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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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12년 의정생활 마무리하는 장현국 10대 경기도의회 의장 지면기사
40대 중반 처음 의원 배지를 달았다. 도의회 입성 10년 만에 경기도의회 의장이 됐다. 장현국(59·민·수원7) 10대 도의회 후반기 의장을 임기 만료 열흘을 앞둔 지난 20일 수원 경기도의회 의장실에서 만났다. 장현국 의장은 '자치분권 전문가'다. 전국 최초로 조례에 근거한 의장 직속 자치분권 실현기구를 설립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원활한 시행에 이바지했다.코로나 극한 상황에도 꾸준히 민생현장 찾아 쌍방향 소통 기틀 마련공동주택 옥상피난설비 지원·정신건강위기대응체계 구축 조례 보람요구 정책 실현 될 때 '정치적 체감도' 높아… 주민 참여 기회 늘려야11대 여야 초선의원들, 권력보다 협력 추구하는 도민 대변인 돼주길 장 의장은 "경기도의회는 전국에서 인구와 의석수가 가장 많은 최대 규모의 광역의회로 타 의회에 모범이 되는 선제적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며 "이른바 '최초의 도전'으로 불리는 전례 없는 의정을 위해 사명을 가지고 업무에 충실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특히 장 의장은 "2020년 10월 자치분권 연구단체인 자치분권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올해 1월13일 개정·시행한 지방자치법에 따라 부여받은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을 비롯한 제도 안착에 주안점을 뒀다"며 "의회의 독립성이 높아진 만큼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방의원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지원관 전문인력 도입에 힘을 실었다"고 전했다.장 의장은 스스로 점수를 매기긴 어렵지만, 지나온 행보를 돌아보면 의장 임기 2년간 '할 일'의 8할은 이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럼에도 못다 이룬 2할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방의회의 진정한 독립과 지방의회법 제정이 그것이다.장 의장은 "지방의회의 인사권 독립은 이뤘지만, 조직을 개편할 수 있는 권한과 예산권은 여전히 집행부에 있다"며 "회계연도 예산서에도 의회사무처는 도청 실·국 중 한 곳에 지나지 않는다. 집행부의 일개 실·국이 아니라 온전히 조직, 예산편성 권한을 가져야 진정한 주민 중심 지방의회로 추진력 있게 나아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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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인천시장 도전했던 당당한 20대… 김한별 기본소득당 인천시당 상임위원장 지면기사
"정치는 젊어야 한다."6·1 지방선거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김한별(28) 기본소득당 인천시당 상임위원장은 "기성 체제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는 게 젊은 정치"라고 말했다. 6천79표. 그가 말한 '젊은 정치'에 호응한 시민들이다. 인천 투표자 200명 중 1명에 해당하는 0.49%가 김한별 상임위원장에게 표를 던졌다. 기본소득당 인천시당 당원 수 1천500명의 4배 정도 된다.김한별 상임위원장이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썼던 '별 볼 일 있다'라는 문구처럼 시민들은 젊은 정치인의 도전을 마냥 '별 볼일 없이' 보진 않았다. 김한별 상임위원장은 아동·청소년·청년·노인에게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과 노동인권 보장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인천시장 선거 출마를 결심한 뒤 윤석열 정부를 포함해 민주당, 정의당과 차별되는 정책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깊은 고민 끝에 마련한 것들이었다. "나이만 어리다고 남들과 다른,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방선거에서 많은 후보가 쇼핑몰 건립과 도시철도 증설 등 계속해서 반복되는 공약을 발표하잖아요. 기본소득은 재산과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소득을 지급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합니다. 정치와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가로서 노동자 권리 증진 활동에 매진 김한별 상임위원장이 기본소득당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건 노동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는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 부평공장 해직자였던 아버지의 복직 투쟁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인권에 관심을 가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농성 현장에 가서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그가 노동운동에 첫발을 디딘 시기는 20대 초반 교육 봉사에서 만난 친구 권유로 아르바이트 노조 워크숍에 참석하면서다. 비슷한 연령대 청년이 모여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회복을 위해 시위와 성명 발표 등에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대우차 부평공장 해직자 아버지 복직투쟁 보며 노동인권 관심 가져아르바이트노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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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연고지 바꾼 첫해 프로농구 준우승 이끈 최현준 수원 kt 소닉붐 단장 지면기사
지난해 부산에서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기고 처음으로 한 시즌을 소화한 프로농구 수원 kt 소닉붐은 37승 17패를 기록하며 2021~2022 시즌 정규리그 2위에 올랐다.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kt는 안양 KGC인삼공사에 패하며 아쉽게 챔피언결정전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연고지를 바꾼 첫해에 좋은 성적을 거뒀다.kt의 성공적인 수원 안착을 이끈 kt 스포츠 최현준 농구단장은 "사실 저희들도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수원시, 시민, 팬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연고지에 잘 정착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그러면서 최 단장은 "올 시즌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첫 해여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시즌 초반 코로나19 확산으로 농구팬, 시민들과 같이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못 만든 것 같아 아쉽다. 다음 시즌에는 시민, 팬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겠다"고 덧붙였다.