추궁했다. '어떻게 한국 여성과 결혼했느냐'는 것이었다. 정 대표는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그렇게 심각한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차별은 법적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1997년 국적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외국인 남성은 한국 국적을 받기 어려웠다.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역시 한국 국적을 받기 어려웠다. 정씨는 서류상 미혼, 두 자녀들은 외국인이 됐다. 정 대표는 2000년부터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현 안산이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2012년 이주민방송 운영위원으로 인권운동을 시작해 2016년부터 대표로 활동했다. 이주민방송은 이주민이 자신의 이야기를 미디어 콘텐츠로 전하는 비영리단체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더불어 살아가며 겪는 이야기를 전하는 '이주민라디오(MWFM)'를 운영한다. 인권 운동가가 마을을 직접 찾아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등UP! 마을UP!'도 유튜브 채널 '이주민방송'에서 볼 수 있다. 매년 이주민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지난해 열린 제13회 이주민영화제 슬로건은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다'였다.최근 이주민방송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이슈는 '고용허가제'다. 한국은 중국과 수교 이듬해인 지난 1993년 산업기술연수생 제도를 시행해 이주민을 본격적으로 불러들였다. 인권 침해 등 논란이 일자 지난 2004년 이 제도를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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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김한올 정의당 경기도당 성소수자위원장 지면기사
기존의 개별법안으로 '명확한 판단' 어려워교육 변화·미디어의 책임감있는 태도 필요"차별금지법 제정은 평등과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김한올(사진) 정의당 경기도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이 같은 생각을 밝혔다. 그는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첫 발의 이후 난항을 겪고 있는데 이런 역사 속에서 정의당은 꾸준히 시민들을 설득하고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노력을 지속해 추진해왔다"며 "지난 총선에서 공약했고 정당적 역량을 모아 발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김 위원장은 기존에 차별을 금지하는 개별 법안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 각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지만 차별은 출신 지역, 성별, 교육 등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개별법으로는 차별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그는 "국가인원위원회법은 주어진 권한 자체가 강제성이 부여되지 않은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차별 시정 권고를 지키지 않을 때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권고 수용률을 높이는 장치들이 마련됐다"고 덧붙였다.현재 차별금지법은 여러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혀 있다. 기독교는 물론 재계에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개신교는 종교적인 이유로 반대를 하고 있고, 재계에서도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채용 과정에서 차별 금지 등으로 기업의 자율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어 "차별금지법안과 같은 첨예한 반대 의견이 형성될 때마다 나오는 논리가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인데 법안 제정이 오히려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인권과 차별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어 지금까지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개념들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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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2016년 한국 정착 예멘 출신 다나트씨 지면기사
전쟁 피한 난민… 차별·편견 견디며 일상 생활공동체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 두 아들 걱정난민을 비롯해 외국에서 온 이주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2016년 한국에 정착한 예멘 출신 다나트(여·가명)씨는 공격적인 말투로 "왜 한국에 왔느냐"라고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예멘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내전이 진행되고 있다. 다나트씨는 전쟁을 피해 한국에 왔고, 난민으로 받아들여졌다. 두 아들과 함께 한국에서 생활하는 그는 수차례 혐오 섞인 발언을 들어야 했다. 2018년에 가장 심했다. 당시 예멘에서 500여명이 제주도로 와 난민신청을 했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쏟아냈다. 난민 인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으며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예멘 난민 추방을 요구하는 의견이 올라왔다. 다나트씨는 당시를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그는 "이전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던 분들도 태도가 차가워졌다"며 "많은 분들이 화를 내는 것처럼 '왜 한국에 왔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그는 작은 박스 제조공장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그는 욕설과 폭언을 들어야 했다. 공장 사장은 외국인에게만 큰 소리를 내고 욕을 했다고 한다. 다나트씨는 어렵게 구한 일자리이지만 2개월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다나트씨는 초등학교 1, 3학년인 두 아들에 대한 걱정도 크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며 "함께 거리를 걷다가 주변에 또래 아이들이 보이면 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피부색 등의 차이로 아이가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는지 걱정이다. 그는 한국사회가 외국에서 온 이주민을 같은 공동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다나트씨를 보는 시각도 냉랭해졌다. 다나트씨는 "물론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다"며 "코로나19와 관련해 외국인을 더 위험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고 했다.다나트씨는 이주민이자 싱글맘이다. 차별과 편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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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말이 칼이 될 때' 저자 홍성수 교수…혐오의 권리 누구도 없다 지면기사
