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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톡(talk)!세상] 남양주 사릉(思陵), 여름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

    [톡(talk)!세상] 남양주 사릉(思陵), 여름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지면기사

    단종, 도성과 먼 영월서 생 마감조선 왕릉 중 가장 초라한 '장릉'부인 정순왕후는 남양주 사릉에566년 죽어서도 만나지 못한 인연추모제도 따로… 이젠 합장하길 한여름 이른 새벽 햇살이 따갑다. 해 뜨는 동쪽을 보며 삼삼오오 걷는다. 떠오르는 태양에 벌써 땀이 주루룩 흐른다. 양산을 손에 들고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길 위에 서 있다. 도성 안 흥인지문을 나서는 순간 청계천 위 창신동이다. 바위가 있고 숲이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채석장이었다. 깎이고 깎인 바위산은 이제 집들로 둘러싸여 있다. 언덕 위에 절도 보인다. 정업원이 있는 동망봉 기슭이다. 566년 전 어린 왕과 왕비가 마지막 밤을 보낸 후 비 오듯 눈물을 흘렸던 청룡사 우화루(雨花樓)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청계천 다리에서 어린 부부는 무슨 말을 했을까? 권력은 비정하다. 모든 것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운명의 순간이 도성 밖에서 벌어졌다. 영도교는 청계천에 흐르는 물처럼 아무 말이 없다. 둘은 영도교에서 살아 영영이별, 죽어 영영이별하여 만날 수 없었다.조선 왕 중 최초로 궁에서 태어난 왕자, 세종의 적장손이요, 문종의 적장자 이홍위는 모두의 웃음 속에 행복한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할머니 소헌왕후의 죽음과 연이은 세종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 문종의 쇠약한 몸으로 인해 궁 안에 웃음이 사라진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왕자를 난 후 산후병으로 죽는다. 아버지 문종마저 어린 아들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스러지고, 천하에 사고무친 고아가 된 단종은 12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과연 왕이 되고 싶었을까? 숙부인 수양대군은 왕을 그냥 두지 않았다. 아버지 세종의 바람과 다르게 어린 조카를 역사 속 희생양으로 만든다. 어린 왕과 왕비는 그렇게 숨죽이며 궁에서 2년6개월을 살았다. 단종은 조선 왕 중 신분이 가장 많이 바뀐다. 세자에서 왕으로 왕에서 상왕으로 그리고 노산군에서 마지막 서인으로 18년 짧은 삶을 마감한다. 부인도 그렇다. 1살 위 소녀는 왕비에서

  • [톡(talk)!세상] 초저출생 국가의 민낯

    [톡(talk)!세상] 초저출생 국가의 민낯 지면기사

    지난 6월21일 경기도 수원시의 아파트 가정집에서 자녀 2명을 낳자마자 살해하고 시신을 냉장고에 유기한 친모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다음날인 22일에는 울산의 아파트 쓰레기통에서 출생신고가 안 된 영아 시신이 발견되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최근 8년간 출생 미신고 영유아인 소위 '유령 아동'이 2천236명인 것으로 보고되었고 이에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청, 경찰, 지방자치단체와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출생통보제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우선 미신고 영유아 개인으로 보았을 때는 출생신고의 누락이나 허위신고로 인하여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국가의 입장에서도 출생한 영유아의 수 자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으로 각종 지표에서 누락되어 통계정확도가 낮아지고 특히, 영유아기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적절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에서야 발견이 되는 경우도 생겨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잇따른 영아 시신 유기, 우연일까국회 '출생통보제' 골자 법안 논의 여기서 우리는 출생통보제의 도입은 과연 '아동권리' 측면에서 무엇을 시사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찾게 해주는 발판으로 UN아동권리협약에서는 비차별의 원칙,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 생명·생존과 발달의 원칙, 아동 참여의 원칙을 바탕으로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을 보장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영유아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타인의 학대나 유기, 방임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외에 유사한 법령이나 제도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각 주마다 다른 제도를 갖고는 있으나 부모의 자발적 신고 외에도 의료기관 등에서 출생통보를 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고 영국의 경우도 이처럼 부모가 신고하는 것과 아동의 출생지에서

