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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추칼럼] 하와이교회

    [춘추칼럼] 하와이교회 지면기사

    어린시절 살았던 옛 마을, 내가 태어난 옛집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변화가 빠른 21세기 대한민국, 부동산 광풍이 여러 차례 휩쓴 서울 도심에서 흔히 있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 옛마을을 산책하며 그리운 얼굴들과 빛바랜 기억들을 소환하면 알 수 없이 내 안에서 인생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이고 그 덧없는 아름다움에 기대어 한 세상을 살아볼만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 숨이 꽤나 가빠질 무렵 인왕산의 숲 끝자락과 길이 맞닿는 부분에 이르면 내가 태어난 옛집이 나타난다. 인가가 사라진 숲자락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하얀 교회가 있다. 옥인동 서울교회다. 서울교회라는 정식 호칭이 있다는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뒤늦게 알았다. 아카시아 생울타리로 둘러싸였던 인왕산 숲속의 그 하얀 교회는 우리에게 언제나 하와이교회였다. 어릴 때부터 하와이 교민들이 건립 자금을 보내주어 하와이교회라고 불린다는 교회 탄생 설화를 들으며 자랐다. 교포 자금으로 건립 인왕산 자락 하얀교회내 고향마을에서도 역사-이념투쟁 '씁쓸'이금이 작가의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하와이 이민자들, 남편이 될 남자의 사진만 보고 결혼해 이국의 척박한 삶을 개척해 나갔던 '사진 신부'들의 삶을 그린다. 장정들이 하루 열 시간 주 6일 꼬박 일해 버는 한달 월급이 17달러였다. "젠장, 조선이 우리한테 해 준 게 뭐 있다고. 나라도 나 있고 가족 있은 다음이야. 박용만이고 이승만이고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동포 앞에서 좋은 본은 고사하고 헐뜯고 싸워대는 꼬락서니 하고는. 그 종자가 그 종자지." 소설 속 청년의 냉소는 당시 이민자 사회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대변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돈을 모아 독립운동을 위한 성금을 냈고,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은 임시정부 재정의 절반 넘는 비중을 차지하며 가장 든든한 후원이 되었다.하와이를 근거지로 외교 중심의 독립을 추구했던 이승만과 무장투쟁을 추구했던 박용만 사이에 어느 쪽 노선이 옳았는지 역사-이념 투쟁을

  • [춘추칼럼] 대통령은 불안하다!

    [춘추칼럼] 대통령은 불안하다! 지면기사

    불교의 핵심 메시지는 '공(空)'이라고 한다. 공은 '존재와 현상은 서로 의존해서 발생한다'는 인연생기(因緣生起)에 따라 출현한다. 연기법에 따르면 어떤 존재와 현상도 혼자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존재와 현상은 공하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존재와 현상은 인연에 따라 만나고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져 불변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불교의 공은 복잡계 이론의 메타 안정성과 유사해 보인다. '메타'는 준(準) 또는 임시적이라는데 '메타 안정성'은 존재와 현상 등의 상호작용을 통한 변화와 임계현상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노력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동적(動的) 메카니즘이다. 메타 안정성은 세상을 '거시적 복잡성과 미시적 불확실성'으로 이해한다. 이때 세상은 '안정과 불안정 사이에서 요동치는 연쇄적 다이내믹스'다.최근 대통령의 메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다. 6월 자유총연맹, 8월 광복절 그리고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 연설 등이다.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된 뒤 이념형 인간으로 바뀌며 제왕적 대통령으로 최적화되어 (스스로를 군주의 반열에 놓고) 거침이 없고 용감무쌍하다'며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고 한다. 결론은 '폭주를 보수가 책임져야 한다'다. 나아가 '21세기 디지털 선진국이 졸지에 1970년대 개도국 시절로 회귀'하며 '실용보수의 종식이자 이념보수의 부활선언'이라고도 한다. 집권당의 연찬회는 '부장님의 술자리'라는 소리를 들으며 '윤아(尹我)일체 수준까지' 갔으니 차라리 '용산의 힘'으로 당명을 바꾸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대통령의 인식 많은 사람과 달라 보여과거 직업적 경험과 現 집권당의 불신 대통령의 인식은 확고하다. 대통령 메시지도 분명하다. 첫째, 방향성으로서 이념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고 한다. 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철학이 이념이어서 철학과 방향성 없는 실용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 방향은 정체성 확립이다. 대한민국의