'반대할 자유' 그럴듯하게 포장 하지만결국 소수자 위한 제도 만들지 말란 것차별 바탕에는 '적과 나' 이분법적 사고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울수록 더 위력적"누군가를 혐오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우리 사회에서 혐오 정서는 아직도 확산하고 있다. 혐오를 바탕으로 한 차별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동성애를 비롯한 성 소수자에 대해서는 "동성애를 반대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2018년 출간된 '말이 칼이 될 때(부제: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의 저자인 숙명여자대학교 홍성수(법학부) 교수는 "특정한 정치적 의견이나 성적 지향·정체성 등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을 혐오하거나 차별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나 아동, 노인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성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혐오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우리 사회의 혐오 정서가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과거에는 '혐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대표적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꼽았다. 이념 갈등 등으로 불렸으나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 폭력이라는 점에서 혐오와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특정 정치적 성향을 상대로 한 혐오 정서가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특히 '반대할 자유'를 이유로 혐오를 정당화하는 주장을 비판했다. 일각에서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할 자유'를 달라고 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홍 교수는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결국은 소수자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라며 "가부장제, 남성중심 등 여러 가치관을 가질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 표출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이분법적 사고'가 혐오·차별 확산의 바탕에 있다고 진단했다. '적과 나를 나누면서 적이 없어져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식의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이들은 피아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경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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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차별·혐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96명에 물었다 지면기사
응답자의 10.5% '나도 성소수자' 답변'자녀가 성소수자와 친밀' 절반 '허용''지인이 동성애자란 사실 알게되면?'55.2% '관계 변화 無'… 23.8% '변화'대다수 '차별은 잘못' 큰 틀 공감하나'교과 도입' '동성혼' 반대비율 높아져차별과 혐오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차별·혐오의 대상자로 지목되는 소수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경인일보는 지난 8일부터 19일까지 자체 페이스북 계정에서 네이버 오피스 폼을 이용해 '차별 및 혐오 실태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796명이 응답한 이번 조사에서 지인 중에 성 소수자가 있다는 응답이 37%로 나왔다. 또 자신을 성 소수자(동성애자, 양성애자)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10.5%(83명)에 달했다. 우리 사회에 성 소수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지인이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23.8%는 '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19.2%는 '중립'이라고 했다. 응답자들은 "동성이기 때문에 약간은 있을 것 같다", "혐오하기 때문에" 등의 이유를 들었다. 절반 이상인 55.2%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알던 사람 자체는 같은 데 변화가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등의 응답도 나왔다.'자녀가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걸 허용하겠느냐'는 질문에 찬성한 비율은 49.7%로, 앞선 질문에서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답한 비율 55.2%보다 낮았다.이유를 주관식으로 물었을 때 "'내로남불'이지만 내 아이는 (성 소수자가) 아니었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이라는 대답도 눈에 띄었다.차별 경험에 대해 물었을 때 설문 참여자 중 573명(72%)은 자신이 성별, 성적 지향, 이념, 인종 등을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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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2)빛나지 못하는 무지개]다름을 인정한 엄마는 '내편이 됐다' 지면기사
