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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트북] 모두를 위한 소년체전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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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모두를 위한 소년체전은 언제쯤 지면기사

    햇빛이 피부를 쏘아붙인다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제53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취재차 찾은 5월 말 목포는 벌써 한여름이었다. 30도에 육박하는 기온 탓에 그늘 밖은 전쟁터였다.날씨보다도 이글거렸던 건 출발선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던 학생 선수들의 눈빛이었다. 이날을 위해 놀지도 못하고 실컷 자지도 못하며 훈련에 매진했을 학생 선수들. 여유롭게 관망하던 나도 괜스레 초조해졌다.짧으면 10초, 길면 1분 안팎에서 정해지는 결과에 선수들의 표정은 갈렸다. 여중부 400m 계주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한 여자 학생 선수는 자기 때문인 것 같아 서럽게 울었다. 반대로 남중부 400m 계주에선 경기도와 경북 대표팀 모두 43초57로 결승선을 동시에 통과했는데, 두 팀 모두 동메달을 주겠다는 소식을 듣자 양팀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환호했다.앞으로 펼쳐볼 인생의 페이지가 더 많은 어린 선수들이지만 이날 메달의 유무, 색은 이들에겐 전부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를 해소하려면 성적 지상주의에서 탈피해야 하지만 아직도 체육회와 교육청 저변에선 성적 지상주의가 보다 우위에서 작용하고 있다.일례로 소년체전은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합 순위를 매기지 않지만, 시도체육회는 매년 자체적으로 비공식 메달 집계를 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경기도는 이번 대회가 끝나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 89개를 획득하며 비공인 종합우승을 했다고 알렸다. 이런 구조 속에선 학생들에게 거는 기대도, 학생들이 떠안는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메달을 획득한 일부 선수만을 위한 대회가 아니라 출전 선수 모두를 위한 대회로 탈바꿈하기 위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제도는 지난 관행에 멈춰 있지만, 그럼에도 학생 선수들은 보다 성숙해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철인3종 2관왕을 달성한 강우현(의정부 부용중 3학년)의 한 마디가 마음 깊이 와닿는다. "우승하면서 정말 기뻤지만, 뒤에 들어오는 선수들 생각이 났습니다. 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에 우승 직후 너무 신난 표정을 짓지는 않았고 나중에 다 함께 기뻐했습니다." /김동한 문화체육부 기자 dong@

  • [노트북]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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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지면기사

    기자가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목소리를 들어줘야 할 소수자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사회가 허용하는 다양성의 울타리는 높은 인권 감수성을 지닌 올바른 다수자가 상상하는 범위 내에 있기 마련이다. 빈곤층, 성 소수자, 이주민…. 흔하게 사용하는 다양성이란 단어는 기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도 좁은 셈이다.괜스레 고민을 떠올린 건 기획 취재를 하다 헷갈리는 순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람이 아닌 이들, 이른바 '부르주아 소수자'를 마주하면서다. 난치병과 함께 살아가는 어느 중산층 가정, 그리고 '돈 많은 페미니스트의 걱정'이라는 거대 담론. '먹고사니즘'이라는 필터로는 걸러지지 않는 존재다.물론 당연히 부자도 소수자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속에서 사회적인 의미를 어떻게 찾아내느냐다. '돈만 있으면 되지 뭐가 문제야…'. 쉬운 방법은 약자성을 찾는 것이다. 가족 간병을 취재하며 만난 한 중산층 가정은 경제적 위치와 무관하게 '시간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반면 어느 '돈 많은 페미니스트의 걱정'에서 뻗어간 취재는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포용성이 높은 동시에 보수의 경제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은 대체 어느 정당에 투표해야 할까. 그럼 반대로 왜 '여자 이준석'은 없을까. 여기서 시작한 문제의식이 '20대 무당(無黨)'이라는 현상으로 수렴했다. 정치적 발언을 꺼리고,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문제적 정체성'. 거대 양당은 물론 개혁신당도 정의당도, 저널리즘도 풀지 못하는 난제다.어쩌면 난제를 대하는 태도에 실마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애초에 소수자의 범위는 없었던 거다. 다양성은 정도(正道)를 '찾아가는 일'에 있지, 그 정도가 무엇인지 '규정해버리는' 순간 망가지고 만다.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머리를 싸매고 정도를 고민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 아닐까. 싱겁지만, 싱거워야만 하는 결론이다. /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pi@kyeongin.com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 [노트북] 오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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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오T.T 지면기사