이번 시즌 kt는 팀의 '에이스' 허훈을 필두로 양홍석과 외국인 선수 캐디 라렌 등 선발로 나서는 선수들이 제 몫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김동욱, 김영환, 신인 하윤기 등도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최 단장도 특정 선수의 활약보다는 선수단 전체가 뭉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구가 단체 경기인 만큼 누구 하나를 수훈 선수로 뽑기는 어렵다"며 "코칭 스태프, 선수들, 사무국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고 팬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해 줬기 때문에 정규시즌 준우승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허훈 군 입대로 전력 누수… 양홍석·김영환 등 신구조화로 돌파강팀·페어플레이·팬서비스 연상되는 팀이 되도록 최선 다할 것 하지만 당장 kt 앞에는 고민거리가 생겼다. kt의 핵심 선수인 허훈이 최근 군에 입대하면서 다음 시즌 전력 누수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허훈은 이번 시즌 경기 당 평균 14.9점을 넣고 5.2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해결사 역할을 했다. 빠른 드리블 돌파와 폭발적인 3점슛으로 상대 팀의 허를 찌르며 kt의 승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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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노포들과 구도심 지키는 박지훈 인천맥주 대표 지면기사
술에는 지역 정서가 강하게 묻어 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와 소주의 위상이 건재하다. 인천은 소성주가 가장 대표적인 막걸리다. 외국에선 지역 이름을 딴 포도주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처럼 '술'과 '지역'은 떼어놓기 어려운 관계다.최근에는 이러한 관계가 맥주로 확장하고 있다. 과거 우리 나라 맥주에서 지역성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대기업이 만든 맥주를 전국에서 소비했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수제맥주 인기와 함께 지역성을 담아내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인천맥주'는 인천이라는 지역을 내세운 유일한 맥주 양조장이다. 만들어진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는 "우리가 만드는 술이 인천 시민들의 자부심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인천맥주 본사이자 양조장은 인천 중구 해안동에 있다. 이 지역은 대표적인 구도심이다. 주변에는 노포가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공방과 갤러리, 카페 등이 새롭게 들어서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고 자란 인천에서 사업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중에서도 '바닷가' 가까웠으면 했다박지훈 대표는 "처음 양조장을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무조건 장소는 인천에서도 바닷가와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창고 건물이라서 양조장을 짓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장소가 가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이곳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박 대표가 인천맥주를 설립하고 운영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다. 자연스럽게 인천에서 사업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한다.처음 시작은 지금과는 달랐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와인과 칵테일 등을 판매하는 사업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것이 첫 사업장인데 주류 쪽에 관심을 더욱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다양한 주류 중에서도 맥주에 더욱 관심이 갔다고 한다. 박 대표는 "지금은 많이 대중화됐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와인은 격식을 갖추고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며 "맥주는 상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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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부임 5년 최장수 기록' 백운만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지면기사
'최장수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백운만 청장에 꼬리표처럼 붙는 수식어다. 그는 2018년 6월 7일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으로 부임한 후 햇수로 5년째 조직을 이끌고 있다. 전임 청장들이 짧게는 6개월, 길어야 3년 정도 근무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경기도에는 전국 중소기업의 24.7%인 170만여개 기업, 159만여개의 소상공업체가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지인만큼, 여느 지역 청장직보다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막중한 책임감은 물론 실력도 두루 갖춰야 하는 자리다. 버스 1시간 7시 출근… 매일 사무실 인근 공원 달리기로 일상 시작창투사 상대적으로 부족한 투자 유치에 어려움 '스타트업 815' 가교중소기업·소상공인들 '위기' 지원사업 몰라서 놓치는 일 없게 할 것 백 청장은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인 경기도의 중기청장으로 부임하면서 '경기도의 중소기업이 살아나면 우리 경제도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 청의 역할이 크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뛰어왔다. 여러 기업과 현장에서 조우하며 기업인들의 도전정신, 땀과 눈물, 위기극복 등의 이야기를 접하며 생생한 기업가 정신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1천500번의 달리기 새벽 5시, 백 청장의 하루는 남들이 아직 잠자리에 있을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서울에서 1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5시 48분, 57분, 59분. 집 앞 정류장 출근길 광역버스 정차시간도 또렷하게 외우고 있다. 아침 7시, 수원 영통구에 위치한 사무실에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들어선다. 후배 직원들이 청장의 이른 출근을 반길 리 만무할 터. 하지만 그의 성품을 아는 직원들은 어느 누구도 백 청장의 부지런함에 토를 달 수 없다. 부임 초기, 그의 눈치를 보며 출근시간을 앞당기는 직원들도 꽤 있었지만 백 청장은 일부러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냐'는 질문조차 부담스럽지 않겠어요?" 그 한마디에 백 청장의 배려 깊은 성품이 묻어났다.이른 아침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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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구원투수로 등판 취임 1년 맞은 박종태 인천대 총장 지면기사
