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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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역사가 흐르도록 지면기사
양평군은 순국선열의 흔적이 곳곳에 살아 숨 쉬는 호국의 고장이다. 일제강점기 항일의 효시가 된 지평의병부터 6·25전쟁 당시 역전의 발판이 된 용문산 전투, 지평리 전투까지 굵직한 역사의 자취가 도처에 가득하다. 이달 초, 양평군이 지평리 군사시설 이전부지 일대에 추진 중인 양평박물관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타당성 사전평가 문턱을 넘었다. 이에 따라 오는 2029년까지 양평 동부권 지평면 일대에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양평국제평화공원’ 조성사업이 그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해당 장소는 지평리 전투가 일어난 곳이다. 1951년 중국인민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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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결단과 독재 지면기사
최근 넷플릭스 화제작 ‘폭싹 속았수다’를 뒤늦게 정주행했다. 기대를 안고 1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한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드라마 속 상황은 이랬다. 국민학교 학생 오애순이 급장(반장) 투표에서 37표를 얻으며 1등을 차지했지만, 담임 교사는 28표를 얻은 이만기를 급장으로 앉힌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결과가 나왔음에도 담임 교사의 독단적인 선택으로 한순간에 급장이 바뀌었다. 부조리하고 비민주적인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2025년 정치판에서도 벌어졌다. 국민의힘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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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국가에 저당잡힌 청년들의 기억, 국가가 보호하라 지면기사
어떤 기억은 애쓰지 않아도 자석처럼 육체와 정신에 오래 들러붙는 게 있다. 내게는 20대 시절 병영생활이 그런 기억 중 하나다. 복무 중 유쾌했거나 반대로 힘들었던 기억의 편린들이 이따금 떠올라 안부를 전한다. 생활관에서 뒤엉켜 지내던 이들과의 기억도 그렇다. 큰 사건 없이 보냈을망정, 그렇다고 감추고 싶은 괴로운 일들이 없을까. 비슷한 경로를 지나온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설령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주위에서 접한 씁쓸한 군대 이야기는 다른 단체 생활에서 겪은 고충을 끄집어내기 충분한 소재인 듯하다. 지난달 20일 평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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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언성 히어로 지면기사
경험이 쌓여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잘’ 대하는 것들이 그렇다. 2년 전 겨울 사무실로 한 중년 여성이 찾아왔다. 표정이 어두웠다. 십중팔구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일 터. 동료 대부분은 외근 중이거나 업무에 정신이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그를 맞았다. 다른 사무실 공간으로 그를 데려가 이야기를 나눴다. 중년 여성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놨다. 자신이 왕족이고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고 감시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화 도중 풍기는 낯선 냄새는 계속 코를 찔렀다. 가만히 하소연을 듣다 말이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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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마라맛보다 각광받는 ‘순한맛’ 지면기사
‘매콤한 마라맛에 중독된 대중들이 이제 순한맛을 찾는 상황이다.’ 올해 봄 가장 높은 영향력을 끼친 드라마 콘텐츠인 ‘폭싹 속았수다’의 열풍을 두고 한 평론가가 남긴 분석이다. 이곳저곳 폭발하는 액션 보다 마음에 잔잔히 드나드는 감동이 좋다. 피로 물든 처절한 복수극에 열광하던 관객들은 우리들의 일생 속 벌어지는 소소한 굴곡에 더 눈길을 주고 있다. 도파민의 시대가 정말 저물고 있을까.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끌고 새로 출시된 매운음식들의 스코빌지수가 천정부지가 올라가듯, 극한까지 중추 신경계를 자극할 것 같은 대중매체들이 보드랍게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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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공약 전쟁’ 속 평화로운 인천 지면기사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서 물밑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지자체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6월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의 공약에 지역 현안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트럼프발 관세 부과, 계속되는 경기 침체 속 대권 주자들도 저마다 경제 공약을 하나둘 발표하면서 여기에 발맞춰 국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단체장들이 국회와 정부 부처,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공약 세일즈까지 펼치고 있다. 대선이 끝나면 지자체장들의 임기도 1년 남짓 남는 상황에서, 새 정부 정책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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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이제는 ‘정치 중심지’ 인천 지면기사
최근 전국적으로 가장 큰 현안은 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는 조기 대통령선거다. 그런데 요즘들어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때보다 조기 대선을 향한 인천시민의 관심이 높다고 느끼곤 한다. 이전까지 정치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들은 어느 정치인이 무슨 당 소속인지,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심지어 인천시장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조기 대선에 대한 인천시민의 관심이 뜨거운 건 무엇보다도 지난해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를 시작으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극적 가결, 헌법재판관 만장일치 탄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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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굿바이 레전드 지면기사
“만약 그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네가 배구에 빠지는 순간이다.” 배구를 소재로 한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 ‘하이큐’의 명대사 중 하나다. 스파이크 하나, 블로킹 하나의 짜릿함때문에 배구에 빠진다는 의미다. 짧으면 30초 만에 끝나는 배구 랠리의 짜릿함은 그 어떤 스포츠보다 강렬하다. 문성민·김연경. 한국 프로배구의 주역이었던 두 레전드가 올 시즌을 끝으로 배구 코트를 떠난다. 두 선수 모두 은퇴 시즌에 팀이 우승하면서 챔피언이자 구단 최초 영구결번 선수로 화려하게 선수 생활을 마치게 됐다. 문성민은 현대캐피탈의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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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어느 기자의 작은 응원 지면기사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그는 유한한 인간의 삶에 명징한 의식을 갖고 사는 것에 대해 말해왔다. 특히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부조리’는 카뮈가 가진 주요 철학이자 그의 문학세계를 꿰뚫는 한 축이다. 소설가 최수철이 카뮈를 주제로 쓴 여행기에는 부조리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부조리라는 감정은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과 세상의 측량할 수 없는 비합리적 속성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감정은 과거에도 있어 왔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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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아이와 함께 죽을 권리는 없다 지면기사
지난달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가족 4명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자 아버지는 아파트 단지 지상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집안에는 아내와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이 숨져 있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구두 소견, 현장 정황 등을 토대로 아버지가 나머지 가족을 살해한 뒤 투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목숨을 끊은 뒤 자살하는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자살을 결심한 부모에 의해 아이들이 생을 마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자녀 살해 후 자살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