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잊지 않았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잊지 않았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지면기사

    참사 당시 너무 어려 "그런 일이 생겼구나…"중학생 돼서야 '비극' 인식… 당시 대응 분노'희생된 형·누나들에 부끄럽지 말아야' 다짐"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형·누나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죠."지난 22일 오전 10시께 안산시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수원고등학교에 다니는 조익주(18)군이 기억교실 2학년 1반을 찾았다. 기억교실에 처음 와 본다는 조군은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한 학생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달력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2014년 4월 15일부터 18일까지 수학여행 일정을 표시해 놓은 달력이었다.'세월호 장학생'인 조군은 그렇게 책상마다 놓인 유품들을 살폈다. 지난해 수원고 2학년 1반 반장이었던 그는 '416단원장학재단'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조군이 이날 단원고 기억교실 '2학년 1반'부터 찾은 이유다.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2015년 4월 설립된 단원장학재단은 해마다 경기도 학생과 교사들을 선발해 각각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학생 903명과 교사 44명이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받았다.조군은 한때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인 '영원한 캡틴' 박지성의 모교인 세류초등학교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축구 명문인 매탄중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아픈 무릎 때문에 결국 오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조군은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모범 학생이다.조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형·누나들에게 썼던 편지, '얼마나 두려우셨을까요'라는 첫 구절을 또렷이 기억했다."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형·누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어요. 세월호 참사 당시엔 제가 너무 어렸어요. 그냥 '그런 일이 생겼구나.' 했거든요. 중학생이 돼서야 엄청난 비극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정부가 조금만 더 대응을 잘했더라면 형·누나들이 모두 살 수 있었던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친구 잃은 또래들의 아픔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친구 잃은 또래들의 아픔 지면기사

    "함께 웃었는데… 한순간 사라져"억누른 감정 표출 기회 거의없어"얘기하고 공감하는 자리 마련되길"친구를 잃은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내색할 수 없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부짖는 친구의 부모님 앞에서 내가 가진 슬픔은 왠지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차디찬 바다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친구들의 장례식이 하루가 멀다 하게 안산에서 치러졌다.'난 어디까지 친구였지?', '걔도 날 친구로 생각했을까?'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슬픔의 무게가 가늠조차 되지 않던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함께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단원고 희생자들의 한 친구 이야기다.지난 2017년 봄 세월호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친구들이 처음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들의 아픔을 털어놓는 자리가 안산시 단원구 와동의 '치유공간 이웃'에 마련됐다. 치유공간 이웃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보듬는 시민사회단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또래 26명이 단원고 희생자 친구들의 아픔을 듣고 기록하는 자리였다.'공감기록단'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활동에 참여했던 전종현(23·대학생)씨는 "억누르던 감정을 트이게 해준 고마운 기회"였다고 떠올렸다. 단원중 출신인 전씨는 동네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에서 끓는 슬픔을 충분히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던 그였다. 남은 친구들에게 세월호 참사가 일종의 금기어로 여겨진 까닭이다.세월호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해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도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렵게 발걸음을 뗀 장례식장에선 친구 부모님은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전씨는 "'내 슬픔을 부모님의 슬픔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 울지도 못하고, 슬퍼하는 걸 내색해도 되는 건지도 고민했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전씨는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6주기를 기해 마련된 제주도 기행에 함께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단원고 학생 생존자 3명의 고민과 다짐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단원고 학생 생존자 3명의 고민과 다짐 지면기사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된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6년이란 시간이 지나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참혹했던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극적으로 구조된 한 학생은 전남 진도군 서거차도로 옮겨진 자신에게 따뜻한 담요와 위로의 말을 건넸던 119구조대 응급구조사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군 복무까지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떼려 하는 다른 한 학생은 후회 없는 삶을 다짐하며 미디어 콘텐츠 에디터를 꿈꾼다. 잠시 휴학을 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도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구조사로 경력을 쌓고 있는 장애진(23)씨, 그리고 이지훈(가명·23·대학생), 김소연(가명·23·휴학생)씨 등 세월호 참사를 겪은 청년 3명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월호'라는 낙인이 따라 붙다이들은 6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단원고 출신임을 주변에 드러내는 게 껄끄럽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원한 이씨와 김씨도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는 걸 걱정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는 장씨는 그런 면에선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익명성 뒤에 숨어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조롱하는 막말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장=사실 가장 부담되는 건 '아~그러냐'며 뭔가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지만, 저희들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김=물론 신경이 많이 쓰여요. 다른 사람들이 제가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상대 반응부터 살피게 돼요.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혼자서 계속 세월호라는 낙인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하게 되죠.이=뒤에서 무슨 말을 하든, 앞에서만 안 하면 다행이라 생각해요. 제 과거에 대해 남들이 폄하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깨달았어요.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로 평가하도록 치열하게 스스로를 개발하고 증명하는 방법이에요. 이렇게 하지도 않고 낙인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건 간절하지 않다고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주민과 유가족 연결하는 '4·16 안산시민연대'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주민과 유가족 연결하는 '4·16 안산시민연대' 지면기사

