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오늘의 창] "성적순 모의재판, 면학실 불공정하다" 지면기사
"공부 잘하는 애들이 판검사 잘할 거라 생각하나 봐요."지난달 만난 인천 계양구의 한 공립중학교 학생은 학교의 모의재판을 성토했다. 판사와 검사를 성적순으로 뽑은 게 불만이었다. 판검사로 나서고 싶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성적이 안 돼 신청조차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이다. 학생 얘기를 더 들어봤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판단력도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부하는 사람을 더 대접해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만난 인천 남구의 한 사립 고등학교 학생은 면학실이 성적순으로 운영된다고 전했다. 면학실은 독서실처럼 칸막이 책상과 개인 사물함 등이 있는 공간으로 입실 희망자가 많은 편이다. 이 학교는 1등에서 10등까지를 ○○반, 11등에서 35등까지를 ◇◇반으로 분류해 면학실 '입장권'을 나눠주고 있다. 입장권뿐 아니라 다른 혜택도 적지 않은데, 대학교수 특강 등 '특별 프로그램'이 있을 때 ○○반, ◇◇반에 수강 우선권을 주는 게 대표적 사례다. 모의재판이나 면학실 이용의 교육 기회를 성적순으로 제한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 기자가 만난 학생들의 생각이었다. 민주 시민 육성을 목표로 열리는 모의재판 구성원을 성적순으로 결정하는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학교 공교육 서비스의 하나인 면학실을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만 개방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 행위가 될 소지가 있다. 이 같은 성적순 교육에 대한 거부감은 적지 않은 학생들에게 퍼져 있다. 지난달 26일 인천시교육청이 '학생 기자단 원탁 토론'에 나온 1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성적 제일주의 해소(40%)', '평등 교육에 대한 교직원 인식 개선(15%)'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학력 향상에만 매진하는 학교는 과거의 일이다. '미래 역량'을 키우는 데 공을 들이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가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도입한 것도, 진로 교육 내실화와 확대를 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생이 성적으로 차별받지 않고, 열등감과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제 역량을 찾아
-
[오늘의 창] "왜 퍼주기만 하죠?" 지면기사
"왜 퍼주기만 하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예비 창업자 등을 지원하는 인천의 한 경제기관장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느닷없는 물음에 중소기업 등을 다각적으로 지원해 일자리를 늘리고 소비와 기업 투자 등을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답이 돌아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게 다 국민 혈세인데 말이죠…."기자는 경제부로 발령받아 기업과 경제기관·단체 등을 출입하며 의아했던 게 한둘이 아니다. 먼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예비 창업자 등을 돕는 기관·단체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에 놀랐다. 기관으로 치면, 인천시 경제산업국을 비롯해 인천중소기업청, 한국산업단지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 인천신용보증재단 등이 있다. 경제분야 공공기관 3곳이 최근 통합 출범한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라는 긴 이름의 기관도 있다. 단체로는 인천상공회의소, 인천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관·단체들은 수많은 지원책을 펴고 있는데, 심지어 서로 사업이 중복돼 도움을 줄 '고객'(중소기업 등) 유치 경쟁에 열을 올리기도 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각종 지원책을 모르거나 알아도 엄두를 못 내는 이들이 '뜻밖에' 많다는 사실도 놀라웠다.의아한 것은 또 있었다. '왜 주기만 하고 받을 생각은 안 하느냐'는 거다. 우수한 사업 아이템을 가진 이가 있다고 치자. 그에게 연구·개발, 특허, 상표, 디자인, 마케팅, 경영자금 등을 도울 기관·단체는 널려있다. 하지만 그가 성공하면 그간 지원 비용 등을 회수할 방법을 도와줄 때처럼 치열하게 고민하는 곳을 기자는 본 적이 없다. 국민 혈세 아닌가. 어려울 때 도와주고 성공하면 되돌려 받아 미래 예비 창업자 등을 위한 재원으로 다시 쓸 수는 없는 걸까. 장차 어엿한 기업인으로 성장하면 지역사회에 꼭 기부하겠다는 약속이라도 받아놓을 수 없는 걸까. 과연, 기자만의 엉뚱한 생각일까…./임승재 인천본사 경제부 차장임승재 인천본사 경제부 차장
-
[오늘의 창] 정리의궤 발견은 정조의 선물 지면기사