중학교때 동성애자 정체성 깨달은 정예준씨, 4년전 털어놔부모님, 성소수자 부모모임 등 나가 조언 구하고 위로받아"가족인 내가 내 아이 부정하면 누가 지키겠나" 받아들여A="동성애 반대하십니까?", B="반대하지요."A가 재차 묻는다.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B는 같은 답을 한다. "그럼요."2017년 있었던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회의 모습이다. 이때 A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B는 문재인 후보다. 선거결과 A는 2위로 낙선했고, B는 당선돼 대통령이 됐다. 두 후보의 합산 득표율은 65.1%다.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했던 이들은 무엇을 반대할까. 동성애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다. 성 소수자 모두가 그렇다. 다수의 기준과 비교했을 때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다르게,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다.고양 일산에 사는 강선화(52)씨는 4년 전 자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 토론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난 18일 강선화·정예준(25) 가족을 인터뷰했다. 강선화씨는 "'내가 내 아이를 부정하면 누가 내 아이를 지키겠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들 예준씨가 커밍아웃한 뒤 든 여러 생각 중 하나였다. 예준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를 짝사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처음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 친구를 피해 다녔지만 이내 다른 남자아이에게 두근거림을 느꼈다. 고민 끝에 20살이 됐을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어렵게 말했는데 친구는 예상외로 시큰둥한 반응이었어요. '뭐 어쩌라고'라는 투였죠. 이후 1년 동안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렸고, 부모님에게도 말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정예준씨는 편지로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렸다. 그가 식탁에 올려두고 떠난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부모님께. 심호흡을 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저는 사실 동성애자예요'. 아들이 게이일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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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트랜스젠더 이한결씨의 '새 인생' 지면기사
여성으로 출생… 정체성 고민 털어 놓자어머니 "차라리 레즈비언으로 살았으면"수술후 법원 성별 정정 기각, 1년뒤 허가"다른 소수자 상담… 함께 변화 만들것""모두가 여자 혹은 남자 어느 한 성별로 저를 규정하려 해요. 저는 그냥 저인데."이한결(26)씨는 트랜스젠더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수술을 통해 남성이 됐다. 이씨와 같은 트랜스젠더는 미국에 100만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2017년 미국 공중보건 저널(Public Journal of Public Health)은 인구 10만명 당 390명이 트랜스젠더로 확인됐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우리나라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10만명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MtF(Male to Female)가 더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씨와 같은 FtM(Female to Male)은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소수다.그는 "제가 가진 성 정체성대로 살기 위해 가족을 설득했고, 수술을 받고도 법정에서 성별 전환이 거부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성 정체성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 기간은 10년이 넘는다.이씨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6~7세 때부터 자신이 지정받은 성별(sex)은 여성이지만, 사회적 성별(gender)은 남성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 치마 대신 바지 한복을 입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여성에게 이끌렸다. 당시 모습을 보고 이씨의 어머니는 '딸이 레즈비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가슴이 나오는 게 싫어서 없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그는 중학생 무렵부터 어머니에게 가슴 제거 수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성인이 돼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후에도 한결씨는 여성 애인을 소개하는 등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이씨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겠느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가족 입장에서는 수술을 해야 하고,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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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퀴어 관점 문학평론 팟캐스트 진행자 '보배·다홍씨' 지면기사
"친구들 알지만 가족은 까맣게 몰라"법이 차별 묵인할 때 문학으로 위로"우리 방송 성감수성 높이길 바라"성 소수자가 커밍아웃을 주저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생계'다.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이들이 성 정체성을 숨기도록 압박한다.퀴어문학플랫폼을 표방하는 '무지개책갈피'에서 문학평론 팟캐스트 방송 '무책임라디오'를 진행하는 보배(32·활동명)씨도 이런 경우다. 보배씨는 "22살 무렵부터 친구들에겐 제가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며 "해고될까 하는 걱정에 직장에도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지난 2000년 방송인 홍석천씨가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했다. 이는 성 소수자 관련 담론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인 2001년엔 트랜스젠더 하리수씨가 광고 모델로 지상파 방송에 데뷔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보배씨는 "이성애자들은 연애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직장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는다"며 "성 소수자는 능력이 충분하더라도 성적 지향 때문에 해고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보배씨와 함께 '무책임라디오'를 진행하는 다홍(23·활동명)씨 역시 "군형법 제92조 6은 항문성교를 한 사람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성 소수자에 대한 엄연한 차별"이라며 "지난해 인천퀴어퍼레이드에 갔을 때 일부 집단이 '동성애는 죄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며 제 몸을 밀쳐서 그 충격으로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법과 제도가 차별을 묵인할 때 이들은 문학에서 위로를 받았다. 보배씨는 지난 2015년 다른 성 소수자와 함께 퀴어문학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비영리단체 '무지개책갈피'를 창립했다. 지난해부터는 이 단체 회원 3명과 퀴어문학을 평론하는 팟캐스트 '무책임라디오'를 진행하며 청취자를 만난다.모두 30회 진행된 이 방송은 회당 누적 조회수가 1천회가 넘는 등 반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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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다양성 존중' 갈 길 먼 우리 사회 지면기사