    추모시설 놓고 일부서 갈등 빚기도 6년 흘러가며 생긴 '벽' 허무는 역할"안전한 사회, 새로운 비전 세울 시점"안산지역 시민들은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혹은 그들의 부모, 형제·자매 등과 '아는 사이'였다. 안산 시민들의 아픔과 책임감이 유독 남달랐던 이유다. 참사 초기에 안산시 지역사회는 남은 가족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6년이란 세월은 한결같던 그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기엔 긴 시간이었다. 기억교실 이전, 합동 분향소 폐쇄, 생명안전공원 건립 등 추모시설을 놓고 일부 주민들과 유가족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아지기도 했다.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서는 화랑유원지에서 지난 16일 열린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 때 '화랑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유가족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던 몇몇 주민들의 모습은 이런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4·16 안산시민연대는 유가족과 일부 주민들 사이에 생긴 벽을 허무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향한 유가족들의 고독한 싸움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위성태 안산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유가족과 안산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만나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며 "유가족들은 동네에 들어가서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반대로 유가족들을 만나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고 싶어 하는 시민들도 많다"고 설명했다.위 사무국장은 안산지역에서 빚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이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봤다. 하나의 사업을 추진할 때 찬성과 반대 입장은 언제든 나뉘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 추모와 관련한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는 행동과 발언은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사무국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신과 입장을 가지고 누구나 자기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세월호와 관련한 갈등이 꼭 안산지역이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소통을 통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아가는 게 중요한데, 대화는 하지 않고 소란을 피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전세계에 각인된 이름… 6주기 추모 '메시지'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전세계에 각인된 이름… 6주기 추모 '메시지' 지면기사

    # 세계 각지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있다. 재외 교포, 유학생, 자국 현지인, 시민단체 인권 활동가 등은 최근 세월호 6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전 세계로 확산한 코로나19 사태로 모임이 어렵게 되자 이들은 화상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추모 집회를 여는가 하면, 온라인 공간에 추모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독일·프랑스·핀란드 등 유럽 각국의 도시들을 비롯해 미국, 브라질, 호주, 일본, 태국 등지에서도 416연대(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에 추모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이에 동참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4·16의 기억' 남기는 화가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4·16의 기억' 남기는 화가 지면기사