  • [춘추칼럼] 혼돈(混沌)의 미학

    [춘추칼럼] 혼돈(混沌)의 미학 지면기사

    시원하게 뚫린 잘 구획된 대로나 신도시보다 자연스럽게 조성된 마을과 오래된 거리가 더 끌린다. 편리함으로 따지면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진 도시가 좋지만, 안정감이나 친근함으로 따지면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무질서한 골목과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오래된 마을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북촌 한옥마을에 더욱 붐비고, 전주 한옥마을을 더욱 선호한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빌딩을 보러 관광을 가는 경우는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없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을 끼고 있는 오래된 집들, 북경의 작은 골목, 일본의 시골 온천마을 장터, 도무지 질서하고는 거리가 먼 혼돈의 장소에 왜 사람들은 몰리고 감동할까? 우리는 질서는 아름답고 무질서는 추악한 것이라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은 질서를 따르고 신봉하는 사람이었고, 질서를 벗어난 사람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모두가 인정하는 대학을 나와 좋은 기업에 취직하여 정년퇴직할 때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다니다가 자식들 좋은 배필 만나 결혼시키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었다. 자녀 결혼식과 자신의 장례식에 화환을 놓을 곳이 없어 꼬리표만 떼어내 벽에 줄지어 걸어놓으면 정말 인생 잘 산 사람이라고 사람들 입에서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상식적 인생에서 벗어나고,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고,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는 인생을 사는 사람에 대하여는 온전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지 않았다. 혼돈(混沌)이란 단어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불확실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직장을 자주 바꾸고, 전공이 무엇인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왜 좋은 직업을 내려놓고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을 혼돈의 인생이라고 부른다. 질서 넘어 차원 높은 새로운 세계 재해석'무질서, 더 큰 생명력' 장자의 역설 철학 혼돈(混沌), 무질서와 불확실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패턴이 없고, 마구 뒤섞여 예측이 안 되는 무질서의 상태를 혼돈이라 한다. 질서의 관점에서 보면 해결되어야 할 상태며, 미숙한 단계

  • [춘추칼럼] 책상 위 돌은 왜 흐느끼는가

    [춘추칼럼] 책상 위 돌은 왜 흐느끼는가 지면기사

    강가에서 주워온 돌 하나가 책상 위에서 가만히 흐느끼고 있다. 그대는 듣는가, 책상 위에서 돌이 혼자 흐느껴 우는 소리를. 나는 새를 쏘았던가? 저 돌은 내가 쏘아 떨어뜨린 새인가? 지난여름 초목을 태울 듯하던 불꽃 더위가 잦아들고 소슬한 바람이 분다. 복숭아를 좋아하던 용접공은 연애에 빠지고, 줄장미가 붉은 꽃을 피웠던 여름은 지나갔다. 나이 어린 이모가 시골집 뒤꼍에서 석류나무에서 몰래 딴 석류를 먹는 계절이 온다. 한때 번성하던 것은 시들고 바스라지며 우리에겐 관조의 시간이 배달되는 것이다. 가을 저녁엔 후박나무 잎사귀가 붙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슬그머니 놓치고 제풀에 내려앉는다. 저렇듯 땅으로 하강하는 조용한 시간이여, 나는 유랑의 무리와 그 속에 고립된 나를 가만히 돌아보련다.행운과 실패, 비탈과 암초가 따르는 인생봄엔 농약치고 가을엔 과실주 담그려던 꿈봄엔 산등성이 비탈밭에 심은 사과나무 700그루에 퇴비를 주고 농약을 치고, 늦가을엔 마가목 열매를 따서 설탕을 쏟아부어 과실주를 담그려고 했다. 동지 때면 호롱불 아래서 권정생의 동화책이나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작은 꿈들은 산산이 깨졌다. 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농협 빚만 늘었다고 울분을 토해내던 영농후계자들이 서울에서 넥타이를 매고 다단계 회사에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름내 식빵을 한 조각씩 떼어 입에 넣으며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을 붙들고 있었지만 학업은 고만고만했다. 술에 취하면 '사랑과 평화'의 노래를 불러제끼고, 나중에 사법고시를 패스해 변호사를 하겠다던 이종사촌은 모의고사를 망치더니 거제도에 내려가 용접공이 되거나 원양어선을 탈 거라고 떠들어 댔다. 나 역시 대학입시를 엎고 정음사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전권이나 독파하기로 결심하고 풋풋한 눈썹을 밀고 토방에 들어갔다. 가을이 오니, 온갖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내가 열아홉일 때 대수학과 절대음감은 언감생심이었으니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다. 상업고교를 졸업하고 시중 은행에 들어가 창구 직원으로 일하다가 감리교회의 신자 아가씨와 눈이 맞아 조촐한 살림