    최근 경제 뉴스에서 부쩍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인상(引上)'이다. 가격이란 단어와 결합해 흔히 사용되는데, 경제면에 허구한날 나오고 있다.특히 올해엔 구독료 인상 행렬이 돋보인다. 광고 없이 유튜브를 시청할 수 있는 '유튜브 프리미엄' 멤버십 가격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구글이 월 구독료를 기존 1만450원에서 1만4천900원으로 42.6% 올린 여파다. 지난달 18일부터는 월 8천960원을 냈던 장기가입자(2020년 9월 이전 가입자)도 월 구독료가 1만4천900원으로 동일하게 올랐다. 기존보다 무려 71.5% 치솟았다. 국내 이동통신 3사 제휴 상품 가격도 줄지어 인상 중이다.사실 유튜브 가격 인상은 다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과 견줘도 인상폭이 높은 편에 속한다. 디즈니의 디즈니플러스는 지난해 월 구독료를 9천900원에서 1만3천900원으로 40% 인상했다. CJ ENM이 운영하는 티빙 또한 지난달 1일 연간 구독권을 기존 대비 20%가량 상향했다.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는 유튜브가 다른 플랫폼 못지 않게 가격을 올린 셈이다.스트림플레이션(스트리밍+인플레이션의 합성어) 속 해외 OTT 업체가 국내에 납부하는 세금은 많지 않다. 구글코리아가 지난해 낸 법인세는 155억9천만원이다. 지난해 매출의 4% 수준에 그친다. 같은 해 넷플릭스가 낸 법인세는 36억원으로 매출액의 0.4%다. 국내 기업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이 같은 상황 속 방송통신위원회는 '통합미디어법' 입법을 추진 중이다.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OTT를 제도권 안으로 포섭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유튜브 등 해외 OTT가 협력할 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28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은 국내 OTT 4사 대표 간담회에서 미디어 통합법 구상을 밝혔다. 가격인상 자제도 당부했다. 다만, 이 자리에 유튜브 등 해외 OTT 업체 관계자는 없었다. OTT 시장 경쟁에서 국내 OTT 업체만 짐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무게가 실린다. 해외 독점기업이 폭리를 취할 수 없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 [노트북] 고교 학교생활기록부, 더 세심하게 관리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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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고교 학교생활기록부, 더 세심하게 관리돼야 지면기사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는 대학교 입시에 사용되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학생의 교과 활동 내용이 잘못 기재됐다면 올바른 내용으로 정정돼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용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가 다른 학생의 것과 바뀌어 기재돼 학부모가 학교에 정정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이에 학교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어 해당 내용을 들여다봤지만, 이 사안과 관련된 자료가 객관적인 자료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학교생활기록부 정정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만 애가 타고 있는 셈이다. 학부모는 담당 교사가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오류를 인정한 상황에서 조속하게 정정이 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물론 학교생활기록부가 아무런 근거 없이 손쉽게 정정돼서도 안될 일이다. 그러나 이번 용인 사례의 경우는 담당 교사가 오류를 인정한 데다 용인교육지원청에서도 다른 학생의 내용이 기재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학생과 학부모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학교생활기록부는 교육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에 따라 정정내용에 관한 증빙자료를 첨부해 자료의 객관성 여부, 정정 사유, 정정내용 등에 대해 학교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야 정정할 수 있다.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끝끝내 정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학교생활기록부는 잘못 기재된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이런 일은 전국의 모든 고교에서 발생할 수 있다. 교육 당국은 학교생활기록부를 더욱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은 물론 기재 오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현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피해를 보는 학생과 학부모는 계속 나온다. 대학 입시라는 힘든 파도를 넘어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생활기록부 오류 정정까지 신경 써야 하는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김형욱 사회부 기자 uk@kyeongin.com김형욱 사회부 기자