    이종구 화백, 단원고 학생 화폭 담아작가로서 '마음의 힘' 소진되는 느낌'다시 4월, 봄이 오다' 10월까지 전시"우리나라의 축적된 모순으로 소중한 아이들이 희생됐어요. 기성세대가 반성하고 앞장서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함께 그 길을 가자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인천에 작업실을 둔 이종구 화백(중앙대 미술학부 교수)을 만났다. 그는 안산시 단원고 근처에 있는 한 전시실에서 보자고 했다. 학교 근처 주택가의 작은 상가 건물 3층에 자리한 '4·16 기억전시관'이었다. 지난 9일 오후 2시께 찾아간 이곳에는 그와 정평한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 화백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생전 모습을 그림으로 담았다. 아이들이 1학년 때 반별로 찍은 단체 사진을 구해 그렸다. 그림 속 아이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한가운데 담임 선생님을 향해 자기 반 숫자를 가리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 중 325명이 이듬해 인천에서 수학여행지인 제주도로 향하는 세월호에 몸을 실었고 그날 사고로 250명이 숨졌다.이 화백은 2017년 여름 해남 임하도의 한 폐교에서 먹고 자면서 꼬박 3개월을 작업했다. 세월호가 다니던 뱃길이 보이는 곳이다. 그는 "이 시대의 작가라면 누구나 세월호를 그대로 지나치기 어려울 것"이라며 "화가로서 아이들의 영혼이라도 되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림으로 기록해서 역사적 증언을 해야겠다는 각오였다"고 말했다.이 화백은 이 그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 이어 탄생한 새 정부, 그리고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들을 화폭에 담아 2018년 서울 종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광장-봄이 오다' 개인전을 열었다.작업을 모두 마치고 '4·16 기억교실(현재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위치)'을 다시 찾았다는 이 화백은 "초상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책상 위에 놓인, 이제는 영정이 된 사진 속에서 만났을 때의 그 충격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작가로서 마음의 힘이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어디까지 왔나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3·끝)우리의 미래-세월호 세대]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어디까지 왔나 지면기사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구성됐다. 사참위는 박근혜 정부 때 출범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사 활동을 당시 청와대와 정부 부처가 조직적으로 방해한 증거를 발견하고 최근 수사를 요청했다.2기 특조위로 불리기도 하는 사참위는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18층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및 개인정보 수집 등과 관련해 조사한 결과 국정원 법상 직권 남용의 금지 및 직권남용죄 등 범죄 혐의에 대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며 "국정원 전·현직 직원 5명과 불상의 직원 수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사참위 조사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 최소 2명은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최소 3건 이상의 보고서를 작성해 국정원 내부망에 보고했다. 또 국정원으로부터 입수한 세월호 참사 관련 동향 보고서 215건 중 48건의 보고서가 유가족 사찰과 관련된 것으로 사참위는 파악했다.여론조작 관련 보고서도 9건이 있었다는 게 사참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보수(건전) 세력(언론)을 통한 맞대응'과 '침체된 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한 일상복귀 분위기 조성' 등 제목의 보고서에는 세월호 추모 분위기를 공익광고 등의 캠페인으로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게다가 국정원 자체 예산으로 '세월호 참사를 이제 잊고 새로운 사회를 위해 나아가자'란 내용의 동영상을 외주로 제작해 게시하기도 했다.앞선 지난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참위는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전·현직 공무원 19명과 국무조정실 등 10개 정부 부처를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수사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사참위는 지난 2015년 특조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을 조사하려 하자 청와대와 여러 정부 부처가 조직적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어느 수학여행 안전요원의 고백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어느 수학여행 안전요원의 고백 지면기사

    4대 보험 6개월치 내고 여행사 직원으로수료증 대여가능 허점… 잔심부름 도맡아사전답사 제외 현장 대응력 부족도 문제'수학여행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수학여행·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내놓았습니다. 안전요원도 그렇게 생겨난 겁니다. 작은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는 저도 봄·가을에는 안전요원으로 일합니다. 코로나19 사태만 아니었다면, 지금 한창 바쁠 때죠.부끄러운 고백을 하겠습니다. 3년 전이에요. 한 여행사 대표가 안전요원으로 일할 사람들을 급히 구한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학교와 수학여행 계약을 하려면 안전요원이 필요했던 거죠.안전요원이 되려면 일정한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국내여행안내사, 국외여행인솔자, 소방안전교육사, 응급구조사, 청소년지도사, 숲길체험지도사 등에게만 교육받을 자격을 줍니다.여행사 대표는 어느 민간단체가 발급하는 국외여행인솔자 자격증을 추천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따기가 쉽거든요. 해외를 나가본 적 없는 제게 여권에 도장 하나는 찍혀 있어야 한다더군요. 부랴부랴 여권을 만들고 당일치기로 일본을 다녀왔죠. 이 자격증을 따려면 여행사에 최소 6개월 이상 근무해야 합니다. 여행사 직원인 것처럼 꾸미려고 최저임금 수준으로 4대 보험 6개월 치를 냈어요. 당국에는 신고가 늦었다고 거짓말을 했죠. 자격증 시험이요? 수업도 안 받고 자격증을 손에 쥔 사람도 봤습니다.이렇게 꼼수로 자격증을 따서 교육부가 대한적십자사에 위탁한 안전요원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정작 학생 인솔에 필요한 전문 교육은 빠져 있더군요. 응급처치 위주였습니다. 적십자가 발급하는 안전요원 수료증은 사진이 안 들어가 대여도 가능하다는 허점이 있어요.안전요원은 학생들을 안전하게 인솔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표소 발권 등 잔심부름까지 안전요원 몫이에요. 교사, 학부모 등이 따라가는 수학여행 사전 답사에 안전요원이 빠진다는 점도 문제예요. 안전요원들이 현장을 몰라 허둥지둥합니다.매뉴얼에 따라 학생 50명당 1명씩은 안전요원을 둬야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유가족 '정부 배려 당부'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유가족 '정부 배려 당부' 지면기사