  • [춘추칼럼] 거리의 선생님들

    [춘추칼럼] 거리의 선생님들 지면기사

    딸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부모 공개수업일에 찾아간 나는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냈다. 도심공동화의 충격을 제일 먼저 맞이한 오래된 마을, 한 학년에 4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였다. 기억나는 건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동작들이다. 선생님이 "무지개~"라고 나직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즉시 책상을 반원형으로 새로 늘어놓고 앉았다. "여섯명~"하면 다시 착착 움직여 여섯 명씩 그룹을 지어 마주 앉고, "전체~"하면 스무 명이 칠판을 바라보는 평범한 대형으로 돌아갔다. 선생님의 손끝이나 몸짓, 입모양까지 집중해서 바라보다가 아주 작은 힌트만으로도 기다렸다는 듯 번개같이 지시를 수행하는 아이들은 첨단 동작인식 AI를 탑재한 고성능 기기 같아 보였다. 선생님의 손짓만으로 요술같이 움직이던 아이들 속에는 발달지체아동도 있었는데, 그 아이의 얼굴에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환한 미소와 열정이 일렁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그만 아이들을 황홀하게 지켜보며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툭하면 폐교 위기가 닥쳐오는 작고 오래된 학교에서, 평범한 수업참관일에 보았던 풍경이었다. 그 요술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 사람은 퇴직을 몇년 앞둔, 덩치가 자그마한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분은 교감이나 교장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고 평교사로 정년퇴임 하셨는데, 그분을 담임선생님으로 오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누렸던 작은 축복이었다. 초교 저학년 딸 수업 참관 황홀·뿌듯한 추억작가 돼 방방곡곡 학교 강연 축복같은 시간 물론, 내가 학생으로 지냈을 때나 학부모가 되어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 때나, 학교에서 늘 좋은 일만 겪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12년의 학창시절을 요약해보자면 축복 같은 선생님을 한두 분, 그냥 평범한 선생님을 열 명쯤 만났고, 악몽 같은 선생님을 한두 번쯤 겪었다. 결론적으로 그냥 평범한 정규분포 곡선이었는데, 일상의 대화에서는 악몽 같은 선생님 이야기가 화제에 훨씬 더 많이 올랐다. 행복과 감사는 고통과 분노에 비하면 훨씬 잔잔한 감정이었기 때

  • [춘추칼럼] 대통령 각하! 만족하십니까?

    [춘추칼럼] 대통령 각하! 만족하십니까? 지면기사

    결국 대통령이 나선다. 시작은 휴가 중인 대통령의 "냉장과 냉동 탑차를 무제한 공급하라"라는 지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통령께서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정부 비상대책반이 구성됐다"며 "대통령님의 긴급지시로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모든 행사운영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지시는 이어진다. "식사의 질과 양을 즉시 개선하고, 관광프로그램 추가하라."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폐영식 후에도 출국할 때까지 숙식과 교통 문화체험 등을 지원하라"고 말한다. 김현숙 장관은 '위기대응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시점'으로 해석한다. 정부가 온 역량을 집중한 '반전의 카드' K팝 콘서트가 구원투수로 대한민국의 체면을 지킨다. 대통령의 혜안과 용단이 실패의 입구에 들어선 위기의 국제행사를 살려낸 셈이다. 부처·공공기관 자원봉사자 1천명 모집해'K 잼버리'속살은 국가총동원령시대 복귀 잼버리조직위원회는 마지막 행사를 위해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자원봉사자' 1천여 명을 모집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는 콘서트 지원을 위해 공공기관과 국책금융기관 등에 인력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은 '자원봉사자 모집'이라 쓰고 '동원'으로 읽는다. 기재부는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자이고 국책금융기관의 최대주주다. "이게 정상적인 정부냐"라는 공무원노조에 장관은 "공무원들이 동원된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디테일 지시'로 시작된 'K 잼버리'의 속살은 '국가총동원령시대로의 복귀'라는 우려와 맞닿는다. 민관자원을 징발하는 '국가주의적 행태'라는 비판도 있다. 사적 영역의 시민사회가 권력과 관료의 동원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기업들은 '생수 148만병, 얼음 5만t, 아이스크림 28만개'를 보냈다. 간이화장실 설치와 지원인력 그리고 조기퇴영 후 숙소제공도 그들의 몫이었다. "잼버리 대회 참여자 모두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한국인의 마음이다. 'K 잼버

