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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겨울이다 지면기사
[경인일보=]4계절 중 하나인 '봄'을 왜 '봄'이라고 부를까?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는 연수생들을 상대로 한 첫 수업시간에 필자가 그와 같은 질문을 하곤 하였다.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봄'은 '보다'의 명사형이고, 봄에 여러 새로운 생물들을 보게 되어서 그와 같이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하는 설명을 하곤 하였다. 그러다 보면 '여름'은 '열다'의 명사형이고, '가을'은 아마도 '가다'에서 유래되고, '겨울'은 '겨우 살다'의 뜻을 가진 명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설명을 하곤 하였다.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가을의 전설'의 영어 제목이 'The legend of fall'이라는 것을 보고 오역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한 가족의 몰락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fall'을 '가을'이 아니라 '몰락'으로 번역해야 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영화 공급사의 입장에서는 '몰락의 전설'이라는 것보다 '가을의 전설'이라는 영화 제목이 흥행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서 의도적으로 오역을 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렇지만 '가을'이라는 우리말의 어원이 '가다'에서 온 것이라면 틀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그 뒤에 들었다.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세대라면 경찰관들을 '짭새'라고 부른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경찰관들을 '짭새'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듯하다. 필자 또한 한참 후에야 '짭새'라는 것은 '잡다'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어인 '쇠'의 합성어인 '잡쇠'가 그 어원이며, 사람들이 그 단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짭새'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사용하는 단어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탄생하고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통용되게 된다. 이런 약속을 거부하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스위스 작가 페터 빅셀이 쓴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을 고등학생 시절에 읽고 사고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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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삶은 아름답다 지면기사
[경인일보=]4대 기서가 중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고전이라는 것이야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그 중 '서유기'는 유·불·선 삼교의 세계관과 상상력을 넘나드는 최고의 판타지 문학이다.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도 '날아라 슈퍼보드' 같은 뛰어난 개작이 이루어져 근두운 대신 슈퍼보드를 타고 가는 손오공은 '보드'라는 새로운 풍물에 주목하게 했고, 뺀질거리는 태도로 높이기는 하되 말끝을 안쓰는 '~하셔' 같은 특이한 저팔계의 어법은 새로운 구어의 유형이 되었다. 원작을 넘어 창조된 말귀 못 알아듣는 사오정 캐릭터는 한때를 풍미한 유머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다. 또 '치키치키차카차카~'라는 특이한 의성어로 시작하는 이 만화영화의 주제가는 요즘도 양치질하기 싫어하는 어린이들을 달래는 노래로 쓰이기도 한다.아쉬운 것은 '서유기'가 단지 아동물로만 취급되는 통에 모험이야기라는 일차원적인 측면만 강조되고 이 작품을 관통하는 차별에 저항하는 하위 주체, 지배계급의 정치적 책략과 대결 방식에 대한 고발, 고도의 풍자정신과 화해를 만들어내는 민중적 세계관의 중요성은 종종 망각된다는 점이다. 사실 고전을 축약본으로 읽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더구나 '서유기' 같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건을 다루는 작품은 그 유쾌한 상상 뒤편에 대놓고는 말할 수 없어 숨겨진 복잡하고도 예민한 이야기가 첩첩이 쌓여있게 마련이고 이것을 곱씹으며 음미하는 맛이야말로 비할 데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서유기' 제10회의 '당 태종, 저승에 갔다 환생하다'라는 부분이 있다. 뜻하지 않은 저승송사에 걸려 저승으로 출두한 당 태종의 이야기다. 당 태종 이세민은 저승에서 자신 때문에 숨진 많은 귀신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당 태종을 '세민'이라 부르며 자신의 목숨을 돌려달라 원망한다. 요즘에야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사람의 실명은 함부로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름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만 사용했다. 