    6살 아들과 아빠 등 43명 가족품 못돌아와인천 추모관 '운영비 문제' 한때 문닫기도세월호 참사 당시 고(故) 권모(당시 50세)씨 가족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권씨와 아내 그리고 6살 아들은 미처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한 살 터울 오빠가 벗어 입혀준 구명조끼를 입고 있던 어린 딸만 가까스로 구조돼 홀로 남게 됐다. 딸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됐고, 권씨와 그의 아들은 유해조차 수습되지 못한 채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수습자'로 남아 있다.우리는 이들을 일반인 희생자라고 부른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출항한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에는 모두 476명이 탑승했다.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그리고 일반인 승객 104명, 여기에 선원 23명과 승무원 10명이 함께 있었다. 그날의 참사로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희생됐다. 일반승객 33명, 선원 5명, 승무원 5명도 끝내 구조되지 못한 채 가족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참사 이후 희생자들은 크게 '단원고 희생자'와 '일반인 희생자'로 나뉘었다. 이들 유가족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한목소리를 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안전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도 같았다.하지만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세월호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일반인 희생자가 지워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지난 6년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해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에 아쉬움이 짙어지는 시간이었다.지난 20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인천가족공원 내 세월호일반인희생자추모관에서 만난 전태호 세월호일반인유가족협의회 위원장도 이 같은 설움을 토로했다.전태호 위원장은 "대부분 세월호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단원고를 먼저 떠올린다"며 "상대적으로 일반인 희생자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일반인 희생자들의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진실규명 향한 '5대 정책과제'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진실규명 향한 '5대 정책과제' 지면기사

    416연대, 총선 전 '정책과제 약속운동'참사 진상 캐기·안전사회 '방향' 제시참여자 144명 '금배지'… 2명 추가동참국회가 유가족의 요구 응답해야 할 때드넓은 바다 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노란 빛깔 부표가 갑판에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부표에 적힌 '세월호'라는 글자가 선명해지면서 그날을 떠올리는 유가족들의 아픔도 또렷해졌다.세월호 참사 6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2일 새벽 2시께 유가족들은 참사 해역으로 향했다. 안산에서 전남 목포까지 버스를 타고 340㎞, 오전 8시께 목포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서 경비함(3015)으로 갈아타 진도 맹골수도까지 다시 110㎞. 사고 해역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9시간이 걸렸다.목적지에 다다르자 기나긴 시간 동안 담담함을 유지하던 유가족들의 감정이 파도에 흔들리는 부표처럼 요동쳤다. 미리 준비한 국화를 바다에 헌화하면서는 갑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가족들은 참사 당일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떠올린 듯했다. 먼저 자식을 떠나 보낸 한 어머니는 아이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먼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40분간 이어진 추모식이 끝날 때까지 유가족들은 갑판 위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슬픔을 달랬다.당일 전국에 많은 비가 예고됐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선상 추모식을 하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목포신항의 세월호 선체를 둘러볼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고(故) 장준형군의 아버지 장훈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모든 일정이 끝나려고 하니 비가 내리려 한다. 고생할 부모들을 생각해 아이들이 함께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이날 유가족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꼭 밝혀내겠다는 약속이었다.다음날인 13일 유가족들의 이런 다짐에 함께하겠다는 이들의 소식이 전해졌다.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4·15 총선을 앞두고 진행한 '21대 총선 5대 정책과제 약속운동'에 총 932명 후보자 중 42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답답한 현실들 수면위로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답답한 현실들 수면위로 지면기사