사회 분위기 탓에 '공개' 많지 않아100% 가까워야 평등 '무지개 지수'한국 8.08%… 러 10.2% 보다 열악성 소수자는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신체상 성적 특징 등에서 사회적 소수자인 사람들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게이나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등을 지칭하며, 이를 통칭해 '퀴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색은 빨강부터 보라까지 '무지개'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성 소수자의 상징이 됐다.# '성 소수자' 다양한 색 품은 무지개와 닮아일반적으로 타인에게서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 성적 지향에 따라 남성이 남성을 좋아하는 게이,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레즈비언으로 불린다. 만약 자신의 성 정체성이 태어날 때 성별과 다를 경우 전환 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트랜스젠더다. 성 소수자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복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게이이면서 트렌스젠더일 수 있다. 또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간성(intersex)도 존재한다.성 소수자가 한국에서 얼마나 존재하는지 보여주는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나 주변의 시선 탓에 성 소수자임을 떳떳하게 밝히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성 소수자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5%가량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통계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지난해 인천에서 열렸던 '인천퀴어 문화축제'에 5천여명이 참가하는 등 성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소수자가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 성소수자 인권 '세계에서 가장 낮고, 최근에는 하향세'SOGI(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 연구회는 매년 '한국 LGBTI 인권현황'을 발표한다. LGBTI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를 뜻한다.'2019년 한국 LGBTI 인권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성 소주자 인권지수(무지개 지수)는 8.08%로 전년 11.7%보다 3.62%p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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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황인근 집행위원장 지면기사
퀴어축제서 축복기도 '2년 정직' 처분목회할 수 없는 '수위 높은 징계' 받아동조 아닌 '소수자 사랑' 실천했을 뿐"성 소수자에 대한 축복기도는 죄가 될 수 없습니다."지난 15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온누리큰빛교회에서 열린 교회 재판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기감)는 이동환 수원영광제일교회 담임목사에게 2년 정직을 선고했다. 이 목사는 지난해 8월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열린 '성 소수자 축복식'에서 집례자로 나서 이들에게 꽃을 뿌리고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교단 측은 이 목사의 행동이 교단 헌법(교리와 장정)에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규정한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 목사를 재판에 넘겼다.재판 결과가 나온 직후 이동환 목사를 변호했던 '성 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지난 16일 경인일보와 만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황인근 담임목사(김포 문수산성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 "2년 정직은 정직 중에서도 가장 수위가 높은 징계로 면직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며 "설교, 세례 등 목사로서 목회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인데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런 징계를 받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대책위는 이 목사의 행동이 '동성애를 찬성하고 동조'한 것이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었다고 강조했다. 황 목사는 "교회는 다친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앞장서서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싸움은 이동환 목사를 구명하겠다는 싸움이 아니다"라며 "합리적이고 건강한 신앙으로 교회가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강조했다.이 목사는 평소 해고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교회 청년 중 한 명이 이 목사에게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밝히면서 동성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황 목사는 "커밍아웃을 한 청년을 교회에서 내칠 수도 없었고 교인들도 점차 이 사실을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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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임신규 '인천퀴어축제' 집행위원장, "인천퀴어문화축제 올해도 개최할 것" 지면기사
