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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정치는 언제 제대로 기능할까 지면기사
갈등을 조정하고 이해 충돌 지점에서 접점을 만들어냄으로써 희소한 가치를 배분하는 것이 정치다. 이러한 원론적 정의가 아니더라도 정당들은 다수파가 되고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을 부각시키며 정치는 결국 갈등 축을 중심으로 형성된다.갈등 축의 형성은 흔히 프레임을 짜는 문제와 직결된다. 민주 대 반민주, 전쟁 대 평화, 기업 대 노동의 구도 등 프레임은 수없이 많고 선거구도를 짜는 문제는 선거전략의 핵심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국면을 바꾸는 것은 갈등을 치환함으로써 가능하다.결국 정당이 경쟁구도를 만들고 갈등을 조직화해서 선거에 임하고 유권자의 투표에 의해 갈등이 해결의 단초를 열어가게 하는 것이 정치다. 투표는 갈등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해결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두 거대정당, 尹정부 들어 대립 날로 심화야, 당대표 범죄혐의 비호… 여, 내부 분란 1987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그해 말 치러진 13대 대선과 1988년의 13대 총선 때 등장한 4당 체제의 지역구도로 전환됐다.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합당이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을 탄생시키면서 지역구도 역시 호남 대 비호남의 구도로 짜여지고, 이때부터 지역주의 정치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이렇듯 갈등의 치환은 정치의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정치가 어느 정도의 편향성을 띨 수밖에 없고 선거도 이의 연장에서 치러진다. 그러나 한국정치처럼 경쟁하는 두 거대정당이 거의 모든 사안에서 충돌하고 의견이 다른 것은 갈등의 조직화를 통한 선거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현재 여당과 야당의 대립과 갈등은 어떤 쟁점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윤석열정부가 들어서고 여야의 대립 정도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두 정당의 경쟁 축이 민생이나 경제와 관련된 이념 차이에서 연유한다면 이는 정상적 갈등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한 문제가 경쟁의 축이 되고, 정당의 선거전략의 일환에서 갈등 축을 적절히 형성함으로써 선거승리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갈등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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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택시 대란'과 '농막(農幕) 호구' 지면기사
# 택시대란이다. 서울 등 수도권 대도시가 심각하다. 차가 모자란 게 아니라 운전대를 잡을 사람이 없다. 법인택시 10대 중 6대는 차고지에 있다. 코로나 창궐 이후 배달 앱에 인력이 몰리면서 택시기사들이 썰물처럼 빠졌다. 노동강도와 수입이 비교불가다. 노동시장의 급격한 수요변화에 택시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개인택시는 60대 이상 고령자가 절반을 훌쩍 넘는다. 늦은 밤엔 택시를 볼 수 없다고 아우성인 연유다.2020년 개정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은 '타다 금지법'으로 불린다. '승차공유서비스를 막겠다'는 취지를 담았다. 차량공유서비스 '우버'가 출현한 지 10년도 넘었으나 국내에는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선보인 '타다'는 업계 반발과 정부 규제에 막혔다. 렌터카에, 기사를 채용하는 꼼수를 동원했으나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자동차가 등장했는데 정부가 마차업자 편을 든 결과다.택시대란을 잠재우려면 수요 변화에 따라 공급 탄력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우버는 자기 차로 승객을 태우고 요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공유서비스다. 수요가 많으면 요금이 오르고, 공유 참여자가 늘어나 공급 부족을 해소한다. 반대의 경우 요금은 내리고 공유 차량은 줄면서 수급의 균형을 맞춘다. 수도권 지자체들이 요금 인상과 부제 해제를 검토 중이다.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고, 요금 부담만 커지게 된다. 뻔한 해법은 외면하면서 비책을 찾겠다며 엉뚱한 곳을 헤집고 있다. 수요 따라 공급 탄력성 높이는 시스템 필요정부, 균형발전 운운 올가미 걷어내지 않아 #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6·1 지선 당시 여당의 경기지사 후보였다. 선거기간 광주 오포읍 롯데칠성음료 공장에 들렀다가 기막힌 얘기를 들었다. 공장에서 생산된 사이다를 대전으로 옮겨 보관한 뒤 다시 수도권으로 실어온다는 것이다. 공장 옆 슈퍼도 왕복 200㎞ 넘는 물류단지를 오간 사이다를 판다.오포공장은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중첩규제에 막혀 40년 넘게 확장하지 못했다. 