    # 경인일보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로 '세월호'를 키워드로 검색(54개 언론사)해 시기별 연관어를 분석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부터 그해 말까지는 '희생자', '실종자', '특별법' 등 피해 실태와 후속 대책 등과 관련한 단어의 노출 빈도가 높았다. 이후 세월호 선체 인양과 희생자 수습,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이 있던 2016년~2017년 사이에는 '미수습자', '선체조사위',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 등이 다수 검색됐다. 올해 2020년에는 '막말'이 주요 키워드로 급부상한 점이 눈에 띈다. 세월호 참사 6주기 하루 전날에 치러진 4·15 총선을 앞두고 유가족을 향한 모욕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미래통합당 차명진 후보'도 연관어에 이름을 올렸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국가와 싸우는 피해자들… '故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국가와 싸우는 피해자들… '故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 지면기사

    '맞춤 복지' 적용 못 받아 보험금 지급 제외 경기도교육청 상대로 손배소 대법 선고 남아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고(故) 김초원 교사가 3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을 때, 부친 김성욱(61)씨는 서둘러 묘비부터 살폈다. 그는 딸아이의 이름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기간제'라는 세 글자가 혹시라도 묘비에까지 적혀있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김씨는 사고 이후 6년간 딸의 죽음에 새겨진 기간제라는 낙인을 지우는 사투를 벌여왔다. 뒤늦게나마 국가로부터 딸의 순직을 인정받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김씨는 지난 2017년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2천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딸의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요구인데, 이 역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차별과 관련이 깊다.안타깝게 숨진 단원고 교사 11명 가운데 기간제 신분은 김초원 교사를 포함한 2명이다. 이들은 정규 교사에게만 '맞춤형 복지제도'가 적용된 탓에 생명보험에 가입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김씨 측 변호인단은 도교육청과의 소송에서 기간제 교사도 맞춤형 복지제도가 적용되는 교육공무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교육청이 이들을 배제한 건 명백한 차별적 처우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법원은 정규·기간제 교사에게 주어진 책임의 정도 등을 고려할 때 이 둘을 동등하게 볼 수 없다는 취지로 김씨의 청구를 1심과 2심에서 모두 기각했다.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김씨는 딸을 위한 자신의 싸움이 모든 기간제 교사에게 선한 영향력이 되길 소망했다. 참사 이후 기간제 교사의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각 시·도교육청은 기간제 교사에게도 맞춤형 복지제도를 적용할 수 있는 일정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육청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기간제 교사에게는 생명보험이 포함된 기본복지점수만 부여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기간제 교사에게도 정규 교사와 차별 없이 근속·가족복지점수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강제력이 없어 현장 교육행정에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김씨는 "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국가와 싸우는 피해자들… 구조 위해 달려간 '민간 잠수사들'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국가와 싸우는 피해자들… 구조 위해 달려간 '민간 잠수사들' 지면기사