지난 6월 27일 프랑스 국립동양어학교와 국립도서관을 방문했던 더불어민주당 안민석(오산) 의원,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경기문화재단 조두원 연구원은 조선왕조 의궤 중 그 실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정리의궤(整理儀軌)' 실물을 처음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프랑스에서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조 의궤는 '외규장각(外奎章閣) 의궤' 297권밖에 없다고 다들 생각했기에 또 다른 의궤의 출현 자체가 신선한 것이었다. 이번에 발견된 정리의궤는 정조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국왕의 열람을 위한 어람용(御覽用)이며, 한문이 아닌 한글로 기록돼 있어 기존의 의궤 역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1827년(순조27)에 편찬된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를 최초의 한글본 의궤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학자들의 분석결과 정리의궤는 이보다 몇십 년 앞서 간행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리의궤는 현존하는 '최초의 한글본 의궤'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특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리의궤(성역도)'에는 수원화성과 부속건물들을 도화서 화원들이 정성 들여 손으로 그리고, 색칠까지 해 놓아 앞으로 수원화성 및 행궁 등을 복원할 때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1801년에 목판인쇄로 간행된 화성성역의궤보다 훨씬 세밀하고, 채색이 돼 있어 그동안 불분명했던 부분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다. 현재 정리의궤의 발견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바로 수원시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정리의궤에 대한 최초보도(경인일보 7월 4일자 1·3면) 이후 곧바로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정리의궤를 영인·복제하고 연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프랑스 현지 방문단이 정리의궤를 확인한 지 꼭 한 달만인 7월 27일 '정리의궤 시민 토크 콘서트'를 열고 의궤를 컬러로 출력해 행사장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공개했다.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려는 수원시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 "정리의
-
[오늘의 창] 거자일소(去者日疎)와 조직 변화 지면기사
지난 5월 19일 서울지검 김모 검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김 검사가 작성한 유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닷 새 뒤인 24일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김모 경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장례식이 끝난 뒤 김 경사의 유품을 정리하던 유족들이 '전 부서의 직속상관으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받았고 직속상관을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김 경사의 유서(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발견, 경인일보를 통해 공개했다.김 검사와 김 경사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살아서 억울함을 풀거나 아예 조직을 떠났으면 마음이나마 편했을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족들을 뒤로한 채 쓸쓸히 눈을 감는 순간까지 검찰과 경찰, 어느 쪽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다시 말해 유리벽으로 된 방음실 안에서 김 검사와 김 경사는 조직을 향해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조직 내의 그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이러한 모습에 너무나도 비참함을 느낀 김 검사와 김 경사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것으로 느껴진다.그러나 김 검사와 김 경사가 눈을 감은 뒤 그들이 속했던 조직이 보여준 모습은 조직이 먼저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김 검사의 상급 부장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고검으로 자리를 옮겼고 김 경사의 직속상관인 A 경감도 '본인의 희망'에 따라 웬만한 인맥이 없이 갈 수 없는 곳으로 알려진 인근 성남의 한 경찰서 정보보안과 계장 자리로 이동했다. 권위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나서기보다는 검찰과 경찰 모두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의 원칙, 상명하복(上命下服) 강요문화 등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나서는 듯한 모습이었다. 또한 조직의 윗선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도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 어렵다.去者日疎처럼 시간이 지나면 김 검사와 김 경사는 잊혀지겠지만. 다시는 제2, 제3의 김 검사와 김 경사가 나오지 않는 조직의 변화를 먼저 기
-
[오늘의 창] 피아노로 노래하기 지면기사
