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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요와이드·진화하는 자동차 산업] 이동수단에서 스포츠로 진화하는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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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진화하는 자동차 산업] 이동수단에서 스포츠로 진화하는 자동차 지면기사

    변지현(31)씨는 신혼여행으로 간 독일에서 모터스포츠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일정 자격만 갖춰지면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처럼 비용을 내고 언제나 서킷(경주용 도로)을 주행할 수 있다”며 “독일에서 드라이빙을 경험하고 난 뒤, 최근에는 인천 영종도에 있는 BMW드라이빙센터에서 서킷체험도 했다”고 말했다. 최근 드라이빙 스쿨과정을 이수한 임채엽(29)씨는 “9년 전부터 운전을 했는데 운전을 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며 “운전기술을 배우는 것도 필요했지만, 현직 레이싱 선수들로부터 선수가 되기 위한 방법 등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단순한 이동 수단에 불과했던 자동차가 생활 속 스포츠로 진화하고 있다. (사)대한자동차경주협회에 따르면 각종 운전기술 등을 교육하는 국내 공인 드라이빙 스쿨은 지난해부터 활성화돼 올 들어선 5곳까지 늘어났다. 협회 관계자는 “모터스포츠는 사람들이 가진 경쟁에 대한 욕구를 건강한 방법으로 충족시켜 준다”며 “사람이 만든 기계가 낼 수 있는 극한의 속도, 그리고 그 기계를 조종하는 사람의 실력 경쟁은 모터스포츠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물론 이를 보는 관중들에게도 만족감을 선사한다”고 했다. 모터스포츠 관련 콘텐츠를 각종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자동차를 즐기는 사람들은 더욱 늘고 있다. 경기 화성에서 드라이빙 스쿨을 운영하는 장순호 감독은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며 “차량 운전자가 많아지고, 자동차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자동차를 더욱 재밌게 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인천 영종 BMW 드라이빙센터 오프로드 체험을 하는 모습.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금요와이드·진화하는 자동차 산업] 자동차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 ‘튜닝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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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진화하는 자동차 산업] 자동차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 ‘튜닝 황금시대’ 지면기사

    부품 교체·장착 통해 성능 극대화… 취향따라 외관도 꾸며 “세상에 한 대 밖에 없는 나만의 차 완성” 수요 꾸준히 늘어 정부, 2020년까지 4조원 규모로 시장 확대 ‘아낌없는 지원’ 인천 서구에 사는 최모(30)씨는 최근 자신의 검은색 스파크의 일부 색을 바꾸는 래핑 튜닝을 했다. 십수만원의 적지 않은 돈이 들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최씨는 “세상에 한 대밖에 없는 나만의 차를 타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며 “차의 접지력을 좋게 할 수 있도록 휠(바퀴)을 바꾼다거나, 주행 시 차의 안정감을 높이는 에어댐 등 다른 튜닝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주변에선 1천만원 넘게 들여 자기 차를 튜닝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튜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자동차 2천만대 시대를 맞이하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자동차의 성능과 외관을 취향에 따라 변경하는 ‘튜닝’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정부도 자동차 튜닝 산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모터스포츠의 기반이 되는 자동차 튜닝이 어느덧 ‘자동차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동차 튜닝, 이래서 한다! 자동차 튜닝은 차량의 성능을 극대화하고,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작업이다. 차량의 외관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부터, 자동차 부품을 바꿔 엔진의 출력을 높이고 서스펜션과 제동력을 강화하는 등 차량의 한계치를 끌어 올리는 것까지 모두 튜닝에 해당한다. 일반 트럭을 캠핑카나 푸드트럭으로 개조하는 것도 자동차 튜닝 개념에 포함된다. 쓰임과 용도에 맞게 차량을 최적화시키는 게 바로 자동차 튜닝이다. 자동차의 보편화, 기술의 진화 등으로 자동차 부품 성능이 크게 좋아지면서 자동차 튜닝에 대한 일반 운전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남도 타는 차’가 아닌 ‘나만의 차’를 갖고 싶어하는 20·30대 청년층이 그 중심에 있다. 몇 년 전부터, 자동차 튜닝에 관심을 보이는 연령층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튜닝이 ‘차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튜닝은