  • [톡(talk)!세상] 좋은 글을 쓰려면

    [톡(talk)!세상] 좋은 글을 쓰려면 지면기사

    글로 소통하는 시대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매체가 일상의 중심권으로 들어온 뒤 글쓰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문자와 카톡, 메신저를 비롯한 개인 간의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역시 글쓰기를 소통의 기본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생각만큼 써지지 않을뿐더러 막상 심각하게 고민해서 써놓고 보면 비문이나 어색한 표현이 속출한다. 혼자만의 공간에 쓴다면 모를까 공개된 공간에 올리는 글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만 한다고 해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글쓰기라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엄습하면서 되레 글쓰기로부터 멀어진다.글쓰기 책의 출간이 봇물인 건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글쓰기 책을 읽어봐도 도통 글 실력은 늘지 않는다. 늘 제자리걸음이다. 아쉽고 답답하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쓰기전 왜 쓰고 어떤 글 쓰려는지뚜렷한 목적 두고 충분히 생각 글쓰기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닮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막상 풀려고 하면 벽에 부닥친다. 책 몇 권 읽는다고 갑자기 글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이 쓰면 는다. 계속 쓰다 보면 감각이 생긴다. 감각을 얻기 위해 꾸준히 써야 하고, 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또 꾸준히 써야 한다. 근데 매일 무슨 글을 쓴단 말인가. 글쓰기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데 대체 무엇을 쓴단 말인가. 첫째, 쓰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덮어놓고 글쓰기의 방법을 찾기보다 왜 쓰는지, 어떤 글을 쓰려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글을 쓰기 전에 충분한 사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생각하지 않고 쓰면 제대로 된 글이 될 리 없다. 쓰기 위해 억지로 생각하는 건 자기기만이다. 생각을 영글게 하는 건 역시 독서다. 독서를 통해 받아들인 타인의 사상을 자신의 사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한 사색이 필요하다.

  • [톡(talk)!세상] 자기다운 삶을 산다는 것

    [톡(talk)!세상] 자기다운 삶을 산다는 것 지면기사

    출근하면 피곤하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퇴근 후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피곤함의 원인은 스스로가 역할연기(role playing)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면(mask)을 쓰고 있다는 표현도 해당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면 혹은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거나 주변에서 기대하는 모습에 부응하는 말과 행동들을 하게 되다 보니 피곤해지는 것이다. 일례로 출근할 때의 모습이 A라면 퇴근 후의 모습은 B가 되니 매번 역할이 바뀔 때마다 이에 적합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러한 노력은 고스란히 피로로 누적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본연의 모습, 즉 실제의 자기다운 모습이 C라면 피로는 쉽게 풀리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일종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자신의 고유한 모습, 다시 말해 자기다움을 찾고 그에 맞는 언행을 하는 것이다. 역할연기를 하지 않거나 그 빈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하루빨리 자기다움 찾으면스토리 있는 인생 살 수 있어 그런데 자신의 고유한 모습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에서는 찾기 어렵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란 일종의 프로필이다. 직업이나 경력, 자격증과 같은 것들도 포함된다. 많이 알려진 비유의 대상인 빙산에 대입해 보면 자기다움은 수면 아랫부분에 위치한다.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외적인 모습은 자기다움이라기보다는 자기다움에 기반한 결과에 해당된다. 거꾸로 접근할 수는 없다. 인과관계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렇다면 자기다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 혹은 기준 등은 자기다움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나 자신의 강점 그리고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욕구에서도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예전에 비해 비교적 쉽게 접근해 볼 수 있는 각종 진단도구들도 자기다움을 찾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자기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거나 찾고자 하지도 않을 때다. 이렇게 되면 생각

  • [톡(talk)!세상] 문안산 모란봉에서 창덕궁과 운현궁이 보일까?

