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은 언제나 사치품이었고, 영양학적 관점에서 보면 불필요한 중독성 식품이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윌버 보스마는 저서 설탕(2024)에서 설탕산업의 잔혹사와 생태학적 부작용을 경고했다. 설탕의 등장은 기원전 327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에서 사탕수수를 발견해 유럽에 전파했다. 당시 사탕수수는 ‘꿀을 만드는 갈대’로 불렸고, 설탕은 진귀한 향신료이자 특권층의 약품으로 추앙받았다. 노동력 착취와 환경 파괴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하얀 설탕에 인류는 서서히 중독됐다. 19세기 중반 석유와 비견되던 ‘하얀 금
“신혼생활 어때?”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그럴 때마다 “남자친구가 집에 안 갑니다”라고 답한다. 결혼 후 달라진 점을 꼽자면 배우자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서다. 1인 가구에서 2인 가구로 바뀌었지만, 살고 있는 곳은 여전히 혼자 살던 원룸이라 생활방식이 크게 변화하지 않은 탓도 있다. 자취방이 ‘신혼집’이 된 만큼 최근 배우자와의 화두도 ‘내 집 마련’이다. 2세 계획이 있기에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직장과 가까운 수원 위주로 집을 찾아보고 있지만 제약이 너무 많은 게 현실이다. 무엇보
IMF 외환위기가 우리 국민에게 가져다준 많은 가르침 중 하나는 경제를 ‘공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열심히 일하고 소비하고 저축하는 일만으로는 더 이상 일자리를 지키고 가족을 돌볼 수 없다는 깨달음은 환율, 외환보유고, 국가신용등급 같은 당시만 해도 낯선 경제용어를 일상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 이면에는 정부 주도 정책의 한계와 정책 결정권자들의 판단과 인식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뼈아픈 현실 인식이 있었고, 이는 시민참여와 주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했다. 예부터 한강은 여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흔암리 선사유적
양평군 개군면 하자포리의 80대 김모 할머니는 한걱정이다. 개군면은 내과 등 1차 의원이 없는 의약분업 예외지역이어서 개군보건지소에서 진료와 처방이 가능한데 이 보건지소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양평군 내 벽촌의 70∼90대 어르신들도 처지가 비슷하다. 개군면을 제외한 나머지 6개 지소의 경우 의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부족으로 요일별 순회진료로 유지 중이나 오는 4월에는 군내 공보의 17명 중 14명이 복무만료 예정이다. 양평군에서는 공보의 부족으로 최근에 서종면과 옥천면 보건지소가 문을 닫았다. 최근 3년 동안 경기도
역사는 큰 물길 따라 형성되었다. 한강 변에 도시가 만들어지고, 임진강 사이로 국가가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도 임진강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뺏고 뺏기며 지난한 역사를 만들었다. 한강 하류와 임진강 하류가 만나는 곳이 교하다. 큰 두 물길이 교하에서 만나 조강으로 흘러 바다가 되었다. 서해의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밀물 때 임진강까지 왔다. 한강 제1지류인 임진강은 북한 땅 강원도 두류산에서 시작해 254.6㎞를 흐른다.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를 돌아 연천 고랑포에서 초평도 지나 파주와 개풍을 마주 보며 흐르고 흘러 내려왔
2026년 1월26일,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대혼란’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기간 도과를 앞두고 정부는 다주택자들에게 물량을 내놓으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은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고,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기이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거래 불능 사태의 원인은 투기 심리도, 경기 침체도 아니다. 바로 정부가 촘촘하게 짜놓은 규제들이 서로 정면충돌하며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이번 대혼란의 핵심 진앙지는 ‘토지거래허가제’와 ‘주택임대차
인천지역 산업단지의 공동화가 심각하다. 퇴근 후 불 꺼진 공장과 텅 빈 거리는 도심 속 고립된 섬을 연상케 한다. 근로자들이 퇴근과 동시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유는 병원·약국 등 기본 편의시설마저 없는 열악한 환경 탓이다. 머물 공간도 문화를 즐길 시설도 부족한 지역상권은 침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천에는 7개의 노후산단이 있다. 인천기계산단과 인천일반산단은 50년이 넘은 ‘초고령 산단’이다. 인천 최대 규모인 남동산단에서 마지막으로 조성된 3단계 구역도 노후연수가 29년이다. 인천지역 산단은 1980년대부터 구로
1989년 12월 31일 전두환이 5공비리특위-광주특위 연석 청문회 증언대에 섰다. 5공비리를 변명하고 광주학살을 부인하는 발표문을 일방적으로 낭독했다. 야당 의원들이 거칠게 항의하자 퇴장했다. 통일민주당 노무현 의원은 텅 빈 회의장에 명패를 집어던졌고, 평화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진실을 말해 사면을 받을 마지막 기회조차 스스로 외면했다”고 질타했다. 2년 동안 이어진 전두환 청산 특위는 허무하게 끝났지만, 초선의원 노무현과 이해찬의 이름 석자는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두 사람을 품었다. 강골 이해찬은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