즐기는 동시에 혐오·차별에 대한 저항코로나 영향, 행진 대신 실내행사 검토"차별금지법 계기, 변화 이어질 수 있어""인천퀴어문화축제는 올해에도 열립니다."퀴어문화축제는 서울과 대구에서 10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인천에서는 2018년 동인천북광장에서 첫 행사가 열렸다. 첫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축제 현장 인근에서 반대 집회가 열렸고 욕설이 난무하기도 했다. 지난해 열렸던 2회 행사 때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인천퀴어문화축제 임신규 집행위원장은 "그 정도 심한 반대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서울에서도 반대 의견을 피력하긴 하지만 행사를 진행하는 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앞서 진행된 축제보다 축소된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또 행진 대신 실내에서 행사를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임 위원장은 "성 소수자들은 광장으로 나오고 싶어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에 한계가 있다"며 "퀴어문화축제가 성 소수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퀴어문화축제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전 세계 곳곳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이는 성 소수자가 즐기는 축제이면서 혐오범죄나 차별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그는 "성 소수자가 비 성 소수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보수 기독교 세력 등은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강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그는 '학교 교육의 변화'를 강조했다. 어렸을 때부터 성 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 없기 때문에 성 소수자들은 어렸을 때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기도 어렵다"며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어려움을 겪었을 때 상담 등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우리나라는 성 소수자에 대한 포용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낮다. 반면 국민 인식은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신교 신도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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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우리 언어'에 담기지 않은 그들의 사랑 지면기사
2012년 '표준국어사전' 정의 변경애정 등 5개 단어 '남녀 → 두사람'반대 거세지자 2014년 '남녀' 포함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성 소수자와 관련해 우리 언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국립국어원은 2012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 '애인', '애정', '연애', '연인' 5개 단어의 정의를 변경했다. 기존에는 '남녀'라고 표현했던 것을 '두 사람'이라고 바꾼 것이다. '남녀'라는 표현이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를 배제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남녀'라고 했을 때 최소 1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를 이 단어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4년에는 이 중 '사랑'과 '애정'의 정의에 '남녀'가 포함됐다. 국립국어원이 단어의 정의를 변경하자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셌기 때문이다.김하수 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전문가들도 대중의 여론을 반영해 사전의 정의를 바꿀 수밖에 없다"며 "2012~2014년에 동성애 관련 논쟁이 있었을 때도 민원이 다량 발생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사전도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우리 언어는 성 소수자를 배제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OECD 국가 중 동성애 수용도가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김 전 교수는 지난 2004~2006년 국립국어원 언어정책부장을 지냈다. 2005년 국어기본법이 제정되며 출범한 국어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김 전 교수는 국립국어원이 소수자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단어의 정의를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그는 "국립국어원이 조금만 세심해지면 소수자를 배려한 표현을 사전에 담을 수 있다"며 "다수 국민의 인식이 당장 바뀌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사전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을 '남녀 간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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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 인터뷰 전문]아들의 커밍아웃 받아들인 강선화씨 가족
Q. 예준 씨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언제 처음 느꼈고, 부모님께 왜 커밍아웃을 했나.A.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를 짝사랑하면서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 아무리 애써도 그 아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애를 피해 다녔지만 그 아이를 잊으니 또 다른 남자아이에게 두근거렸다. 그때 마침 성 소수자 이야기를 다룬 웹툰을 봤고 내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러나 '게이'나 '동성애자'같은 단어는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말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셨지만 부모님에게조차 말하기 무서웠다. 그래서 어느 공간에서든 만성적으로 답답함을 안고 살았다. 20살이 돼서야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런데 별일 아니라는 투로 반응했다. '뭐 어쩌라고'라는 식이었다. 이후 1년간 거의 모든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했다. 내 성 정체성이 바뀌지 않는 이상 부모님에게도 커밍아웃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면전에 대고 말하면 격앙될 것 같아 편지를 썼다. 한 달 간 썼다 지우다 하면서 설득될 만한 표현을 찾았다. 내가 어떤 자기 부정의 시간을 지나서 부모님을 믿고 커밍아웃하는지 표현했다. 그렇게 2016년 7월 '이번주 목요일에 중대발표를 한다'고 예고한 후 식탁에 편지를 올려두고 친구 집으로 피신했다.Q. 선화 씨는 커밍아웃 당시 느낌이 어떠셨나.A. 4년 전 일인데도 아직도 그날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 충격이었다. 직업이 항공승무원이어서 다음날 미국으로 떠났는데 비행기에 타고 나서 호텔방에 도착해서까지 48시간 가까이 잠을 못 이뤘다. 예준이가 준 '성 소수자 부모 인터뷰집'과 '성 소수자 부모를 위한 가이드북'은 차마 펼쳐보지 못했다. 용기가 안 났다. 내가 받아들이면 예준이가 다시는 다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이런 태도가 바뀐 건 예준이가 컴퓨터 바탕화면에 내려받아 놓고 간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 때문이었다. 영화 주인공 바비는 부모가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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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1)붉은 망령]혐오, 대한민국을 물들이다 지면기사