    [톡(talk)!세상] 문안산 모란봉에서 창덕궁과 운현궁이 보일까? 지면기사

    망종 지나 하지로 가는 절기에 햇볕이 따갑다. 새벽부터 태양이 이글거린다. 비 내리면 좋으련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비 그친 여름날 구름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햇빛에 숨을 곳이 없다. 백악산 빗물은 어디로 갈까? 백악산 백악마루에 빗물이 빠르게 스며든다. 빗물이 마르기 전 물길 따라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백악산 기슭 창덕궁과 창경궁이 보인다. 백악산 물은 창덕궁 금천으로 흐른다. 창덕궁 궁담길 따라 빗물처럼 하염없이 걸어간다.장미 넝쿨로 우거진 감사원에서 북촌 한옥마을로 가는 길은 고요하다. 600여 년 전 가회방 재동이었다. 도성 안 자랑거리인 재동 백송이 보인다. 백송은 소나무 껍질이 벗겨져 흰빛이 되어 백골송이라 불렸다. 백송은 점점 빛이 난다. 희귀한 소나무로 천연기념물이다. 백송이 있는 이곳은 '열하일기' 박지원의 손자로 북학파와 개화파를 잇은 박규수의 집터다. 홍영식도 백송 아래 살았다. 이곳에서 원각사지십층석탑 주변 백탑파들이 옹기종기 모여 글 쓰고, 그림 그리며 끝없는 토론을 하였다.천연기념물 백송 등지고 걸으니창덕궁으로 가는 언덕흥선대원군 파란만장한 삶 서린'운현궁 노안당' 슬픈 역사현장여름 삶의 무게 내려놓고 걸어보자백송을 등지고 걸으니 창덕궁으로 가는 언덕이다. 하늘의 별자리를 측정하는 관상감도 있다. 밤에 걸어야 별도 볼 수 있는데 어느새 창덕궁이다. 돈화문이 열리기 전 창덕궁 궁담길 안과 밖 나무들이 손짓한다. 돈화문 월대 앞에 서니 창덕궁 돈화문 현판 사이로 삼각산 보현봉이 보인다. 돈화문 현판이 말을 걸듯 속삭인다.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2층 누각에 걸려 있는 돈화문(敦化門)에서 힘이 솟는다. 소덕천류(小德川流)요, 대덕돈화(大德敦化)라. '중용'에 나오는 문구다. '작은 덕은 냇물의 흐름과 같고, 큰 덕은 교화를 돈독하고 후덕케 한다' 볼수록 맘에 와닿는다.창덕궁 안 비 그친 후 새들이 날고, 여름꽃이 피었다. 도성 안 빌딩과 빌딩 숲에 울창한 나무가 빼곡하다. 창덕궁과 운현궁 궁담길 사이 사람이 오가는 문이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있었다

  • [톡(talk)!세상] 마이너리티의 세 번째 꿈, 교도소대학

    [톡(talk)!세상] 마이너리티의 세 번째 꿈, 교도소대학 지면기사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마이너리티 최준영이 빅이슈 창간을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건 웬만한 사람은 다 알 거예요.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요. 늘 응원하고 있어요." 빅이슈 창간을 위해 뛰어다니다 빚더미에 올라 나동그라진 내게 건넨 지인의 위로였다.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마이너리티'라는 말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2008년 영국에 다녀왔다. 빅이슈(Big Issue,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잡지)를 들여오기 위해서였다. 런던의 빅이슈 본사를 방문해 빅이슈의 운영방식을 듣고, 거리의 판매원을 인터뷰하며 한국판 빅이슈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귀국 후 빅이슈 창간 운동을 전개했다. 3년여 고투 끝에 나는 고꾸라졌고, 빅이슈는 창간됐다. 실수를 거듭하다 나동그라졌지만, 씨를 뿌린 사람으로서 거리의 빅이슈 판매원을 볼 때면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빅이슈는 단지 잡지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사회구성원들의 공감과 선의, 연대를 끌어내는 마중물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고, 그로 인해 좌절하기도 한다. 빅이슈는 그러한 불행이 단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라는 걸 일깨운다. 영국까지 가 들여온 '빅이슈 잡지'사회구성원 공감·연대 이끌어내 5년 전 수원에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을 설립했다. 강의 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다양한 강의를 기획하는 등 지역사회에 인문학의 향기를 전파하는 한편, 가난한 이웃을 찾아가서 사람의 온기를 전하자는 취지였다. 코로나 블루에 직면하면서 운영난에 허덕이기도 했지만 5년을 버텨낸 끝에 알찬 인문학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빅이슈 창간 운동과 책고집 설립에 이어 세 번째 사회적 사고(?)를 치려고 한다. 어느 마이너리티의 세 번째 꿈은 국내에 교도소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2005년 최초의 노숙인 인문학 강좌(성프란시스대학)에 참여한 이래 인문학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왔다. 지역자활센터에서 한 부모 여성 가장을 만났고, 모자보호센터에 입주한 미혼모를 만났으며, 지역의 가난한

  • [톡(talk)!세상]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록할 것인가?