    팽목항 간 20여명 선체수색 트라우마 시달려해경 계약 안맺어 '산재 배제'… 지원법 국회에"그날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어두컴컴한 선실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구조되기를 기다리다 마지막을 맞은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막 소리를 질렀습니다…."세월호 참사 직후 가장 먼저 선체 수색 작업에 나선 민간 잠수사들의 삶도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해역은 조류가 센 곳이다. 목숨을 걸고 바다로 뛰어든 그들은 희생자 수습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잠수병의 하나로 뼈 조직이 썩어간다는 '골괴사' 판정을 받아 더는 잠수사로서 가족의 생계를 잇지 못하는 이들도 허다하다. 차디찬 주검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들은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등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지난 16일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에서 민간 잠수사 피해자 황병주(61), 하규성(51), 김상우(48)씨를 만났다. 첫 선내 진입을 하던 2014년 4월 20일,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황씨는 "아이들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겠냐"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쿠웨이트에서 일하던 중 사고 소식을 접하고 즉시 귀국해 수색 작업에 합류했다는 하씨는 "당시 우리 집 애들도 고등학생이었다"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고개를 떨구었다.표정이 어둡던 김씨는 "국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세월초 참사 초기에 팽목항으로 달려간 20여명의 민간 잠수사들은 보상은커녕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그해 7월 10일 이후 해경과 계약을 맺은 업체 소속 잠수사들과는 달리 이들은 부상을 당해도 산업재해보상을 받지 못했다. 사망 또는 신체장애를 입은 수난구호 업무 종사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한 '수난구호법'에서도 온전히 보호받을 수 없었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의상자로도 지정되지 못했다. 김씨는 "제대로 치료받게 해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서글프고 분노가 치민다"며 목소리를 높였다.현업으로 복귀한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국립트라우마센터' 언제쯤…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2)미완의 대책-남은 숙제]'국립트라우마센터' 언제쯤… 지면기사

    박근혜정부서 시작… 예산 전액 삭감 정권 바뀌고 재추진 "본궤도 2~3년 더"정부가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약속한 국립 트라우마 지원 센터는 6년째 답보상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안산에 트라우마 관련 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이 센터는 각종 재난·재해로 인한 피해자들의 정신적·신체적 치료를 종합 지원하는 곳이다.보건복지부는 센터 건립을 위해 2016년도 정부 예산에 설계비(3억8천400만원) 등 총사업비 200억원(건축비 100억원·장비 100억원·안산시 부지 제공)을 반영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면서 이런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당시 기재부는 세월호 피해자 심리 상담과 치료 지원을 돕기 위해 경기도가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 위탁해 임시로 운영 중인 안산온마음센터(옛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국립 센터 건립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냈다.겉돌던 이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란 명칭으로 재추진됐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6주기인 지난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도 "다시는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약속한 '안전한 나라'를 되새긴다"며 "4·16생명안전공원,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건립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하지만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건립 사업은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진행이 더디기만 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19년 용역을 한 차례 진행해 '정신건강·신체건강 치료'란 큰 틀의 구상을 세우고 내년도 자체 예산안으로 올려둔 상태"라며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각종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정부로부터 그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의료진에 자신이 세월호 참사 피해자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치료 과정에서도 그날의 아픈 상처를 다시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세월호 피해자들이 국립안산마음건강센터 건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아빠마저 데려간 세월호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아빠마저 데려간 세월호 지면기사

    조울증 앓던 부친 결국 예전으로 못돌아가형이 남긴 동생 방명록에 '안타까운 소식'"남은 자 위한 전문치유시설 만들어지길"4월의 봄이 지나고 있다. 그들에게 했던 약속,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두 번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책임자 처벌 문제도 아직 제자리걸음이다.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날의 시간에 멈춰 있다. 얼마 전 우리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했다. 먼저 떠난 자식을 그리워하던 두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등졌다.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민이 안전한 나라, 그리고 빈틈없는 피해 지원을 약속하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수많은 희생과 맞바꾼 대한민국의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는 데서 이 기획은 출발한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 편집자 주세월호 참사 때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로 숨진 단원고 손모군의 부모님은 '기억교실'을 찾을 때마다 늘 작은아들에게 편지를 남겼다.아들의 스무 번째 생일 날에도, 학교 졸업장을 3년 만에 받아들었을 때도, 아들이 꿈속에 나타나 주지 않아서, 또 꿈에 찾아와준 게 반가워서…. 먼저 떠난 작은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무칠 때마다 아이의 책상에 올려진 메모장에 '엄마 아빠가'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편지를 썼다.'엄마랑 아빠랑 왔다 간다 너무 보고 싶은 내 새끼!', 이 짧은 한 줄은 손군에게 아버지가 보낸 마지막 글귀가 됐다.아버지의 이 편지가 적힌 바로 다음 장에 큰아들 손모(36)씨는 가족의 최근 소식을 전하는 글을 남겼다. '예쁜 내 동생 ○○야! 형수 될 사람하고 엄마, 이모 왔다 간다. 아버지도 니 곁으로 가셨구나. 하늘에서 우리 가족 지켜줘~ 사랑한다 내 동생아♡ 2020.3.11'.그의 아버지는 지난 2월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또다른 유가족의 '비극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또다른 유가족의 '비극 지면기사