천막까지 둘러 적재공간을 넓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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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마음의 붓'으로 그린 균여의 세계 지면기사
마음의 붓으로 그린 부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난 여름 고려 향가를 다시 읽다가 발견한 '보현시원가'와 그 첫 작품 '예경제불가(禮敬諸佛歌)'의 첫 구절이 불러낸 질문이다. 향가라면 '삼국유사'에 실린 신라향가 부터 생각하고 고려향가는 그저 불교의 포교 수단으로 지은 '이념 문학'으로 치부해온 태도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학계에서 고려향가의 문학성보다는 향찰식 표기를 연구하는 언어 연구 대상으로 삼아 오거나 10구체와 삼구육명(三句六名)이라는 향가의 구성적 특성에 관심을 기울여 온 관행도 핑계 감이다. 고려 향가의 문학성에 집중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로는 숱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향찰식 표기 체계를 충분히 규명하지 못한 사정도 있다. 그런데 '보현시원가'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 창작 동기가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을 노래로 지어 부르기 위한 것이어서 작품별 주제가 뚜렷한데다 11수의 향가를 최행귀가 한시로 모두 번역해 두었기 때문이다. 신라 향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독이 쉬운 편이다. 그중 '예경제불가'는 '마음의 붓으루/ 그린 부처님 앞에/ 절하는 이 몸'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마음의 붓으루(心未筆留)'라는 표현이 평범한 듯 절묘하다. 마음의 붓으로 그린 부처는 실제 붓으로 그린 불화도 아니고, 돌이나 쇠 같은 가시적 재료로 만든 불상도 아니다. 그렇다고 상상 속의 부처와도 다르다. 균여가 노래한 '마음의 붓으로 그리는 부처'는 차라리 진리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의 실천 과정에 가깝다. 즉 완성된 부처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미완의 현재불이나 그려내야 할 미래의 부처에 '구세(九世)가 다하도록 절하겠다'는 구도자의 마음 가짐이다. 그려 낼 미래 부처에 절하겠다는 마음가짐'예경제불가'서 법계는 우주론적으로 확장 표현기법으로 보면 '마음의 붓으로 그린 부처'는 이중 은유이다. 은유의 기본적 원리는 추상적 비가시적 개념을 가시적 감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부처'나 '마음으로 그린 부처'라고 표현했었다면 이 시의 가치와 감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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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동몽선습'을 보다 지면기사
우리나라에서 나온 교과서로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동몽선습(童蒙先習)'이다. 서당에서 '천자문'을 익히고 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동몽선습'이다. '천지만물 가운데서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다(天地之間 萬物之衆 唯人 最貴)'로 시작하여 오륜(五倫)과 중국사 그리고 고조선에서 조선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한국사로 마무리되는 이 책은 서당의 학동(學童)들이 배우는 초급 한문 교재였다.'동몽선습'은 인쇄본과 필사본 등 수량이 많아 아직은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책이다. 30여년 전만 해도 인사동 고서점에 나가면 '동몽선습'에 '통감', '서사삼경' 등은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책들이었다.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 '박통사 언해' 등도 수북이 쌓아놓고 권당 1만원 헐값에 판 적도 있었다. 그때는 주로 TV 사극이나 영화 소품용으로 이런 책들이 많이 팔려 나갔다. 과외선생과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필요한 책들을 사고 용돈이나 충당하던 시절인지라 이런 흔한 책들에까지 미처 손이 갈 여유는 없었다. 만일 30년 전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열일을 제쳐놓고 몽땅 구입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가장 오래된 교과서누가·언제 저술했는지 아직 밝혀지지않아 '동몽선습'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누가, 언제 저술했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저자는 중종 때 군자정(軍資正)을 역임한 박세무(朴世茂)라고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서는 인조 때 나온 '해동문헌총록'의 김안국(金安國)의 저작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김안국을 저자로 내세우기도 한다. 서지학자 남애 안춘근(1926~1993) 선생은 1543년 윤인서(尹仁恕)가 쓴 발문에 저자가 민제인(閔齊仁)으로 기록되어 있는 판본을 근거로 민제인 저작설을 제시하고 있으나 현재는 박세무 저작설에 민제인·김안국 등의 저작일 가능성을 함께 언급하는 방식으로 논란이 봉합(?)돼 있는 상황이다. 안춘근 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 재학할 당시인 1980년대 말인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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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소름 돋는 디지털문신 지면기사