"인천대학교가 국립대다운 국립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최근 취임 1주년을 맞은 박종태 인천대 총장은 "정신없이 1년을 보냈다"며 말문을 열었다. 재선거 등 내홍을 거쳐 총장으로 임명된 박 총장은 "취임 당시 대학의 역량·재능있는 분들을 하나로 모으는 지휘자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지금은 인천대가 구성원간 큰 갈등 없이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온 거 같다"고 자평했다. '연구형 대학 체계 구축' 등 대학 역량 강화 초점 박종태 총장 취임 전 인천대는 10개월 동안 총장 공백기를 거쳤다. 총장 공백기는 인천대의 여러 사업이 미뤄지는 결과를 낳았다. 박 총장은 지난 1년간 이를 수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는 송도 바이오단지에 신축 건물을 구축하는 사업이 있다. 신축건물은 애초 지난해 6월 착공예정이었지만 박 총장 취임 당시 해당 사업은 설계도 채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박 총장은 "인천경제청에 기간을 1년 연장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수습이 필요했다. 여러 절차 후 드디어 오는 6월 착공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이어 "2020년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나온 감사 내용 중 이행되지 않은 건도 많았다.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또 "지난해 5월 취임 후 지금까지는 대학 안정화와 운영시스템, 산적한 현안을 처리하는 업무에 집중해왔다. 앞으론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우리 대학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도 바이오단지내 신축·교육부 종합감사 등 산적한 현안 수습에 집중국가장학금 도입 이후 대표학과 자연스레 사라져… 특성화 '대안 찾기'지역 보답 '동행 플랫폼' 추진… 공공의대 설립·제물포캠 활용 숙제로박종태 총장은 남은 임기 동안 '연구형 대학 체계(인프라) 구축'을 이뤄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천대가 자체 연구용역으로 지난해 인천대와 서울대, 5대 거점국립대학의 '전임교원 1인당 국제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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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전국 최초 8만기' 양주 엘림 테마파크 조성하는 안태용 회장 지면기사
"10여 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개인 이익보다는 사회적 환원에 초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해왔습니다."양주시 남면 신암리에는 전국 최초로 8만기의 봉안시설을 갖춘 '엘림 테마파크'가 조성 중이다. 테마파크에는 8만기 봉안 시설을 비롯해 카페테리아와 조각공원 같은 편의시설, 캠핑장, 펜션 등 휴양시설, 기독교인들을 위한 수양시설도 갖추게 된다.이곳은 본관동과 전시관, 수양관 등을 합해 대지 면적이 7만6천500여㎡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지난달 15일 착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애초에 맡았던 시행사 '좌초' 업무 떠안고 수십건 민·형사 소송 겪어건축허가 등 취소로 행정절차 다시 밟고 혐오시설 인식 개선에 최선틈날때마다 복지재단 설립 강조… 경기도장애인태권도협회장도 맡아 테마파크는 안태용 (주)엘림개발 회장이 직접 사업을 맡은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전국 교회에서 연합해 봉안시설을 짓겠다고 나섰던 세월까지 합하면 14년이 걸렸다.당초 봉안시설을 포함한 테마파크는 국내 3천여 교회가 함께 설립·운영하는 기독교 추모공원으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기독교 23개 교단들이 공동 기금으로 사업단을 꾸려 지난 2008년 발대식을 갖고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추모 공원 설립을 추진했다.하지만 애초에 사업을 맡았던 시행사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상적인 사업 운영이 어려워지자 테마파크 조성 사업도 좌초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지난 2011년 안 회장이 본격적으로 사업 시행을 맡게 된 이유다.이때부터 안 회장은 부침을 겪던 사업을 맡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이전 시행사의 업무를 떠안다 보니 안 회장은 사업 초기 수십 건의 민·형사 소송에도 시달렸다. 그는 "이전 시행사가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게 되자 20여 건의 민·형사 소송을 겪었고 소송이 끝난 뒤 다시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면서 사업 기간도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20여 건의 소송전 이후에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봉납 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마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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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일제강점기 강제 이주의 산증인…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황예순·강정순·강춘자 할머니 지면기사
일제강점기부터 재일조선인 후세들의 삶을 다룬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는 고국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다.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후발주자로 비교적 구독자가 적은 애플TV+를 통해 방영됐음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선자'와 '솔로몬'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압축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민사회의 현실을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인천 연수구 연수동에 있는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도 65명의 선자와 솔로몬이 살고 있다. 이들은 선자처럼 일제강점기 러시아 사할린 지역으로 떠났다가 귀국한 사람들이다. 또 머나먼 고국 땅을 그리워하며 사할린에서 살아간 조선인의 후손 솔로몬과 같은 이도 있다. 지난달 26일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아버지 고향 잊지 않고 산 황예순 할머니할아버지가 주소 외우게 해… 아버지와 다시 만날수 있어父 규슈 탄광行 어머니도 생사 모른채 돌아가셔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만수리.'