지난해 '쇼팽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면서 국내외 음악팬들을 열광시켰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진정한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떠오르고 있다.지난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조성진과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얀 파스칼 토틀리에)의 협연 무대는 젊은 피아니스트의 입지를 고스란히 보여준 자리로 평가받았다.당일 연주회를 현장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면서 읽은 다수의 리뷰 글들은 지난 2월 공연 때보다 발전한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피아노 음색 처리에 대한 호평이 대부분이다. 이를 통해 작품의 드라마틱함과 서정성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연주는 청자의 몰입을 극대화 시킨다. 조성진의 연주를 머릿속에서 떠 올려 보면서 자연스레 거장 피아니스트들을 반추해 본다. 연주사(史)에서 '피아노로 노래'할 수 있었던 이는 많지 않았다. 다양한 요소들이 연주의 질에 영향을 미치지만 피아노의 대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로 편안하고 쉽게 원작을 들려준다. 이러한 부분을 확실하게 충족시켜주는 피아니스트로 우크라이나 태생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4~1989)를 꼽을 수 있다.미국의 음악비평가 찰스 로젠은 어떤 연주자도 호로비츠만큼 아름다운 음색을 낼 수 없다고 단언한다. 로젠에 따르면 연주자가 한 음을 낼 때 연주자의 의도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소리의 강하기와 지속성이다. 호로비츠는 타건(打鍵)을 조절해 건반을 누르는 힘보다 피아노 해머가 현을 때리는 힘이 강해지지 않도록 조절한다. 선율의 음조와 하모니를 다루는 음악적인 부분과 함께 피아니스트들의 타건에 의해서 행해지는 해머와 페달의 움직임, 부딪히는 피아노 현(String)들 사이에 복잡한 상호작용이 있다는 것으로, 호로비츠는 음악적인 부분과 악기의 기계적인 부분 모두를 이해한 연주자라는 뜻이다.쿠바 출신의 호르헤 볼레(1914~1990)의 연주에서도 '피아노로 노래'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리스트가 피아노 작품으로 편곡한 슈베르트의 가곡들을 연주하는 볼레는 톤과 페달링, 소리를 내는 방식에서 여타 연주자들에게선 들어볼 수 없는 노
-
[오늘의 창] 안보 우선주의에 멍드는 서해 5도 지면기사
안보(安保) 우선주의에 인천의 자산인 서해5도 환경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지난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군(軍)은 연평·백령·대청도를 비롯한 서해 5도에서 군 방어진지 구축을 목적으로 '서북도서 요새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2단계에 걸쳐 각각 2천700억원, 1천200억원 가량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사다. 당초에는 시설을 지하화할 계획이었다가 예산 문제 등으로 지상으로 변경한 것으로 전해졌다.고도의 보안이 요구된다는 이유로 산을 깎고 중장비로 섬 해변을 뒤엎는 토목 공사를 하면서 제대로 된 환경영향 평가 한번 실시하지 않았다.특히 인천시가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추진 중인 대청도 '농여해변' 일대의 환경 훼손은 심각한 수준이다. 해당 자치단체인 옹진군, 인천시와 협의 없이 밀어붙이기식 공사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는 해변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이곳 뿐만 아니라 연평도 북측 산 중턱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군사시설 공사도 섬 산림을 크게 훼손시키고 있어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인천에는 모두 14개의 천연기념물이 있고 이중 절반인 7개가 백령도, 대청도 등 서해 5도에 몰려 있다. 백령도 사곶 해변을 비롯해 남포리 콩돌해안, 소청도 분바위 등 인천의 소중한 자산인 천연기념물이 서해5도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이런 서해5도 천혜의 횐경은 섬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다. 한 해 수천명의 관광객들이 서해5도를 찾는 이유도 서해5도만이 간직하고 있는 빼어난 환경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다. 안보상 중요하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이해와 설득 없이 진행되는 이런 군의 행태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최근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배치 지역 결정 문제도 결국 이런 안보 우선주의에서 비롯된 정부와 군의 일방통행식 정책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안보도 결국 국민을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설득과 이해작업도 없이 진행되고 있는 이런 행태야말로 우리가 항상 경계해야 할 국가주의적 발상이 아닐까. /김명호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
