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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공생'아닌 '소멸'로 갈 것인가 지면기사
한국정치의 성격을 규정짓는 말 중 '적대적 공생'이란 말처럼 정확한 말이 있는가 싶다. 물론 적대적 공생이란 단어는 비단 정치에서만 쓰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영정치가 위세를 발휘하는 한국정치에서 이 단어는 정치를 함축하는 상징적 용어다. 민주화 이후 5년만에 정권교체를 경험한 첫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 진 책임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성찰과 숙고로 답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친문 대 친명의 계파갈등이 그칠 줄 모른다. 오는 8월28일 전당대회에서의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다툼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의 권력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권력의 핵으로 하는 그룹들은 이 대표를 끌어내리는 데 일단 성공한 형국이다. '0.73' 매직의 함의를 두 정당 모두 잊고 있는 결과다. 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에게 이 의미는 야당과 부단히 소통하고 문재인 정권 때의 정권을 변경할 때 충분히 협의하여 국회는 물론 국민일반의 동의를 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압도적 승리의 경우 이러한 절차가 생략될 수 있는 것에 대한 경계가 선거라는 집단지성으로 표출된 것이다. 민주당은 불과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졌지만 5년만에 정권을 내 준 참담한 결과를 거울삼아 팬덤에 몰입되고 독선과 내로남불에 도취된 행태를 근본부터 바꾸고 진보의 본래의 가치를 찾으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여야, 선거직후 당권잡기 권력투쟁에 몰입양당 당내 갈등 개선안된 공천제도에 기인 그러나 두 정당 모두 선거 직후부터 당권을 잡기 위한 당내 권력투쟁에 경쟁하듯이 몰입하고 있다. 여권은 정부 내의 여러 혼선을 노출하고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해묵은 안보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본질이 비껴가고 있다. 급기야 여권의 지지율은 임기 말 식물정권을 방불케 하는 30%대로 추락했다. 검수완박법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으로 번졌고, 야당은 여권이 검찰과 경찰을 장악하기 위해 좌동훈 우상민을 내세워 역대급 권력사유화에 나섰다며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총선은 아직 2년 가까이 남았다. 양당의 적대는 선거 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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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위장애민(僞裝愛民) 그만 보고 싶다 지면기사
민선 8기 전국 지자체장들이 지난주 취임했다. 재선한 박형준 부산시장은 '다시 살고 싶은 부산'을,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은 평생의 과업'이라며 소외계층을 찾았다. 울산시장은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을 주창했다. 취임사마다 명품, 미래, 환경, 복지, 첨단이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4년 임기를 시작하는 단체장들 머릿속은 몽환적(夢幻的) 구상으로 충만하다. 수도권 단체장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의 꿈, 대한민국 미래를 만들겠다'고 한다. 8년 전 '인천을 대한민국 발전의 전초기지이자 창조도시로 만들겠다'며 취임했으나 재선하지 못한 이력을 지녔다.심술 폭우로 경기지사와 시장·군수 여럿이 취임식 대신 수해현장을 돌았다. 시정(市政) 청사진을 뿌리면서 아쉬운 속을 달랬다. 잘만 되면 산업단지에 기업들이 몰리고, 사통팔달 시원한 도로망에 대중교통망이 촘촘한 살기 좋은 명품도시가 멀지 않았다. 자녀들은 강남 8학군 못지않은 교육환경에,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임기 시작하는 단체장들 몽환적 구상 충만해주민들은 시큰둥… 시작은 늘 창대 끝은 미약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불과 한 달 전이나, 누굴 찍었는지 감감할지 모른다. 유권자 절반 가까이는 투표장에도 가지 않았다. 30여 년, 보고 듣고 경험한 게 있기에 기대치가 바닥권이다. 시작은 늘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재임 중 얄팍한 밑천에, 일그러진 인성이 들통 나 공천도 못 받은 전임자가 허다하다. 어떤 이들은 주어진 권한을 넘치도록 행사하다 법의 심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이런 사유로 재선 시장이 한 명도 없는 도농복합 지자체가 있다. 빛나는 전통은 맥이 끊기지 않았다.민선 8기가 이전과 다를 게 없을 거란 예견들을 한다. 보름 남짓 인수위를 보면서다. 어떤 당선인 주변엔 자리와 이권을 탐하는 식승(食蠅)들만 꼬였다고 혀를 찬다. 전·현 공직자, 개발사업자, 정당인, 토호, 각급 단체장 집단이 줄을 대려 애썼다는 후문이다. 여러 지역에서 인수위 구성을 둘러싼 잡음이 일었고, 점령군이란 위세가 여전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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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스케치 기사와 권력 지면기사