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지내는 황예순(81) 할머니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아버지 고향을 리(里) 단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황예순 할머니의 어린 시절, 그의 할아버지가 수백 번을 넘게 외우게 한 지명이기 때문이다.황예순 할머니가 3살이던 1942년 때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는 어린 그를 데리고 사할린으로 이주했다. 먼저 사할린에 일하러 간 아버지를 따라서 가족이 이사한 것으로 황예순 할머니는 기억했다.1938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이후 일제는 '국가 총동원령'을 시행했다. 일본인과 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젊은 청년들을 징집했다. 특히 벌목장과 탄광 등이 많았던 사할린 지역에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일제는 사할린으로 가면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조선인을 꾀어냈다.황예순 할머니의 아버지도 사할린 탄광에서 일했다고 한다. 노동력을 수탈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은 급여를 받았지만, 황예순 할머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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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발달장애 두 자녀 둔 워킹맘' 임신화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 이사장 지면기사
대한민국에서 발달장애 아동을 기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발달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부터 사회 곳곳에 자리한 차별은 아동뿐만 아니라 부모에게까지 상처가 된다.흔히 발달장애가 있는 아동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이른바 '상동 행동'을 보인다. 이런 모습에 익숙지 않은 비장애인들은 곧바로 색안경부터 낀다. 색안경이 씌워지는 순간부터 발달장애 아동과 그 가족들은 연대가 아닌 차별의 벽에 가로막힌다.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 이사장 임신화(48)씨는 이렇게 외친다. "발달장애 아동도 엄연한 사회 구성원입니다."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은 장애 아동에게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힘들게 장애 아동을 받아주는 교육시설을 찾더라도 치료비 대부분이 시설로 가는 단점에 대안으로 협동조합이 탄생했다.협동조합은 치료와 교육이 모두 장애아동에게 놀이가 되는 환경을 꿈꾼다. 발달장애가 있는 두 자녀를 둔 워킹맘 임 이사장은 장애를 극복이나 동정, 혹은 시혜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그는 지난 18일 수원시 권선구 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발달장애 아동은 도움이 아닌, 생애 주기별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가책임제가 시행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협동조합 설립 과정은두 아이 치료비만 한 달에 300만원씩 들어'꿈고래' 어린이집 학부모와 한뜻으로 뭉쳐'치료를 놀이처럼' 건물주가 보증금 면제도봉담점 57명·수원점 30명 방과후활동 확대 두 자녀가 발달장애를 겪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심경은."첫째에게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안 건 둘째가 태어났던 때다. 당시 기억이 선명하지 않지만 당장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자폐성 장애 1급 판정을 받으면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제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언어, 감각 통합, 미술 놀이 등 여러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치료하려고 애썼다."협동조합 설립에 이른 계기는."2015년 협동조합 설립 즈음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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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다큐 감독으로 '10주년 디아스포라영화제 이끄는' 이혁상 프로그래머 지면기사
오직 인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지만 알찬' 영화제인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올해 10주년을 맞는다. 2013년 1박2일짜리 작은 행사로 시작한 영화제는 지난 10년 동안 차근차근 성장해 어느덧 도시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다음 달 20일부터 닷새간 인천아트플랫폼과 애관극장에서의 10번째 개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디아스포라영화제는 '공존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알려왔다. 영화제는 인천시민들에게 '디아스포라'라는 말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것이 적절한지 일깨워줬다. 특히나 디아스포라의 도시 인천에서 열리기에 영화제는 더 빛났다. 120년 전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인천의 제물포항을 출발해 일본을 거쳐 하와이로 떠났고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항구와 공항을 통해 떠나고 또 들어온다. 인천은 문호를 개방한 이래 이주와 이민의 중심지였는데, 인천이 디아스포라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다.영화제가 10살의 나이를 먹는 동안 절반이 넘는 세월을 누구보다 아끼고 돌봐온 이가 있는데, 바로 다큐멘터리 감독인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다. 10회째를 맞이하는 영화제의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그를 인천영상위원회(이하 영상위)에서 지난 18일 만나 얘기를 들었다.5회부터 합류… 영상위 적은 인원으로 꾸려 개막식 날씨로 고생한 적도코로나 영향 아트플랫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애관극장도 허락영화제이후 스태프 정규직 전환 많아 안정된 상황에서 노하우 쌓아 - 디아스포라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제5회 영화제부터 프로그래머로 합류했습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 초기에는 영상위가 적은 인원으로 고생하며 힘들게 영화제를 꾸려왔죠. 영화제를 새롭게 바꾸고 싶다며 합류해달라는 제안에 참여했습니다. 영상위는 해마다 전반기에 디아스포라영화제를, 하반기에는 지금은 사라진 인천다큐포트를 치러왔는데 다큐포트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참여한 저를 본 스태프들이 점찍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조선의 태양'이라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일본의 재일 조선인마을에서 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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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내가 바로 제빵왕 김탁구"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영모 명장 지면기사