    동생 몫 '사명감' 할머니까지 돌봐야추억의 물건으로 '옛 기억'만 떠올려"6년이 지나… 또다른 피해를 막아야"지난 20일 안산 중앙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모(25)씨는 메고 온 가방에서 뽀얀 먼지가 앉은 게임기와 CD 2장을 꺼냈다. 하나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동생과 어린 시절 즐겨 한 게임이라고 했다. 철 지난 게임이지만 그에게는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애틋한 물건이다."세월호 참사 이후 당신 삶의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그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안산 단원고 학생이었던 한 살 터울 동생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났고, 지난해 12월에는 아버지마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김씨는 이제 한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그와 동생은 집안 사정 때문에 학창 시절 아버지와 꽤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다고 한다. 동생이 떠난 뒤 아버지가 더 깊은 슬픔에 빠졌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작은 아들이 수능시험을 보지 못한 채 떠난 걸 안타깝게 여겨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기로 마음먹은 아버지였다. 자격증을 딴 이후에는 영상 편집 기술을 배워 유튜브를 하고, 블로그도 운영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아버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일주일 전쯤 온 가족이 만난 자리가 마지막이었다.아버지의 빈 자리는 컸다. 김씨에게는 동생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에 더해 이제는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큰 파도처럼 다가왔을 것이다."돌이켜보면 동생은 내가 살아가면서 어려울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인생의 전우'였어요. 아버지는 '인생의 선배'라고 해야 할까요. 인생 선배로서 물어볼 것도 많은데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떠나 슬프면서도 화가 나요."그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길 바란다고 했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났어요. 지금 중요한 건 세월호 참사로 인한 또 다른 피해를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입으로 하게 될 말일 줄은 몰랐어요. 세월호를 잊지 말았으면 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모여 여론이 되고, 그 힘이 다시 안전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인터뷰·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인터뷰·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면기사

    기나긴 투쟁, 나이 드는 유가족… 트라우마 본격적 발현 안돼'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위해 참사 새롭게 정의해야할 시점두 유가족의 이야기는 '트라우마'라는 공통 분모로 귀결된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고통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유가족들에게 "그 정도면 됐다"며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주문한다. 이들의 말처럼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는 충분히 치유된 것일까."세월호 참사 이후 당신 삶의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습니까?"동생에 이어 아버지까지 잃은 김씨에게 던진 이 질문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등에게 한 연구자가 있다. 그날의 시간에 갇힌 피해자들의 삶을 관통하는 물음이다. 이들은 건강 상태, 경제 여건, 사회적 관계 등 자신이 오랜 기간 쌓아온 것들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017년 1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5개월간 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인터뷰 기반의 연구를 진행했다. '공감 격차'는 이 연구의 중요한 키워드였다. 캐나다의 인간공학자 캐런 메싱은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고통'에서 이 말을 썼다. 가령 일하기 위해 어깨를 반복적으로 써야 하는 노동자가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을 때 "어깨를 쓰지 말라"고 의사가 처방하는 상황을 일컬어 공감 격차라고 부른다. 의사는 증상만 보았고, 증상이 나오기 전까지 환자의 삶을 보지 못한 것이다.박 교수도 외부인의 시각이나 전문가의 진단 차원의 관여에서 벗어나, 먼저 세월호 유가족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연구를 시작했다."우린 모두 증상만 봤어요. (트라우마가) 어디에서 왔고, 왜 왔는지 관심이 없었어요.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운이 없어 죽은 걸로 만든 국가에 대한 좌절감이 생각보다 컸어요.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해줘야 유가족들도 희망이 생겨요. 희망을 주지 않고 치유만 하려고 하는 것도 공감 격차라고 할 수 있죠."박 교수는 유가족들이 느끼는 이른바 '사회적 통증'에 주목한다. 가족과 동네 이웃, 직장 동료, 친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데이터로 살펴본 '트라우마'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데이터로 살펴본 '트라우마' 지면기사