한국인들의 일본 식민지배 콤플렉스처럼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 멍에를 지니고 산다. 아돌프 히틀러 통치 기간(1933∼1945) 내내 600만 유태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한 사건이다. 유색인종, 집시(로마니), 장애인들의 생명도 열등 인종청소란 구실로 앗아갔으나 유태인들이 절대다수여서 홀로코스트는 유태인 대학살로 이해되고 있다.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유태인 등에게는 왼팔 상박(上膊) 안쪽에 알파벳과 숫자로 조합된 개인식별 문신들을 새겼다.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유태인 등은 현대식 컴퓨터의 초기버전인 펀칭(천공)카드 시스템에 의해 특별관리되었다. 미국 인구조사국 직원 홀러리스(H. Hollerith, 1860~1929)가 천공(穿孔)카드에 개개인들의 성별, 국적 및 직업 등을 표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홀러리스는 이 시스템을 사업화하고 1910년에 독일에 자회사 데호막(Dehomag)을 설립했으나 이듬해에 사업 전체를 다른 사람에 매각했다. 이 회사는 1924년에 상호가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으로 변경되었다. IBM의 독일 자회사 데호막은 나치 치하의 인구조사작업을 펀칭카드로 정리해 히틀러의 인종청소 프로젝트에 크게 기여했다. 디지털시대 선도자이자 미국의 상징인 IBM의 흑역사(黑歷史)이다.요즘에는 신체 특정 부위에 문신(타투)을 한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통계에 따르면 약 1천300만 명의 국민이 눈썹 문신을 비롯한 각종 시술을 받았을 만큼 타투는 대중화됐다. 문신은 바늘로 살갗을 찔러 피부 속에 먹물을 침투시키는 행위로 작업도 어렵지만 지우기는 더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문양이나 크기에 따라 최하 수십만원 이상임에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경쟁적으로 피부를 훼손하고 있다. 국내 타투 산업의 규모도 1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죽어도 안 지워지는 잉크문신보다 더 고약SNS·신용카드 등 일상 상호작용 흔적 남아 그러나 잉크문신보다 훨씬 고약한 것이 디지털문신(흔적)이다. 잉크문신은 옷으로 가리거나 사망하면 없어 지지만 전자문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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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분열의 정치는 통합의 정치를 이길 수 없다 지면기사
2015년 여당인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고, '정부 시행령을 국회가 수정·변경토록 요구'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분노가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란 말로 분출됐다. 2016년 유 전 의원은 공천을 받지 못했고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국민의힘은 집권당의 권위와 책무를 망각하고 있다. 대의와 명분은 사라지고 권력투쟁의 민낯을 여과없이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에 대한 적의와 적개심을 자극적으로 드러내고 '복수'를 공개적으로 다짐한 이준석 전 대표와 그를 쫓아내기에 당헌 개정까지 불사한 윤핵관 등 친윤그룹의 쟁투는 권력투쟁의 상도(常道)인 최소한의 절제를 명시적으로 배제한다. 국힘, 집권당 책무 망각 권력투쟁의 민낯만집권연대 균열 부르는 윤핵관 2선 후퇴해야 이 전 대표가 당 윤리위에서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원권 6개월 정지의 중징계를 받고 이후 최고위원들의 사퇴와 지도부 해체, 최고위원회에서의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의결,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비대위원장 임명 주체의 변경을 위한 당헌 개정, 이 전 대표의 해임 등 일련의 절차는 보편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거칠고 의도가 명백히 읽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이 전 대표의 대응 역시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란 여백을 남기고 타협을 위한 최소한의 출구는 열어놓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파부침주(破釜沈周)의 결연한 의지와 권력정치의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현 상황에 대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전 대표 역시 윤핵관과 마찬가지로 갈등 진원의 한 축이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행위다.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권의 총체적 난맥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권력쟁투의 기저에는 차기 총선의 공천권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대선의 의미를 몰각하고 알량한 권력의 단맛에 취해 바닥없이 추락하는 지지율에도 변화할 줄 모르는 집권연합에 대해 국민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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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김동연의 '일 머리'와 정무 감각 지면기사