어린시절 부모가 이혼하면서 전남 해남 작은아버지 집에 맡겨져 눈칫밥을 먹다 빵집에서 일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16살 때 무작정 대구로 나와 조그만 제과점에 발을 들여놓았다. 1982년 서울 서초동에서 단 19.8㎡짜리 가게로 제과점을 시작해 지금은 성남·서울 등에 8개 제과점과 3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성공한 CEO가 됐다.1995년에는 유산균 발효법, 2000년에는 과일을 이용한 천연발효법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해 한국인에게 맞는 빵의 풍미를 찾아냈다. 1998년 노동부 선정 대한민국 제과기능장 제1호로 등극했고 대한제과협회·대한민국명장회 회장 등의 경력에 세계 쿡북대회 대상·은탑산업훈장·장한 한국인상·대통령 국민포장 등을 수상했다. 2010년 6월9일부터 KBS 2TV에서 30부작으로 방영돼 최고시청률 49.3%를 기록한 '제빵왕 김탁구'의 실제 모델이다.# 빵지순례 성남 '파네트리 제과명장 김영모'빵은 3시간만 지나도 맛이 떨어지기 시작해판교·수지·강남권과도 가까워 문 열게 돼'AI 핸드드립 머신' 들여놓고 개인 박물관도 '제과제빵업계 살아 있는 전설', '제과명장 1호', '동네빵집에서 성공한 덕후', '빵굽는 CEO' 등의 수식어가 붙어 있는 김영모 명장의 삶을 압축하면 이렇다.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고 남 부러울 것 없는 위치에 서 있지만 칠순을 바라보는 김영모 명장은 지금도 여전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4~5시간 현장에서 빵을 굽는다. 빵을 위해 살아왔고 여전히 빵과 살아가는 게 그의 인생이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전에 일본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제과관련 잡지나 책을 들여다보며 세계 제과제빵 흐름을 살펴본다. 이후 빵 공장에서 후진들을 지도하며 함께 빵을 만든다.김 명장은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첫 번째 재료가 좋아야 한다. 두 번째는 정확한 공정이다. 똑같은 배합이라도 공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난다. 발효가 덜 돼도 맛이 달라진다. 정확한 공정이 풍미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든다"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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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동반성장 사명감' 서임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인천지회장 지면기사
지난 1월 취임한 서임순(66)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인천지회장은 "여성기업인의 매출 증대를 위해 발로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이하 여경협)는 1999년 제정된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여성기업지원법)'에 따라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법정 여성경제단체다. 인천지회는 협회가 만들어지면서 함께 탄생했다. 서 회장은 올해 1월 취임해 2024년 12월까지 수장 역할을 맡게 됐다. 서 회장은 중장비용 볼트·너트를 제작하는 (주)평산기공의 대표로, 47년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서 회장은 여성을 보기 힘든 해당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남성 직원 대하는 법·사업운영 '꿀팁' 배워… 지회 없었다면 회사 발전 어려워저변 확대 됐지만 코로나로 제약… 중기인이 겪는 어려움엔 남녀가 따로 없어여성기업확인 발급제도·새로일하기센터 재개… 사기 진작 포상·제품전시회도 처음부터 여성기업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1976년 남편인 고(故) 신현철씨와 함께 회사를 설립했지만 1999년 남편이 사망하면서 회사를 승계 인수했다. 남편 중심으로 이뤄졌던 경영을 서 회장이 맡아 운영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그는 "남편의 옆에서 경리 일을 하며 보조역할만 하다가 갑작스레 경영을 맡게 된 것이었다"며 "당시엔 특히 여성들이 경영을 접할 곳이 별로 없었다. 매일 강의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경영을 배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했다.서 회장을 더욱 힘들게 했던 건 여성기업인에 대한 차별이었다. 거래처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여러 사람과의 만남이 필수적이다. 여성기업인들에겐 '만남' 자체가 부담이며 차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서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당시엔 거래처 관계자와 밥 한 끼만 먹어도 별의별 소문이 나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그런 그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던 건 또 다른 여성기업인들이었다. 서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여경협 인천지회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서 회장은 당시 여경협 인천지회에서 '여성경제인이 살아남는 법'을 실질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고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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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창단 30년'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이끄는 서광일 대표 지면기사
올해로 창단 30년을 맞은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을 이끌고 있는 서광일(56) 대표는 1987년 6월 인천 부평에 있는 십정동의 한 성당 풍물반 강좌에서 국악기를 처음 접했다. 그는 그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30년 넘도록 국악기를 손에 쥐고 살아갈 줄은 전혀 몰랐단다. 당시 경동산업 소속 노동자였던 서 대표는 풍물반에서 대학생 예닐곱 명과 뒤섞여 풍물을 배웠다."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를 입으로 수차례 반복해 따라하며 배운 자진모리장단의 입장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그렇게 처음 국악기를 만져봤다. 오른손에 '열채'를, 왼손에 '궁채'를 쥐고 그날 어설프게 배운 입장단에 맞춰 장구를 두드려봤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고 뿌듯했다."장구를 처음 두드리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풍물이 조합원들을 지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마음뿐이었죠. 