높은 가문에서는 아이조차 아명을 따로 지어 불렀으며 성년이 되면 동년배에서 쓸 이름 자(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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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를 한글 우선 사용 도시로!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10월 9일 한글날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섰다. 제막식이 있었던 그 날, 한글학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을 찾아 세종 동상을 맞이했다. 바라보고 웃고 박수치고 모처럼 광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세종대왕 동상 바로 뒤 꽃밭의 이름이 '플라워카펫'이란 사실은 시민들로 하여금 조소를 금치 못하게 했지만, 한글이 새겨진 옷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예뻤다. 뿐만 아니라 홀로 향을 피우고 광장 바닥에 엎드려 곱게 절을 올리던 한 아주머니의 뒷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그런데 지난 11월 초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 영어로 'WATER'라고 쓴 대형 입체 조형물이 등장한 것이다. 마치 거대한 조각품과도 같은 'WATER'라는 영문자가 세종대왕 앞을 막아섰다. 참으로 이상한 풍경이었다.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드신 임금 앞에 마치 그 한글을 거세라도 하듯이 영어로 된 거대한 조형물을 그의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물론 그것은 후손들 모두의 생각이 아니었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2009년 대한민국공익광고제를 위해 설치한 것이었다. 공익광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 확대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대한민국 공익광고제' 창작공모전의 2009년 주제는 '물'이었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직접 밝혔듯이 그것은 분명 'WATER'가 아닌 '물'이었다. 그런데 광장에 등장한 것은 '물'이 아닌 'WATER'였다. 여러 나라가 참가하는 국제대회였기 때문에 'WATER'가 됐다는 궁색한 해명이 따라붙었다. 국제대회일수록 '한글'을 앞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물' 혹은 '물water'와 같은 형태의 조형물은 왜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글문화연대의 정식 항의와 이건범 정책위원의 1인 시위 그리고 이 문제를 발 빠르게 보도해 준 언론 덕에 볼썽사나운 조형물이 행사 도중 철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지적을 해도 진정을 해도 부탁을 해도 항의를 해도 우이독경인 관청이나 공기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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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식 크리스마스 풍경 지면기사
[경인일보=]"교수님은 크리스마스 선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어떤 것이었나요?" 연구실을 찾아온 1학년 학생들이 내게 물었다. 나는 이런 사소한 질문에 오히려 당혹하곤 한다. 이런저런 선물을 받기도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서 어느 순간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즐거운 추억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머뭇거리다 "종합선물세트"라고 답한다. 사십 번이 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과자와 사탕이 가득 든 종합선물세트보다 더 값비싼 선물을 받기도 했었는데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종합선물세트 이상을 능가한 것이 없었던 듯싶다.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오빠와 언니, 나는 제사 때나 다락에서 꺼내는 커다란 교자상을 펼쳐놓고 친구들에게 보낼 카드를 만들었다. 당시 우리들 대부분은 카드 살 돈이 없었다. 물감과 색연필, 물통, 붓, 도화지, 풀, 가위 등을 어질러 놓고 각자 무엇을 그릴지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언제나 제일 먼저 붓을 잡는 것은 오빠였다. 오빠는 쓱쓱 하얀 눈사람과 나무를 그린다. 그 앞을 루돌프가 끄는 설매를 타고 산타 할아버지가 웃으며 지나간다. 그러면 언니와 나도 눈사람과 나무를 따라 그린다. 한 번은 검은 도화지 위에 눈사람과 나무를 그리던 오빠가 칫솔에 하얀 물감을 찍더니 엄지손톱으로 긁어 하얀 눈가루를 도화지에 뿌리기도 했었다. 그때 검은 도화지에 뿌려지던 눈가루는 정말 놀라운 환상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엉성하기 그지없는 그림들이지만 나는 카드가 완성될 때마다 행복한 기분이 들곤 했다. 각자 대여섯 장의 카드가 완성되면 우린 조용히 그 안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사실 침묵 속에서 우리가 비밀스럽게 써 내려간 글줄은 '즐거운 성탄을! 내년에도 변함없는 우정을 간직하자!'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친구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만든 카드에 이 같은 글을 쓸 때부터 난 내가 받을 친구의 카드를 떠올리며 가슴 벅차했다.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우린 저녁 내내 아버지를 기다렸다. 