이달 초 김용진 경기도경제부지사가 취임 나흘 만에 물러났다. 역대 최단 재임이란 불명예 퇴임이다. 개원협상을 위한 도의회 여야 대표와의 저녁자리가 예기치 않은 화를 불렀다. 설전을 벌이다 이성을 잃고 선을 넘었다. 숟가락을 식탁에 내리쳐 가만있는 술잔을 공중에 부양하는 놀라운 신공을 시현(示現)했다. 처음엔 야당 여성대표와 다퉜다고 알려졌으나 여당 대표와 말싸움을 하다 사달이 났다고 한다. 무슨 연유로 부지사가 야당이 아닌 민주당 대표와 충돌한 건가.예견된 참사다. 김용진은 기재부 요직을 두루 거쳤고, 호조참판(戶曹參判) 반열에 올랐다. 국회의원도 심기를 살피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지체 높은 자리다. 나라 곳간 열쇠를 쥔 힘 있는 부처 관리가 을(乙)의 심정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중앙부처 고위 인사가 서울 변방 지자체의 지방의원들을 대면할 기회도, 이유도 없었을지 모른다. 을의 얼굴로 중재를 자임했으나 과한 취기에 그만 자제력을 잃었다. 축적된 버릇은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道 최고위 간부·시군 부단체장 거의 제자리인사 흔들리면 조직 붕괴 뒤엉킨 타래 풀어야 지난달 말 경기도청 인사안을 보다가 멀쩡한 눈을 의심했다. 민선 8기 첫 사령임에도 최고위 간부들은 아무도 바뀌지 않았다. 행정1·2 부지사 모두 유임됐고, 실·국장들도 자리를 지켰다. 도지사 사진만 바꾸면 새 조직도가 필요 없을 듯하다. 신정부가 출범했는데 총리에 부총리, 장관들이 죄다 유임된 것과 다르지 않은 괴이한 일이다. 행정1 부지사는 이재명 전 지사의 대선 출마로 7개월 넘게 지사직 권한대행을 지냈다.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도청 인사가 꼬이면서 시·군 부단체장 인선도 엉켰다. 50만명 이상 대도시 부단체장은 전원이 제자리다. 부임지에서 3년을 훌쩍 넘긴 부시장이 수두룩하다. 소속 정당이 바뀐 지역의 단체장들은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과 동거를 하게 됐다'며 불편한 기색이다. 조율에 실패한 광명·구리 부시장은 공석으로 남았다. 큰 집과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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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법치'가 아니라 정치를! 지면기사
제자백가 중 법가(法家)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秦)의 국가 사상이었다. 그런데 법가를 대표하는 상앙(商앙)과 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는 하나같이 비참하게 죽었다. 진효공을 도와 변방의 제후국에 불과했던 진(秦)을 중원 최강의 군사 대국으로 키웠던 상앙은 효공 사후 정적들의 탄핵을 받아 자신이 제정한 형벌인 능지처참을 당했다. 법가 사상의 완성자로 진시황을 매료시켰던 한비자는 그를 시기한 이사의 모함으로 독살당했다. 한비자와 이사는 모두 순자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제자였다. 옛 친구를 제거한 후 승상이 되어 최고 권세를 누리던 이사도 시황제 사후에 간신 조고(趙高)의 배반으로 길거리에서 처형되고 만다.진나라의 운명도 마찬가지, 진시황이 죽자 황제가 된 2세 호해는 전형적 혼군(昏君)이었다. 권력 암투와 내란이 격화되어 천하 통일 15년, 진시황 사후 3년 만에 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진 제국 멸망의 도화선이 된 진광·오승의 반란도 기실 엄격한 형벌 제도가 한 원인이었으니 법치로 세운 나라가 결국 법치 과잉으로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진왕조의 멸망사를 통해 법가의 정치사상적 가능성과 한계를 볼 수 있다. 법가와 법가의 나라 진의 흑역사는 2천년 전의 중국의 일이라 치부할 수 있겠으나, 새 대통령과 각료들이 남발하는 '법치주의'는 예사롭지 않다. 행정이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한다면 법치주의라면, 또 법치주의는 역사적으로는 절대주의 국가를 무너뜨리고 성립한 근대시민국가의 정치원리를 천명한다면, 무슨 이론이 있겠는가. 문제는 왜 지금 법치주의인가라는 질문이다. '법치'는 과거 치안본부나 국정원이 공안정국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혹은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예고였다. 법률의 형식으로 행해지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횡포였다.법 앞에 평등은 당위론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믿는다.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은 그만큼 깊다. 