7년 뒤인 1992년 제가 잔치마당을 창단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앞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겠구나 하는 마음은 더더욱 없었고요."# 노동운동에서 문화운동으로집안형편 나빠져 중학교 겨우 졸업 '상경'무료야학 통해 검정고시 '전태일 평전'도몸담았던 노동단체 해체후 잔치마당 창단풍물 강좌와 공연… 전통혼례사업도 병행부평풍물대축제와 성장 500명 길놀이 장관 여수 돌산도 멸치잡이 '선주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만 해도 유복하게 자란 편이었다. 그러다 새롭게 시작한 아버지의 배 사업의 결과가 좋지 않았고, 집안 형편이 나빠졌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결국 어린 나이에 학비를 벌러 상경했다. 1년 동안 왕십리의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학비를 모아서 여수로 돌아왔지만, 가정 형편은 그대로였다."서울로 올라갈 때와 비교해 집안 형편이 조금도 나아진 게 없는 거예요. 우연히 행상을 하는 어머니를 봤는데, 그냥 모아놓은 등록금을 다 드릴 수밖에 없었어요."결국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현재 한국폴리텍대학교의 전신인 광주직업훈련원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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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응급의학과 전문의 출신' 이세호 신임 화홍병원장 지면기사
오미크론의 높은 전파력으로 국내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20만~30만명 대를 오가며 10명 중 1명이 확진됐거나 확진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말 그대로 '주변에 확진자가 없다면 사회성을 의심해봐야 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함께 커지는 우려 중 하나가 우리 응급의료체계에 관한 것이다. 2020년 1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에 상륙한 이후 응급의료현장은 의료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만큼, 이 험난한 파고를 효율적으로 헤쳐나가기 위해 상황에 따른 정책적·행정적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또 장기간 긴장을 유지해온 응급의료현장에서 의료진의 부담이 얼마만큼인지, 이를 어떻게 덜어줘야 하는지 이제는 명확한 답이 필요하다. 일반 환자 입장에서도 코로나19에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라 안심하고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UAE 왕립병원 설립초기 응급실장 4년 8개월간 의료체계 기틀 마련PCR검사 결과 시간 단축… 음압 치료실 회전율 높이고 의료진 확대'의료시장이 왜곡' 치료 미루거나 확진자로 환자 못받는 상황 반복응급의사는 충분히 설명해 환자가 치료 선택할수 있게 하는 역할 수원 화홍병원 제2대 병원장으로 취임한 이세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이 질문에 답변을 내놓는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UAE 세이크 칼리파 왕립병원(Sheikh Khalifa Specialty Hospital)의 설립 초기 응급실장을 맡아 4년 8개월여간 UAE의 의료체계 기틀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낯선 환경에서 의료행정을 만들어 정착시킨 경험을 가졌다.무엇보다 여전히 병원장실을 지키기보다는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만나는 시간이 더 많은 그는 의료진의 고민과 아픔까지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어 의료행정과 현장을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우리 의료체계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유연한 의료시스템 정착돼야…이세호 병원장은 "한국인의 특징이, 장점이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다는 것"이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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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한국 최초·아시아인 2번째 국제산업보건학회장'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교수 지면기사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앞장서겠습니다."지난달 국제산업보건학회(ICOH) 제16대 회장을 맡게 된 가천대 길병원 강성규(63)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의 다짐이다. 강 교수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 아시아인으로서는 2번째로 국제산업보건학회를 이끌게 됐다. 임기는 오는 2024년까지다.국제산업보건학회는 전 세계 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연구와 교육활동 등을 하는 산업안전보건분야 최고의 국제학술단체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보건기구(WHO)의 산재 예방 관련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전문적인 조언을 하는 역할을 한다.짧은기간 산업화로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오염방지시설… 전국 곳곳 공장 찾아다녀1993년 제일화학 사망사고 조사해 석면 피해 입증 '직업성 암'으로 국내 첫 인정 받아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경각심… 정부 산업별 재해원인 분석 사업주 과실 따져야 직업환경의학은 노동자 직업병은 물론, 산업재해, 환경성 질환 등을 진단·연구하는 학문이다. 급변하는 노동환경에 따라 건강문제가 전형적인 직업병이 아닌 업무 관련성 질환으로 바뀌는 데다, 산업재해와 관련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업환경의학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연세대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친 강 교수는 담당교수의 추천으로 직업환경의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1989년 당시 근로복지공사 부설 직업병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했다.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직업병을 연구하기에 최적화된 곳이었다"고 했다.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이뤄냈지만, 산업화의 명과 암이 분명했다는 것이다. 공장 노동자들은 오염방지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업병에 걸리는 일이 많았다. 그는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피해 규명을 위해 전국 곳곳에 있는 공장을 찾아다녔다.강 교수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직업병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조사했던 직업병 피해 노동자의 이름과 증세 등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1993년 경남 양산 '제일화학'에서 일했던 노동자 사망사고를 조사해 국내 최초로 석면 피해를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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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3·1혁명'이라 부르는 김재옥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 지면기사