스케치 기사는 쓰지 말 것! 이 지시는 1986년 9월에 공개된 '보도지침'에서 10개월 동안 무려 20회나 반복적으로 나타난 주문이었다. '보도지침'은 제5공화국의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이 국내 신문과 방송 등을 통제하는 가이드라인으로 매일 각 신문사 편집부에 은밀하게 전달되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상황, 사태의 보도 여부는 물론 보도 방향과 내용, 특정 기사의 배치와 원고 분량, 사진의 사용 여부까지 규정하는 편집지침이었다. 보도지침의 기준은 간단하다. 언론이 대통령이나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기사는 키우고 정권에 불리한 사건, 야당이나 재야의 목소리는 축소하거나 아예 다루지 말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왜 하필 스케치 기사의 보도형식을 통제했을까? 스케치 기사는 팩트 위주로 간결하게 작성된 스트레이트(Straight) 기사와 달리 사건의 분위기나 정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보도문이다. 취재 현장에서 기자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림 그리듯'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이 현장 분위기나 모습을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스케치 기사의 목적이다. 선거유세장 풍경이나 선거 당일 전국 곳곳의 투표장 풍경, 대규모 집회장의 모습 등은 스케치 기사가 적절하다. 현장성과 생동감 때문에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생생한 현장 분위기 그림 그리듯 기사 작성무소불위의 5공 시절 아예 금지 지침 선택 스케치 기사는 사건 현장에 대한 묘사적 글쓰기로 이뤄진다. 묘사의 글쓰기는 미학적으로는 언어를 사용한 회화적 재현에 해당한다. 묘사는 있는 그대로를 기술한다는 표면적 정의와는 달리 실제 재현 과정에서는 묘사 주체의 태도와 생각이 은연중에 배어들게 마련이다. 묘사 대상의 선택, 대상에 대한 느낌과 묘사문의 언어에 녹아 있는 뉘앙스가 그것이다. 묘사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포함될 수도 있다. 묘사문은 디테일로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정교한 글쓰기이다. 악마(신)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1면 톱의 제목보다 한 줄 스케치 기사가 강한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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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삼중당문고(三中堂文庫) 지면기사
시인 서정주를 키운 것은 '8할의 바람'이었고, 우리 세대 문청들을 키운 것은 '삼중당문고'였다. 인생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마치 군대 병영생활 같았던 학교에서 나를 지탱시켜 준 것은 친구들과 삼중당문고였다.시내버스비가 50원이던 그때 시절 방과 후 학교(북중학교)부터 세류동 집까지 꼬박 40~50분을 걸어서 다니며 아낀 돈으로 재개봉 동시상영관에서 철 지난 영화를 보거나 삼중당 문고본을 샀다. 학교도서관도 있었지만 모양만 도서관이었지 책도 많지 않았고 그나마 문이 닫혀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국어교과서와 자습서 외에 문학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길이 없었던 내게 수원 종로 일대에 즐비했던 서점들은 꿈의 거리요, 정신의 해방구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중학생에게 접근이 가능한 책은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와 완전정복 시리즈의 자습서들 그리고 삼중당문고가 거의 전부였다. 버스비를 아껴서 살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기에 신학기 집에서는 자습서를 사야 한다고 돈을 타내 헌책방에서 철 지난 전년도 자습서를 구입하고 그 차액으로 몇 권의 문고본을 더 샀다. 황순원의 '일월',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이광수의 '흙' 그리고 염상섭·김동인 등 주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작가들의 작품을 사서 읽었다. 버스비·자습서 살 돈 아껴 읽은 문학작품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삶의 지지대 역할 '안나 카레니나', '춘희', '여자의 일생' 등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봤고 '데미안', '지와 사랑' 같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나 '마의 산', '파우스트', '일리아드 오디세이' 등은 당시 서울대 법대생이었던 작은아버지의 서재에서 꺼내 읽었다. 헤세는 잘 읽혔으나 다른 작품들은 뭔지도 모르고 억지로 책장만 넘겼던 기억이 난다. 우리 문고본은 1927년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첫 권으로 시작한 이와나미문고(岩波文庫)의 영향을 받으며 세상에 나왔다. 1907년 박문서관을 세운 노익형이 1939년 도남 조윤제의 '교주 춘향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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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러시아의 역사적 반전 지면기사