  • [금요와이드·진화하는 자동차 산업] 핸들 잡는 재미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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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진화하는 자동차 산업] 핸들 잡는 재미를 배우다 지면기사

    자세·비상탈출법 교육 등 기초부터 ‘안전’ 강조 S자·원코스 고속주행 매순간 짜릿한 쾌감 참가자들 5시간 넘는 강행군에도 “더 타고 싶어” 자동차를 ‘스포츠’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9일 화성시 오토시티에서 열린 SH컴퍼니 주관 ‘드라이빙 스쿨’ 교육 현장. 급제동과 급가속·급회전 등 ‘운전하는 묘미’에 빠진 20여 명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곳은 일반 운전자들이 운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곳이다. 교육 참가자들은 일반 도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슬라럼(S자 구간), 8자 주행, 원 선회 등의 코스를 돌면서 운전 교육을 받는다. 특히 주어진 상황 속에서 차량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면서도 안전하게 운전하는 방법을 배운다. 드라이빙 스쿨에 참여한 이들은 이유가 명확했다. 운전이 재밌고, 더 재밌게 운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교육 참가자들은 자기 차량의 능력치를 시험하기도 하고, 자신의 운전 능력을 확인하기도 했다. ■ 드라이빙 매력에 빠지다 이날 교육은 3개 조로 나뉘어 진행됐다. 7명 정도의 참가자가 한 조에 배치됐다. 참가자들은 강사에게 각 코스와 교육 내용 등에 관해 설명을 듣고 각자의 차량에 탑승했다. 차량 탑승 뒤엔 무전기로 교육이 이뤄졌다. 기자도 교육과정에 직접 참가했다. 첫 번째 코스는 슬라럼. 일정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붉은색 라바콘을 S자 모양으로 주행하며 피하는 코스였다. 속도도 느리고, 통과하기에도 수월했던 연습 주행. 이 코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연습 주행 후 시속 20~30㎞의 속도로 코스에 진입하라는 무전 통보를 따르자, 차체는 라바콘을 피할 때마다 좌우로 기울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고 주행해야 했다. 긴장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차례 더 코스를 진행하자, “진입 속도를 시속 50㎞ 이상으로 올리라”는 강사의 무전이 들렸다. 긴장감이 커졌다. 강사의 지시대로 하니 1초 남짓한 시간 동안 좌회전과 우회전을 반복해야 했다. 차체는 물론, 몸

  •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이산가족, 이번엔 만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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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이산가족, 이번엔 만날수 있을까 지면기사

    세상떠난 부모·형제… 남은 피붙이는 외삼촌·이복형제“다시 만나려면 건강하자” 영상편지 가득 채운 그리움“언제 만날 수 있을지…. 온 가족이 모여 함께할 기회가 빨리 오도록 매일 기도하고 있단다.” 27일 오전 이산가족 박영호(83)씨는 담담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보고 싶은 그리움 때문이다.마지막 목소리일 것이다. 혹시라도 통일이 된다면 남긴 동영상 목소리가 끝내 보지 못한 가족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그는 빌었다. 할아버지는 이날 자신의 마지막 영상을 남겼다. 언제 만날지 모를 북에 남겨 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대한적십자사 의 도움으로 이산가족영상편지를 남기는 박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적십자 직원들도, 옆에 함께 있어 줬던 경로당 친구들도 눈물을 훔쳤다.할아버지는 지난 1932년 함경남도 안변군 안변면 학성리에서 태어났다. 외삼촌과 외가가 있던 함경남도 원산도 자주 왕래했다. 그는 편지를 읽는 도중 “이제 고향의 기억이 없어…”라며 슬픈 표정으로 유년기를 회고했다. 이제는 기억하고 싶어도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하지만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된 한국전쟁은 잊지 못했다.할아버지는 1950년 10월, 국군이 이북을 수복하면서 당시 치안요원으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만에 중공군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하게 되면서 국군과 함께 동해안을 따라 대구로 후퇴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동생을 포함한 식구들은 안변과 원산에 그대로 남겨두고 홀로 남한으로 내려온 세월이 벌써 70년이 다 돼 간다.박 할아버지는 국내에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지난 2005년 처음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소식을 들었지만, 아버지 박명화씨와 어머니 진연화씨가 각각 1957년과 1992년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통곡을 해야 했다. 동생 박영철 씨도 이북에서 형을 기다리다가 1990년에 세상을 등졌다.담담하게 영상을 찍던 할아버