21세기 들어서도 계속된 '빨갱이 낙인'존재 자체를 반대 당하는 성소수자 등다름을 인정 않고 배제하는 사회 정서확산 거듭하며 또다른 비하·차별 불러당신이 보는 사회는 무슨 색(色)입니까.최근 정부는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근무 중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공무원이 바다에서 표류하다 북측 바다로 이동하게 된 건지 아니면 스스로 월북 의지를 갖고 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북한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은 확인됐다.지난 15일 고양시 일산서구 황룡산 '금정굴'에 20여명이 모였다. 70년 전인 1950년 10월 이곳에서 학살당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위령제에 참여한 이들은 학살당한 희생자의 유가족이다.별개인 듯한 두 사건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사건 당사자의 가족들이 모두 '빨갱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공무원이 실제로 월북을 시도했는지 알 수 없다. 금정굴 희생자가 북에 부역을 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지금도 비슷한 일이 자행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지났음에도.금정굴 희생자 가족들에게 지난 70년은 아픔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붉은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봤다. 대북 관련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빨갱이'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금정굴 희생자 가족들은 숨을 죽이고 살아야만 했다.수십년 간 금기의 색으로 작용했던 'RED'는 점차 균열이 생겼다. 2000년 남과 북이 손을 잡고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고, 자유롭게 금강산을 여행했다. 2002년엔 전국의 광장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더 이상 붉은색은 '빨갱이'를 의미하지 않게 되는 듯했다. 하지만 수십년 간 이어진 우리 사회의 색안경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종북' 논란이 휘몰아쳤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이 해산됐다. '종북 아니냐'는 물음은 상대를 제압하는 쉬운 무기로 작동했다. 2020년 발생한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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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70년 풀지 못한 恨 '금정굴 학살' 지면기사
6·25전쟁 당시 인민군이 장악했던 지역'부역자 색출'… 민간인 150여명 암매장가족들, 수십년 차별·비판 '고통' 감내경기도의회, 위령탑 등 추진 '20년 지연'부동산 가격 ↓ 우려… 유해 안치 '기피'1950년 10월 고양시 황룡산 '금정굴'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150여명이 학살됐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 발발 이후 인민군이 이곳을 장악했을 때 그들에게 부역했다는 이유였다. 같은 해 9월에 있었던 인천 상륙작전으로 한국 전쟁의 전세가 역전됐고, 적군에게 부역한 혐의를 가진 이들을 학살한 것이다.70년이 지난 2020년 10월15일 오전 학살로 희생된 이들의 가족 20여명이 학살의 현장에 모였다. '제70주기(제28회) 고양지역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해를 이곳에 안치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이날 현장을 찾은 이병순(87)씨는 희생자 이봉린씨의 아들이다. 이봉린씨가 죽임을 당한 날은 70년 전 10월14일이다. 이병순씨가 10대였을 때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수십 년 동안 숨어 지내다시피 하면서 살았다"며 "금정굴은 어릴 때 자주 찾던 놀이터 같은 곳이었지만, 사건 이후 40여년 동안 이곳을 찾지 않았다"고 말했다.그는 수십 년간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떳떳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농작물 재배 현황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북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정치적인 성향과는 상관없이 희생됐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이병순씨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아버지에 대해 부끄러움은 없었다"면서도 "지금은 그래도 나아졌지만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하는 '빨갱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그가 한국전쟁 이후 학살 현장을 찾은 것은 학살 40년이 지난 1990년대다. 한국 전쟁 이후 40년이 지나서다.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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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불편한 시선 여전 '북한 이탈 주민' 지면기사
공직사회서 '낙하산' 취급… 대북이슈땐 곱지 않은 시선한국 국적 취득해도 인정 못 받아 '인권·정착'위한 활동북한에서 이탈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올해 6월 기준(누적) 3만3천670명.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음에도 이들이 한국에서 온전하게 자리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탈북민들은 한국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견뎌야 했고 차별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한국 정착 12년차인 김혜성(45·여)씨는 공무원의 삶을 선택했다. 지역고용노동센터, 부천시청을 거쳐 올해부터 서울 양천구청에서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시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최근 대학원에 진학해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바쁜 삶을 살고 있다.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사는 등 한국 사회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지만, 김씨의 한국 사회 정착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정착 초기 서류를 통과하더라도 북한에서 왔다는 소식을 알리면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다단계에 휩쓸려 빚을 지기도 했다. 