차량이 줄지어 서있는 주유소 한쪽에 작은 문 하나가 있다. 좁은 계단을 오르니 그의 사무실이 나왔다. 3·1운동(그는 3·1혁명이라고 했다)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민족 대표들의 존영이 벽에 빼곡히 붙어 있었다. 해공 신익희의 장남이자 그 역시 독립운동가였던 신하균이 퇴계 이황의 시를 옮겨 쓴 작품 등도 걸려있었다. 본업은 대신자연에너지 대표, 그러나 본업 못지 않게 3·1혁명의 가치를 되새기고 역사를 바로 조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온 그는 김재옥 사단법인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이다. 3·1절을 나흘 앞둔 지난달 25일 찾은 김 이사장의 개인 사무실이 이런 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민족 대표 33인은 1919년 3·1혁명 당시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이들을 뜻한다.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등 종교별로 참여했다. 33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미독립선언서의 기획부터 3·1혁명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핵심 인사는 48인이었다. 3·1혁명 이후 48인의 재판 기록을 엮은 자료를 인터뷰 내내 손에서 놓지 않던 김 이사장은 "독립 선언과 3·1 혁명은 을사늑약 이후 10년 이상 준비된 것이다. 많은 분들이 중국, 러시아 등으로 이주해 갔고 그곳에서 독립을 위한 준비 등이 오랜 기간 이뤄져 왔다"며 "33인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핵심 인사는 48인이었다. 이중 김세환 선생은 수원에 학교를 설립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주력했지만, 수원이 전국 독립운동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곳으로 거듭나게 했던 분"이라고 설명했다.민족 대표 48인의 재판 기록을 보고 또 볼수록 나라, 그리고 민족의 소중함을 되새긴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기념사업회 일을 하고, 이분들의 발자취를 좇아가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은 정말 나라, 그리고 우리 민족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선열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내놓고 희생했는데, 그건 결국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지키려 했던 나라와 민족을 후손들이 지켜내지 못한 채 남북으로 분열돼있다.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돼서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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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경기도 최다6선·최연장자' 나종석 팔탄농협 조합장 지면기사
'누가 해도 할 일이면 내가 하자. 언제라도 할 일이면 지금 하자. 지금 내가 할 일이면 더 잘 하자'.'성실'에 관한 나종석(76) 팔탄농협 조합장의 지론이다. 그는 평소 이 말을 자주 했다. 또한 평생 이 말을 실천했다. 팔탄농협에서 30년째 일하고 있으니 직원들도 모두 이 말을 알고 있다. 나 조합장은 스스로 먼저 실천했고, 직원들에게도 함께 성실하자고 권했다. 어느 날, 그의 말이자 실천이자 삶인 이 글귀가 크리스털패에 새겨져 그의 책상에 놓였다. 직원의 선물이었다. 일을 하다 가끔 글귀에 눈길을 둔다. 직원의 손을 통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 글귀를 보며 성실함이 지닌 힘을 실감한다. 그는 지난 1993년 제8대 팔탄농협 조합장으로 취임한 이후 30여년 동안 조합장 6선을 이루었다. 조합원 2천여명의 팔탄농협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20억5천여만원을 달성했고, 조합원에 대한 환원사업 및 영농자재 보조지원 등으로 21억1천여만원을 지원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실적은 나아졌다. 내년에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를 치르니 15대 조합장으로서의 임기가 1년 남았다. 조합장으로 보내는 마지막 1년이다.성실함으로 전국 최우수 농협으로 우뚝 세워… '미농 공적비' 제막 영광일손 부족한 농촌에 '건답직파' 재배방법 찾아… 올 60가구 70만㎡ 계획왜소한 덩치 40㎏쌀 옮기는게 버거워 미곡종합처리장 설립 결심 보람도 22일 팔탄농협 주변으로 모처럼 활기가 가득 찼다. 작고 조용한 마을에 공적비가 서니 농협 사람이고, 마을 사람이고 왁자하게 모여들었다. 이날 오후 2시에 '미농(米農) 나종석 조합장 공적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경기도 내 유일한 최다선 조합장이자 최연장자로서 그가 세운 업적을 기리고자 조합 임원들이 이를 준비했다. 농협중앙회 이성희 회장을 중심으로 공적비설립위원회가 결성됐다. 화성시 10개 농협 조합장들이 모두 참여했고, 팔탄농협 임원들도 합세했다. 이들은 공적비에 '팔탄농협을 연 3회에 걸쳐 전국 최우수농협으로 우뚝 세웠다. 비약적인 사업 성장을 꾀하면서 쌀 재배 농가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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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한반도 평화 실타래 푸는' 이석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지면기사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과 대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는 헌법 제92조에 근거한 평화통일정책 대통령 자문 기관이다. 지난 1981년 6월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가 창설된 이후 1987년 10월부터 현재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제20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출범하면서 민주평통을 이끌고 있는 이석현(71)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취임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공 외교, 지역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해가고 있다.