  •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남북 명단 일괄 교환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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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남북 명단 일괄 교환 언제쯤 지면기사

    우리측 6만여명 정리 후 내달 전달北,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요구 가능시기는 미지수… 교환땐 상봉 탄력추석 이후로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과 더불어 정부가 추진 중인 남북 이산가족 명단 일괄 교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남북간 명단 교환이 이뤄지면 이산가족들의 숙원인 ‘가족 간 생사 확인’이 가능해져 향후 이산가족 상봉 진행에 탄력을 줄 전망이지만, 명단 교환에 대한 북측의 태도 문제는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대한적십자사는 남한 내 이산가족 6만6천292명의 명단을 정리해 다음달 중으로 북측에 일괄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남북 이산가족 명단 교환을 연내에 실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이를 위해 대한적십자사는 다음 주부터 남한 내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인적 사항과 가족 상봉 의사, 희망하는 상봉 방법 등도 함께 조사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정부 당국과 조율해 전화기 100여대를 적십자사 내에 설치, 자원봉사자 등이 전화로 직접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같은 ‘전수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조사를 마치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명단 제출 역시 상봉이 예정된 추석 전후에 이뤄질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다음 달 초에 열릴 남북적십자회담까지 북측에 전체 명단을 제출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이 남한 내 이산가족 명단을 북측에 일괄 전달한 후, 북측의 명단 작성 여부와 그에 따른 시간 등도 쉽게 점치기 어려워 실제 명단 교환이 언제쯤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북측이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조건으로 명단 교환에 대한 우리 측의 성의 있는 자세를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려, 여러 남북 문제들을 풀어가는 전반적인 과정 속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다만 남북간 이산가족 명단 교환이 성사될 경우 ‘가족 간 생사 확인’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향후 이산가족 상봉의 전망을 밝게 할 것으로 보인다. 명단이 확정됨에 따라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보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

  •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추석 이산가족 상봉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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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추석 이산가족 상봉 전망 지면기사

    최악 치닫던 남북관계 뜻밖의 선물1년 7개월여만에 애틋한 만남 재개시간적 한계… 100명 정도 선정할듯10월께 2박3일씩 ‘1·2차’ 추진 예상25일 대한적십자사.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벨이 쉬지 않고 울려댔다. 불과 몇 시간 전이었던 25일 새벽 2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남북 고위급 접촉 공동합의문’ 발표를 통해 남북이 올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키로 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북한의 포탄 도발로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이뤄진 고위급 접촉은, 휴전선 너머 핏줄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눈물로 지새우던 이산가족들에게 예상치 못했던 ‘선물’을 안겨줬다. 남북 합의에 따라 추석(9월 27일)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면 지난해 2월 19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1년 7개월여만에 재개되는 것이다.이번 고위급 접촉이 최악으로 치달은 남북 관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던만큼, 우리 측은 이번 8·15 광복절 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역설한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강하게 밀어붙였던 것으로 전해진다.추석 상봉이 성사되면 그동안의 관례로 볼 때 모두 6일간 2박3일씩 1·2차로 나눠 금강산에서 진행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시기는 남북이 다음달 초 추석 전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에 들어선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오는 10월 초가 될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이제까지 남북이 각각 100명 규모로 상봉을 진행해왔는데 통상 1달 가량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도 26일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실제 상봉 성사까지의 시일을 고려할 때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10월 중순께 열릴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북측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이전처럼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시기를 결정하는데 변수가 될 전망이다.현재 생존해있는 이산가족 절반이 80세 이상 고령이라 이번 상봉 때는 이전보다 규모를 대폭 키워야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추석 전후로 대규모 상봉을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