    [톡(talk)!세상]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록할 것인가? 지면기사

    수년 전부터 사람들의 첫 번째 행동에 대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그것은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음식이 나오면 수저를 잡기 전에 휴대전화를 꺼내 드는 것이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그렇고 선물이나 택배를 받아도 마찬가지다. 세미나 등과 같은 자리에 참석하는 경우에도 시작하기 전부터 군데군데 사진을 찍는다. 이러한 행동에는 사진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자랑하려는 마음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증이 필요해서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행동의 저변에는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 즉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개인별로 정도와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기록하고자 하는 본능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기록은 인류가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전개되어왔다. 문자가 없던 시기에는 그림이나 구전 등으로 나타났다. 이후 문자의 등장과 더불어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기록의 양과 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펜과 종이는 물론, 디지털기기나 온라인 등 기록을 하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음식 나오면 휴대전화부터 꺼내무언가 남기고자 하는 기록본능 개인에게 있어 이러한 기록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스스로에 의한 기록과 타인에 의한 기록이다. 타인에 의한 기록 중 대표적인 것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기록이다. 대개는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서 기록된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기록된 내용을 보면서 배울 점을 끄집어내는 동시에 과거와 같은 우(愚)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학습과 대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한편 스스로에 의한 기록도 있다. 이 중 하나는 일기다. 물론 일기장에 쓰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진을 비롯해서 동영상이나 메모, 편지, 글, 일정 등 개인의 모든 일상이 기록에 포함된다. 내용도 다양하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물론, 감정이나 느낌 혹은 다짐 등도 포함된다. 다만 기록의 과정에서 자기왜곡이나 자기기만도 나타날 수 있다

  • [톡(talk)!세상] 서오릉에서 숙종(肅宗)을 만나다

    [톡(talk)!세상] 서오릉에서 숙종(肅宗)을 만나다 지면기사

    경희궁 궁담길 따라 걷는 길에 비가 온다. 비는 멈출 기세 없이 쏟아진다. 여름을 알리는 입하 비일까? 새벽부터 내린 비에 궁 안은 책 속 풍경처럼 고요하다. 아니 아무도 없는 경희궁은 쓸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산을 접고 행각 따라 걷는 길에 우연히 왕과 왕비의 모습을 되새겨 본다. 왕은 살아 궁에, 죽어 능에, 영혼은 종묘에 머문다. 왕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경희궁에서 나고, 경희궁에서 죽은 왕에게 묻는다. 숭정전 지나 침전이 있는 궁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궁 안 임금의 침전인 융복전과 왕비의 침전인 회상전이 보이질 않는다. 꽃 계단 화계에 함박꽃 작약만이 꽃을 피울 태세다. 비가 잠시 멈추는 시간, 상서러운 바위 서암에서 물이 거세게 내려온다. 서암은 왕기가 서려 있는 바위라 광해군 이후 임금들이 이곳에서 기원하였다. 태령전에 영조의 어진이 어른 키만큼 걸려있다. 숙종의 아들이자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영조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숙종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360여 년 전 현종의 적장자 외아들로 13세에 즉위해 60세까지 왕비 3명과 함께 살았던 조선 19대 왕이다. 또한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 사이에 아들 2명을 낳아 왕으로 만든 강한 인물이다. 위태로운 정치적 국면마다 지혜롭게 전환한 '환국의 시대' 위기의 리더다. 13세에 즉위한 조선 19대 왕 위태로운 정치적 국면마다지혜롭게 전환 '환국의 시대' 리더 숙종은 인왕산 기슭 경희궁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후 광해군이 만들었던 경희궁 회상전에서 태어나고, 경희궁 융복전에서 승하했다. '상서로움이 모인다'는 회상전과 '복이 융성한다'는 융복전이 숙종의 생과 사를 본 전각이다. 숙종은 서궐인 경희궁에서 자라 이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숙종은 3명의 왕비와 1명의 빈과 함께 서오릉에 잠들어 있다. 숙종의 능이 명릉(明陵)이다. 능은 이름처럼 하늘 아래 산이 감싼 명당이다.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는 쌍릉으로, 인원왕후 김씨는 단릉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20세에 천연두로 숨을