    305명중 75%가 '가족원간 스트레스'생존자들 '극단적 선택 생각' 5% 달해"외상후 울분 영향… 지지감 개선해야"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무력감과 우울증 등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알코올 의존 증세가 심해지거나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가정불화를 겪는가 하면, 심지어 삶의 끈을 놓으려 했던 이들도 있다.안산온마음센터가 내놓은 '4·16 피해자 건강 및 생활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세월호 유가족들은 무기력(14.3%)·우울(14.2%)·짜증(13.9%)·분노(13.2%)·죄책감(12.8%)·불안(12.5%) 등 부정적인 심리 상태를 보였다.정신 건강상 문제는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69.9%가 수면 시간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56.1%는 식사량이 줄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전후의 음주 상태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알코올 사용 장애(음주로 일상·심리·생리에 문제가 생긴 음주자)는 7.3%에서 10.9%로 증가했다. 알코올 의존도(사회·심리·신체적 장애를 겪고 음주를 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운 상태) 역시 1.7%에서 14.8%로 늘었다.사회적 활동이 위축되기도 했다. 현재 직업이 있다는 응답은 절반 이하(46.4%)에 그쳤다. 월수입이 줄었다고 답한 이들도 61.9%에 달했다. 가정불화도 심각했다. 가족 간 스트레스가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전체의 77.4%나 됐다. 이중 '극심하다'(7%)거나 '상당했다'(24.3%)는 응답도 31.3%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특히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5%에 이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단원고 학생 등 생존자들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우울(17.6%)·무기력(16.7%)·불안(15.8%)·짜증(14%) 등 부정적 심리 상태를 보였고, 알코올 사용 장애(9.4%→17.2%로)와 알코올 의존도(1.6%→12.5%)가 높아졌다.응답자의 66.7%가 가족 간 스트레스가 있다고 답했다. 대인관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생존자(31.8%)도 적지 않았다. 극단적 선

  •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그들은 왜…연락마저 끊은 유가족들

    [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그들은 왜…연락마저 끊은 유가족들 지면기사

    안산온마음센터, 900여명 '5단계 관리'경인일보 취재 결과 '미파악자' 42명"재발방지·진상규명이 먼저" 거부도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단원고 고(故) 고우재 군의 아버지 고영환(54)씨는 6년째 전남 진도군 팽목항(진도항)을 지키고 있다. 먼저 떠난 자식이 눈에 밟혀 팽목항을 떠날 수 없었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는 심리 상담이라도 받아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한사코 뿌리쳤다.지난 12일 진도항에서 만난 고씨는 "남은 자식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며 "부모가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자식 취업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들 하는데, 당최 믿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고씨처럼 최소한의 심리 치료조차 거부하거나 연락을 끊은 채 고립된 삶을 사는 세월호 유가족 등이 수십 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산온마음센터는 세월호 유가족 중 42명을 이른바 '미파악자'로 분류하고 있다. 심리 치료 지원을 받지 않으려 하거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이들이다.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란 이름으로 2014년 5월 문을 연 센터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903명(2019년 12월 기준)의 심리 상담과 지원을 전담하고 있는 곳이다. 정신건강전문 심리상담사 22명과 정신건강전문의 4명(상근2·비상근2)이 치료를 돕고 있다.센터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험도에 따라 '집중'·'유지'·'일시'·'파악'·'미파악' 등 5가지 단계로 관리 중이다. 집중 관리 대상자는 주 1회 이상 꼭 대면 상담이 이뤄진다. 이에 해당하는 유가족이 23명에 달한다. 유지 관리 대상(232명)은 월 1회 이상, 일시 관리(282명)는 3개월에 1회 이상 상담하게 돼 있다. 파악(200명)은 명단 관리 중인 이들이다.지난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가족 손모(단원고 희생 학생 아버지)씨도 센터에서 줄곧 심리 상담을 받다 2018년 돌연 연락을 끊었다. 센터는 가족과 지인 등을 통해 손씨를 수소문했지만, 연결이 닿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던 차에 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