1941년 9월 말 독일군대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를 봉쇄했다. 러시아인들의 문화적 긍지인 레닌그라드를 함락시키면 소련 장악은 시간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그 와중에서 히틀러는 소련 농무성 응용식물분류국의 종자은행 탈취를 시도했다. 육종학의 선구자인 러시아의 니콜라이 바빌로프 박사가 전 세계 64개국에서 발품을 팔아 확보한 신품종 17만여 씨앗들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는데 히틀러는 정복지인 러시아 서쪽에 독일인 농업이민을 위해 우량종이 필요했다.독일군이 가장 탐을 낸 품종은 서양인들의 주식인 감자였는데 당시 종자은행에는 바빌로프가 남미의 안데스산맥을 누비며 확보한 6천 품종 이상의 감자 수천 킬로그램이 보관되어 있었다. 연구원 60여 명과 인근 주민들은 독일군의 눈을 피해 10만여 점 이상의 표본과 5t의 각종 식량 종자들을 헤르첸가 44번지의 허름한 건물로 옮기고 직원 3∼5명씩 교대로 24시간 감시했다. 독일군의 장기봉쇄에 따른 식량난과 혹한, 그리고 쥐들과의 전쟁이 연구원들을 피폐케 했다. 1942년 1월 바빌로프의 제자이자 가장 연장자인 드미트리 이바노프 연구원은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쌀이 가득 찬 포대들에 둘러싸인 채 숨을 거두었다. 주목되는 것은 이바노프가 굶어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지키던 쌀은 단 한 톨도 먹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군의 봉쇄는 1944년 봄까지 900여 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종자은행의 연구원 30여명이 이바노프처럼 먹거리로 가득 찬 식량창고 안에서 굶어죽었다. 900여 일의 봉쇄기간 동안에 러시아인 수십만명이 아사했다. 16C 스비아토히르스크 라브라 수도원 전소러軍, 우크라 침략 보물급 문화재 파괴 약탈 지난 5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국립 자연공원 내에 위치한 스비아토히르스크 라브라 수도원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전소(全燒)되었다. 이 수도원은 16세기에 건축된 우크라이나 정교회 3대 성지 중의 하나로 매년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했었다. 지난 2월 말 러시아군의 침략 이후 우크라이나 곳곳의 문화유적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 버지니아박물관은 위성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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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정치개혁 실종과 정당 패착은 어디에 기인하나 지면기사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 4년 동안 네 번의 전국 선거가 있었다. 평균 매년 한 번 꼴이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선거에 의해 정권을 구성하고 국민의 대표를 선출한다. 지방정치는 주민자치의 원칙에 따라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구성한다. 민주주의는 기회비용이 많은 드는 제도다. 소모적인 과정을 거쳐 대표를 선출하고 이들의 각축이 정치불신을 키우지만 이 또한 현실정치의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규범적 차원에서만 접근할 수 없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끝났다. 앞으로 2년 가까이 전국 규모의 선거가 없다. 선거를 의식하지 않으면 정치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소신껏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여야 정당이 당내 권력투쟁에 매몰되어 오만해지고 독선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도 반성하지 않고 독단과 진영에 갇혔던 더불어민주당의 지방선거 패배를 보면 선거가 있다고 민심에 조응하는 것도 아니다. 제8회 지방선거가 국민의힘의 완승이라고 하지만 정권 출범 3주만에 치러진 탓에 여권은 평가를 받을만한 이렇다 할 대상도 없었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선 패장 당사자와 당 대표가 출마하고 대선 직후 성찰과 쇄신을 뒤로 한 채 검수완박의 무리한 추진 등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 데 대한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 포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다. 오죽하면 민주당의 아성이자 전략적 투표 성향과 정치관여도가 높은 광주에서 37.7%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이 나왔을까. 여야 혁신위, 의제 삼을 개혁메뉴 차고 넘쳐논쟁속 계파 형성땐 갈등 마다할 이유 없어원론적이지만 선거의 존재이유는 민생과 경제를 위해서다. 여기에 정치공학과 각종 이슈, 구도와 바람, 인물 등의 요소가 복잡다기하게 얽히면서 선거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구성된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수단으로서의 선거 본연의 의미가 상실된 채 정치공학과 정치인들의 탐욕이 목적이 되어버린 목적과 수단의 도치가 정치의 현주소다. 민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정의가 공허하지만 최소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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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정치 추경(追更)' 지면기사