  •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영상편지 남기는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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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영상편지 남기는 가족들 지면기사

    “내 후년이면 내나이 90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데 빨리 만나고 싶네요.”수원에 거주하는 김금옥(88) 할머니는 취재진을 만나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거동조차 불편한 김 할머니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때 대상자에 선정만 된다면 “(만남 장소에)가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동생(84)을 꼭 만나고 싶다”며 울먹였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보지 못한 채 매년 3천 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세상을 등지고 있다. 1945년 전쟁둥이로 태어난 이산가족도 벌써 환갑을 넘긴 노인이 된 지 오래, 이제 이산가족에게 남은 시간은 없다.경기·인천 지역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2만4천622명의 이산가족이 생존해 있다. 지난 2006년 경인지역 이산가족은 3만5천239명에 달했지만 두고 온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많은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하지만 매해 상봉하는 인원은 많아야 200명 안팎으로 살아생전 가족을 볼 수 없는 이산가족들은 ‘영상편지’를 통해 남겨진 가족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27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이산가족의 생전 모습을 담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측에 전달하기 위해 이산가족 영상편지를 운영하고 있다.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https://reunion.unikorea.go.kr)에서 영상편지 제작을 신청하면 영상편지 제작팀이 이산가족을 방문해 녹화를 시작한다.이산가족은 분량 제한 없이 본인이 원하는 만큼, 남겨진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다.이렇게 녹화돼 가족에게 전하지 못한 영상편지만 지금까지 8천30편에 이른다. /조영상기자 donald@kyeongin.com■ 이산가족영상편지 문의 및 신청 :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영상편지제작팀 (02)547-2505

  •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청와대 당면과제로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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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청와대 당면과제로 설정 지면기사

    朴 대통령 “대립 심해도 해결” 강조추석 계기 추진… 교류회복 시험대청와대는 27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해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당면 과제로 삼아 논의했다.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NSC회의에 대해 “오늘 회의에서는 최근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결과를 평가하고 향후 후속조치의 추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며 “특히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추진 방안과 일정을 당면 과제로 협의했다”고 말했다.청와대는 이산가족 상봉을 당면 과제로 삼아 남북 고위당국자접촉 합의에 따른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난 70년 눈물과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드리는 일에도 북한은 성의 있는 자세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고,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아무리 정세가 어렵고 이념이 대립한다고 해도, 인도적 견지에서 남북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한다”며 이산가족 상봉 실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청와대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성과에 따라 남북 고위당국자접촉 합의에 나온 후속조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최우선순위로 보고 그동안 꽉 막혔던 남북교류의 첫 단추를 끼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이번 남북 당국자간 협의를 향후 추진될 여러 분야 남북 교류의 시험대로 올려놓고 신중하게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경욱 대변인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자 청와대가 ‘속도조절’에 나섰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원론적으로 당연한 말이다. 겸손하라는 말”이라고 답했다. 또 “정부는 향후 후속조치를 우선순위에 따라 차분하게 추진하기로 했다”며 남북 관계에 대한 신중대응 기조를 재확인했다. /정의종기자 jej@kyeongin.com▲ 다음이 또 오겠지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이산가족 상봉 합의에 따라 추석 이후에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 2005년 11월 6일 오전 금강산 해금강호텔에서 제12차 남북이산가족 개별상봉을 마친 북측 정순희씨가 헤어

  •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이산가족상봉 역사와 개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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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이산가족 상봉] 이산가족상봉 역사와 개선점 지면기사