[오늘의 창] 자율 강제학습 지면기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내년부터 야간자율학습(이하 야자) 폐지를 공표했다. 이 교육감은 취임 2주년을 맞아 수십년간 지속돼온 입시·성적·성과 위주의 경쟁적 교육이 '야자'를 만들어 냈고, 비 인간·인격적인 틀(야자)에서 학생들을 해방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새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갖고, 스스로 자신을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체계적인 자기완성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교육감이 야자폐지 발표 직후 교원단체는 취지 자체에 적극 찬성 입장을 밝히며 "야자 폐지가 상징적 이슈로만 그치지 않고 학교현장에 제대로 착근돼 교육발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상당수 학부모 단체 등도 야자폐지가 획일적 교육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기주도형 방과후 학습이 이뤄질 첫 단계가 되길 바란다고 찬성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발표를 접하고 야간자율학습이 굳이 전체 학생 또는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만큼 전면 폐지를 하겠다는 내용 역시 다소 불편하게 느껴진다. 수십여년 전부터 시행돼온 자율학습은 "학습자가 스스로 학습의 필요를 느끼고 학습 문제를 발견하며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학습"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입시 위주의 경쟁에 내몰린 대부분의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교실에 가둔채(?) 자율학습을 실시해 왔고, 급기야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가 학생 건강권 등을 이유로 정책적으로 금지시킨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의 호응을 등에 업고 강제 야자를 진행해 왔다.그렇다면 이미 금지된 자율학습은 전면 폐지를 해야 하는 정책이 아니고, 자율학습 본연의 의미를 살려 자율적으로 정착시키겠다는 표현이 맞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자율학습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되고, 스스로 자신을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강제 금지 자체가 오히려 비인간적 틀 일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방과후 관련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촌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들을 오히려
-
[오늘의 창] 말 뿐인 경찰의 '모든 민원 친절·신속·공정처리' 지면기사
"국민이 필요하다고 하면 어디든지 바로 달려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모든 민원은 친절하고 신속, 공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이 다짐은 전자제품 서비스센터나 자동차보험 회사가 아니라 다름 아닌 우리나라 경찰청이 생활안전서비스 헌장을 통해 국민에게 한 약속이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우리나라에 처음 경찰제도가 도입된 이후 그동안 경찰은 많은 변화를 거듭하며 오늘날 국민과 함께하는 '민중의 지팡이'로 자처하고 있다. 경찰은 기회 있을 때마다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국민의 경찰'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어떠한 조직이든 조직원 한 사람의 잘못으로 오래도록 쌓아온 조직 전체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경찰은 어느 조직보다도 경찰 개개인의 직무에 신경을 쓰고 있다. 경찰 한 명의 잘못이 경찰조직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숱한 경험을 통해 터득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경찰의 이러한 노력이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게 현실이다. 과연 경찰이 국민의 작은 어려움에도 달려와 친절하게 처리하고 있을까.얼마 전 의정부에 사는 A씨는 집 마당에서 기르던 개를 도둑맞았다. 갓 태어난 강아지 때부터 온 가족이 돌보며 가족처럼 지냈고 더욱이 생전의 부친이 자식처럼 알뜰히 보살핀 개를 도둑맞아 황망하기 이를 때 없었다. 개가 목줄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 터라 절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우선 경찰에 신고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공감하듯 마치 가족이 갑자기 유괴된 것 같은 심정으로 근처 CCTV(폐쇄회로 TV)라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개 한 마리 잃어버린 것 가지고 어떻게 CCTV를 일일이 조사합니까?"라는 퉁명스런 대답뿐이었다. 결국 잃어버린 주인이 알아서 찾으란 소리였다. 개인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업무상 민원인을 응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분명 아니었다.문제는 이 같은 경찰의 안일함이 비단 도둑맞은 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고업무의 최일선에 있는 상황실 근무자의 부주의로 신고자가 범죄자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정권이