  • [노트북] '님과 함께'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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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님과 함께' 하려면 지면기사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1970년대 초 발표된 가수 남진의 히트곡 '님과 함께'의 도입부다. 양평군만큼 경기도 내에서 이 도입부가 잘 연상되는 곳이 있을까. 초목이 우거지고 남한강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곳곳엔 가사 그대로 그림 같은 집들이 즐비하다.그러나 정작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우리님'이 안녕하신지 묻는다면 즉답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님의 재산은 각종 규제로 묶여 있으며 님의 자녀는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새벽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것이 당연해졌기 때문이다.이 원인은 50년 전인 1974년, 팔당댐이 만들어지고 상수원보호구역이 지정되면서부터다. 이후 양평은 각종 규제가 중첩되며 대기업이나 대학교는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중소기업 또한 10%의 건폐율을 적용받다 올해 군의 제안으로 인해 반백 년 만에 간신히 20%로 늘었을 뿐이다.강산이 다섯 번 변하는 동안 양평의 풍광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생활권인 양평읍에만 다세대 주택들과 조금의 인프라가 갖추어졌을뿐, 동부권 면들은 인구 감소로 인해 대중교통 배차간격마저 줄어드는 현실이다.그간 '규제 철폐'를 외치던 목소리도 오늘날엔 거의 줄어들었다. 규제지역의 정치인들은 무엇인가를 바꾸려 해도 7~8명으론 법안도 제대로 제출 못한다는 현실만 인식하고 말았다.양평이 지속되려면 규제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관광특화 등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과 그 일자리가 만들어질 동안 다음 세대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회적 지원 등이 그것이다. 이것이 뒷받침된다면 지역이 '한 백년' 이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다행히 민선8기는 '관광'과 '다음 세대'에 초점을 맞추며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출산지원금 및 신혼부부 전세이자 지원, 출퇴근 교통비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이제 일자리다. 봄의 씨앗을 뿌려 겨울이면 행복한 양평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장태복 지역사회부(양평) 기자 jkb@kyeongin.com장태복 지역사회부(양평) 기자

  • [노트북] 영원한 건 절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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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영원한 건 절대 없어 지면기사

    대학 시절 학회(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학회원 소개 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영상의 콘셉트는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뮤직비디오. 닫힌 셔터가 즐비한 골목에서 하염없이 걸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 콘셉트를 패러디하기로 했다.그 즉시 촬영지 물색에 나섰다. 영상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선 '인천'이면서도, '오래되고 낡은' '허름한' '뒷골목' '인적이 드문' 곳이 필요했다. 회의 끝에 찾아낸 장소는 바로 동인천역. 우리가 원한 키워드를 충족하기에 그만한 곳이 없었다. "유레카!"를 외치며 송현자유시장과 중앙시장, 배다리마을 등 동인천 곳곳을 누비며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대학 졸업 후 한동안 인천을 떠나 있었다. 그렇게 수년 후 경인일보에 입사해 취재차 동인천역을 다시 찾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동인천역은 과거 내 기억 속 모습과 크게 달라져 있지 않았다. 여전히 허름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시장 상인들은 비라도 내리는 날엔 뭐 하나 부서지고 무너질까 걱정하고 있었고, 젊은이들의 혈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그간 동인천역 일대에는 개발·발전을 위한 움직임이 수차례 있었다. 그러나 추진되는 사업마다 번번이 무산되며 10여년 동안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동인천역 일대는 침체의 늪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그나마 민선8기 인천시 들어 다시 동인천역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돼 다행이다. 인천시는 인천도시공사와 함께 동인천역 일대를 전면개발하겠다는 구상을 앞세우고 현재 도시개발구역 지정과 개발계획 수립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동인천역 남쪽에 있는 민자역사도 유치권 관련 소송에서 최근 재판부가 국가철도공단의 손을 들어주며 철거의 길이 열렸다.동인천역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매번 개발사업을 한다는 말만 있고 제대로 진행된 건 하나도 없다"고 푸념했다. 이번엔 과연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동인천역 일대가 '오래되고 낡은' '허름한'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유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yoopearl@kyeongin.com유

  • [노트북] 제대로 보아야 하는 기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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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제대로 보아야 하는 기자의 책임 지면기사