전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통장에 정부 지원금이 꽂혔다. 지역별로 시차는 있겠으나 6·1지방선거 전 일단락될 전망이다. 직종과 피해 규모를 따져 적게는 600만원에서 많게는 1천만원까지, 371만명이 수혜를 받는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거리 두기로 생계가 버거운 서민들이 단비를 맞았다.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인 코로나 손실보상은 여정이 고단했다. 이달 중순께 주겠다는 정부 계획보다 보름 남짓 늦어졌다. 여·야 셈법이 달라 산통(産痛)이 요란했다. 여당은 지방선거전 지급을 원했고, 야당은 지방선거 뒤로 미루려 했다. 표심에 미치는 득실이 달랐기에 타협이 쉽지 않았다.여야 합의 시점이 절묘하다.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대통령에 영수회담을 역제의한 야당은 심상치 않은 여론에 더는 버티지 못했다. 눈치를 살피다 계양을에서 예상 밖 접전 중인 이재명 후보가 윤허(允許)하자 서둘러 회군했다. 국회 전반기 마지막 날 타결되면서 선거 전 집행됐다. 야당은 사전선거의 직접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됐다. 여야가 절반씩 주고받은 셈이다. 일정이 촉박해 지방선거 이후 집행될 것이란 야당 예측은 빗나갔다. 정부·여당은 치밀하게 대처했다. 관련 부처 직원들은 휴일에도 비상근무를 했다. 전국 동시 처리를 위해 전산망을 확충하고 간편 인증 기능을 보완했다. 정부는 30일 이른 아침 국무회의를 열어 집행 절차를 매조지했다. 본회의 통과 9시간 만이다. 같은 날 오후 통장에 지원금을 쏘아댔다. 야당의 허를 찌른 전광석화다. 직전 정부가 국무회의 개회 시간을 늦춰가며 '검수완박' 법안을 완결지은 장면과 오버랩 된다.소상인·자영업자 정부지원금 선거전 수혜야, 심상치않은 여론에 버티지 못하고 합의 60조원 넘는 추경은 역대 기록을 뛰어넘는다. 국가부채가 늘고, 물가를 자극하는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올해 거둬들일 세수 초과분 53조원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국고에는 아직 쟁이지 못한 미수금이다. 한국은행에서 꿔다 쓰고 연말에 갚기로 했다. 국채발행에 따른 부담을 덜고, 비난을 피하려는 뻔한 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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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계양산에서 부른 정조의 노래 지면기사
정조 임금이 김포의 장릉을 참배하고 부평과 인천, 안산을 거쳐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한 행차는 꽤 알려져 있다. 또 정조가 활을 쏘았다는 어사대와 활을 쏘고 난 뒤에 손을 씻었다는 욕은지(浴恩池)에 대한 이야기도 인천에 전해지고 있다. 백발백중의 활쏘기 실력으로 문무 겸전했던 정조가 부평의 관리들과 활을 쏘고 시상도 했던 모양이다. 이 행적은 계양구의 부평초등학교 교정에 표지석으로 남아 있어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그런데 정작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정조가 부평과 인천을 지나면서 계양산과 소래산 풍경을 읊은 두 편의 칠언절구다. 계양산 노래에서는 계양산의 아름다운 산빛을 묘사하고 온 고을에 풍년이 들기를 기원한 뒤에 앞으로 백성들이 잘살고 공평한 정사를 펼치고 이어나갈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었다.(桂陽山色極嬋娟 百里秋登上上田 民富政平斯可矣 誰能更續武城絃) 이 시는 정조의 뛰어난 언어 감각과 순발력도 나타나 있다. 부평(富平)이라는 지명은 본래 넓은 들판이라는 정도로 해석되는 지명이다. 정조는 지명에다 '민부정평(民富政平)', '잘사는 백성과 공평한 정치'라는 정치적 과제와 이상사회의 비전을 부여한 것이다. 부평은 그만그만한 땅이름이 아니라 정조의 통치철학과 이상사회를 내포한 개념어로 승격한 것이다. 그리고 '무성현'의 고을 '현(縣)'자를 악기의 줄을 의미하는 '현(絃)'으로 바꾸어 표현한 것도 절묘하다. 악기의 줄은 예악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문화정치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래산 군자봉 아름다움에 감탄해 남긴 詩'어진 정치' 구현할 숨은 군자 간절함 담아내 정조는 서얼이나 지방선비, 중인이나 농민과 같은 신분이 낮은 소민(小民)을 보호하는 나라인 '민국(民國)' 건설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노비제도 개혁 정책과 농촌경제를 살리기 위해 선진적인 농법과 농업경영을 실험했다. 궁을 떠나 행차할 때마다 연도에서 마주친 백성을 가까이 불러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는지를 직접 묻고 해결하기도 했다. 이 시의 '백성을 잘 살게'라는 구절은 백성을 굶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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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공간의 정치학 지면기사