    6·15 선언 후 매년 1~2회씩 이어져北도발등 관계경색땐 수년간 중단절반 80세 이상… 규모 확대 시급역사적인 첫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1985년 처음 성사됐다. 남북적십자대표단은 광복절인 같은 해 8월 15일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을 하는 데 합의했고 9월20일부터 3박4일간에 걸쳐 뜻깊은 만남이 이뤄졌다.당시 남측 35명과 북측 30명 등 모두 65명이 92명의 가족·친지들과 기적적으로 재회했다. 이들의 만남은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알려졌고 전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이후 2차 방문단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15년이 지난 2000년 8월 15일이 돼서야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됐다. 남측 102가족 853명, 북측 101가족 319명 등 모두 1천172명이 남북을 오가며 해후의 정을 나눴다.2005년 8월 15일 평양과 인천·수원·서울·대전·대구·광주·부산 등을 연결한 최초의 이산가족 화상 상봉도 이뤄졌다. 이후 2014년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남과 북의 헤어진 가족이 화면을 통해 만났다. 대면·화상 상봉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남북 이산가족은 4천491가족 2만2천547명이다.하지만 남북관계가 냉각될 때마다 이산가족 상봉은 중단됐다. 금강산을 방문했던 박왕자씨 피격사건과 대청해전,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이 이어지면서 이산가족 상봉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후 지난 2014년 2월 19차 행사 이후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은 이뤄지지 않았다.그리고 약 1년 반이 흐른 지난 25일 새벽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함에 따라 추석 이후에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전망이다.대한적십자사는 북측과 9월 초 적십자 실무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남북이 실무회담 내용에 합의하면 대한적십자 측은 상봉 대상자 선정 작업에 들어간다. 외부인사 포함 7명으로 구성된 이산가족상봉대상자 인선위원회는 신청자 중 고령자와 직계가족에게 가중치를 주고 컴퓨터 추첨을 통해 상봉 후보자 500명을

  • [금요와이드·신 광복군] 국내에서… 日사죄위해 맞서는 국민·사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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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와이드·신 광복군] 국내에서… 日사죄위해 맞서는 국민·사회단체 지면기사

    미쓰비시, 위안부 문제 중국에만 사과‘…시민모임’ 불매운동 기자회견 반발독도사랑회 광복 70주년 기념 사진전반출문화재 환수 독지가 손길 줄이어■ 상처 보듬으며 싸운다= 36년간의 제국의 어둠에서 민족의 빛을 찾은 지 70년이 됐지만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가해자는 사죄는커녕 소금물을 시뻘건 상처에 들이붓는다. 그럴 때마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보듬는 게 바로 신 광복군이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지난달 30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전범기업 미쓰비시(三菱) 제품을 구입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범국민불매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미쓰비시 머터리얼(옛 미쓰비시광업)이 지난달 24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동원된 중국 노동자 3천765명에게 사죄하고 1인당 10만 위안(한화 1천881만원)의 보상금을 지불하겠다고 밝힌 반면, 같은 계열사인 미쓰비시 중공업은 국내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사죄와 보상요구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미쓰비시 머터리얼의 갑작스러운 중국쪽 태도 변화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같은 달 19일 미쓰비시 머터리얼은 강제노역에 동원된 미국 전쟁포로들에게도 사과한 바 있는데 보상계획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모임이 격노하는 이유다.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 미쓰비시 머터리얼 사외이사는 지난 달 일본 산케이 신문에 실은 기고문에서 “한국이 주장하는 징용문제는 전쟁 포로 문제와 상당히 성질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일본으로 데려온 중국인 노동자는 전쟁포로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역시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강제징용은 국제노동기구(ILO)가 금지한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개인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1965년 맺은 한일협정에 의해 종결됐다는 것이다.미쓰비시 중공업은 국내 법원에서 2심까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유족 등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현재 국내 한 대형 로펌이 미쓰비시 중공업의 변호를 맡고 있다.시민모임은 상고를 준비하면서 불매운동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불매운동 대표 대상은 계열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