    수습기자 딱지를 떼지도 못할 무렵 노동자 한 명이 추락해 사망한 공사 현장에 취재를 갔다. 현장에 도착해 보고 들은 것을 빠짐없이 선배에게 보고하던 중 한 가지 질문을 받았다. "도착하자마자 굴착기가 작업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진짜 맞아?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공사는 중단해야 해."아뿔싸 나는 그걸 모르고 있었다. 재빨리 다시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목격했던 광경은 가물가물했다. 정말 내가 본 것이 맞았을까. 확신을 하지 못해 결국 내가 본 것이 정확하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무 정보도 건지지 못한 채 회사로 복귀하는 내내, 몰라서 보지 못했고 봤어도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던 데 따른 분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아는 만큼 보인다. 어느 취재 현장에서나 통용되는 말이겠지만 특히 사고 현장에 갈 땐 더 절실히 와 닿는다. 지난달 시흥에서 고가교가 무너져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 현장에서도 그랬다. 사고 소식을 듣고 시흥으로 달려가던 중 과거 비슷한 사례를 찾아봤다. 고가교가 어떻게 건설되고 어떤 부분이 위험한지, 안전 수칙과 관련 법령들까지 살피고 또 살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이전에 취재하며 알게 된 건설업계 종사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가며 도움을 받았다.그럼에도 현장에 도착하니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것이 넘쳐났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래서 누구에게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는 이전에 비해 또렷해졌다. 휘어진 철골, 부서진 구조물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기고 제대로 보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다.지난 17일 경찰은 시흥 고가교 붕괴 사고 현장의 시공사 SK에코플랜트와 시행사 한국수자원공사, 하청업체 등 공사와 관련된 7개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압수물 분석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철저한 수사로 하루빨리 사고의 원인과 책임이 명백히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다. 현장을 분명히 목격한 기자에겐 끝까지 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김지원 사회부 기자 zone@kyeongin.com김지원 사회부 기자

  • [노트북] 한북정맥 살리기,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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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한북정맥 살리기, 늦지 않았다 지면기사

    산줄기 훼손을 막자는 데 이견이 있을까.경기북부 주요 시군을 가로지르는 산줄기인 한북정맥을 취재하며 만난 공무원들도 이구동성으로 한북정맥의 보전 가치를 말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고유의 산줄기이자 오염원이 적은 생태자원으로서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와, 우리와 미래세대가 가까이에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에 지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목소리 등 이유는 모두 그럴싸했다.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는다. 한북정맥을 살리자는 대의에 공감하면서도 저마다 '피치 못할 사정'을 앞세운다. 산줄기를 살리는 데 만만치 않은 예산이 투입된다는 것부터 백두대간처럼 보호할 법적 명분이 없다는 얘기까지. 듣다 보면 보전을 해야 한다는 이유보다 '한북정맥 살리기를 포기했다'는 속내를 둘러대기 위한 핑곗거리 찾기에 급급한 듯싶다. 산림청과 환경부는 물론, 2008년 한북정맥을 살리겠노라 공언했다 지금껏 무위에 그친 경기도도 마찬가지다.그러는 사이 한북정맥의 신음은 깊어진다.도로·골프장·산업시설에서 나아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 신도시들이 정맥을 도려내고 올라섰다. 이제는 훼손정도와 규모를 판가름하기 어려운 '복합훼손지'마저 등장해 그 비율이 한북정맥 전 능선구간의 16.5%에 달할 정도다. 이대로 방치하면 한북정맥 파괴는 시간문제다. 훼손지 확대를 막고, 당장 실행 가능한 보전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산림청과 환경부, 경기도가 한북정맥 보호를 위해 중지를 모으기를 제안한다. 정부 부처마다 산개한 산줄기 보전·복원 사업을 정맥 중심으로 한데 엮고, 공간정보 등 체계를 세운다면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20여 년 전 '백두대간보호법'이 제정된 배경에 부처 간 협업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한북정맥을 비롯한 정맥들의 법·제도 보호책 마련 가능성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치유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면 그 어떤 핑계도 소용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조수현 사회부 기자 joeloach@kyeongin.com조수현 사회부 기자

  • [노트북] 슬로건이 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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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슬로건이 주는 힘 지면기사