새 출발을 위해 상담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의 노력 결과 공무원 신분이 됐지만 공직 사회에서도 편견과 차별이 있었다. 그가 몸담고 있었던 한 기관에서는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낙하산'이라는 소문이 돌아 한 달여 동안 말을 거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김씨는 "'총 쏘는 것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돈이 없으니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지 말자'는 얘기도 들었다"며 "대북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느꼈다"고 말했다.이어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허초희(51·여)씨는 3번의 탈북 시도 끝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그는 13여년 간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정착 과정에서 차별이라는 난관을 이겨내야 했다. 지난 2012년부터 최근까지 인천 남동산단에서 일을 했던 허씨는 정착 이후 주변으로부터 '못사는 데서 왔다', '먹을 것도 없는 나라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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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통진당 해산 억울" 지면기사
"헌재, 北 사회주의 추종·의원직 박탈 판결… 근거 없어"탄압받는 사람들 연대… 국민 스스로 '색안경' 벗을 것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국회의원직을 잃은 김재연 전 의원. 현재 진보당 상임대표로 활동하는 그는 "2020년 현재도 레드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레드 콤플렉스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된 것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 상대 정치 세력을 좌익·친북·종북으로 몰아가며 비판하는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통합진보당이 해산한 2014년은 한국 사회에서 레드 콤플렉스가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던 시기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가 정당을 해산한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김재연 상임대표는 삭발 등의 방식으로 반발했다. 김 상임대표는 "6년이 지난 지금 헌재 해산심판 결정문을 다시 봐도 납득할 수 없다"며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숨은 목적을 가진 정당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정당이 해산됐을 때 의원직까지 박탈된다는 건 헌법은 물론 법률에도 근거가 없다"며 "법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색깔 공세'라는 의미"라고 말했다.2014년 박근혜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통진당 해산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관 8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해 통진당은 해산됐다. 지역구 국회의원 3명과 비례대표 의원 2명은 의원직이 박탈됐다. 통진당 해산의 정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까지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오래가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김 상임대표는 "당시 새누리당이 쳐놓은 '종북'이라는 프레임에서 민주당이 옴짝달싹 못했고 진보진영조차 통진당 해산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낼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그는 통진당이 해산된 이후 국회에서 북측과의 평화적 공존을 주장하는 정당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치 지형에서 가장 진보적인 축에 속하는 정의당이 최근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대해 "북 함정을 격파했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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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한국 사회 뒤흔든 '레드 콤플렉스' 지면기사
일제강점기 이후 뿌리 박힌 '이념 적개심'국가보안법 제정… 1961년 '반공' 국시로'인혁당 사건' 등 다른 생각 탄압도구 활용헌정 최초 '종북 논란' 통진당 해산 판결北 적개심 낮아졌지만 '혐오 정서'는 여전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RED(레드)'다. 붉은색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상징한다.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부터 좌우 갈등이 극심했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휴전'상태에 있다. 남측은 '자유민주주의'를, 북측은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좌우 이념 차이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으로 표출됐고, 이는 남측 구성원 대다수에게 깊숙하게 뿌리박혔다. '레드 콤플렉스'는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막을 내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흘렀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도 하고, 이념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레드 콤플렉스를 빼놓을 수 없다. 사회주의와 북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도 남아 있다. 북과 관련돼 있으면 '차이'는 '틀림'으로 간주된다.'레드 콤플렉스'는 일제강점기 때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독립을 위한 방법은 각자가 달랐다. 사회주의를 추구하기도 했고, 자유주의 방식이 답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해방을 맞이했으나 38선이 그어졌다. 각각의 이념은 38선 이남과 이북에서 세력을 키웠다. 이념의 차이는 갈등의 모습으로 곳곳에서 나타났다. 여순사건, 제주 4·3항쟁 등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남과 북을 더 갈라놓았다. 전쟁은 3년간 이어졌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양 일산 금정굴 등지에서는 민간인이 학살되기도 했다. 전쟁의 결과는 '휴전'이었고 38선보다 조금 북쪽에 휴전선이 설치됐다.한반도 남쪽에는 '레드 콤플렉스'가 공고해졌다.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