  • [톡(talk)!세상] 요즘 '어린이'에 대한 단상

    [톡(talk)!세상] 요즘 '어린이'에 대한 단상 지면기사

    약 100년 전인 1922년 5월1일에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날'을 선포하고 그 다음 해에 어린이날 1주년을 기념하여 '어린이 해방선언'을 발표하였다. 어린이 해방선언에는 어린이에게 배우고 놀 권리와 인격적인 대우, 아동 노동금지와 같은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큰 뜻으로 시작이 되었으며 이전까지만 해도 아동에 대한 대우나 권리의 보장이 전무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당대에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어린이날을 제정하면서 쓰였던 어린이날 선언문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그만큼 어린이를 대하는데 있어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올해 어린이날은 101주년을 맞이하는 기념적인 해인 동시에 생각해 볼 만한 화두가 떠오르고 있다. 바로 '○린이'와 같은 표현에 관한 논란이다. 언제부터인지 미디어에서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이거나 그 영역에서 수준이 낮은'의 뜻으로 골프를 처음 시작하는 어른은 골린이, 요리에 소질이 없거나 막 요리를 시작하는 어른은 요린이 등의 단어들이 재생산되고 있고 이를 홍보라도 하듯이 각종 광고에서도 '요린이를 위한~'과 같은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린이' 표현은 아동 능력을어른 기준 과소평가 우려 스럽다'NO키즈존'도 심리적 분리 내포 이러한 표현에 대해서 평소 어떠한 시각을 갖고 있으신지. '○린이'라는 표현은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루고 있듯 아동의 능력이 부족하고 숙련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동의 능력을 어른을 기준으로 과소평가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 여러번 양보하여 '○린이' 라는 표현이 단순히 아동을 얕잡아 본다는 관점뿐만 아니라 '제가 미숙한 것이니 어린이를 대하는 마음으로 이해해 주십시오'라는 속마음이 숨어있다고 고려하여도 이는 분명 아동에 대한 편견을 나타내는 것이다. '○린이'만 이러한 논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NO키즈존'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인데 사실 N

  • [톡(talk)!세상] 사람답게 살아보려고요

    [톡(talk)!세상] 사람답게 살아보려고요 지면기사

    5년 전 대전의 노숙인 시설에서 강의 제안을 받았다. 알고 보니 애초 다른 사람에게 먼저 제안했던 것이었다. 그게 돌고 돌아 내게로 왔다. 턱없이 적은 강사비, 대상이 노숙인이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던 모양이다. 나까지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첫 강의 때 그를 만났다. 쉬는 시간에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뒤따라 나오더니 스스럼없이 내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이었다. 경석이(가명)였다. 명색이 선생인데, 서슴없이 담배를 무는 게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걸어오는 말을 막을 수는 없었다."강의 중 하신 말씀 중에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철학자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눌한 듯하면서도 은연 힘이 실린 말이었다. "책 좀 추천해주세요. 저도 공부하고 싶어요."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쯤 말을 섞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지요. 근데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 건가요?" 잠시 머뭇대던 경석이가 말을 받았다. "저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서요. 제 꿈은 사회복지사예요. 저분들(강의실 쪽을 가리키며)에게 필요한 게 뭔지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말을 끝내는가 싶더니 대뜸 전화번호를 물어왔다. 그렇게 경석이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게 되었다. 몇 개월 뒤 경석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의 씩씩한 목소리였다. "다음달에 선생님 내려오신다는 얘기 들었어요. 오시면 제가 모시고 싶어요." 모신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딱히 마다할 것까진 없지 싶었다. 그렇게 경석이와 만남이 시작됐다. 대전에 내려갈 때마다 우리는, 선생과 제자로, 혹은 친구처럼 친밀하게 교류했다. 5년전 시설 강의서 만난 경석이사회복지사 꿈 위해 돈벌고 공부8월엔 조기졸업 공무원 시험 계획 1년여 가 지난 뒤에서야 경석이가 거리의 삶을 살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다. 이혼한 부모 양쪽으로부터 버림받은 뒤 10대 때부터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엔 알코올중독자가 돼버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