    'Throw away Living(쓰고 버리세요)!'1955년 미국 라이프지에 실린 한 광고에는 해당 캐치프레이즈(슬로건)와 함께 3명의 한 가족이 수많은 플라스틱 용기를 천장에 흩뿌리는 사진이 실렸다. 썩는 기간만 500년 이상으로 반영구적 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이 처음 '1회용'으로 써질 수 있다는 점을 선전한 광고였다.광고 의도대로 플라스틱 사용량은 급증, 미국인들의 소비량도 함께 폭발했다. 마음껏 쓰고 버리라는 슬로건처럼 1960년대 이후 미국인들의 인식에 플라스틱은 더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일시적 소모품으로 바뀌었다.해당 광고는 아직도 역사상 가장 성공한 마케팅의 사례로 꼽히지만, 지금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네이밍과 슬로건은 기업의 생과 사를 결정짓기도 했다.스타벅스는 원래 허먼 멘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고래잡이배의 이름인 '피쿼드'를 회사 이름으로 신청하려 했다. 그러나 오줌(Pee)과 교도소(Quad)가 연상돼 부정적 이미지를 초래할 수 있다는 내부 비판을 받아들여 해당 배의 일등 항해사 이름인 '스타벅'으로 과감히 교체를 결정했다.경기북부특별자치도라는 이름에 '평화누리'가 갑자기 끼어들며 추진 동력까지 잃어가고 있다.'경기북부의 발전을 이끌 것'이란 행정구역의 의도는 사라진 채 '북한과의 연상', '종교시설 연상'이란 비판과 의혹만 남기는 중이다.이름과 그 명칭이 내뿜는 의미는 대상의 정체성을 결정하며 한번 각인된 시민들의 인식은 변화하기 어렵다. 경기도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라는 해명으로 침묵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물음을 해소하는 대응이 더 중요한 상황이다.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 [노트북] 추워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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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추워도 됩니다 지면기사

    춥지 않을 줄 알았다. 20년을 경기도 포천의 혹한에 살았으니 인천의 초겨울 추위쯤이야. 영상과 영하를 오가는 애매한 날씨에 채비를 덜 하고 취재에 나섰다.지난해 11월 부평의 한 공원에서 그녀를 만났다.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44살의 여성은 "카페라도 들어가자"는 내 제안에 "괜찮다"며 손사래쳤다. 나름의 배려 멘트였다. 나는 추위를 타지 않으니 인터뷰 시간쯤은 버틸 수 있었다.그녀가 이혼한 전 남편에게 10년 동안 받지 못한 양육비는 9천여만원. 열 번의 겨울을 거치며 서러움과 억울함 그리고 미안함에 이런 추위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몸이 됐구나 싶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천지검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인다는 그였다. 문제는 나였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손은 얼어갔고 코에선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원래도 악필인데, 꽁꽁 언 손 때문에 메모장에는 정체불명의 지렁이가 기어다녔다. '화룡점정'으로 그해 첫눈까지 내렸다. 겨우 인터뷰를 마치고 차로 돌아와 잠시 몸을 녹였다. 그제서야 아이들과 친정 부모님에게 미안하다며 흘린 눈물이 다시금 떠올랐다.우리가 다시 만난 건 3월 말이다. 양육비를 미지급한 혐의로 기소된 남편의 형사재판 선고 날이었다. 흩날리던 눈이 어느새 꽃이 됐다. 그녀는 두 손을 꼭 모으고 "제발"을 외쳤다.재판장은 실형을 선고했다. 비록 징역 3개월이었지만, 양육비 미지급 부양 의무자에 대한 첫 실형 선고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이때도 그녀는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법정 밖으로 나와 지난 겨울을 회상했다. "우리 진짜 추운 날 만났었는데, 이제 꽃이 폈네요." "기자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여전히 어떤 부모는 이런 추위를 버티고 있다. 손발이 얼고 콧물이 흘러도 그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견딜 뿐이다. 어찌어찌 찾아온 봄꽃은 남들보다 더 빨리 질 것이다. 머지 않은 날, 이들이 온전히 겨울바람을 느끼고, 꽃을 눈에 담길 바란다./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