  • [춘추칼럼] 인생의 태풍을 만났을 때

    [춘추칼럼] 인생의 태풍을 만났을 때 지면기사

    기억해 보면 어느 한해도 태풍 없이 지나간 여름은 없었다. 한해 평균 3개 정도의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하니, 태풍은 반드시 만나고 겪어내야 할 한반도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인생에도 피할 수 없는 태풍이 있다. '맹자'는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태풍의 이름을 '우환(憂患)'이라고 하였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근심(憂)과 고통(患)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태풍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할 때 옵션으로 넣어 준 것이 우환이다. 부귀한 자는 부귀한 자로서의 우환을 만나야 하며, 빈천한 자는 빈천한 자로서의 우환을 겪어야 한다. 맹자는 인생에서 만나는 우환의 태풍은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첫 번째는 고풍(苦風)이다.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는 정신적인 우환이다. 고풍의 우환은 돈과 지위를 모두 가진 사람도 피해갈 수 없는 우환이다. 고풍의 발생원인은 다양하다. 바라던 기대와 다른 결과에 실망하여 올 수도 있고, 관계의 파탄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어느 날 허무함과 고독감을 느끼면서 발생하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다가오기도 한다. 두 번째는 노풍(勞風)이다.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는 육체적 우환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만나는 우환이다. 그토록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였지만 노풍을 만나 한순간 무너지기도 한다. 평소에 건강관리에 소홀하여 오기도 하고, 육체가 보내는 이상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방치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과도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고도 하니, 육체적 우환의 발생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 번째는 아풍(餓風)이다.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는 재정적 우환이다. 인생에 가장 자주 만나는 견뎌내기 힘든 우환이다. 사람을 잘못 만나 가진 돈을 모두 날리기도 하고, 잘못된 투자로 원금도 회수하지 못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때로는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만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일반 사람이 아풍을 만나면 자유를 잃고 속박당하기도 한다. 누구도 피할 수없는 인생의 태풍이 '우환'

  • [춘추칼럼] 한여름의 책읽기

    [춘추칼럼] 한여름의 책읽기 지면기사

    여름엔 바닷가나 숲속 휴양지에서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같은 책을 읽기에 좋다. 이 목록은 내가 젊은 날에 읽고 여름마다 되풀이해서 읽는 책이다. 범벅하게 말하자면 독서란 일탈, 해방, 몽상, 그리고 무위를 통해 누리는 한 조각의 행복이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에서 '책들은 고요해진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 같은 것이다. 책들은 포말처럼 솟구친다'(파스칼 키냐르, 74쪽)라고 쓴다. 도처에 흩어져 있는 독자들은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몽상의 바다를 떠도는 걸 좋아한다.한여름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나무 그늘 아래서 책 읽는 일이다. 내 경우는 그렇다. 나는 동물 사체에 맹금류들이 두 날개를 펼친 채 달려들어 맹렬하게 살을 찢고 삼키듯이 책을 읽어왔다. 조류가 제 발톱과 부리로 먹잇감을 물고 뜯으며 삼키는 일과 독서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우리는 맹금류가 동물 사체를 뜯고 삼켜서 영양분을 취하듯이 책에서 정신의 자양분과 타인의 욕망과 살아감의 기쁨을 얻는다. 잘 알다시피 책은 각종 문자로 이루어진다. 문자는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죽간, 종이 위에 제 형태를 드러낸다. 책은 각종 문자의 집합이고, 문자는 의미를 기호화한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자를 도약대 삼아 의미계로 솟구친다. 문맹인은 의미 없음에 방치된 채로 음지의 세계에 떠돈다. 반면 의미의 빛으로 넘치는 책을 손에 쥐고 읽는 자는 어둠에서 나와 빛의 세계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나아가는 셈이다. 독자란 잠들지 않고 깨어서 홀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독서가들이란 대개 빛을 훔치는 밤의 도둑이거나 항상 깨어 있다는 뜻에서 밤의 야경꾼들이다.독서가들은 항상 깨어 있어 밤의 야경꾼들지식·타인의 욕망·누리지 못한 꿈 훔친다밤은 낮을 훔치고, 새는 곡식의 낱알을 훔친다. 달은 발광체가 아니지만 태양의 빛을 훔쳐 은빛 반사광으로 지