일 년에 단 한번만 받을 수 있는 종합선물 상자에 올해는 무엇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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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도 입증해야 옳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사법연수원 교수로 있을 때 사법 연수생들이 결혼 배우자를 데리고 와서 인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심지어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 필자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배우자로 선택한 사람들이 아름답고 훌륭하여 어디에서 이렇게 좋은 배우자를 찾아서 데리고 오나 하는 생각도 하곤 하였는데 그들에게 한결같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중세시대 유럽의 외눈박이 성주가 자신의 멋진 초상화를 후세에 남기고 싶어 하였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초상화를 그려주면 엄청난 포상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화가들을 초청하였다.처음 화가는 성주의 외눈박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그렸지만 성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주는 그 초상화가 자신의 모습이기는 하였지만 항상 콤플렉스로 생각하고 있는 외눈박이 모습이 싫었던 것이었다. 다음 화가는 그 소식을 듣고 성주가 애꾸눈임에도 정상적인 눈으로 완벽하게 재현한 초상화를 그렸지만 성주는 이 또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양쪽 모두 정상적인 눈을 가진 얼굴은 꿈에도 그리던 모습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어떤 화가가 초상화를 그렸는데 성주가 아주 흡족하여 많은 포상을 내렸다고 한다.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마지막 화가가 어떻게 성주의 초상화를 그렸는지 묻곤 하였다. 대부분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머뭇거리기도 하였지만 몇몇은 그 화가가 성주의 정상적인 눈이 있는 옆모습의 초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라는 정답을 말하곤 하였다.외눈박이 성주로서는 정상적인 눈만 있는 옆모습이 그려진 초상화가 자신의 모습임에 틀림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결점인 애꾸눈이 가려져 있어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워 하였다고 추가 설명하곤 하였다. 결혼이라는 중요한 선택을 한 사법연수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서로에게 그와 같은 마음으로 결혼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서였다.결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사람은 저마다 결점을 마음속에 품고 있고, 결혼 전에는 알지 못하였지만 결혼하여 매일매일 같이 살다보면 그 결점이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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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를 닮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지면기사
[경인일보=]백형이 가을걷이도 무사히 끝내고 김장까지 담갔다고 와서 쌀이며 김치며 가져가라 하신다. 근래는 생활비를 줄입네, 반찬값을 아낍네, 뻔뻔하게 맨손, 맨입으로 생쥐 풀 방구리 드나들 듯하면서 김치를 달라, 쌀을 퍼간다 부산했던 날도둑 동생을 또 먼저 챙기신다. 작지 않은 살림 규모에 수다한 가솔을 거느린 나의 백형은 올해도 어김없이 엄청난 김장을 담그셨다. 근 200포기에 달하는 김장이라면 요즘 보통 가정집에서는 드문 양이지만 형제며 자식에게 나눠주고 명절이며 제사며 집안대소사를 준비해야 하는 백형께 특별한 건 아니다. 올해는 여름 폭우에, 잦은 가을비에 쌀 수확이 한참 줄었는데 그나마 정미소에서 쌀을 도둑 맞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어떤 놈이 집어갔든 쌀을 먹기는 먹겠지 하고 쓸쓸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들녘에 남은 잔국(殘菊)을 닮으셨다.조선 후기 뛰어난 학자이면서 또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다산 정약용은 국화의 아름다움을 다섯가지로 꼽았다.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고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면서도 싸늘하지 않은 것. 이 네 가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국화의 덕이고 아름다움이었고 여기에 다산이 더한 것이 '국화 그림자(菊影)'였다.먼저 산만하고 들쑥날쑥한 물건을 모두 치워 벽을 깨끗하게 한다. 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국화를 세우고 알맞은 곳에 촛불을 놓아서 국화의 그림자가 벽에 비치게 한다. 가까운 그림자는 꽃과 잎이 서로 어울리고 가지와 곁가지가 질서있게 늘어서 마치 묵화를 펼쳐놓은 것 같고 그 다음 그림자는 너울대고 어른거리며 춤추듯 하늘거려 달이 떠오를 때, 동쪽 나뭇가지가 서쪽 담장에 비춘 것 같으며 멀리 있는 그림자는 흐릿하여 엷은 구름이나 노을 같고 없어지거나 소용돌이치는 그림자는 밀려드는 파도 같다고 하였다.다산 흉내를 내보겠다고 촛불 앞에 국화를 둔 적이 있다. 벽을 깨끗이 치우지 못해 다산의 묘사에는 견줄 수 없었지만 너울대는 촛불, 불꽃심, 속불꽃, 겉불꽃 겹겹의 밝기와 온도를 가진 촛불, 국화는 촛불 앞에서 정말로 묵화 같기도 하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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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에 대한 오해! 지면기사