-
[오늘의 창] 지자체만 아프게 하는 '정부 공모사업' 지면기사
정부는 박물관 등을 짓는 사업을 추진할 때 흔히 지자체 대상 '공모'를 한다. 공모를 하면 우선 해당 사업을 전국에 선전하는 데 효과적이다. 공모 과정에서 지자체가 제공하는 각종 혜택도 얻을 수 있다. 예산 절감 등 사업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잃을 게 없다. 지방자치단체는 정부와 똑같지 않다. 지자체는 '여럿 중에 하나'만 결정되는 공모사업 특성상,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지자체는 탈락할 경우 무의미할 수 있는 행정력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본질은 사라진 채 유치를 위한 경쟁과 갈등, 상처만 남는다. 지자체는 일관성 없는 정부 공모사업으로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국립한국문학관 입지 선정을 위한 공모를 진행했던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지자체 과당 경쟁'을 이유로 공모 자체를 백지화했다. 문광부는 애초 '경쟁유발 행위를 할 경우, 선정에 페널티가 부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광부는 이런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무시하고 20개가 넘는 지자체가 응모한 사업을 한순간에 중단시켜버렸다. 지자체는 응모를 위해 예산을 들여 용역을 했다. 전문가를 초빙해 논의하고, 밤을 지새우면서 신청서류를 만들어 정부에 제출했다. 이 신청서는 정부의 중단 발표로 의미 없는 종잇장이 됐다. 2007년 로봇랜드 조성사업 공모를 진행하던 당시 산업자원부는 깊이 있는 심사가 필요하다며 결과 발표 일정을 미뤘다. 애초 1곳만 선정하겠다고 했지만, 계획을 바꿔 2곳을 선정했다. 어떤 사업이 공모사업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부 기준은 없다. 1천억 원 규모의 한국철도박물관 사업은 입지 결정이 공모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비슷한 사업비가 투입되는 국립항공박물관은 정부 자체적으로 입지를 결정했다. 명확한 기준 없이 추진되는 현재의 정부 공모사업은 지자체 과열 경쟁과 갈등 등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정부와 지자체 간 '갑을(甲乙) 관계'만 더욱 고착화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언제까지 칼자루를 쥔 채 시혜를 베푸는 듯한 모습으로 지자체를 상대할 것인가. 중
-
[오늘의 창] '미술조각품은 혈세낭비?'… 경제적 논리에 밀린 조형물 지면기사
몇 년 전 독일에서 활동하는 조형예술가가 한국을 찾아 인터뷰하게 된 적이 있다.1990년대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형작가로, 오랜만에 작품전을 통해 한국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여러 질문 중 독일 생활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갔다. 어떤 점이 힘드냐는 질문에 "물가가 비싸 좀 힘들 뿐이며 이를 제외하곤 작품 활동하는데 대체로 만족한다"는 뜻밖의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반대로 한국에서 힘든 점을 물으니 얘기가 길어졌다.요약하면 "지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작품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국내에선 작품에 대한 가치도 중요하지만 종종 경제적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그의 작품은 주로 묵직한 조형물이다. 그는 이 조형물을 통해 공간에 의미를 더 하는 작업을 한다. 각종 금속류 등 육중한 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작업도 힘들고, 작품을 완성했다 하더라도 이를 해체해 각지를 돌며 전시회 한번 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는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저마다의 감성을 가질 수 있고, 평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조형예술 분야는 그 어떤 예술품보다 매력적이며, 작품활동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요즘 들어 이 재독작가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최근 경기 광주에선 시가 추진하는 조형물 사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일부 시민단체가 지난 4월 광주시의 추경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삭감된 '여름철 야외물놀이 사업'을 놓고 '왜 여름철 야외물놀이 사업 예산(4천200여만원)은 전액 삭감했고, 광주시청사 미술조각품 설치(2곳)를 위한 예산 4억원은 통과시켰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이들은 물놀이 사업과 조형물 사업이 별개로 처리된 사안임에도 조형물 사업의 타당성을 추궁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사실 이렇다 할 물놀이 시설이 없는 광주에 여름철 상시 운영할 수 있는 물놀이장 설치를 요구하는 것은 시민 입장에서 십분 이해가 간다. 해당 예산 통과도 중요하다. 하지만 시청사 미술조각품 설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