새해 들어 북한이 잇따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모라토리엄(유예) 해제를 시사하면서 한반도 정세에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이 수석부의장은 북한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지난달 24일 민주평통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미국은 북한에 대해 보상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면서 바이든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또 북한에 대해서도 북한이 핵실험과 ICBM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해제하면 평화 협상의 판을 깨는 행위가 되는 만큼 즉각 대화에 나서 비핵화와 번영의 길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장성택 처형에 이어 지난 2017년 중국이 보호하던 김정남 암살사건이 발생하면서 중국과 북한 관계가 악화됐지만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있었던 북미회담 결렬 이후 북·중 관계가 동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형국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몰아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 비핵화에 따른 단계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 수석부의장은 "세계 정세는 미·중 간 무역 갈등에서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번졌고 전 세계로 넓어졌고 북한과 중국의 밀착이 강화되면서 북한이 미국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최근 북한은 미사일을 연일 쏘아 올렸고 이에 미국은 추가 제재를 하겠다고 하고 있어 한반도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이 상황을 풀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北은 미사일 쏘고 '추가 제재'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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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설립 10년 맞은 정세현 '함께하는 인천사람들' 대표 지면기사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1983년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그라민은행(Grameen Bank)'을 설립해 빈곤 퇴치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그라민은행은 마이크로크레디트(빈곤층에게 담보 없이 받을 수 있는 소액 대출)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그라민은행은 설립 이후 방글라데시에서 빈곤 퇴치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로 확산했고, 비슷한 형태의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도 늘었다.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이하 함인사)'은 지난 2012년 '인천 사회적 은행'을 표방하며 설립된 인천형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다. 올해로 만 10년을 맞았다. 어려운 환경속 성실히 사는 분 볼 때마다 매번 감동 받고 용기 얻어대출은 끝이 아닌 시작… 지원대상자 9단계 구분 2~3점자들 집중 관리지난 2년간 대위변제율 1% 발생… 저소득층 기회 만드는 정책 제안 정세현 대표는 2014년부터 함인사 대표를 맡았다. 금융기관과 민간기업에서 근무하던 그는 지역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함인사에 합류했다고 했다. 정세현 대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매번 감동을 받고,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함인사는 후원을 토대로 저소득층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중개 기관이다. 함인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은 전국적으로 5개 정도가 운영되고 있으며, 함인사를 제외하면 모두 서울에 위치해 있다. 함인사는 명칭에서 알려주듯 인천시민을 위한 사회적 은행이다. 이 때문에 대출 대상은 인천시민이다. 김포나 부천, 시흥 등 인근 지역에서 함인사에 대출을 문의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타 지역 시민들은 서울에 있는 다른 기관을 연결해준다고 한다. 함인사는 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담보 없이 저리로 대출을 진행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제공하지는 않는다. 생계를 위해 쓰는 자금보다는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형태다. 10년간 함인사는 595명에게 창업을 지원했다. 한 달에 5개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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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인천 개항기 음악 발굴하는 모던보이' 인천콘서트챔버 이승묵 대표 지면기사
일제 강점기 인천 용동에는 기생들이 적(籍)을 두었던 조합인 권번(券番)이 있었다. 이화자(李花子·1918?~1950?)는 이곳 용동 권번의 대표적인 예인 가운데 하나였다. 권번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이화자는 가수로 발탁됐고 레코드 취입과 함께 국내외를 누볐다. 스타가 됐지만 이화자의 삶은 마냥 밝지 않았다. 여성은 지금도 약자로 여겨지는데, 그때는 여성 예술인에 대한 대접이 더 나빴다.개항기 인천의 근대 음악을 발굴·수집하고 또 공연으로 만들고, 다시 앨범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인천콘서트챔버가 최근 이 여성예술인 이화자의 삶과 음악에 다시 빛을 비추는 작업을 마쳤다. 이화자의 노래를 음악극으로 만들었고, 최근 앨범도 냈다.2015년부터 이러한 소중한 활동을 이어오는 인천콘서트챔버를 이끄는 이승묵(36) 대표를 지난 24일 인천 제물포구락부 인근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천시 유형문화재인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인천에 살던 외국인들의 사교 모임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이승묵 대표는 검은 뿔테 안경과 단정한 정장 차림에 깨끗한 구두를 신고 약속 장소에 나왔다. 옛 '모던보이'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의 단정한 모습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보는 이에게 호감을 준다. 인사를 나누면 바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면 그의 작업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그의 활동을 지지하는 팬이 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의 패션은 남성 패션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이화자의 노래 음악극으로 만들고 앨범도… 옛 건물 찾아다니며 연주개항기 소외된 사람, 나아가 여성 예술인의 음악 들여다보는 작업달걀로 바위 쳐보고 싶은 마음, 무작정 역사학자 등 만나 묻고 배워 그는 왜 이화자에 집중했을까. 이 대표는 "개항기 소외된 사람들을 살펴보고자 했고, 특히 더 소외된 사람들이었던 여성, 나아가 여성 예술인의 음악을 들여다보고자 한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특히 이화자는 자신의 음악을 '자서곡'(自書曲)