[경인일보=]한글 특강을 다니다 보면 외래어를 남용하지 말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하게 된다. 대부분의 청중들이 공감을 표시하지만, 그래도 "오늘 얘기의 포커스가 아주 좋았다"라든가 "저희가 다음에 다시 콜 해도 또 와 주시겠죠?"하는 식의 얘기가 곧잘 튀어나온다. 언어도 습관이다. 하루아침에 고치기 어렵다. 그래서 평소 좋은 언어 습관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그런데 더러는 이렇게 묻는 분들도 있다. 외래어가 본디 외국어였지만 이미 우리말이 된 것이니 써도 무방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몇 가지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는 남용의 의미이다. 남용은 '일정한 기준이나 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씀'을 뜻한다. 그러므로 함부로 쓰지 않고 적절하게 쓰는 것은 '남용'이라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외래어라 해도 아주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같은 말은 대체할 적당한 말이 없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이런 말은 외래어를 남용하지 말자는 주장의 대상조차 되기 어렵다.둘째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외래어를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를 일컫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처럼'에 주의해 보자. '처럼'이란 모양이 서로 비슷하거나 같음을 나타내는 격조사이다. 그렇다면 '국어처럼'이란 국어와 비슷하거나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풀이 또한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사고로 가족을 잃은 그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라고 해도 그는 짐승이 아니다. "철수는 도깨비처럼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라고 해도 '철수=도깨비'는 아니다. 유리알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인다고 해서 다이아몬드는 아니다. 아무리 반짝여도 다이아몬드가 아닌 이상 유리알을 100만원이나 1천만원씩 주고 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원어민처럼 영어가 유창했다"고 해도 결코 원어민은 아니다. 비슷할 뿐이다.그런데 '처럼'이란 말 풀이에 왜 '같다'는 뜻이 들어가 있을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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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여행 지면기사
[경인일보=]정현종 시인은 '여행을 기리는 노래'에서 "벌써 오르지 않어?/이 다람쥐 쳇바퀴/이 죽어가는 되풀이를/끊으면서,/다른 시간이/열리면서,/무지개가/걸리면서,/거기가/낡은 시간의 새 데이트 아냐?/장차 갈 길들에서 피어날/고달픈 신명들의 원천 아니야?"라고 노래한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의 죽은 시간에 새로운 시간의 살을 덧대는 것이 여행이다. 그것은 고달프지만 신명나는 의도적 선택 행위이다. 무엇인가를 얻어내야 한다는 목적 지향적 행위와 뚜렷한 차이를 갖는 것이 여행의 가치이며 매력이다. 생산에 대한 욕망도 결과에 대한 부담도 없이 자기 자신을 방목할 수 있는 이 자유로운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여행자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지금 여기'가 싫어서 떠나는 자와 다른 하나는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 때문에 떠나는 자이다. 이곳의 혐오와 피로 때문에 어디론가 떠나는 자는 낯선 곳에서의 휴식과 평화를 기대할 것이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 때문에 이곳을 떠나는 자는 이색적 체험을 즐기며 권태로운 삶을 쇄신할 것이다. 어느 부류에 속하든 모든 여행자들은 다시 원래의 삶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변화된 자아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본질적으로 낭비가 아니라 풍요이다.이 같은 여행에도 각자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래 전 인도여행을 하며 한국의 대학생들과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다. 그들의 여행방식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돌아본 것을 자랑거리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보름 만에 델리와 캘커타와 뭄바이에 깃발을 꽂는다.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을 보기 위해 이틀을 달려와서는 하루를 머물다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 그것은 영웅담처럼 여행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예찬된다.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그렇게 스치듯 지나치며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같은 방식에는 질보다 양을 내세우는 우리의 세태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무한경쟁사회의 정복욕이 그들에게도 내면화된 것은 아닐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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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도 실천하기 나름 지면기사