  • [춘추칼럼] 폭우 속에서

    [춘추칼럼] 폭우 속에서 지면기사

    딸이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니까, 어언 15년 전 일이다.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던 친구들이 뭉쳐서 모처럼 여름 여행을 떠났다. 숙소에서 꼬마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들은 수박을 쪼개리라!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 수 있는 야트막한 계곡이 있는 펜션을 예약하고 우리는 한 계절의 추억을 장만할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날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 폭우 뒤끝이라서 아이들이 첨벙거릴 예정이었던 야트막한 계곡은 지옥 같은 굉음을 내는 폭포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 계곡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오래 서성였다. 여름 내내 이 날을 기다렸는데! 비싼 돈을 주고 이 곳을 예약했는데! 바위에 앉아서 발을 담그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늘이 개어서 햇빛마저 슬쩍슬쩍 오가는데, 우리에게 설마 정말로 TV에서 보듯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위태로운 장면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가 계곡물에 살짝 발을 담그자마자 슬리퍼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졌다. 구명조끼를 챙겨입은 서너 명의 꼬마들을 돌려세운 것은 내가 슬리퍼 한짝을 희생시킨 다음이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저렴한 것으로 일어날 뻔했던 비극을 틀어막았으니 우리는 그 날 행운의 돌봄을 받았다. 하지만 철없었던 나는 슬리퍼 한짝을 분실한 것마저도 꽤나 아깝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어리석다는 말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15년 전 폭우로 망쳤던 지옥같은 계곡여행'극한호우'속 예정됐던 4개 강연중 3개 소화 이전까지 익숙했던 '집중호우'나 '호우경보'라는 표현을 넘어선 '극한호우'라는 표현을 처음 듣고 어리둥절했던 그 주에 나는 4개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첫 강연 장소였던 서울 동작구로 향하면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이해한 1인이 되었다. 폭우 속에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나는 정말로 산사태가 일어나지나 않을지 두려워했다.

  • [춘추칼럼] 윤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

    [춘추칼럼] 윤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 지면기사

    내년 총선은 누가 승리할까?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아니면 제3당? '한 달이 1년'이라는 한국정치에서 7월20일 현재, 총선을 265일 남긴 시점에서 총선 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결과를 예상한다면 세 가지다. 국민의힘 승리 또는 민주당 승리 그리고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 없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가진 경우다.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 승리는 한 정당이 국회 내 과반의석을 확보한 경우다.물론 진행 중인 제3당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다. 이 때 '성공'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을 제외한 제3정당이 1당이 되거나 또는 독자적으로 과반의석을 가졌다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성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한국정치의 혁명적 상황'이다. 그만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제3당 입장에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제3당이 캐스팅 보트가 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대다. 이조차도 거대양당의 원심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면서 동시에 제3당이 유권자 요구와 불만의 분출구 역할을 담당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의 총선승리다. 먼저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민주당의 전국선거 3연패의 반전이다. 총선승리의 민주당은 오는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 승리를 향한 반(反)윤석열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민주당 총선승리가 윤석열 정권의 국민적 심판이다.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로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은 격화될 것이고 더 이상 대통령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여당은 지방선거와 대선 그리고 다음 총선을 위해 독자행보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말이 좋아 독자행보지 대통령과 거리두기 또는 대통령 버리기다. 여권은 각자도생의 시대다.내년 총선 민주 승리땐 '식물정부' 가능성국힘 이길시 선거 3연승 '완벽한 정권교체'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전국선거 3연승으로 '정권교체는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