시간과 공간은 우리 삶과 생활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소다. 시간은 시간대로 공간은 공간대로 우리 일상 속에 있다. 그런데 시간도 공간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이며 정치다. 전 근대시대 우주의 시간인 달력은 오직 황제의 소관이었고, 공간 또한 철저하게 정치와 이념에 따라 조성됐다. 전 근대사회의 도시공학이자 공간의 정치론으로 '주례' '고공기(考工記)'를 꼽을 수 있다. 우리의 서울, 한양도 이 '고공기'에 따라 만들어졌다. '고공기'를 보면, 도성의 공간은 좌묘우사(左廟右社)와 전조후시(前朝後市)가 원칙이다. 군자남면(君子南面)이라 해서 왕성을 남향으로 짓고, 왼편에는 종묘를 오른편에는 사직단을 두었다. 그런가 하면 한양 도성의 사대문도 음양오행론에 입각해 명명됐다. 한양의 정문인 남대문은 남쪽을 뜻하는 글자인 '예(禮)'자를 따서 숭례문으로, 동대문은 동쪽을 뜻하는 '인(仁)'자에 풍수적 비보 차원에서 갈지자를 추가하여 흥인지문으로, 서대문은 서쪽을 뜻하는 '의(義)'자를 따서 돈의문으로, 북대문 역시 북쪽을 뜻하는 '지(智)'자를 따서 홍지문으로 그리고 한양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시간을 알려주던 종각은 중앙을 의미하는 '신(信)'자를 취하여 보신각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서울은 물론 경복궁이나 미국의 백악관 등 모두 그 나라, 그 사회의 정치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공간의 정치학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를 놓고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그 논란과 별개로 모두가 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된 것이다. 또 대통령 집무실도 집무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나라의 정치철학과 국격을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한양 도성 사대문 음양오행론 입각해 명명용산 이전 합리적인 선택이었는지 아쉬움 그런 청와대가 갑자기 시민의 휴식처로 탈바꿈됐다. 윤석열 대통령 측에서는 이를 공약 사항이며 탈권위 소통 행보의 일환이라 밝히고 있으나 국민들의 다수는 청와대를 방문해 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이 집무실을 옮길 필요까지 있었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이 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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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정치 양극화 비용 지면기사
세계를 경악케 했던 지난해 1월 6일 미국 연방의사당 난입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달 26일 미 하원 특별위원회는 다음 달 중에 공청회를 개최해서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최종보고서를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수천여 명의 미국 판 태극기 부대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증 작업을 저지하고자 워싱턴DC의 민주주의 성지(聖地)에 난입하는 과정에서 경찰 1명과 시위대원 4명이 사망했다. 백인우월주의가 비호감 선거로 표출되면서 미국의 자부심을 짓밟았다.지난 3월 9일에 치러진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는 잡음 없이 마무리되었다. 0.73%p의 근소한 표차로 석패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개표종료 직후에 즉각 패배를 선언한 것이다. 1년 전의 미국 대선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미국처럼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가 아니었기 때문일까?모 유명 시사주간지가 지난달 중순에 심층 분석한 여론조사에서 "한국 정치의 정서적 양극화와 정책선호도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나 비호감 당파성은 미국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한국 유권자들의 정치적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특정 후보가 싫어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다. 특히 20대 유권자들의 정치적 편향성이 더 선명했다. 내 편이 아니면 평생 동지라도 서로 간의 말 섞기를 꺼리는 실정이니 말이다.글로벌 시장경제 붕괴·부의 불평등 늘어나정치지형까지 변화… 韓, 국가재정 큰 타격 청년세대들의 우리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학 부설 비교조사연구소의 '월드 벨류 서베이' 조사결과가 눈길을 끈다. 1981년부터 5년마다 한 번씩 세계 100여 국가 사람들의 가치관 등을 조사해서 발표하는데 한국의 16∼24세 1천200명 대상의 7차 조사(2016∼2020년)에서는 '노력을 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20.8%로 20년 전보다 무려 2.5배나 높았다. 2차 조사(1990∼1994년)의 경우 동일한 질문에 대한 한국 청년들의 응답 비율은 8.4%였다. 같은 질문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