[경인일보=]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보다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되는 것일까?미국 사회학자들은 이와 같은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실험을 해보았다고 한다. 즉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각각의 집단으로 구성한 다음 로또복권을 구입하게하여 그 당첨 확률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실험이었다.결과는 어떠하였을까? 필자가 이런 질문을 사석에서 몇 번 하였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집단의 당첨 확률이 높았을 것이라고 답하곤 하였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로또복권의 당첨 확률이 높아질 리가 없다. 당연히 당첨 확률은 양 집단이 똑같았다.미국의 사회학자들은 그럼에도 긍정적인 사람의 삶의 질이 더 높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그 원인을 더 추적해보았더니 로또복권을 구입하는 과정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즉 긍정적인 사람은 로또복권을 구입하러 가서도 같이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 또는 복권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 이야기를 하는 반면 부정적인 사람은 복권만 구입하고는 바로 돌아오는 것을 발견하고 로또복권 당첨 확률은 동일하지만 복권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이어지는 인간관계가 결국 그 사람의 질을 변화시킨다고 결론지었다는 것이다.어느 저녁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을 때 같이 있던 선배 한분이 갑자기 미국 미식축구 결승전에 우승한 팀의 모자가 어떻게 경기가 끝난 후에 바로 판매되는지 아느냐는 질문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던 적이 있다.미식축구 결승전이 열리면 모자를 공급하기로 계약되어 있는 업체에서 양쪽 팀의 모자를 모두 제작한 후 우승팀이 확정되면 다른 팀의 모자는 모두 소각하고 우승팀의 모자만을 판매한다고 한다. 대신 우승팀의 모자는 보통 모자의 약 3배값을 받기 때문에 패한 팀의 모자를 모두 소각하여도 손해를 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본론이 아니었다. 그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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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에게 무슨일이 생겼는지 알고있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어려서 읽으며 자란 책으로 '한국의 위인'이라는 12권짜리 전집이 있었다.한 권에 열명 정도 위인의 행적을 시대별로 기술한 것인데 요새 같으면 한 명에 한 권은 됨직한 수준으로 꽤 문학적이면서도 균형감각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책이다.경지사라는 출판사에서 1972년에 발간한 것인데 그해에는 우수도서로 지정되기도 했었고 사학자 이기백, 아동문학가 이원수, 미술사가 최순우 같은 분들이 서문을 쓰고 신지식, 신현득, 장욱순, 이종기 같은 분들이 필진으로 참여하였다.진실과 정의가 단일한 길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이 위인들의 역사는 읽을 것이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 줄잡아 수십번은 읽었고 나에게는 친한 친구이며 귀한 선생이었다.예를 들면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 항복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싸움을 해야한다는 주전론자 김상헌과 화친을 해야한다는 주화론자 최명길은 모두 충신이었다.쇄국정책으로 변화를 거부한 대원군이나 개화를 위해 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이나 모두 충신이었다.이기일원론인지 이기이원론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퇴계와 이율곡은 모두 뛰어난 학자였고 김부식은 정지상을 질투하여 부당하게 정지상을 처형했지만 이들 모두 대단한 문장가였고 시인이었다.묘청과 허균은 반란을 일으킨 반역자였지만 이들의 반란에는 명분과 대의가 있었고 이들의 실패는 안타깝고 절망적이었다. 요컨대 이들 또한 위대했다. 그러나 별이 떨어지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고 이상한 꿈을 꾸고 집안에 향기가 감돌고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이 노한 듯 벼락이 치고 위인들의 탄생과 죽음은 늘 뭔가 신이한 현상을 동반하였다. 평범한 중에도 특히 평범했던 나에게 '위인'의 세계는 뭔가 초월적이고 특별한, 인간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었다. 신이하고 비범한 영웅들, 위인들의 세계는 교육적이기보다는 문학적, 설화적이었다고 해도 좋겠다.이들의 세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사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사건이었다. 어떤 위인이 사망하게 되었을 때의 날씨를 기술한 짧은 구절이 있었다. 한 위대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