약자들은 법으로 얽으면 걸려들지 않을 수 없지만 법의 허점을 아는 기술자들에게 법은 그저 성긴 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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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우리나라 인물 백과사전 '조선고금명현전'(1922) 지면기사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타인의 수고요, 자연의 은혜다. 오늘 아침 내가 먹은 계란 프라이만 해도 닭과 닭을 사육한 농장주와 이를 운반하고 유통시켜준 물류관련 종사자들과 조리한 이의 수고다. 더 따져보면 사료를 만들고 공급하는 사람과 이를 운반할 차량을 만들고 도로를 뚫고 수리한 사람과 아스팔트 포장을 위해 원유를 시추하고 이를 유조선으로 운반한 사람과 정유한 사람 등 한 개의 계란 프라이가 내 식탁에 오르는 평범한 일상 하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수고와 은혜가 뒷받침되어 있어야 한다. 요즘 같은 IT세상에서는 웹 검색을 통하면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거의 다 얻을 수 있다.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그녀가 역사적 인물이든 작가든 연예인이든 검색만하면 거의 다 나온다. 요새는 대부분 역사적 인물이나 예술인보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이 먼저 화면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소소한 정보도 입력한 이의 수고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물들을 정리한 이들의 노고와 연구가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정보다.한동안 세계 각국의 인물 정보를 얻으려면 '후즈후'(who's who)라는 세계 인명 백과사전을 이용해야 했다. 근대 조선에서도 이런 국내판 '후즈후'가 있었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2년 홍문사에서 나온 '조선고금명현전'(1922)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고급 정보나 전문 지식에 포함되지도 않지만, 이 같은 보편성을 만들어 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수고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조말 역사상 인물 889명과최치원 부터 조돈까지 77명의 초상화 정리 도서관이나 출판사정이 열악했던 그때 그 시절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역사상의 인물 889명과 더불어 동국문종(東國文宗)으로 통하는 고운 최치원의 초상화부터 죽석 조돈(竹石 趙暾)에 이르기까지 77명의 초상화를 정리해놓은 귀중한 자료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도 있고 낯선 인물들도 있으나 일체의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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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최저임금법은 방아쇠법 지면기사
근래 들어 손님이 뜸한 시간대인 오후 3∼5시에 '브레이크타임'(휴게시간)을 갖는 접객업소들이 크게 늘었다. 이 시간대에 지인들과 약속을 잡아야 하는 이들은 난감하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따금 단골식당을 찾은 식객들은 낭패감에 화가 치민다. 코로나19가 도심거리의 풍경을 바꿨다.브레이크타임은 노동자들의 과로 방지목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54조는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제공할 것'을 명시했다. 브레이크타임의 저변확대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매출 격감이 결정적이나 인건비 부담도 간과할 수 없다. 시간당 최저임금은 문재인정부 집권 초인 2017년에 6천470원이었으나 2022년에는 9천160원으로 5년 만에 41.6%나 올랐다. 파리만 날리는 오후에 가게 문을 열은 상태에서 직원들에게 휴게시간을 주려면 추가고용이 불가피하다. 시간당 최저임금 文정부 초기보다 41.6%↑업종별 차등적용 영세중기·소상인들 숙원 지난달에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경제계의 최대관심거리였다. 기업들이 임시직이라도 채용하려면 퇴직금은 고사하고 최저임금에다 노동자가 1일 8시간씩 주(週) 5일 근무 시 하루치의 주휴수당과 4대 보험까지 부담해야 하니 말이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들은 야간근무(오후 10시 ∼오전 6시) 직원들에게 주간(晝間) 임금의 1.5배를 부담해야 한다. 국내 4대 편의점그룹(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의 간판을 단 점포들 중에서 편의점 한 곳만을 운영하는 생계형 자영업자 비중이 70%인데 코로나19와 과당경쟁 등으로 전체 매출이 2∼3년 전 수준으로 주저앉았단다. 전국 80만 외식업체들은 식자잿값까지 가파르게 올라 더 불안하다.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은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숙원(宿願)이었다. 산업별 노동강도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업종과 도·소매업 등 취약한 업종일수록 최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